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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전국 교구 교구장 사목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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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goodnews] 쪽지 캡슐

2018-12-03 ㅣ No.2161

 

2019년 전국 교구 교구장 사목교서

 

 서울대교구 

춘천교구

대전교구

인천교구

수원교구

원주교구

의정부교구

대구대교구

부산교구

청주교구

마산교구

안동교구 

광주대교구

전주교구

제주교구

군종교구

 

 

 

[서울대교구]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
- 선교의 기초이며 못자리인 가정 공동체 -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마르 16,15)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성령께서 주시는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교구는 2012년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 선포하신 ‘신앙의 해’를 기점으로 복음화를 위하여 다섯 가지 사목 목표를 매년 하나씩 실천하였습니다. 곧 ‘말씀으로 시작되는 신앙’, ‘기도로 자라나는 신앙’, ‘교회의 가르침으로 다져지는 신앙’, ‘미사로 하나되는 신앙’, 그리고 ‘사랑으로 열매 맺는 신앙’을 살아왔습니다. 각 본당과 기관에서 또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충실히 걸어온 이 여정은 허약했던 신앙의 기초를 보다 튼튼하게 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이루어주신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며 교구민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동안 맺은 열매들을 바탕으로 이제 저는 교구의 사목 방향을 새로운 열정과 방법으로 ‘복음의 기쁨을 선포하는 교회 공동체’ 건설에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교회는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수행하여야 합니다. 그동안 사도들을 시작으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도우심 아래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기쁨을 전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우리 역시 복음 선포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는 참다운 교회 공동체를 이루어야겠습니다.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 교회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그 의미대로 모든 이에게 ‘기쁜 소식’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만남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체험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이 그 기쁜 소식을 곧바로 다른 이들에게 전했듯이 하느님의 놀라운 사랑을 체험한 그리스도인은 누구라도 지체 없이 온 마음을 다해 그 사랑을 전할 것입니다. 복음 선포는 세례를 통하여 짊어진 무거운 의무가 아니라 우리가 체험한 기쁨을 드러낼 수 있는 하나의 선물이요 아름다운 몸짓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로마 10,15)라고 외치는 바오로 사도처럼 우리 역시 주님의 구원을 선포하는 도구가 된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복음의 기쁨을 체험하고 전하기 위해서는 어디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저는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교회의 가장 기초가 되는 공동체인 가정을 다시금 강조하고 싶습니다. 성인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가정은 교회처럼 복음이 전달되는 곳”이며 동시에 “복음이 빛나는 곳”이라 말씀하십니다. 참조: 「가정 공동체」, 52항.
 이처럼 가정은 복음 선포를 위한 가장 작은 공동체이며 동시에 우선적으로 복음화되어야 하는 자리입니다. 교황 프란치스코께서도 현대 사회의 가정이 직면한 위기들 참조: 「사랑의 기쁨」, 32-57항.
을 말씀하시면서 “복음의 메시지가 가정 안에서, 그리고 가정들 사이에서 언제나 울려 퍼져야” 「사랑의 기쁨」, 58항.
한다고 권고하십니다. 가정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우고, 키우며, 전하는 못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이렇게 가정은 복음의 기쁨을 체험하는 가운데 복음화되고, 그 복음의 기쁨을 전하며 복음화하는 교회의 기초 공동체입니다. 이제 저는 가정 공동체가 새로운 열정과 방법으로 복음을 보다 더 잘 선포할 수 있도록 세 가지 측면에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가정은 ‘사랑을 배우고 키우는 학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란 자기중심적인 사랑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이타적인 사랑입니다. 가정은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하고 이해하며 용서하는 법을 배우고 키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사랑의 학교입니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교 가정은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가족이 함께 기도하고,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성찬의 친교에 참여함으로써 언제나 하느님의 사랑을 배우고 키우는 가정이 되어주십시오.
  부부는 하느님과 공동체 앞에서 맺은 혼인 계약을 기억하며 “상대방의 성숙을 위한 하느님의 도구” 「사랑의 기쁨」, 221항.
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생활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위기들 속에서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그 사랑을 가정의 중심에 두십시오. 서로 다른 성(性)을 지닌 부부는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며 협력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사랑의 전달자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부부는 가정이 “새 생명이 태어나는 곳일 뿐만 아니라 그 생명을 하느님의 선물로 환대하는 자리” 「사랑의 기쁨」, 166항.
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신들의 기대나 원의보다 자녀가 하느님의 뜻 안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삶의 여정을 찾고 살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여 주십시오. 또한 자녀는 부모가 보여준 놀라운 사랑에 늘 감사하며 자신들이 받은 그 사랑으로 부모를 섬겨야 합니다.
 
  둘째, 가정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신앙을 이어주는 자리’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인 부부가 서로에게 뿐만 아니라 ‘자기 자녀들과 다른 가족들에게도 은총의 협력자이며 신앙의 증인’ 참조: 「평신도 교령」, 11항.
이라고 가르칩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신앙을 가르쳐 주는 첫 스승” 「사랑의 기쁨」, 16항.
입니다. 자녀들에게 신앙을 전하는 참된 부모는 자신이 먼저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의 필요성을 느껴야 합니다. 참조: 「사랑의 기쁨」, 287항.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체험한 부모는 자신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놀라운 사랑을 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신앙생활에 충실하지 못하거나 신앙 안에서 힘과 위로를 얻지 못하여 잠시 교회를 떠난 가족에게도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도 안에서 사랑의 마음과 인내의 태도로 그들을 기다려주어야 하며, 이를 토대로 실질적으로 교회와 함께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아울러 조부모 역시 자신이 선물로 받은 신앙을 후손들에게 선물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자손들이 신앙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이웃을 위하여 기도하며 그들을 도울 수 있도록 모범이 되어주십시오. 신앙을 전하는 것은 참된 사랑의 실천입니다.

 

  셋째, 가정은 ‘세상에 복음의 기쁨을 전하는 도구’입니다. 교황 프란치스코께서는 그리스도인 가정이 “근본적으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선교적인 것이 되어야” 「사랑의 기쁨」, 230항.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자기 가정의 안위와 행복을 추구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자신의 가정을 넘어 이웃과 세상을 향하여 복음의 기쁨을 선포하면서 그들을 복음화하는 가정 공동체가 되어주십시오.

 

  사제 여러분, 사목활동 안에서 선교를 위한 노력에 힘을 기울입시다. 사제 자신의 재능, 시간, 그리고 가진 바를 선교를 위하여 더 활용하도록 합시다. 특히 오늘날 다양하고도 복잡한 문제들을 안고 살아가는 가정이 선교의 기초이며 못자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가정에 더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돌보아주며, 그들이 복음의 기쁨을 느끼며 살아가도록 구체적인 사목활동을 펼쳐주십시오.

 

  남녀 봉헌 생활자 여러분, 여러분의 고유한 신분 안에서 선교에 충실 합시다. 여러분이 보여주는 청빈과 정결과 순명의 삶은 참된 선교의 힘이기에 신자들뿐 아니라 교회 공동체 밖의 많은 이들에게도 복음의 기쁨을 가져가는 일이 될 것입니다.

  신자 여러분, 가정생활 안에서 체험한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기억하며 학교, 직장, 각종 모임 등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복음의 기쁨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이것이 죽음으로 신앙을 증거한 순교자들의 후예인 우리가 가정과 교회, 그리고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오늘날 우리 가정이 많은 어려움과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음을 알고 아파하고 있습니다. 그 어려움과 고통 속에 갇혀서 믿음의 여정을 포기하지 않도록 힘을 내십시오. 여러분의 가정이 자비하신 하느님의 은총으로 예수님의 사랑 안에 튼튼해지길 기도하겠습니다. 우리의 가정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기쁨을 체험하고 나누며 전하는  선교의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는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가정 안에서 그리고 우리의 가정을 통하여 풍성히 열매 맺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증언한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가정을 이루신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
         저희 가정도 ‘작은 가정 교회’가 되도록 빌어주소서.

 

1) 참조: 「가정 공동체」, 52항.
2) 참조: 「사랑의 기쁨」, 32-57항.
3) 「사랑의 기쁨」, 58항.
4) 「사랑의 기쁨」, 221항.
5) 「사랑의 기쁨」, 166항.
6) 참조: 「평신도 교령」, 11항.
7) 「사랑의 기쁨」, 16항.
8) 참조: 「사랑의 기쁨」, 287항.
9) 「사랑의 기쁨」, 230항
2018년 대림절에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

 

 

  

[춘천교구]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이사 2,5)


     

지난 시간에 대한 감사하며
 
  1. 이제 우리는 감사와 은총의 8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참으로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섭리와 은총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은혜로운 80주년을 잘 맞이하기 위하여 지난 2014년부터 우리는 복음화율 10%와 미사 참례율 40%라는 목표로 다 함께 노력하였고, 그 결과 교구와 각 본당의 커다란 외적 성장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도 많은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바탕으로 우리 교구의 모든 사제,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들이 한마음으로 하나 되어 이룬 것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이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드릴 뿐입니다.

 돌아보면 아쉽고 부족한 부분도 있겠지만 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그래서 지금 뿌린 씨앗이 언젠가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고 함께 기도하면서 계속 앞으로 걸어갈 것입니다. 그렇게 끊임없이 사랑을 전하고, 희망을 살아가며, 믿음을 증거 할 것입니다.


주님의 빛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새롭게 하여

 

2. 교구설정 80주년은 우리 교구가 생긴 이래 단지 80년의 시간이 흘렀음을 기억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자비로 이루어진 80년이란 시간은 감사의 시간일 뿐 아니라, 우리의 현재를 다시금 돌아보는 시간이며, 미래의 우리를 준비해나 가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두 발은 80주년이라는 땅 위에 서 있지만, 우리의 시선은 100주년을 향해 있어야 함을 깨닫는 시간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 교구에서는 80주년을 맞아 전 신자를 대상으로 신앙설문조사를 하였습니다. 이는 우리의 현재를 제대로 바라보고 우리 신앙의 방향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알기 위함이었습니다.

 

3. 올바른 해답은 올바른 질문에서 나옵니다. 신앙설문조사를 통해 우리가 진정 되새겨야 할 모습은 ‘무엇이 정답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우리가 가져야 할 올바른 질문인가?’입니다. 신앙인은 하느님 안에서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사람들입니다.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것인지, 무엇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모습인지를 개인적으로도, 그리고 공동체로도 끊임없이 질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제들도, 수도자들도, 그리고 평신도들도 매 순간 하느님을 기준에 두고 스스로 질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너가 바뀌어야 한다’라고 말하기에 앞서, ‘나부터 바뀌고 있는가’를 질문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빛 안에서 우리가 걸어가야 할 참된 새로움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사랑으로 하나 되어


4. 우리가 이루어 살아가는 교회 공동체는 신앙 공동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부족한 죄인들의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때때로 성당 안에서의 행동과 성당 밖에서의 행동이 다르기도 하고, 끼리끼리 어울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여 이에 실망하고 상처받은 분들은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신앙인들이 자신이 속한 신앙 공동체의 모습에 대해 실망을 넘어선 희망을 지니고 있음을 80주년을 맞은 설문조사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신앙의 기준이 아니라, 하느님이 신앙의 기준임을 잘 알고 있으며, 서로의 부족함은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돌봄과 기도의 대상임을 또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우리 신자들이 자랑스럽고 고맙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신앙은 서로를 향한 사랑을 통해 자라며, 서로를 향한 사랑은 하느님을 향한 신앙 안에서 그 뿌리를 튼튼히 내릴 것입니다.


5. 이렇게 신앙과 사랑이 함께 자라는 것임을 알기에, 우리는 무엇보다 이 교회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신비체”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머리이시고, 우리는 그 지체입니다(에페 1,22-23; 1코린 12,27 참조). 세례를 받은 우리 모두는 특별히 영성체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며(1코린 12,27 참조),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을 이루면서 서로서로 지체”(로마 12,5)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라 부를 수 있으며, 다른 신앙인들을 ‘형제, 자매’라고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사랑을 실천하고 사랑으로 하나 되기 위해서 무엇보다 우리가 그분의 지체라는 품위를 깨닫고 그 품위를 살아가야 합니다(성 대 레오, 「설교집」, 21,3: CCL 138,88 참조).

 

6. 그리스도께서 거룩하시니 그 지체인 우리도 거룩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레위 11,44; 1베드 1,15 참조).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단지 이 세상의 행복이 아니라, 우리가 거룩한 사람들이 되어서 하느님 나라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거룩할 수 없기에 모든 거룩함의 샘이신 하느님으로부터 그 거룩함을 나눠 받게 됩니다(성찬 기도문 제2양식 참조). 그리고 그 거룩함의 핵심은 바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829항 참조). 우리가 그 사랑을 믿고, 그 사랑을 희망하며, 또한 그 사랑을 우리 삶의 응답 안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사랑으로 하나 된 공동체, 성령 안에 일치된 공동체를 이 땅에서 이미 살아가는 것입니다.


앞으로의 시간을 은총의 시간으로 만들면서


7. 사랑으로 하나 된 공동체는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임을 압니다. 우리의 신앙도 스스로의 결심으로 이룬 것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신앙은 무엇보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총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미 은총을 받은 사람답게, 앞으로의 삶도 은총의 시간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신앙에 대해 교리적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삶 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앙의 기쁨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기쁨을 나누며 살아갑니다. 80주년 신앙설문조사에서도 신앙체험을 나누는 기회가 자주 있길 바라는 의견이 많음을 볼 때, 신앙의 기쁨을 살아가며 서로 함께 나누는 모습은 복음을 전하는 선교 활동에도 매우 중요한 모습이 될 것입니다.

 

8.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느님의 목마름은 우리의 목마름이 되어야 합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으로 구원하셨으니, 우리도 신앙의 기쁨을 전함으로써 앞으로의 시간을 은총의 시간으로 만들어 나갑시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바오로 사도와 더불어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나는 기쁜 소식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기쁜 소식은 모든 믿는 이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로마 1,16)


함께 걸어갑시다


9. 신앙의 기쁨을 전하는 길은 결코 혼자 걸어가는 길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걸으시니(루카 24,15 참조), 우리도 믿음과 희망과 사랑 안에서 그분과 함께 걸어가야 합니다. 그 길을 잘 걸어가기 위해 특별히 세 가지 실천 사항을 제안합니다. 첫째, 남들이 바뀌길 바라기에 앞서 나부터 먼저 바뀝시다. 둘째, 서로가 그리스도의 지체임을 알고 사랑으로 하나 됩시다. 셋째, 이미 받은 은총에 감사하며 신앙의 기쁨을 다른 이들과 나눕시다.
이렇게 교구설정 80주년을 지내는 우리 모두 지난 시간에 감사하며, 주님의 빛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새롭게 하여, 사랑으로 하나 되어, 앞으로의 시간을 은총의 시간으로 만들면서 함께 걸어갑시다.
함께 걸어가는 그 길 위에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충만한 복을 내리시고 지켜주시길(민수 6,24 참조)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2018년 12월 2일 대림 제1주일
 천주교 춘천교구장 김운회 루카 주교

 

 

 

  

[대전교구]

교구 시노드를 살며, 교회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하는 공동체가 됩시다!

 

 

교구 시노드 폐막, 그리고 새로운 시작
지난해 2월 우리 교구는 역사적인 교구 시노드 본회의를 시작하면서, 교구설정 70주년을 함께 맞이하였습니다. 교구민이 함께 참여한 시노드 본회의는 ‘순교영성’과 교황권고 ⌜복음의 기쁨⌟을 기초로, ‘사제’와 ‘평신도’라는 의안으로 모든 것을 열어 놓고 시작하였습니다. 여기에 ‘평신도 희년’과 ‘교구 희년’을 맞이하면서, 전대사의 특별한 은총도 허락되었습니다. 우리 교구의 현재이자 미래인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을 위한 70주년 축제를 했고, 교구의 역사를 미래에 대한 전망 안에서 기억하고 공유하는 나눔의 자리도 가졌습니다. 평신도 희년과 한국평협 창립 50주년을 맞이하여, ‘평신도 사도직 전국 협의회’가 창립된 주교좌 대흥동성당에서 평신도 복음화의 소명을 일깨우기도 했습니다. 특별히 교구 시노드의 성공적인 진행과 모든 사목지의 복음화를 위해 교구 하느님 백성들이 ‘묵주기도 1억단 바치기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성심으로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교구민 여러분!
우리는 지난 4년간 함께해 온 교구 시노드를 올해로 마무리합니다. 시노드는 우리 교구의 현실을 다각도로 성찰하고 미래를 함께 그려 보려는 “용기 있는”시도였습니다. 시노드에서 논의된 교구의 모든 상황들이 ‘쇄신’을 통한 ‘변화’로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우리는 시노드를 통해 성찰한 현실진단과 대안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교회의 모습’을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앞으로 교구 시노드 안에서 고백하고 토론한 모든 내용들을 계속 연구하면서, 사목의 방향을 정하고 교구의 조직도 재편할 것입니다.
이렇게 대전교구 70주년 희년과 교구 시노드 마지막 여정이 진행되는 올 한 해가 ‘쇄신’을 위한 변화의 새로운 발걸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시노드를 통해 복음화 방향이 설정되는 유종의 미가 이루어지고, 이 ‘역사적인 맺음’이 시노드 후속 진행과 함께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도록 폐막하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시노드의 참 목적은 ‘나’ 그리고 공동체로서의 ‘우리’를 영적으로 바라보는 성찰에 있음을 잊지 맙시다. 긴 여정을 걸어온 교구 시노드가 저를 포함한 교구민 모두의 끊임없는 기도와 적극적인 참여로,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맺음’과 ‘새로운 시작’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특히 21세기의 우리 교회는 ‘개인주의’와 ‘상대주의’, ‘삶의 양극화’라는 복잡한 사회현실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세속주의가 우리 교회 안에 깊숙이 침투해 있는 현실입니다. 동시에 변화의 끝을 예측할 수 없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이제 머지않아 ‘뜻밖의 미래들’이 우리에게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 자신과 세상을 복음화시켜야 하는 우리 교회도 세상의 거대한 도전들 속에서 변화하고, 복음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사람’, ‘새로운 교회’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모든 변화는 언제나 ‘실천’에서 시작됩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들입니다. 눈에 보이는 어떠한 발전보다 인간 생명이 존중되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격적으로 소중한 대우를 받는 것이 복음의 기초이고, 우리가 걸어야 할 길입니다. 이것이 모든 발전을 식별하는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고자 하는 ‘변화’의 걸음들이 하느님께서 이끌어 가시는 새로운 가치가 되도록 용기 있게 우리를 그분께 맡겨 드립시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주님 안에서 또한 성모님의 도우심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묵주기도 1억단 바치기 운동’이 지속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미래를 위한 교구 신청사 건립
교구 신청사는 시노드가 시작되기 몇 해 전부터 계획되어 왔습니다. 오래전부터 특히 사제들로부터 평생교육 지원과 교구 사목의 심도 있는 연구 등 많은 요청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요구들은 시노드를 통하여 교구민들과 더불어 더 폭넓고 심도 있게 논의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평신도들의 다양한 활동을 위한 기구들이 증가해 왔으나, 교구는 충분히 이를 수용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러한 변화와 요구들을 수용하며 사회에 열려 있는 교회다운 모습을 구현하는 데에 교구 신청사는 꼭 필요한 수단입니다. 교구 시노드가 사목적이고 영성적인 측면에서 미래를 구상하는 시간이었다면, 교구 신청사는 이러한 결과들을 담아내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모든 교구민이 신청사 건립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좋은 의견도 주시면서 함께 기도해 주시고 협력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순교영성의 생활화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거한 순교정신은 현대교회 안에서 ‘형제들, 특별히 가난한 이들을 향한 진정한 사랑’과 ‘정의와 공동선에 대한 신념에로의 투신’으로 넓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2000년 대희년 교회 일치를 위한 미사’에서 비가톨릭교회의 순교자들도 기억하며,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공통적으로 찾아오는 현대의 도전들에 대한 공동의 증거가 필요함을 역설하신 바 있습니다. 2014년 방한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시복식 미사에서, 한국교회가 순교자들의 희생으로 성장했음을 언급하시며 “가난한 이를 돌보고 평화를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이 시대의 순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선조들에게 물려받은 신앙과 애덕의 유산을 보화로 잘 간직해 지켜나가기를 바랍니다.”라는 당부도 하셨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심화되는 이 시대의 심각한 도전들 앞에서, ‘지금 여기’에서 그리스도교가 지닌 복음적인 가치와 윤리적 이상에 투신하는 것이 곧 순교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장한 선조들이신 순교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과 삶이 일치하였던 분들”이십니다. 우리는 교구설정 60주년을 계기로 교구 내 성지를 도보로 순례하며, 순교자들께서 걸으셨던 길을 함께하는 좋은 전통을 만들었습니다. 아울러 순교자들의 삶과 정신을 우리 안에 보다 깊이 내재화하기 위하여 ‘순교자 학교’를 시작하였습니다. 이에 모든 형제자매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사목자들의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전례복음화를 통한 친교의 교회 실현
교구 시노드를 통해 진단하고 성찰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연구를 하는 가운데, 다양한 사목 방향들이 제시될 것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로 전례복음화의 측면에서 ‘단계별 입교예식’ 자료집을 준비하였습니다. 비교적 짧은 교리로 세례를 받는 신자들이 전례 중에 이루어지는 단계별 입교예식을 통해, 교회 공동체와 더욱 깊은 신앙적 유대를 갖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제들은 ‘단계별 입교예식’을 사목현장에서 적극 활용해 주시고, 주님께서 무상의 사랑으로 주신 ‘친교의 신비’를 전례 안에서 기쁘게 나누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한국교회는 이번에 사도좌의 추인을 받아 악보를 포함한 완전한 형태의 새 로마미사경본을 갖게 되었습니다. 교회공동체의 전례생활이 다양한 기도예식과 찬미를 통해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시기를 특히 사제 여러분들에게 부탁드립니다. 

 

말씀의 생활화
우리는 2015년부터 매년 복음서 한 권씩을 필사하면서 주님 말씀대로 살겠다는 다짐과 함께, 교구 설정 70주년을 준비해 왔습니다. 많은 분들이 동참해 주셨습니다. 또한 교구 시노드의 은혜로운 ‘맺음’을 준비하면서, 14개 지구 모든 본당의 사목회에서 성경 이어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단체별, 소공동체별, 본당별로 자발적인 성경필사 봉헌 운동이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교구 공동체가 말씀을 통해 성장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경공부’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마르코 복음 공부를 진행합니다. 많은 본당에서 사목자들이 말씀과 함께하는 다양한 성경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변함없는 관심과 노력을 부탁드립니다. 오래전부터 실시해 온 소공동체는 새로운 교회의 모습이며, 복음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본당에서 소공동체가 더 활성화되어 말씀과 함께 하는 신앙이 생활화되기를 바랍니다. 복음적인 삶을 통하여 구원을 가져오는 진리의 말씀들이 우리 신자들을 통해 힘차게 선포하고 증거하기를 바랍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마태 5,9)
우리 민족은 제국주의의 지배에서 해방을 맞이하면서 또 다른 수난의 역사를 겪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남북 분단으로 많은 아픔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남북관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새로운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에페 2,14)라는 말씀처럼, 평화는 주님께서 친히 십자가의 희생으로 우리 가운데 이루시고자 하는 은총의 결정체입니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주님의 자비에 힘입어 평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평화는 모든 발전이 진정으로 인간을 위해 쓰이도록 해 주는 조건입니다. 남북관계와 관련하여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진정성 있게 진전되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힘써 찾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는 기도를 바쳐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사제님들, 수도자님들과 형제자매님들, 교구 복음화를 위한 그 동안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다시 함께 앞으로 나아갑시다!
고맙습니다.

 

천주강생 2018년 12월 2일 대림 첫 주일에
천주교 대전교구 교구장 주교
유흥식 라자로

  

  

[인천교구]

 

성서의 해 Ⅰ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습니다.”(히브 4,12)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지난 한 해 동안 신앙의 원천으로 돌아가 신앙의 기초를 생각하는 ‘세례 신앙 갱신의 해’를 보냈습니다. 세례 신앙을 돌이켜 보며, 어둠 속을 걷지 않고 하느님의 빛 안에서 살아가는 삶에 대해 생각하였고, 우리의 삶 안에서 예수님이 진정한 구세주 그리스도이심을 믿어 고백하는 삶을 더욱 확고히 하였습니다. 신앙은 한순간의 고백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는 지속적인 신앙 교육을 통해 더욱 완전한 회개, 성숙한 신앙에로 모든 신자들이 나아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교리교육 총지침서 51-52항 참조). 더욱 성숙한 신앙에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 교구는 앞으로 2년간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성서의 해’를 보낼 것입니다.

 

말씀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전인적이며 올바른 응답이 신앙입니다. 이 신앙이 커가는 것에 대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렇게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성경 안에서 사랑으로 당신 자녀들과 만나시며 그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교회에게는 버팀과 활력이 되고, 교회의 자녀들에게는 신앙의 힘, 영혼의 양식 그리고 영성 생활의 순수하고도 영구적인 원천이 되는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계시헌장 21항)

 

또한 교회의 여러 성인들도 성서를 읽고 묵상하는 것이 얼마나 신앙의 큰 힘이 되는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앙을 특징짓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느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말씀이 진리라는 데에 대한 충만하고 의심 없는 확신입니다. … 그러한 충만한 확신으로 성경 말씀의 의미에 따라 살며 감히 아무것도 삭제하거나 첨가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 대 바실리오 ‘도덕론’)

 

“성경은 인간의 삶을 위한 가장 올바른 규범입니다.” (성 베네딕토 ‘규칙서’)

 

“성경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지혜가 그대를 사랑할 것입니다. 성경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성경이 그대를 보호해 줄 것입니다.” (성 예로니모 ‘서간집’)

 

“복음에 눈길을 돌리기만 하면 예수님의 삶의 향기를 느끼고 어디로 달려가야 할지를 알게 됩니다.” (예수의 성녀 데레사, ‘한 영혼의 이야기’)

 

‘한국 천주교회사’를 쓴 달레 Dallet 신부님은 순교자들이 모진 고문 속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길이요 생명인 하느님의 전능하신 말씀은 그것을 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완전히 변화시킵니다. 이 말씀은 그렇게도 겁이 많은 저 사람들을 용사로 만들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은 생명의 양식입니다. 매일 미사 때 말씀의 식탁에서 나오는 말씀의 양식으로 우리의 신앙은 더욱 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변화된 삶에로 나아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복음은 …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힘이기 때문입니다.’(로마 1,16)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체험은 우리에게 큰 힘이 됩니다. 성인은 방황 속에서, 죄의 괴로움 속에서 고통스러워할 때 ‘집어라, 읽어라. 집어라, 읽어라.’(고백록 8권 12장)라는 말씀을 듣고 성서를 읽게 되었고, 회개하면서 신앙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우리의 신앙에 확신을 더해 주고, 확신에 찬 신앙에로 성장하기 위하여 성경을 읽고 묵상하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이끄심 안에 마음을 열고 성경의 말씀을 들으면 우리의 신앙이 커가게 되고, 성장되어 나아갑니다(‘주님의 말씀’ 30항 참조). 왜냐하면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로마 10,17)

 

그러기에 저는 우리 교구 모든 신자분들이 더욱 깊은 신앙에로 나아가기 위해 다음의 세 가지를 실천하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로 매일 성경을 읽는 습관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읽는 것 자체가 우리를 더욱 성숙한 신앙에로 이끌어 줍니다. 예로니모 성인은 ‘늘 성경을 읽으십시오. 아니 당신 손에서 성경이 떨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서간집)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짧은 시간을 내서라도 성서 한 구절을 읽고 묵상하여 마음에 새기며 암기하다 보면, 그 말씀이 우리를 삶 안에서 하느님을 생각하게끔 이끌어 줍니다. 그리고 점차 말씀에 맛 들이다 보면 성경을 더욱 가까이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2년간 성경 전체를 통독하는 많은 신자들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성경을 묵상하는 습관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말씀에 더욱 깊이 들어가기 위해서 묵상의 시간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의미를 알기 위해 교회는 침묵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주님의 말씀’ 66항 참조). 조용한 묵상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말이 아닌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 본연의 의미를 더욱 깊게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말씀이 커지실 때, 말들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성 아우구스티노, ‘설교집’). 만일 침묵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면, 성경 필사를 통해 그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세 번째로 성인전을 읽거나 교부들의 글을 읽기를 바랍니다.
성 대 그레고리오 성인은 ‘선한 이들의 삶은 살아 있는 해석’(욥기 교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몸소 살았던 성인들의 삶과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성경 본연의 의미를 더욱 깊게 느끼게 해 줍니다(‘주님의 말씀’ 48항 참조). 성인전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살기 위해 노력하였던 성인들의 삶을 깊이 생각해 보고, 그분들의 글을 읽으며 성경 본연의 깊은 의미를 찾아가는 시간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예로니모 성인은 자신의 제자 네포디아누스가 성경을 잘 읽고 늘 그 말씀을 실천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칭찬하였습니다. “그는 열심히 성경을 읽고, 이를 고이고이 되새김으로써 자기 마음을 고스란히 그리스도에 대한 도서관으로 만들었습니다.”(서간집)

 

2019년을 보내며,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깊이 새겨지는 은총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안에 일치를 이루며
천주교 인천교구장 정 신철 요한 세례자 주교

 

  

[수원교구]

 

새로운 방법, 새로운 선교

 

 

새롭게 출발하는 수원교구
1. 사랑하는 수원교구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지난 2013년 교구설정 50주년을 맞이하여 “50주년 교서”를 반포한 이래로 교서에서 제시한 “소통, 참여, 쇄신”이라는 세 가지 복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교구민 모두가 한 마음으로 노력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삼위일체 신비 안에서 드러나는 이 세 가지 복음적 가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끊임없이 본받고 실천해야 하는 항구적인 것입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교황권고『복음의 기쁨』을 반포하시면서 전 세계 교회에 ‘시대의 변화에 걸맞은 복음 선포를 위한 새로운 성찰’을 요청하셨습니다.1) 사실 우리 교구가 지난 3년간 “소통, 참여, 쇄신”이라는 주제로 자신을 돌아보며 복음적 가치에 충실하게 살아가고자 노력한 것도 이러한 성찰의 한 과정이었습니다. 이제는 보다 구체적으로 우리들의 삶의 자리에서 드러나는 문제들을 깊이 성찰하고 복음의 빛으로 조명하여 현실적으로 필요한 새로운 방법들을 모색해내야 합니다. 저는 이번 교서를 통하여 향후 3년 동안 우리 수원교구가 구체적으로 나아가야 할 복음 선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기술의 혁명, 가치의 혼란
2. 지금 세상은 ‘4차 산업혁명’의 도래를 예고하며 새로운 기술혁명이 가져올 생활방식의 변화를 예견하느라 분주합니다. 무선 정보통신 영역이 경이롭게 확장되고, 과학기술의 발달이 고도화 하면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이 맺는 관계방식이 상호 유기적으로 진화하는 국면에 이르렀습니다. 인공지능의 등장은 이러한 사람과 사물 사이의 유기적 진화가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스스로 말하고 학습하고 행동하는 인공지능은 다양한 사물과 결합하여 그동안 인간만이 가능했던 영역들을 대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로봇기술은 이미 산업현장에서 인간을 대체한지 오래되었고 이제는 상당히 전문적인 지식과 판단을 요구하는 영역까지 인공지능이 자리를 대신하려 합니다. 앞으로 그 영역이 어디까지 확장될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혹자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능가하게 되고 더 나아가 인간을 지배하는 새로운 종(種)의 출현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합니다.2) 그동안 인간만이 가능하다고 여겨왔던 영역에 더 유능한 존재가 등장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인간이 가치서열의 중심에서 뒤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위협받는 인간의 존엄
3. 이러한 가치의 혼란은 가치서열의 정점에 서있던 인간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만물의 영장’이요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가장 존엄한 존재였던 ‘인간’이 기능적 차원에서 인공지능에게 우위를 내어줌으로써 사회적 지위를 잃게 되고, 사회적 지위의 상실은 존립의 기반을 위태롭게 하여, 결국에는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하는 ‘존엄의 권리’마저 위협받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기능적 차원에서 시작했지만 불가피하게 맞닥뜨리는 사회적, 윤리적 차원을 간과한다면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인간성 상실의 재앙을 맞이할 것입니다.

 

직면한 현실, 다가오는 위기
4. 정당한 노동과 일정한 수입은 인간이 사회생활을 유지하고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 있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건입니다. 특히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에게 일정한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그가 자신의 존엄을 지키며 미래에 대한 설계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 지속되고 있는 대규모 청년실업은 젊은이들의 사회 생활을 불안하게 만들고, 비정규직 일자리와 불특정한 수입은 가정의 안정과 평화를 위험에 부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젊은이들은 결혼을 포기하거나 늦추게 되고, 기존의 가정 역시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갈수록 늘어나는 ‘1인 가구’의 출현은 오늘의 우리사회가 불안정한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명확한 지표입니다. 또한 가정과 노동에서 소외된 인간이 겪는 불안과 고독은 ‘개인주의적 불행’3)으로까지 이어집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전수의 단절
5. 지금까지 그리스도교 신앙전수는 가정공동체를 기반으로 전개되어 왔습니다. 가족구성원이 함께 모여 신앙 안에서 성가정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목표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신앙을 가진 가정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며 서로 기도하고 나누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자신의 신앙을 전수함으로써 그 맥을 이어가게 하였고 이는 교회발전의 원동력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기반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습니다. 갈수록 가정은 와해되고 젊은이는 소외되고 있습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가톨릭 신자들이 젊은 세대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수하는 데에 단절이 있었음을 더 이상 간과할 수만은 없습니다. 많은 이가 가톨릭 전통에 실망하여 이를 더 이상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또한 자녀들을 영세시키지 않고 자녀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 부모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또한 일부는 다른 신앙 공동체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단절의 원인들을 살펴보면, 가정 안에서 대화 부족, 대중 매체의 영향, 상대주의적 주관주의, 시장만 배불리는 무분별한 소비주의, 가난한 이들 가운데서 그들과 함께 사는 사목의 결여, 교회 기관들의 환대 부재, 그리고 다종교 상황 속에서 신앙의 신비를 지키고 되살리는 데서 겪는 어려움 등이 있습니다.”4)

 

생활양식과 소통방식의 변화
6. 기술문명의 빠른 발전은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소통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기성세대들은 아직 이전의 생활양식과 소통방식에 기반을 둔 채 새로운 기술문명에 적응해가는 반면에, 젊은 세대들은 새로운 기술문명을 기반으로 새로운 생활양식과 소통방식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세대와 세대 간의 단절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단절은 세대 간의 갈등과 대립을 조장하기도 합니다. 최근 국내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서 기성세대와 젊은이들 사이에 드러나는 자기주장의 표현방식과 내용들은 이러한 갈등과 대립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문화적 도전들
7. 오늘날 소통방식의 변화는 새로운 대중문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은폐되거나 축소되고 조작 가능했던 일들이 이제는 너무나도 쉽게 대중에게 노출되고 밝혀짐으로써 더 이상 갑의 횡포를 좌시하지 않는 대중문화를 만들어내었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그것이 비도덕적이고 비상식적인 것이라면 즉시 세상에 알려 대중으로부터 비난과 질타의 대상이 되게 하는 새로운 문화는 사람들의 삶의 양식을 바꾸고 있습니다. 또한 공동체를 구성하는 방식과 삶을 공유하고 나누는 방식에 있어서도 이전과는 판이한 새로운 유형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다양한 포털사이트를 통한 네트워크 서비스는 부단히 진화하면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한 새로운 차원의 소통방식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속지, 속인 등의 원칙이 적용되는 오프라인 형태의 공동체가 주류를 이루었었다면 앞으로는 지역과 소속, 계층과 계층을 넘나드는 온라인 형태의 공동체가 주류를 이룰 것입니다.

 

복음 선포의 원형이신 예수 그리스도
8. 이렇듯 인간의 존엄이 도전받는 위기와 변화의 시대에 선교 활동은 교회의 가장 큰 도전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선교 임무는 우선되어야 합니다.5) 사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윤리적 선택이나 고결한 생각의 결과가 아니라, 삶에 새로운 시야와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한 사건, 한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6) 그러므로 우리는 갈수록 “개인주의적 불행”으로 치닫고 있는 세상의 흐름 속에서 더욱 절박한 마음으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구원하신 한 사건이며, 한 사람이신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도록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세상을 대하는 삶의 방식과 소통의 방식이 바뀌고 있는데 여전히 과거의 방식만을 고집한다면 우리가 선포하는 그리스도가 세상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다가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더욱 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선포할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그렇듯이 복음 선포의 원형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다시 돌아갈 것을 촉구합니다. “우리가 원천으로 돌아가 복음 본연의 참신함을 되찾고자 노력할 때마다 새로운 길들이 드러나고 창조적 방식들이 보이며, 또 다른 형태의 표현들과 더욱 설득력 있는 기호들과 오늘날의 세계에 새로운 의미를 갖는 어휘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모든 참다운 복음화 활동은 언제나 ‘새로운’ 것입니다.”7)

 

새로운 방법 – 통합사목
9. 기존의 사목은 가정을 중심으로 신앙의 전수가 이루어진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져 왔습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을 본받아 행복한 가정을 이루도록 신자들을 인도하는 것이 사목의 주요한 목표였고, 이를 바탕으로 신앙 안에서 부부의 역할을 강조하고 자녀교육과 어른공경을 중시하는 사목이 전개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유교적 전통이 아직 남아있는 우리사회 안에서 신앙의 토착화를 이루는 유효한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가정을 중심으로 한 신앙의 전수가 점차 사라지고 모든 것이 ‘개인화’ 되어 가는 세상의 추세에 따라 신앙 역시 ‘사사(私事)화’ 되어 가고 있습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좋으면 믿고 싫으면 가차 없이 버리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이를 온전히 개인의 탓으로 돌리며 기존의 사목방식을 고수한다면 우리는 더 많은 신자들을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세상이 개인맞춤형 서비스를 추구하며 변화되어 가듯이 이제는 선교의 방법도 개인의 성향을 고려하여 다양하게 전개되어야 합니다. 기존의 사목이 세대와 계층을 구별하여 특화된 형태의 사목을 전개해 왔다면 이제는 ‘잘 짜인 그물망 구조의 통합사목’ 안으로 신자 각 개인이 들어와 참여함으로써 신앙을 키워가는 형태의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10. 통합사목이란 모든 세대와 계층을 유기적 관계망 안에 놓고 접근하는 사목유형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이미 각 사목분야별로 갖추고 있는 그물들을 한데 모아서 하나의 유기적인 커다란 그물로 다시 짜는 소통과 협력의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수많은 지체들이 모여 한 몸을 이루는 교회의 신비와도 같습니다.(1코린 12장 참조) 이제는 통합사목의 그물망을 통해서 신자들이 각자의 성향과 적성에 따라 자신의 신앙생활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방법과 형태를 선택하도록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체계적인 연구와 점진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각 사목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이를 구체화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또한 통합사목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해줄 인재의 양성이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체계적인 과정과 지속적인 관리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이미 여러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각 분야별 평신도 양성 프로그램에 대한 통합 로드맵이 작성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체계적이면서도 점진적인 교육과정이 마련되고 운영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평신도 인재양성을 위한 전담기구의 설치와 전문 교육시설의 확충 또한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과제입니다.

 

새로운 선교 – 젊은이
11. 지역의 본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기존의 선교방식은 전통에 익숙한 기성세대들에게는 여전히 유효하겠지만 세상의 변화에 민감한 젊은 세대들에게는 전혀 매력 없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미 젊은이들이 사라져버린 교회의 현실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젊은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젊은이들을 교회로 나오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전통적인 방식은 이미 늦었습니다. 이제는 젊은이들의 소통과 참여가 이루어지는 곳에서 말씀이 선포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곳이 어디인지 부단히 찾아야 하고, 또한 그들의 언어로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서 부단히 새로운 형태의 표현들과 더욱 설득력 있는 기호들과 새로운 의미를 갖는 어휘들을 찾아내야 합니다.8) 특히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더없이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삶에 새로운 시야와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한 사건, 한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는 것”9) 이야말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모든 일선 사목현장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애정 어린 시선과 관심으로 젊은이들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복음화의 사회적 차원
12. 통합사목의 범주는 복음화의 사회적 차원까지 포함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따르는 신자들의 참여는 반드시 사회적 차원으로까지 확대되어야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4차 산업혁명의 도래와 더불어 예견되는 양극화와 인간의 소외는 많은 사회적 문제들을 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의 기준에 따라서 인간의 존엄을 위협하는 여러 가지 시도들을 견제하고 저지함으로써 사회의 발전이 인간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사목현장에서 교회의 사회교리를 교육하고 이를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통합사목의 실천이 사회적 차원에서 결실을 맺을 때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쇄신의 길을 더욱 힘차게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 되어
13. 성령께서는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의 영혼이십니다.10) 성령으로 충만한 복음 선포는 기도하며 일하는 복음 선포입니다.11) 복음을 선포하는 이들이 기도 안에서 말씀과 만나고 주님과 성실한 대화를 나누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쏟지 않으면, 우리의 활동은 쉽게 무의미해지고, 지치고, 열정도 사그라질 것입니다.12) 사실 성령께서는 우리가 행하는 모든 선교 활동의 중심에서 우리와 함께 숨쉬고, 걷고, 이야기하고,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도 안에서 성령과 일치를 이루지 않고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선포할 수 없습니다.

 

복음화의 어머니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14. 성모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의 어머니이십니다.13) 예수님께서는 당신 어머니를 우리 어머니로 내어주심으로써(요한 19,27) 당신 교회가 어머니의 여성다운 모습을 지니기를 바라십니다.14) “참어머니이신 마리아께서는 우리 옆에서 함께 걸어가시고 우리와 함께 싸우시며 끊임없이 하느님 사랑을 우리에게 전해 주십니다.”15) “마리아께서는 이 세상 안에, 인류 역사 안에, 우리의 일상생활 안에 깃든 하느님의 신비를 바라보십니다.”16) 그렇기에 교회는 그분 안에 지닌 겸손과 온유, 정의와 사랑의 힘을 믿고 모범으로 따릅니다. 우리 모두 마리아께 어머니의 전구를 간청하며 새로운 변화와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교회에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기도합시다.

 

복음화의 어머니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1) 현대 세계의 복음 선포에 관한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1항∼18항 참조.
2) 유발 하라리 저,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 2017.
 3) “이는 안이하고 탐욕스러운 마음과 피상적인 쾌락에 대한 집착과 고립된 정신에서 생겨나고 있습니다. 내적 생활이 자기 자신의 이해와 관심에만 갇혀 있을 때, 더 이상 다른 이들을 위한 자리가 없어 가난한 이들이 들어오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고 그분 사랑의 고요한 기쁨을 느끼지 못하며 선행을 하고자 하는 열정도 식어 버립니다. 이는 신앙인들에게도 매우 현실적인 위험입니다. 많은 이가 이러한 위험에 빠져 삶을 잃어버리고 불만과 분노에 가득 찬 사람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복음의 기쁨』, 2항.
4) 『복음의 기쁨』, 70항.
5) 『복음의 기쁨』, 15항.
6) 『복음의 기쁨』, 7항.
7) 『복음의 기쁨』, 11항.
8) 『복음의 기쁨』, 11항.
9) 『복음의 기쁨』, 7항.
10) 『복음의 기쁨』, 261항.
11) 『복음의 기쁨』, 262항.
12) 『복음의 기쁨』, 262항.
13) 『복음의 기쁨』, 284항.
14) 『복음의 기쁨』, 285항.
15) 『복음의 기쁨』, 286항.
16) 『복음의 기쁨』, 288항.
 

2018년 12월 2일 대림 제1주일
수원교구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

 

   

[원주교구]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16)

 

 

♱ 찬미예수님,
사랑하는 원주교구 교우 여러분! 그리고 수도자와 사제 여러분!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 아버지와 은총을 내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시는 성령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저는 소임 첫해를 ‘믿음의 해’로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해를 ‘희망의 해’로 보냈습니다. 이제 올해를 ‘사랑의 해’로 정하였습니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은 우리 그리스도교인에게 하느님을 향한 우리들의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일찍이 고백하였습니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서 으뜸은 사랑입니다.’(1코린 13,13)

 

도대체 사랑이 무엇입니까? 사랑의 정의(定義)는 수없이 많습니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다.’라는 노래로부터 시작해서 많은 정의가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죽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사랑에 죽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도 사랑에 관해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은 사도 바오로의 사랑론입니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1코린 13,4-7)

 

내가 내 남편을 사랑한다면, 내 남편을 얼마나 내가 참고 기다렸으며, 친절한지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내 친구를 사랑한다면, 얼마나 내가 친구를 시기하지 않고, 친구에게 뽐내지 않고 교만하지 않는지 성찰하면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내 자녀들을 사랑한다면 내가 얼마나 자녀들에게 무례하지 않았고 성을 내지 않았는지를 반성하면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나라를 사랑한다면 내가 얼마나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하는지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내가 교회를 사랑한다면 얼마나 내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냈는지를 돌이켜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가족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나라를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있습니까? 사랑은 그저, 느낌, 감정만이 아닙니다. 사랑은 마음으로부터 시작해서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사랑일 수 없습니다. 사도 야고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을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이 녹이고 배불리 먹으시오.’하고 말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야고 2,16). 그러므로 사랑은 그 실천이 진정성의 척도가 됩니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사랑의 요람인 가정을 강조하셨습니다. “인내와 노동의 기쁨, 형제애, 거듭되는 너그러운 용서, 그리고 특히 기도와 삶의 봉헌을 통하여 하느님을 경배하는 것을 배우는 곳이 가정입니다.”([사랑의 기쁨], 86항) 그렇습니다. 가정이야말로 사랑이 피어나는 곳이요, 사랑을 배우는 곳이며, 사랑이 성장하는 곳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며, 부모가 자녀들을 사랑하고, 자녀들이 부모를 사랑하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그러한 행복한 가정이 많을수록 그 본당 공동체는 행복한 공동체가 됩니다. 가정은 바로 작은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가득한 가정을 이룩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입니다.

 

물론 사랑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으로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그리워하며, 사랑하게 됩니다. 그 사랑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30-40년을 사랑으로 기르고 가르치신 부모의 사랑을 떠날 수 있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창세 2,24) 사랑이야말로 하느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랑은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로 하느님의 약속이며 우리의 희망입니다.”([진리 안의 사랑], 2항) 만일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사랑이라는 선물을 주시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끔찍했을 것입니다. 이 세상은 그야말로 지옥이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에너지를 사랑이 아니라 경쟁에 사용한다면 아비규환이 되었을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사람들이 그 에너지를 사랑하는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특히 젊은이들의 열정들을. 그리고 기억해보십시오. 젊은 시절 사랑 때문에 허비했던 많은 시간과 정열들을. 그 에너지가 사랑이 아니라 경쟁에 사용되고, 다른 사람을 이기기 위해 사용되었더라면 세상은 생각하기도 어려운 생지옥이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한편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부부간의 성적인 사랑 에로스와 하느님으로부터 시작해서 성인 성녀들이 보여준 헌신적인 사랑 아가페가 서로 적대적이 아니라 보완적이라고 설명하신 바 있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우리들의 사랑은 ‘이기적인 사랑’ 에서부터 시작해서 부부의 성적인 ‘에로스’를 넘어 이웃을 위해 전적으로 헌신적이요 위타적인 사랑 ‘아가페’로 성장하고 완성됩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들의 사랑은 어디에 머물고 있습니까? 아직도 이기적인 사랑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헌신적인 사랑, 아가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우선 하느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힘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부부들의 꾸준한 사랑을 도와주는 ME(메리지 엔카운터)는 대.성.기.공 4가지 원리를 제시합니다. 부부가 계속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대화, 부부사랑 에로스, 기도,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부부 두 사람만이 아니라, 다른 이웃 부부들, 이웃 가정들, 더 나아가 친정과 시댁, 심지어 신심단체나 본당 공동체 등 다른 사람들과 단체를 필요로 합니다. 혼자 행복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 가정만 행복할 수 없습니다. 다른 가정이 필요합니다. 사랑은 홀로 가능하지 않듯이, 천국도 홀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때만 천국도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사랑할 것인가? 우리가 사랑해야 할 첫 번째 대상은 하느님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7)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하느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까닭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바로 사랑이신 까닭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해야 할 다음의 대상은 이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즉시 율법교사처럼 물을 것입니다. 누가 나의 이웃이냐고? 우리는 또 다시 예수님의 비유를 상기해야 합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루카 10,29-37)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를 통해 설명해 주셨듯이, 우리의 이웃은 그 누구보다 나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부모를 비롯해서 많은 은인들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은혜를 베풀어야 할 사람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입니다. 마치 강도 맞은 사람이 착한 사마리아인에게 이웃이었듯이.

 

사랑의 다음 대상은 원수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마태 5,43-48) 참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명하시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어쩌다가 원수가 되었습니까? 돌이켜 보면 친구였고, 연인이었고,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배신 당하거나 상처를 입으면서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원수는 용서와 사랑으로 친구가 될 수 있고, 연인이 될 수 없을까요? 원수에 대한 미움은 원수가 아닌 자신에게 계속 상처를 입힐 뿐입니다. 그래서 더욱 미워하게 됩니다. 이것을 악순환이라고 합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은 사랑 밖에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원수를 친구로, 연인으로 바꿉니다. 어쩌면 원수는 우리의 용서와 자비를 받아야 할 이웃일지 모릅니다.

 

무엇보다 사랑은 하느님이 베풀어 주시는 천국을 선물로 받을 수 있는 손입니다. 이미 신앙이야말로 하느님 나라를 받을 수 있는 손이라 했습니다. 사랑은 또 다른 손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마태 25,31-46). 이들이 행했던 것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 목마른 사람에게 마실 물을 주는 것, 나그네를 따뜻이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이에게 입을 것을 주는 것, 병든 이를 돌보아 주고, 감옥에 있는 이를 찾아 주는 사랑이었습니다.

영원한 삶을 희망합니까? 그러면 사랑하십시오.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이 영원합니다. 사랑이 전능합니다. 바로 하느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원주교구 교우 여러분들! 그리고 수도자와 사제 여러분!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증언하는 한해를 살아갑시다. 주님의 사랑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빕니다.

 

2018년 12월 대림절에
천주교 원주교구 교구장 주교 조규만

 

   

[의정부교구]

 

“주님께 바라는 이는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갑니다.”
(이사 40,31)

 

 

 1. 주님께서는 지난 2018년에 우리 민족에게 평화와 기쁨을 선사하셨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으로부터 시작하여 남북정상회담이 거듭되면서 한반도의 분단체제가 조금씩 허물어지고 서울과 평양에 훈풍이 불었습니다. 아직 내외적으로 불안한 요소가 여전하기에, 평화의 여정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하는 우리들의 기도가 계속되어야 하겠습니다. 지난해에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해 하느님께 큰 감사를 드리며 금년 한해도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우리의 가정과 본당 공동체, 그리고 모든 사목 공동체를 맡기며 새로운 해를 시작하도록 합시다.

 

2. 저는 지난 2014년에 교구 설립 10주년을 맞이하여 사목서한 「착한 목자」를 발표하였습니다. 우리 교구의 고유한 사목환경과 제반 여건들을 고려하여 10년을 내다보며 중장기 사목계획을 작성한 것입니다. 따라서 주요한 사목 방향과 과제들은 이미 이 서한에 제시하였습니다. 이 가운데 특히 사목의 기본 방향으로 제시한 소공동체, 청소년사목, 사회사목은 올해도 계속될 것입니다.
다만 10년을 향해가는 여정 안에서도 한해 한해 달라지는 세상의 변화를 민감하게 관찰해 나가며, 우리 교회가 좀 더 중점적으로 또 추가적으로 역점을 두어야 할 사목은 무엇인지 살펴보는 일도 필요합니다. 사목교서를 준비하면서 사목평의회와 지구 사제모임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민족화해사목의 심화·발전, 사회보다 일찍 찾아온 교회의 고령사회화를 반영한 노인사목, 보편교회의 관심사이기도 한 난민·이주민사목, 그리고 기후 변화에 따른 환경사목 등이 이러한 대상으로 제시되었습니다. 교구청의 각 부서와 본당에서는 「착한 목자」에서 제시한 사목방향 및 과제들과 더불어 이러한 요청에 대해서도 보다 큰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주셨으면 합니다.

 

3. 우리는 몇 년 전부터 교구 사목의 기본 방향으로 제시된 ‘소공동체’ 사목에 있어 소공동체 운동의 정착에 중요한 몫을 담당하게 될 봉사자 양성의 방법으로 ‘생활다시보기’를 시작하였습니다. 다행히 신부님들과 교우님들이 열의를 가지고 임해주신 덕에 여러 본당에서 ‘생활다시보기’가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기쁘고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이러한 분위기가 올해에도 더욱 활성화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청소년사목의 새로운 방향 모색의 일환으로 시작된 통합사목은 3개 사목국과 함께 이제 조금씩 큰 방향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사회사목도 민족화해 및 난민·이주민에 대한 노력과 병행하여, 거창한 구호보다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On & Off’ 절전 운동 등 생활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지침들을 잘 제시해주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4. 시대의 흐름과 함께 점점 다양하고 까다로워지는 여건 속에서도 목자로서의 사명을 열심히 또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신부님들과 사목의 모든 동반자들께 감사와 격려를 보냅니다. 또한 갈수록 힘들어지는 경제 여건에도 불구하고 신앙으로 잘 이겨내고 계시는 교우님들께도 하느님의 축복을 빌어드립니다. 하느님은 찬미를 받으소서! 

 

 

2018년 대림 1주일에
천주교 의정부 교구장 이기헌 베드로 주교

 

 

 

  

[대구대교구]

새로운 서약, 새로운 희망
- 용서와 화해의 해, 냉담 교우 회두와 선교에 힘씁시다! -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시는 친애하는 교구민 여러분들께 하느님의 풍성한 강복을 빕니다.
 

지난 2018년 저는 우리 교구가 겪고 있는 어려움들을 하느님께서 내리신 채찍질로 받아들이자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즉 하느님을 올바로 섬기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을 하느님께서 바로 잡아주시기 위해서 채찍질을 내리신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우리 교구가 참으로 다시 태어나는 교회가 되길 바라시며 시련을 주고 계신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세로 우리 교구는 지난 교구 시노드의 결의사항들을 다시 점검하고 평가하는 가운데, 교구쇄신위원회를 발족하였습니다. 이에 현재 활동 중인 두 소위원회의 활동에 큰 결실이 있기를 소망하며, 우리 교구가 어려움들을 잘 이겨내고 더욱 건실한 교회로 거듭나기를 소망합니다.

 

2018년은 우리 교구의 성모당이 봉헌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이에 우리 교구는 초대교구장 안세화 드망즈 주교님께서 가지셨던 성모 마리아께 대한 원의와 정신을 되새겨 보고, 하느님 앞에 우리가 살아가야 할 모습은 어떤 모습인지, 우리가 가져야 할 교회와 신앙인으로서의 참모습은 무엇인지를 찾아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드망즈 주교님의 마음으로 돌아가 본당과 가정과 단체 및 개인별로 기본에 충실한 신앙을 약속하고, 2020년까지 3년간 이러한 원의와 희망으로 교구의 쇄신과 발전, 성소자 발굴과 사제양성, 하느님의 사랑과 복음의 기쁨이 충만한 본당과 가정을 만들기 위하여 특별히 기도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지난 2018년을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고 하신 루르드 성모님의 말씀에 따라 ‘회개의 해’로 삼고, 우리 모두가 회개할 것이 무엇인지를 성찰하고, 하느님의 뜻에 어긋난 삶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향하여 계속 나아가기를 힘써왔습니다.

 

  이제 2019년은 “죄인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기도하여라.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무릎을 꿇고 땅에 입을 맞추어라.” 하신 루르드 성모님의 말씀에 따라 ‘용서와 화해의 해’라는 주제로 한 해를 살아가고자 합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조건 없이 하느님께 용서를 받은 신앙인은 다른 이가 자신에게 지은 죄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그들의 죄를 하느님께서 용서해주시기를 청하며 기도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이에 저는 우리 교구의 모든 구성원들이 자신의 죄에 대한 용서뿐 아니라 하느님과 교회를 떠난 교우들의 죄에 대한 용서를 비는 마음으로 ‘냉담 교우 회두운동’을 펼쳐나가자는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교회를 떠난 냉담 교우들이 아버지 하느님께 돌아와 그분의 용서와 자비를 체험하며 새롭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기도합시다. 이러한 지향으로 각 본당은 특별히 2019년 사순시기와 대림시기에 냉담 교우 초청 행사와 그들과 함께 거행하는 참회와 화해의 예식을 가지기를 권고합니다. 아울러 본당과 단체들은 불우이웃 돕기 바자회나 도농나누기 등의 방법을 통하여 하느님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우리의 이러한 노력은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지정하신 10월 ‘특별 전교의 달’의 정신과 함께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교황님께서는 베네딕토 15세 교황님의 [선교에 관한] 교황 교서 「가장 위대한 일」 (Maximum Illud) 반포 100주년을 맞아 2019년 10월을 ‘특별 전교의 달’로 지정하시고, 선교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 모든 신자들이 그리스도께로 참된 ‘선교 회개’의 마음을 일깨우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면서 교황님께서는 만민 선교(missio ad gentes)를 삶의 중심에 두는 삶,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자신의 세례 정체성을 확인하는 삶,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라는 초대에 진지하게 응답하는 삶으로 우리 모두를 초대하신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다가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마태 28,19) 이르셨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을 받아 성교회는 선교를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지상사명으로, 미룰 수 없는 의무로, 교회를 존속하게 하는 존재이유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교구민 모두가 교황님의 뜻을 받들어 선교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기도하며 투신해야 하겠습니다. 교구 선교센터와 본당 선교위원회의 활발한 활동을 기대하며, 본당 혹은 교구 단위의 선교대회 개최를 제안합니다. 또한 필요하다면 교구선교위원회와 해외 파견 평신도 선교사 결성을 돕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선교대상자를 위한 지향으로 교구 성모당과 한티 순교성지를 비롯한 성지들을 순례할 것과, 전교를 위한 묵주 기도를 열심히 봉헌할 것을 권고하는 바입니다.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저희 교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이윤일 요한과 한국의 모든 성인과 복자들이여, 저희 교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2018년 12월 2일 대림 첫 주일에
천주교 대구대교구장 조 환 길 (타대오) 대주교

 

 

  

[부산교구]

신망애를 통한 본당 공동체의 영적 쇄신 (2)
‘희망의 해’

 

 

  지난해, 믿음의 해를 지낸 우리 교구는 믿음이 우리 안에서 이루는 하느님의 놀라운 작업이며 우리를 변화시켜 하느님으로부터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힘이라는 진리를 체험했습니다. 믿음이야말로 우리가 굳게 설 수 있는 삶의 바탕이며 공동체 안에 살아 계신 하느님의 은총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새로이 ‘희망의 해’를 시작하며 더욱 “확고한 믿음”(히브 10,22)으로 “희망을 굳게 간직”(히브 10,23)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 받았습니다.”(로마 8,24)라는 말씀이 삶 안에 굳게 자리매김 되도록 노력해 주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성경은 우리의 믿음과 희망이 하느님에 근거한다는 진리를 선포합니다. 곧 살아있는 신앙은 희망과 사랑에서 분리되지 않으며 오히려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알려줍니다. 그러기에 희망은 믿음을 성장시켜줍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도록 이끌어줍니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은 하느님을 향한 길을 바르게 가도록 돕는 세 안내자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세상은 언제나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갈망보다 기복적인 문화에 휩쓸려 살아갑니다. 말씀전파를 훼방하고 희망을 언급하는 일을 거북해합니다. 하지만 불신과 무관심이 팽배한 세상이기에 더욱 희망이라는 촉진제가 필요합니다. 모든 교구민이 주님의 선물인 희망을 배우고 꾸준히 실천해 나가야 할 이유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희망을 배우고 키워나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도’입니다. 올바른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과 이웃에게 자신을 열어 개방하게 됩니다. 내적 정화의 과정을 겪으며 열망과 희망을 잘 정화시킬 수 있습니다. 마침내 “영적인 삶에 맛”들여 희망을 살아가게 됩니다.
두 번째로 희망을 잘 익힐 수 있는 방법은 ‘선교를 포함한 활동’입니다. 세상의 모든 이에게 그리스도의 은총에 힘입어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진리를 전할 때, 희망은 굳세어집니다.
세 번째로 ‘고통’은 희망을 키울 수 있는 매우 고귀한 것입니다. 우리는 고통을 극복하기 위하여 극도의 노력을 기울이지만, 세상에서 고통이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능력 밖의 일이기에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고통은 때때로 정화와 성장의 길이며 희망의 여정으로 자리합니다. 고통 속에 있는 분들께 교회가 함께 하며 응원합니다.
네 번째로 희망을 배우고 익히도록 하는 것은 ‘최후의 심판에 대한 믿음’입니다. 하느님만이 정의를 이루실 수 있기에 하느님 없는 세상은 희망이 없습니다(에페 2,12 참조). 때문에 마지막 날 모든 것을 바로잡는 하느님의 보상이 있을 것을 기대하는 마음은 매우 강력한 희망의 요소입니다. 하느님의 심판은 정의이며 또한 은총이기에 가장 큰 희망의 뿌리가 됩니다. 그러기에 “변호해 주시는 분”(1요한 2,1 참조)이신 주님을 만날 것을 확신하며 당당하게 나아가도록 합시다.
끝으로 그리스도교의 희망을 실천하는 마음으로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에 충실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한 기도는 교회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희망의 확신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협력자(1코린 3,9; 1테살 3,2 참조)로 선택된 사람입니다. 모든 민족에게 기쁨을 선물하고 퍼뜨리는 사명에 충실해야 합니다. 우리 곁에는 십자가 아래에서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의 어머니가 되신 성모님께서 희망의 어머니로 함께 하십니다.
부산교구의 모든 분이 어머니 성모님의 도우심에 의탁하여 어려움을 지니고 있는 세상에 희망을 선물하는 협력자가 되어 주시길 청하며 교회의 사명과 의무에 충실한 ‘희망의 해’를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실천사항
1. 희망을 품는 기도의 생활화

- 가족 기도 시간 만들기
-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기

 

2. 희망을 전하는 선교의 일상화
- 1인 이상 선교하기
- 1인 이상 냉담교우 돌보기

 

3. 희망을 실천하는 활동의 다양화
- 본당 구성원간의 애덕 실천
- 고통 받는 이웃과 함께 하기  

 

천주교 부산교구장서리 손삼석 요셉 주교

 


  

[청주교구]

주님과 함께 ‘이웃으로, 세계로’ 제3차 셋째 해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교구 공동체의 해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1. 한 해를 돌아보며 교구에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2018년 한 해 동안 우리 교구 공동체는 교구의 지난 60년 역사를 되돌아보며 감사와 나눔의 자리를 마련하였고, 복음화의 사명을 굳게 다짐하며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교구 공동체의 해’를 보냈습니다.  
새해에는 온 세상을 향한 복음화의 노력에 대한 2018년의 작은 결실을 초석으로 삼아 복음화 사명을 더욱 깊이 깨닫고 구현하기 위해 다시 한번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교구 공동체의 해’로 정하였습니다.

교구 사명선언문의 의미
2. 교구는 2005년부터 2008년까지 4년에 걸쳐 시노드를 개최하였고, 시노드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여 다음과 같은 교구 사명 선언문을 수립하였습니다. “‘주님과 함께 이웃으로, 세계로.’ 우리는 자신과 가정에서부터 말씀과 성체 중심의 삶을 살며 가장 작은이를 섬기고 이웃과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를 이룬다.”
이 사명 선언문은 말씀과 성체 중심의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는 공동체, 가장 작은 이웃을 우선적으로 섬기는 사랑의 공동체, 그리고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교구 공동체가 2018년에 이어 2019년에도 지향하고 있는 선교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교의 공동체, 이웃을 향한 사랑의 공동체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와의 더 깊은 친교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요한 13,34 참조)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바로 선교이기 때문입니다.

친교와 선교
3.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요한 15,4).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도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친교를 통해 그리스도인은 비로소 열매를 맺게 됩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요한 15,4).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교를 통해 맺게 되는 결실은 바로 세상을 향한 선교입니다. “친교는 선교의 원천이고 결실이며, 친교는 선교적이고 선교는 친교를 지향하고 있습니다”(평신도 그리스도인, 32항).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는 예수님의 명령은 성직자나 수도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당부하신 말씀입니다. 교회의 모든 “평신도들은 인간과 사회의 모든 가치와 요구를 존중하며 인간과 사회에 봉사하는 가운데 복음을 선포하고 실천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평신도 그리스도인, 64항)입니다.

사랑과 선교
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2코린 5,14). 교회는 “모든 사람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이 그 선교 의무와 열성의 원천”(가톨릭교회교리서, 851항)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웃을 향한 따뜻한 사랑의 마음이 없다면 선교는 단지 하느님과 예수님을 소개하는데 그치게 될 것입니다. 선교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베풀고 용서하며 희생하고 극기하며 자기 이웃을 도울 수 있는 능력, 곧 하느님의 사랑에서 비롯되어 복음의 중추를 이루는 모든 인간에 대한 형제애”(현대의 복음 선교, 28항)를 포함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현재와 미래 생활의 영적인 행복을 나누며, 선교활동을 수행하는 사람들입니다(선교교령, 7항 참조).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는 말과 행동으로 다른 이들의 일상생활에 뛰어들어 그들과 거리를 좁히고, 필요하다면 기꺼이 자신을 낮추며, 인간의 삶을 끌어안고 다른 이들 안에서 고통받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몸을 어루만져야”(복음의 기쁨, 24항) 한다고 가르칩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에게 기꺼이 다가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며, 이웃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고 위로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선교입니다.

2018년의 작은 결실을 기초로 삼아
5. 선교 공동체가 친교의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와 다르지 않음을 성찰하며, 교구는 2019년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교구 공동체의 해’를 구현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사항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선교 사목 분야에서는 북한선교와 해외선교를 위한 인적, 물적 지원을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구축할 것입니다. 해외선교에 대한 열망으로, 교구는 지난 해 ‘평신도 해외 선교사’를 양성하여 과테말라로 파견하였습니다. 파견을 마치고 돌아오는 선교사들의 경험을 온 교구민과 함께 나누어 온 세상에 복음화를 위한 사명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청소년 사목 분야에서 청소년·청년들이 하느님과의 인격적 만남을 통해 체험한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주역이 되도록 동반해 나갈 것입니다. 청소년·청년 시기는 온 세상 복음화의 일꾼을 양성하는 가장 중요한 교육의 시기입니다. 교구는 첫영성체와 견진성사 교육을 강화하여 청소년들을 온 세상 또래들에게 복음을 힘 있게 증거하는 사도로 양성할 것입니다. 또한, 청년 선교사 양성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실시하여 온 세상 복음화를 위한 일꾼을 양성할 것입니다.
가정 사목 분야에서는 교회 안·밖의 다문화 가정들에게 복음의 기쁨을 전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교구 내 가정들이 온 세상의 복음화를 위해, 특히 북한선교를 위해 기도로서 함께 할 것입니다. 2018년에 이어 생애 주기에 따른 프로그램을 제공함에 있어 영, 유아 자녀를 둔 부모를 위한 교육과 은퇴를 앞둔 중장년을 위한 교육을 준비, 실시할 것입니다.

매괴 성모님에게 도움을 청하며
6. 끝으로, 교구 공동체가 선교 사명을 깊이 깨달아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우리의 도움이신 매괴의 성모님께서 전구하여 주시기를 청합니다. 신자 여러분의 가정과 교구 공동체, 그리고 지역 사회에 하느님의 풍성한 은총이 가득히 내리기를 기원합니다. 
      
 


2018년 12월 2일
대림 제1주일
청주교구장 장 봉 훈 가브리엘 주교

   

[마산교구]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릅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한 해를 맞으며 사랑하는 교우들과 수도자들 그리고 동료 성직자들께 주님의 사랑과 평화를 빕니다.
무엇보다도 반갑고 기쁜 일은 갈라졌던 우리 민족이 ‘평화의 길’을 향해 한 걸음씩 나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아직도 많은 어려움이 겹겹이 쌓여 있겠지만, 절망과 죽음 속에서도 부활의 희망을 잃지 않고 사는 우리이기에 이 평화의 길이 꼭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간절히 간절히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이 길이 결코 만만치 않아서 인간의 수고와 노력만으로는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잡히시기 전날 밤 제자들에게 “나는 당신들에게 평화를 주고 갑니다. 내 평화를 당신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릅니다.”(요한 14,27 : 공동번역 1971년판)고 말씀하셨습니다. 역사적으로 한때, 로마의 평화(Pax Romana)라는 말이 있었지만 이런 평화야말로 로마군대의 무력에 의해 유지된 것이었으니 이야말로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세상이 주는 평화’일 따름입니다. 그에비해 당신께서 남겨주시고자 했던 평화는 아버지와 함께 있음으로써 아버지로부터 얻어지는 평화입니다. 아버지와 함께 있음으로써 아버지의 사랑을 담뿍 받은 아드님은 그 사랑에 힘입어, 그 사랑 때문에, 그 사랑을 통하여 당신 생명을 아낌없이 바칠 수 있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참 평화를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요한 20,19)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죽기 전에 약속하신 바로 그 평화가 이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된 것입니다. 평화 자체이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영을 불어 넣어주시며 누구의 죄든지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루어야 할 평화의 길,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는 원동력은 하느님의 사랑이며 그 한 걸음 한 걸음의 구체적 내용은 우리가 서로 용서하는 것입니다. 평화는 이렇게 우리네 삶의 가장 구체적인 모습인 서로 용서하고 서로 얼싸안는 데서 시작됩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남과 북이 서로 평화의 길로 걷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서로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쟁과 오랜 군사대치로 수없이 흘린 동족상잔의 피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도 문제겠지만, 이 못지않게 중요한 일은 우리 사회 안에 형성된 서로 다른 생각 때문에 굳을 대로 굳어져 버린 갈라진 마음을 화해와 용서로 모으는 일일 것입니다. 원하옵건대, 우리 모두가 하느님 사랑의 은혜로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미움과 분노에서 벗어나 용서의 기쁨 속에서 참 평화를 이루어 가시길 간절히 빕니다. 저 자신 또한 주교라는 직분이 여러분에게 엎드려 봉사하기 위해서 있을 뿐, 한 인간으로서는 허약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고 보니 밀이 아니라 가라지 같은 용서받아야 할 내 속 모습 때문에 하느님 앞에 엎드려 빌고 또 빌게 됩니다. 제발 거짓 없이 살게 해달라고, 위선자가 되지 않게 지켜주시라고 말입니다.

 

끝으로 여러분에게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 천주교 마산교구 신자들은 더 이상 손가락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지 말고 우리 이웃들이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어주길 바라는 바로 그런 사람 곧 용서하는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어려움을 감내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이 나라에서 우리 천주교 신자들마저 자기 마음대로 살아간다면 나라의 미래는 마지막 희망인 우리 때문에 더 허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십자가 그 곁에 서 계셨던 성모님의 도우심으로 평화가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서로 용서하며 우리 주 예수님의 남은 고통을 기꺼이 지고 갑시다. 참 좋아하는 시편 한 구절을 여러분께 들려드립니다. 사랑과 평화가 넘치시길 기도합니다. 주님 안에 늘 평안하소서.

 

            자비와 충성이 서로 마주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함께 입 맞추리라
            땅에서 충성이 움터 나오면
            정의가 하늘에서 굽어보리라
            주께서 행복을 내려주시면
            우리 땅은 열매를 맺어주리라.
            정의가 당신 앞을 걸어나가면
            구원은 그 걸음을 따라가리라.
            (시편 85,11-14 : 최민순 신부 역)
   

 

2019년을 준비하는 대림절에
교구장 배기현 콘스탄틴 주교

 

   

[안동교구]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5)
-교구의 쇄신-

 

 

  1.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교구설정 50주년이 되는 2019년은 우리 교구민들에게 있어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은총의 해, 곧 희년입니다.(루카 4,16-19 ; 레위 25,8-22 참조) 이제 우리는 교구의 희년을 지내면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희년의 기쁨을 함께 나누며 함께 누리려 합니다. 희년의 기쁨은 지금 여기에서 “기쁨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일군다.”(안동교구사명선언문)는 하느님 나라의 축복을 앞당겨 사는 데에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이러한 축복을 기원합니다.

 

기쁘고 떳떳하게
2. 하느님 나라의 축복은 무엇보다도 복음 말씀대로 살면서 누리는 행복인데, 이 행복을 가장 집약적으로 표현한 내용은 여덟 가지 참 행복, 곧 진복팔단(마태 5,3-10)에 들어 있습니다. 이 진복팔단의 말씀대로 살자는 다짐은 우리 안동교구 초대 교구장이셨던 두봉 주교님께서 취임사를 통해 전 교구민들에게 부탁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진복팔단의 정신대로 살면 분명히 참된 행복을 누리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안동교구의 사목표어이며 교구사명선언문의 제목인 “기쁘고 떳떳하게”라는 표현 안에, 우리 교구는 초대 교구장님의 이러한 믿음과 확신을 담아 두었습니다. 따라서 “기쁘고 떳떳하게”라는 표현을 풀이한다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신앙생활의 궁극 목적은 참된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복음 정신대로 살아가야 한다.>

 

3. 일반적으로 사명선언문은 공동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삶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한 개인이나 공동체가 제자리를 찾고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교구는 신앙생활의 궁극 목적인 참된 행복을 위해 복음 정신에 따른 교구사명선언문을 지난 2003년 교구 사제단과 평신도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만들었습니다. 우리 교구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교구의 사목방향을 명확히 하고 있는 교구사명선언문은 우리 교구가 50년 동안 살아온 공동체 형성과정의 결실이며, 지금도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가야할 삶을 응축한 것입니다. 따라서 멋지게 만든 우리 교구의 사명선언문은 입으로 외치는 소리가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교구의 행복 비전
4. 지금 우리는 “기억, 감사 그리고 다짐”이라는 슬로건으로 교구설정 50주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농촌교구, 작은 교구, 가난한 교구로 정의되기도 하는 우리 교구는 타 교구에 비해 열악한 조건이지만 초창기부터 이러한 조건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긍정적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열악한 조건들을 축복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이는 분명 기억해야 할 일이고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우리 교구의 행복과 비전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가난의 영성>, <열린 교회 사목>, <공동체 사목>입니다. 농촌교구이자 가난한 교구이기 때문에 ‘가난의 영성’을 살 수 있었고, 작은 교구이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열린 교회 사목’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언제든지 마음만 있으면 이웃의 어려운 사정을 보다 더 쉽게 헤아릴 수 있어서, 우리는 나누고 섬기며 함께 사는 기쁨을 보다 구체적으로 익혀 왔습니다. 서로 나누고 섬기는 이러한 ‘공동체 사목’은 교구의 사목 전통 속에서 우리 몸에 배어 있습니다. 이 세 가지 모습은 우리 교구의 특징이자 특별한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5. 그리고 우리 교구는 농촌 교구로서 설립 초기부터 특별히 농민들의 고통에 동참하면서 농민들의 살 권리를 알리고 되찾아 주는 데 노력해왔습니다. 이러한 농민들에 대한 특별한 사목적 배려는 인권운동과 대사회 참여운동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둡고 혼란하던 70년대와 80년대를 지나면서 시대의 아픔에 동참하며 세상에 희망을 주는 교회가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주어진 여건을 회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함께 하는 가운데 참으로 교회의 존재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바로 여기서 교구가 ‘시대의 아픔에 동참하는 열린 교회’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교구의 쇄신
6. 안동교구는 지난 2002년 ‘새 교구장을 맞이하여 드리는 기도’에서 안동교구가 지향하는 바람직한 교회의 모습 네 가지를 기도문에 담았습니다. 이 내용은 교구사명선언문에 담긴 정신적 가치와 공유되는 부분도 있고, 교구 설정 40주년을 지내면서 연차별(2007-2010)로 교구 사목방향으로 설정해 사목교서에서 언급한 내용이기에 지금은 자연스럽게 교구사명선언문이 추구하고 지향하는 교회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시대의 아픔에 동참하는 열린 교회>, <성숙한 신앙인으로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교회>, <작은 것과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교회>, <서로 나누고 섬기며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교회>의 모습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모습은 그동안 우리 교구가 살아왔던 모습이기도 하면서 또한 우리 교구가 앞으로 시대에 맞게 새롭게 적응하고 구현해나가야 할 교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네 가지 교회의 모습은 우리가 ‘교구의 쇄신’을 얘기할 때에 반드시 함께 생각해야 할 ‘교회의 쇄신’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교구의 쇄신’이 이루어지면 이러한 바람직한 교회의 모습이 신앙 공동체 안에서 되살아나게 될 것이고, 또 이러한 교회의 모습이 신앙 공동체 안에서 재발견되고 되살아난다면 ‘교구의 쇄신’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7. 교구사명선언문의 어떤 내용이 바람직한 교회의 네 가지 모습과 연결되는지 한 번 살펴봅시다. “열린 마음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사명선언문의 정신이 “시대의 아픔에 동참하는 교회”로 거듭나게 할 것입니다. “소박하게 살고”라는 사명선언문의 정신이 “성숙한 신앙인으로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교회”가 되도록 이끌어줄 것입니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사는 교구사명선언문의 정신이 “작은 것과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교회”로 살게 이끌어줄 것입니다. “서로 나누고 섬김으로써” 함께 사는 교구사명선언문의 정신은 “서로 나누고 섬기며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교회”로 살도록 이끌어줄 것입니다. 교구사명선언문이 지향하는 이러한 교회의 모습은 교구의 쇄신뿐만 아니라 교회의 쇄신도 함께 이루어낼 것입니다.

 

기쁨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일군다.
8. <우리는/ 이 터에서/ 열린 마음으로/ 소박하게 살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서로 나누고 섬김으로써/ 기쁨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일군다.> 안동교구 사명선언문의 내용입니다. “기쁘고 떳떳하게” 사는 교구민 각자의 신앙생활의 궁극 목적인 참된 행복이 교구 사명선언문의 내용 하나 하나에 구체적인 삶의 양식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드러나는 구체적인 삶이 “기쁨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일군다.”는 하느님 나라의 축복을 앞당겨 사는 현장이 되는 것입니다.

 

9. 우리 교구는 교구설정 50주년을 맞으며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 5)는 말씀아래 쇄신 운동을 펼쳐 새롭게 출발하고자 합니다.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는 새로운 다짐이 필요합니다. 이 새로운 다짐을 교구 사명선언문을 바탕으로 각 계층별로 자기 사명선언문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이는 돌에 새겨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마음에 새겨지는 구체적인 실천사항이 될 것입니다. 안동교구 사제, 수도자, 평신도 혹은 성인, 청소년, 어린이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교구 사명선언문은 우리의 삶에 적용되는 자기 사명선언문이 될 것입니다.

 

10. 2000년 대희년을 맞이하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인께서는 과거 교회의 잘못에 대한 고백을 하며 용서를 구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교구 역시 교구설정 50주년을 맞이하면서 사제는 사제로서, 수도자는 수도자로서, 평신도는 평신도로서 제대로 살아왔는지를 살펴보고 잘한 것이 있다면 함께 격려하며 박수를 쳐주고, 잘못한 것이 있다면 함께 가슴을 칠 줄 알아야 합니다. 50주년을 맞이하여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 그 모든 일은 지금 여기 있는 우리 각자가 함께 해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청하며 함께 노력하여 다시 한 번 더 세상 사람들에게 ‘안동교구답다.’라는 모습을 보여주도록 합시다. 이는 곧 지금 여기에서 “기쁨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일군다.”는 교구사명선언문의 정신을 구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주 하느님 안에서 우리 교구의 희년과 교구의 쇄신을 통하여 누리는 축복과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 하길 기도합니다.
  

 2018년 12월 2일 대림 제1주일
천주교 안동교구 교구장 권혁주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광주대교구]

본당의 해 II
-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
 

 

 

1. “본당의 해 II”를 시작하며
  우리 광주대교구는 지난 2012년 교구설정 75주년을 맞이하여 ‘공동체성 회복과 강화’에 초점을 두고 교구 사목비전을 설정하였습니다. ‘공동체성 회복과 강화’야말로 우리 시대의 가장 절실한 요청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구는 그 첫 단계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가정의 해’, 2015년부터 2017년까지는 ‘본당의 해 I’로 정하여 가정과 본당의 공동체성 회복과 강화를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가정과 본당의 공동체성은 단숨에 성취되거나 실현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꾸준한 관심과 노력 속에서만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본당의 해 Ⅱ를 시작하는 2018년을 목전에 두고, 우리 가정과 본당의 복음화 상태 그리고 공동체의 일치와 활성화 정도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가짐과 함께 우리 교구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 동안 ‘본당의 해 II’로 정하여 본당의 복음화에 지속적인 관심을 두고자 합니다.

 

  본당의 공동체성은 복음 선포(Kerygma-Martyria)와 전례(Liturgia), 친교(Koinonia)와 봉사(Diakonia)를 통해 비로소 실현됩니다. 교종 프란치스코께서는 ‘복음의 기쁨’에서 이 점을 분명하게 강조하셨습니다. “본당은 그 지역에서 사는 교회의 현존이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인 생활이 성장하는 장소이며, 대화와 선포, 아낌없는 사랑 실천, 그리고 예배와 기념이 이루어지는 장소입니다.” 또한 본당은 “공동체들의 공동체이고, 길을 가다가 목마른 이들이 물을 마시러 오는 지성소이며, 지속적인 선교 활동의 중심지입니다.”
 우리 교구가 사목비전을 통해 이런 본당의 모습을 구체화하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이는 보편교회의 지향에도 부합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공동체상은 본당만이 아니라 모든 형태의 그리스도교 공동체 및 단체가 지향해야 한다는 것도 당연합니다.
 
2. “본당의 해 II”와 사목 중점사항
  우리 교구는 ‘공동체성 회복과 강화’라는 사목비전과 더불어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사목 중점사항을 설정하였습니다. 공동체성 강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인 사랑, 청소년 친화적인 본당 이루기, 사제단의 사목 교류 강화 및 지구사목 활성화가 그것입니다. 이 네 가지 사목 중점사항은 공동체성 회복과 강화를 위하여 사목의 우선적인 관심사가 되어야 할 것이며, 공동체의 역량을 집중적으로 쏟아야 할 분야입니다. 그리고 이 네 가지 사목 중점사항이 서로 긴밀하게 결합되고 상호보완적인 작용을 할 때 ‘본당의 해 II’는 더욱 풍요로운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1) 공동체성 강화
  오늘날 공동체성 강화를 위한 교회의 노력은 더욱 요긴해졌습니다. 특히 가정공동체가 가족의 유대와 결속을 약화시키는 갖가지 도전들과 어려움들 속에 놓여 있음을 직시합니다. 가정이 “친교와 기도의 자리, 복음의 참된 학교”가 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살아 있는 세포”가 되도록 가정공동체의 본질을 강화하려는 노력은 가정과 더불어 본당의 공동체성 회복을 위한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본당의 공동체성 증진 또한 시급하고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영세자 증가비율은 거의 답보상태인 반면, 쉬는 교우의 비율은 점차 증가추세이고, 주일미사 참례자(2016년 현재 16.7%)는 감소추세가 뚜렷합니다.
 특히 쉬는 교우 문제는 우리 교회가 오래 전부터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새 신자와 쉬는 교우들에게 좀 더 깊은 관심을 쏟아 그들이 성사생활에서 ‘맛’을 느낄 수 있는 후속 돌봄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또한 교회의 공동체성 증진을 위한 노력은 교회 내적인 차원에만 머물 수는 없습니다. 우리 사회의 공동체성 회복을 위하여 우리 교회가 할 수 있는 고유한 몫이 있습니다. 우선 각 본당이 지역사회의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고, 살기 좋은 마을공동체를 이루는 데 함께 함으로써 공동체성을 증진하는 데 적절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 교회는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한이 형제적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 없이 우리 민족의 진정한 공동체성 회복과 민족의 오랜 염원인 통일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인 사랑
  본당 공동체 안에는 드러나지 않는 가난한 이들, 즉 홀로 의식주를 해결하는 연로한 어르신, 폐품을 수거하여 하루하루를 연명해 가면서 생활고를 겪는 어르신 그리고 약간의 지적 장애와 대화 단절로 우울증을 겪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누군가의 도움, 관심 그리고 대화를 갈망합니다. 이들은 현시대의 가난한 이들이며 우리 신앙 공동체는 이러한 약한 이들, 관심과 사랑, 뭔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사랑은 교회의 믿음, 곧 “가난한 사람이 되시어 언제나 가난한 이들과 버림받은 이들 곁에 계신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이는 “그리스도교 사랑의 실천에서 가장 중요하고 특별한 형태의 선택을 말하는 것으로, 교회의 전통 전체가 이를 증언”합니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과 공동체는 가난한 이들이 사회에 온전히 통합될 수 있도록 가난한 이들의 해방과 발전을 위한 하느님의 도구가 되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복음(루카 4,18-19 참조)에서 중심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를 교종 프란치스코께서는 <자비의 얼굴>에서 새로운 표현으로 일깨워주십니다. “말과 행동으로 가난한 이들을 위로하고, 현대 사회의 새로운 노예살이에 얽매인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자신 안에 갇혀 있어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이들이 다시 볼 수 있도록 하고, 존엄성을 빼앗긴 모든 이가 다시 그 존엄을 찾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지역사회의 가난한 사람들과 연대하는 것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사랑을 구체화하는 데 있어 뜻 깊은 실천이 될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빈곤의 구조적 원인을 없애고 가난한 이들의 온전한 발전을 촉진” 하는 것도 교회의 소명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3) 청소년 친화적인 본당 이루기
  우리 교회가 그동안 신앙 전수를 위하여 청소년들에게 쏟은 열정과 노력은 이제 변화된 사회상황 속에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 사목은 이제 본당공동체 전체로부터 분리되어 이루어지거나 또 청소년들을 순전히 사목의 대상으로만 간주해서는 그 목적을 성취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교회 안에서 “공동체 전체가 젊은이들을 복음화하고 교육하여야 한다는 인식과 젊은이들이 더 많은 지도력을 발휘해야 할 긴급한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입니다. 이것은 사실 청소년 사목의 기본 방향을 매우 잘 제시해주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청소년들이 “모든 거리, 모든 광장, 세상의 모든 곳에서 예수님을 기쁘게 전하는 ‘신앙의 길잡이’”로 나설 수 있도록 본당공동체 전체 구성원이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청소년 친화적인 본당은 본당의 주변부에 밀려나 있는 청소년이 본당공동체 안에서 스스로 복음화의 주역이 되도록 하는 본당입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청소년을 본당이나 성인중심의 공동체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본당공동체 전체 속에 자리매김하고, 본당의 사목비전을 청소년과 성인이 서로 공유하며, 상호 다각적인 친교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아울러 청소년 친화적인 본당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청소년과 청소년 사목협력자를 지속적으로 양성하여 청소년 스스로 “젊은이들의 사도”
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청소년들이 본당공동체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장을 적극적으로 마련하는 것도 바람직합니다.

 

(4) 사제단의 사목 교류 강화 및 지구사목 활성화
  사제들의 사목활동이 세상 사람들에게 빛이 되고 희망이 되기 위해서 사목 쇄신은 불가피합니다. 사목 쇄신은 무엇보다도 복음과 공동체를 모든 사목활동의 중심으로 삼는 데서 시작됩니다. 사제가 변화되면 모든 것이 변화될 수 있다는 말은 사제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보여주신 기준을 우선적으로 취하고, 하느님 백성의 구원과 행복을 위하여 더욱 겸손하게 봉사한다면 우리 사제들의 사목활동은 큰 희망이 될 것입니다. 평신도들을 존중하여 그들이 교회활동에 참여하고 함께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하고, 저마다 지닌 역량과 지혜를 충만히 발휘할 수 있도록 자유롭고 열린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것은 공동체를 더욱 풍요롭게 할 것입니다.

 

  사제단의 일치와 상호협력은 사목활동의 개인주의를 넘어 사목적 연속성과 일관성을 위해 매우 필요하며, 그 결실이 언제나 풍요롭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또한 사제단의 사목 교류 강화는 구체적으로 지구사목의 활성화를 통해서 심화할 수 있습니다. 지구사목은 사제단의 연대만이 아니라 본당들 간의 연대라는 점에서 매우 뜻이 깊습니다. 이런 사목적인 연대를 통해서 지구의 사목적인 현안을 공동으로 대처하고 지구 내 이웃본당들의 어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습니다. 특히 세상 사람들을 향해 열린 지구사목의 취지는 지구 내 가난한 이들을 향한 우선적인 사랑을 공동으로 실천함으로써 더욱 뚜렷해질 것입니다.

 

3. 복음 묵상과 실천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위해 봉사합시다!


  모든 사람은 공동체를 이루도록 초대되었습니다.
 또한 공동체를 건설하고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 삶의 본질적인 소명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서로 아무런 연결도 없이 개별적으로 거룩하게 하시거나 구원하시려 하지 않고, 오직 사람들이 백성을 이루어 진리 안에서 당신을 알고 당신을 거룩히 섬기도록 하셨다.”는 것도 그런 뜻입니다.

 

  우리 교회의 공동체성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기준은 자비입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의 자비 실천은 지속적으로 실천되어야 합니다. 교종 프란치스코께서 <자비의 얼굴>에서 강조하는 바와 같이 “우리 본당과 공동체, 단체와 운동, 곧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곳에서는 누구든지 자비의 안식처를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자비는 분명 세상 사람들에게도 기쁜 소식이 될 것입니다.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해야 하는 교회의 사명은 복음의 기쁨 속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 사명은 자신만의 안위와 세계를 벗어나 예수님과 인격적 만남을 이루고,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 봉사하며, 모든 피조물과 친교를 이룰 때 비로소 완수될 수 있습니다. 보다 더 아름다운 공동체와 세상을 위한 우리 그리스도인의 헌신이야말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이 힘은 우리 모두가 매일 복음을 읽고 묵상하고 마음에 새겨 일상 안에서 하느님 현존을 체험하는 삶이 근간을 이룰 때 가능합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건설은 혼자의 힘으로만 이룰 수 없습니다. 언제나 ‘말씀’으로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또 더 사랑하고자 하는 원의로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정결케 하여 오로지 ‘하느님 나라 건설’ 곧 나의 주변이 ‘사랑의 왕국’이 되기를 염원하는 신앙과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뜻과 힘과 마음을 모을 때 희망은 현실이 됩니다. 우리 교회가 세상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건설에 투신하고,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삶의 자리에서 복음 선포의 주역으로 살아가도록 지지하며,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될 때, 시대를 거슬러 복음의 가치와 희망을 살아가는 예언자적인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2018년 12월
대림 첫 주일에
천주교 광주대교구
대교구장 김 희 중 히지노 대주교

 

   

[전주교구]

“믿음은 들음에서 옵니다.”(로마 10,17)
-교구설정 100주년을 향한 새로운 복음화-

 

 

  1.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로마 1,7) 지난 해 저는 교구장 직무를 시작하면서 ‘교구설정 100주년을 향한 새로운 복음화’를 교구의 중장기 목표로 제시했습니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하게 요구되는 것이 우리 자신의 내적 쇄신이었기 때문에, 저는 지난해를 ‘신앙 쇄신의 해’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쇄신을 위해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할 사항으로 초대교회의 모범에 따라 다섯 가지 곧 ‘성경 읽기, 교회의 가르침 배우기, 성찬례 참여, 기도, 사랑의 실천’을 제안했습니다. 이런 제안을 실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신 신부님, 수도자, 교우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 그런데 신앙 쇄신은 한 해나 단기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인내와 더불어 끊임없이 계속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저는 지난 해 제안했던 다섯 가지를 앞으로 한 해에 한 가지씩 집중적으로 강조하려고 합니다. 사실 ‘성경, 교회의 가르침, 성찬례, 기도, 사랑의 실천’은 내적 쇄신과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핵심요소입니다. 앞으로 5년 동안 순차적으로 이 다섯 가지 요소에 초점을 맞추어 신앙의 기초를 충실하게 다진다면, 현세에 동화되지 않고 신앙의 정신을 새롭게 하여 우리 자신의 모습이 크게 변화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로마 12,2 참조). 2019년에는 첫 번째 요소인 성경 말씀에 역점을 두고 신앙생활을 합시다.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

 

 3.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넘치는 사랑으로 마치 친구 대하시듯이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인간과 사귀”(계시헌장 2항)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세상을 창조하신 다음 처음부터 원조(元祖)들에게 당신 자신을 알려주시고, 타락 후에도 계속 인류를 돌보셨습니다.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으시고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으셔서”, 그 백성에게 “당신을 참되고 살아 계신 한 분 하느님으로 계시하셨습니다.”(계시헌장 14항) 그리고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가지 방식으로 끊임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구약 전체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전달하시는 역사입니다.


 4. 그런데 하느님께서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히브 1,2) 사람이 되신 아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시며, 하느님께서 맡기신 구원의 사명을 완수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그리스도의 강생과 죽음과 부활의 신비에서 충만함에 다다른 것입니다. 그분 안에서 하느님의 계시가 완성된 것입니다. 사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완전하고 결정적인 유일한 ‘말씀’이십니다. 성부께서는 모든 것을 그분 안에서 말씀하셨고, 그 말씀 외에 다른 말씀은 없습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65항)


 5. 이런 구약과 신약의 역사는 성령의 감도로 기록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은 곧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성경의 모든 말씀으로 오로지 한 ‘말씀’을 하시는”(가톨릭교회교리서 102항) 관계로, 성경은 그리스도의 책, 아니 그리스도 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예로니모 성인은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언제나 성경을 주님의 몸처럼 공경하여 왔습니다.”(계시헌장 21항) 성경은 단순히 과거의 말씀이 아니라 살아있는 오늘의 말씀입니다. 곧 “기록되고 소리 없는 말이 아닌, 강생하시고 살아 계신 말씀”(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입니다.

 

 하느님께 응답하는 우리


 6. 이렇게 하느님께서 성경 안에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씀하시고 궁극적으로는 당신의 ‘유일한 말씀’을 하신다면, 우리는 그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유일한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그럴 경우 우리는 비로소 계시의 궁극 목적인 하느님을 깨달을 수 있고, 이를 통해 우리 자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 말씀에 자신을 열지 않고서는 자기 자신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말씀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갈망을 정화하고 완성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진정한 갈망을 소유, 쾌락, 권력 등으로 채우려 하고 있습니까? 그것들은 그 갈망을 결코 채워 줄 수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우리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입힙니다.


 7. 말씀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올바른 응답이 바로 신앙입니다. 신앙이란 자신이 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자유로이 복종하는 것, 계시 진리를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전적으로 하느님께 내맡기는 것을 뜻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로마 10,17) 그래서 교회는 성경을 “영성 생활의 순수하고도 영구적인 원천”(계시헌장 21항)으로 강조하였고, 실제로 성경의 말씀으로 늘 “구원의 양식과 거룩한 힘”(계시헌장 24항)을 얻어왔습니다. 예로니모 성인이 어떤 사제에게 권고한 다음 말씀은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성경을 매우 자주 읽으십시오. 아니, 거룩한 책이 당신의 손을 떠나지 않게 하십시오. 여기에서 당신이 가르쳐야 할 것을 배우십시오.”(『서간집』, 52,7)


 8. 이와 정반대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왜냐하면 당신과 친교를 이루도록 부르시는 하느님께 인간이 자신을 닫고 멀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의 죄가 본질적으로 불순종이고 ‘듣지 않음’”(주님의 말씀 26항)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듣지 않으면, 우리는 하느님께 순종할 수 없고 오히려 그분을 거스르고 업신여기게 됩니다. 이런 태도는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의 순명과 정반대됩니다. 구원을 이룩하신 예수님의 철저한 순명은 역설적으로 우리의 죄를 남김없이 드러내는 것입니다.


 9. 동정 마리아께서는 믿음의 복종을 가장 완전하게 실천하심으로써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주십니다. 그분은 일생동안 하느님의 말씀에 열려 있는, 듣는 분이셨습니다. 가브리엘 천사의 인사말을 “곰곰이 생각”(루카 1,29)하셨고, 예수님에 관한 놀라운 일을 겪었을 때에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셨습니다.”(루카 2,19.51 참조) 그리고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37)는 말씀을 믿으시고, 주님의 뜻에 무조건적으로 순종하신 분이십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그리하여 하느님의 말씀은 성모님에게 삶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올바른 성경 접근 방법


 10. 이제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볼 차례입니다. 성경을 올바로 해석하기 위해 특히 두 가지 점에 주의해야 합니다. 그 하나는 성경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읽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은 ‘죽은 문자’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 성경이 성령의 감도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읽기 전에 반드시 기도로 성령의 도우심을 청하시기 바랍니다.

 

나머지 하나는, 성경을 “전체 교회의 살아 있는 전통”(계시헌장 12항)에 비추어서 읽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무엇보다도 교회라는 ‘우리’에 맡겨진 하느님의 말씀이며, 따라서 “성경의 살아 있는 주체는 하느님의 백성이고 교회”(베네딕토 16세 교황)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공동체와의 친교 안에서만 인간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진리의 핵심 속으로 파고들 수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벗어난 개인주의적 성경 해석은 쉽게 오류에 떨어집니다. 실제로 우리는 최근에 자의적인 성경 해석으로 신자들을 현혹하여 큰 물의를 빚고 있는 사례들을 자주 접합니다. 따라서 이런 위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성경을 반드시 교회라는 ‘우리’ 안에서 함께 읽어야 합니다. 특히 사목 현장에 계신 신부님들께서는 교우들이 교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거룩한 독서


 11. 이 자리에서 저는, 기도하며 교회의 친교 안에서 성경을 읽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 거룩한 독서는 유다교가 수천 년 동안, 그리고 그리스도교가 이천 년 동안 실천해 온 전통적 독서입니다. 이 독서는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가까이 만나고 하느님을 더욱 깊게 만나게 도와주는데, - 교황 권고 『주님의 말씀』 87항에 따라 언급한다면 다음 네 단계로 진행됩니다.

 

먼저 거룩한 독서는 본문을 읽는 것(lectio)으로 시작됩니다. 이 단계는 ‘성경 본문이 그 자체로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본문의 의미를 이해하는 단계입니다.

 

둘째 단계는 묵상(meditatio)인데, ‘성경 본문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라고 물으면서 주님께서 성경 본문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개인적인 메시지와 공동체적인 메시지를 파악하는 단계입니다.

 

셋째 단계는 기도(oratio)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메시지에 응답하며 그분께 우리의 말씀을 드리는 순간입니다. 곧 우리는 청원, 전구, 감사, 찬미 등으로 응답합니다.

 

마지막 단계는 관상(contemplatio)입니다. 관상은 만물을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판단하는 지혜를 추구하며,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마음’(1코린 2,16)을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이런 거룩한 독서를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 말씀의 보고(寶庫)에 깊이 들어가, 살아 있는 하느님 말씀이신 그리스도와 가까이 만나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실천사항 제안


 12. 이제 올 한 해부터 시작하여 앞으로 계속 성경 말씀으로 우리의 신앙을 쇄신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사항으로 다음 몇 가지를 제안합니다.

 

첫째, 전례 거행이 없을 때에도 하느님의 말씀을 담고 있는 책이 성당 안에서 눈에 보이게 공경을 받을 수 있도록 성경을 모셔 둡시다.

 

둘째, 개인적인 차원에서 매일 성경 읽기를 생활화합시다. 매일 당일 미사의 독서와 복음 말씀을 읽고 마음에 새기는 시간을 갖도록 합시다. 그리고 교구가 제작한 성경 읽기표를 이용하여 성경을 통독하거나 성경 노트를 이용하여 성경을 필사합시다. 하루에 4장씩 읽거나 필사하면 1년 안에 마칠 수 있습니다.

 

셋째, 본당 차원에서 11항에서 소개한 ‘거룩한 독서’를 시행합시다. 여기에는 우리 교구 신부님들(정태현 신부님, 김정훈 신부님)이 저술하신 책 『거룩한 독서』가 큰 도움을 줍니다. 하지만 이 거룩한 독서를 응용한 우리 교구 성경 프로그램 ‘말씀의 벗’을 시행할 수도 있습니다. 이 ‘말씀의 벗’은 중학생부터 어르신까지 거의 전 연령대를 대상으로 하는 ‘읽기와 거룩한 독서’를 겸한 성경 프로그램으로서 5년 주기로 성경 전체를 통독하고 말씀을 나눌 수 있습니다. 혹은 교구 성서사도직의 ‘성서 40주간’이나 ‘성서 100주간’을 이용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맛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근래에 청년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청년성서’가 본당에서 활성화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하시기 바랍니다.

 

넷째, 본당 차원에서 어르신들을 위한 성경 공부를 지속적으로 시행합시다. 점점 고령화되는 사회 현실에 직면하여 노인사목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습니다. 여러 수도회에서 펴낸 책자를 활용하거나 본당 자체적으로 계획하여 어르신들을 위한 성경 공부나 성경 나눔을 이행하시기 바랍니다.

 

다섯째, 지구 차원에서 성경 연수나 특강을 시행합시다. 몇 차례 나누어 1년에 4시간 내지 8시간 정도 실시한다면, 성경의 특정 부분을 심화할 수 있고, 각 본당에서 운영하는 성경 프로그램의 내용을 종합할 수 있습니다.

 

여섯째, 지구 차원이나 교구 차원에서 ‘성서주간’에 성경 축제를 마련합시다. 이때 성경을 필사한 노트, 성경을 주제로 한 성경화, 성경서예 등을 전시하고, 성경 공부에 도움이 되는 도서를 전시합시다. 그리고 영적 서적의 저자나 성경 강사를 초청하여 ‘말씀 토크’(북토크)를 진행하고, 성경 소그룹이 준비한 ‘성경 콩트’ 또는 ‘성경 연극’ 등을 공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성경 축제의 장을 펼쳐봅시다.

 

일곱째, 교구 차원에서 말씀 피정을 마련합시다. 1박 2일 혹은 2박 3일 피정을 통해 성경 말씀의 뜻을 깊이 깨닫고 묵상을 통해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합시다.

 

마지막으로 전주가톨릭신학원이 전주와 군산에서 운영하는 성서연수과에 등록하여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배웁시다. 필요하다면 다른 지역에도 2년 코스로 성서연수과를 개설 운영할 수 있습니다.?

 

 결론 : 능동적 경청은 새로운 창조와 복음화의 원천


 13. 주지하는 바와 같이, 성경은 성전과 함께 “신앙의 최고 규범”(계시헌장 21항)입니다. 성경은 “매일 하느님께서 믿는 이들에게 말씀하시는”(예로니모) 도구입니다.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앞으로 계속 성모님처럼 주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마음에 간직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세상의 “속임수나 간교한 계략에서 나온 가르침의 온갖 풍랑에 흔들리고 이리저리 밀려다니지”(에페 4,17)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반석 위에 자기 삶을 세운 것과 같아 세상의 거센 바람에도 굳건하게 견딜 것입니다(마태 7,24 이하). 그리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형언할 수 없는 선물인 기쁨을 충만하게 누릴 것입니다. 원래 말씀으로 창조된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능동적으로 경청함으로써 이렇게 더욱 새롭게 창조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을 불필요하다거나 낯설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그 기쁨을 나누어 교회와 세상을 새롭게 복음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18년 12월 2일 대림 첫 주일에
천주교 전주교구장 주교 김선태 (사도요한)

  

  

[제주교구]


생태영성의 삶을 사는 소공동체

 

 

하느님 영
 한처음에 아무것도 생기기 전에 하느님의 영이 계셨습니다.(창세기 1,1-2) 하늘과 땅과 거기 딸린 모든 존재가 다 하느님 영의 기운으로 빚어졌습니다. 하늘의 새들과 바다의 물고기들, 땅의 온갖 생물들과 하느님 닮은 사람들, 모두 하느님 영이 발하시는 말씀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 안에는 하느님의 숨과 기가 새겨져 있습니다. 살아 숨 쉬는 생물들만이 아니라, 돌멩이와 쇳덩이들 안에도 다 하느님의 영이 그려놓으신 설계도가 있고, 하느님 사랑의 입김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세상에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존재들은 서로 무관하게 그냥 우연히 거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이 아직 그 전체를 알고 이해할 수 없는 긴밀한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모두 한 분이신 영이 그리신 설계도로 빚어지고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영겁의 세월을 두고 창조하신 만물을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 하고 선포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아득한 태초로부터 수많은 피조물들이 우리보다 먼저 하느님 영의 힘을 받아 탄생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피조물들과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그들의 일부이며 그들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닮은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에게 당신의 지혜와 사랑을 나누어 받아 당신의 아름다운 작품들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피조물들의 주인이 아니라 잠시 관리를 맡은 마름에 지나지 않습니다. 마름의 역할은 주인의 뜻을 제대로 알고, 주인이 아끼고 소중히 여기시는 존재들을 잘 지키고 보살피고 꽃피우는 일입니다. 인간의 역할은 세상을 빚으신 하느님 영의 계획과 의도를 알아듣고 그분 마음에 드시는 방법으로 겸손하게 섬기고 받드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
 그런데 하느님께서 지구에 선사하신 재화들이 인간의 오만과 탐욕으로 회복불능의 치명적인 손상을 입고 생태계 전체가 신음하고 있습니다. 자연과 생명이 훼손되고 환경이 파괴되면 제일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스스로를 방어할 힘이 없는 나약한 피조물과 가난한 이들입니다. 땅이 독한 화학약품으로 죽어가니 수많은 생명의 종들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이제 바다까지 인간이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가 섬을 이루고, 이로 배를 채운 물고기들이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와 사막화로 인한 강물부족, 생태 악화와 초지 소멸, 농경지 퇴화는 지구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의 생존을 위협하여 환경난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지금 지구와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이 공명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인간이 하느님 피조물의 생물 다양성을 파괴하고 기후 변화를 일으켜 지구의 본디 모습에 손상을 입히고, 자연 삼림과 습지를 파괴하며, 지구의 물, 흙, 공기, 생명을 오염시키는 것은 모두 죄가 됩니다.” “자연 세계에 저지른 죄는 우리 자신과 하느님을 거슬러 저지른 죄이기 때문입니다.” (‘찬미받으소서’ 8)

생태 영성
 생태를 살리는 일은 지금 지구상의 가장 긴급하고 엄중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생태(ecology)’는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의 ‘집’(oikos)에 관한 이야기(logos)입니다. 생태 영성이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우리 자신이 하늘의 별들, 바람과 공기, 불과 물, 세상 모든 피조물과 함께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오누이이고, 한 가족을 이루고 있음을 깨닫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생태 영성을 공유하는 이들은 ‘토양의 사막화를 마치 자기 몸이 병든 것처럼 느끼고, 동식물의 멸종을 우리 몸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고통스럽게 느낍니다.’(‘찬미받으소서’ 89) 생태 영성을 살아가는 이들은 하늘과 땅, 산과 바다를 빚어주신 하느님을 찬미하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 공동의 집 가족 구성원들을 살리기 위해 투신하는 사람입니다. 생태 영성을 받아들이는 이들은 세상 시작부터 하느님 영이 계획하시고, 영겁의 세월을 두고 가꾸시고 펼쳐 오신 창조의 신비를 능동적으로 알아듣고 하느님 영의 섭리에 협력하고 동참하는 사람들입니다. 생태 영성은 ‘기술만이 아니라 인간의 변화에서 해결책을 찾도록 요구합니다.  .....  소비 대신 희생을, 탐욕 대신 관용을, 낭비 대신 나눔의 정신을 “단순한 포기가 아니라 주는 법을 배우는 것을 의미하는” 금욕주의로 실천할 것을 요청’(‘찬미받으소서’ 9)합니다. 

작년에 이미 우리는 탐욕적인 개발논리와 무책임한 발전 이데올로기로 한계 상황에 도달한 제주도의 생태계를 우려하며 하느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보물섬을 살리고 지구를 살리는 대열에 앞장서자고 호소하였습니다. 많은 본당과 소공동체들이 쓰레기를 줄이고 바닷가를 청소하고 환경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노력에 적극 참여해 주셨음에 함께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우리는 위기에 처한 생태계를 살려내기 위해 더욱 힘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2018.12.2.
대림 1주일에
제주 교구 감목
강 우 일

 

 

  

[군종교구]

모든 이를 섬기는 삶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요한 13,14)

 

주님 안에서 사랑하고 존경하는 군종교구 교구민 여러분, 저는 금년의 사목표어를 “모든 이를 섬기는 삶”으로 정했습니다. 지난 2년간 우리는 ‘군의 복음화에 대한 열정’을 묵상하고 실천에 옮기려 노력해왔습니다. 그런데 ‘복음화’는 세상에 복음을 전해 사람들을 회개로 이끌어 하느님의 자녀로 만드는 일과 함께, 하느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변화되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그리스도를 닮아감에 있어 중심이 되는 것이 바로 ‘사랑에 기초한 섬김’의 삶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당하시기 전날 밤, 당신 제자들과 식사를 하시던 중, 식탁에서 일어나시어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두르신 후,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허리에 두르신 수건으로 닦아 주셨습니다(참조: 요한 13,4-5). 그리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요한 13,14-17). 이 행동과 말씀으로 주님께서는 ‘사랑에 기초한 섬김’이 인간 행복의 길이라는 것을 선언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의 때 묻고 냄새나는 발을 고개 숙여 손수 닦아주시는 이 섬김의 자세를 통해, 당신의 제자들이, 더 나아가 이 세상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언제 어디서나 섬김의 삶을 살아가라고 촉구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이 최후만찬 식사 때에, ‘발을 씻어주는 섬김의 자세’에 이어서,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라고 말씀하시면서 새 계명을 주셨는데, 이 역시 ‘섬김의 자세’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저는 이 새 계명이 사실상 ‘섬김의 삶’에 기초가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섬김의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친절과 겸손과 배려의 덕들이 서로 사랑하는 ‘상호 사랑’ 곧 형제애에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며, 당신 친히 이 사랑의 모범을 보여주셨는데, 그것은 무엇보다 ‘사랑에 기초한 섬김의 삶’에서 실천됩니다.

 

‘섬기는 삶’은 마음의 따뜻함과 기꺼이 내어주는 의미를 지닌 ‘친절’과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높여주는 ‘겸손’과 상대방의 사정과 편의와 욕망을 고려해주는 ‘배려’에 기초하며, 상호 사랑인 형제애가 이 세 가지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최후를 맞으시기 위해 무거운 발걸음으로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하시던 중 한 가지 슬픈 일이 발생했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이 지극히 사랑하신 제자인 요한 사도와 그의 형제인 야고보 사도의 어머니가 갑자기 나타나 다가와서는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마태 20,21)라고 높은 자리 청탁을 한 일입니다. 요한 사도와 형제인 야고보 사도로서는 정말 부끄러운 일이고 주님께는 슬픔과 실망감을 느끼게 한 일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요한 사도와 야고보 사도 그리고 이 두 제자의 어머니도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인간 마음에 잠재해 있는 높아지려는 욕망을 이해하시면서, 다만 그 욕망을 성취하는 참된 길을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에 기초한 섬김의 길을 따르는 것’이라고 가르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태 20, 25-28). 주님의 이 말씀은 단지 우리 그리스도인들만이 아니고 세상의 만민이 마음깊이 새기면서 들어야 하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높아지려는 욕망이 성취될 때, 군림하고 세도를 부리고 심지어는 횡포를 저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의 중심이 바로 예수님을 본받아 ‘섬기는 삶’이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 ‘섬김의 삶’은 나이, 직위, 학력, 재산, 성격, 출생지, 민족, 피부색 등 모든 차이를 초월하게 해 줍니다. 내가 나이 많아도 젊은이들을 돌보아주는 형태로 섬길 수 있고, 내가 고위직에 있다 해도 낮은 직책의 사람들을 섬길 수 있고, 내가 고학력자라 해도 배우지 못한 이들을 섬길 수있고, 민족과 피부가 달라도 섬길 수 있습니다. 또한, 반대로 못 가졌고 낮은 자리 어려운 삶의 여건에 처한 사람도 열등감이나 불평 없이 겸손히 그리고 기쁘게 섬기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못 가진 이들의 이 자세에 하느님께서 더욱 큰 축복을 내리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천하신 사랑을 본받는다면, 누구에게든 사랑에 기초한 ‘섬김의 삶’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섬김받기를 싫어하거나 거부할 때에, 적극적인 섬김의 자세를 보이기 힘들겠지만, 그래도 변함없는 이 자세를 갖고 살아가도록 합시다. 언젠가 상대방의 마음이 바뀔 수 있습니다. 특히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을 기꺼이 도와주고 돌보아주는 것이 섬김의 아름다움을 증거 하는 가장 좋은 기회가 됩니다. ‘내가 세상을 떠날 때 누구에게 가장 고마운 마음을 가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아마도 나를 사랑으로 돌보아준 이, 곧 나에게 섬김의 봉사를 해 준 사람일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태 20,28)는 주님의 말씀을 다시금 가슴에 새기면서 ‘상호 사랑’에 기초한, 곧 형제애의 친절하고 겸손하고 배려심 깊은 ‘섬김의 삶’을 모든 이에게 실천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이 어려운 삶을 기꺼이 실천할 힘을 성령님께 청하도록 합시다. 섬김의 삶을 실천하는 이가 사랑과 존경을 받고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린다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합시다.

 

저는 금년의 사목표어인 “모든 이를 섬기는 삶”과 관련하여 군종 사목에 직접 임하는 군종사제들과 군종교구의 모든 교우에게 몇 가지를 요청하고 싶습니다.

 

1. 군종사제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이 사목표어와 관련하여 다음 몇 가지를 요청하고 싶습니다.

 

- 군종 사목의 목자이신 군종사제들은 ‘사랑에 기초한 섬김’의 모범을 보이면서, 장병들, 간부들, 지휘관들 그리고 모든 군 가족들을 ‘돌보고 위해주는’ 삶을, 특히 영적으로 돌보아주는 삶을 더욱 충실히 해주시길 겸손히 요청합니다. 영적인 돌봄에서는 무엇보다 군 신자들에 대한 ‘계속 교육’에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이 교육의 방법으로 기도생활로 인도, 성경공부 촉진, 성체성사를 더 가까이하는 삶으로 인도하는 것, 본당 공동체 안에서의 형제적 친교 촉진에 노력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는 달리 말하면, 신자들이 신앙과 희망과 사랑의 덕에 뿌리내리도록 도와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 장병들에게 우선적 관심을 두면서, 그들의 아버지요, 형님이요, 친구요, 상담자로서 친절히 그리고 가까이 대하시고, 특히 오지나 어려운 환경에서 근무하는 장병들을 보다 자주 찾아주시어 위로와 격려를 해주시길 요청합니다. 이것이 ‘현장을 중심으로 하고, 장병들에게 보다 가까이 가라’는 군 당국의 요청에도 응답하는 길이 됩니다. 이와 함께 하느님에 대해 또 영적인 데에 관심을 두는 장병들을 교리반으로 친절히 인도하여 주시길 요청합니다. 정성을 쏟는 만큼 그리고 힘을 쏟는 만큼 결실은 더 많고 더 크게 됩니다.

 

- 군종사제들은 군 장교로서 모든 군인들을 계급과 종교와 출신을 초월하여, 존경하고 예를 갖추어 주고 도움을 주어 ‘섬김의 자세’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는 주님의 말씀을 유념하도록 합시다. 내가 상대방을 높여줄 때 상대방도 나를 높여주고, 내가 상대방에게 도움을 줄 때 상대방도 나에게 도움을 주며, 많은 경우 내가 높여준 이상으로 그리고 도움을 준 이상으로 상대방으로부터 보답을 받습니다. 물론 보답을 기대해서는 안 되겠지만, 내가 상대방에게 좋은 것을 줄 때 상대방도 나에게 좋은 것을 줍니다. 만일 상대방이 주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그를 대신하여 주십니다.

 

2. 신자들 편에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범과 말씀으로 가르치신 ‘사랑에 기초한 섬김의 삶’을 성실히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누구에게든 ‘상호 사랑’ 곧 형제애가 지닌 친절과 겸손과 배려의 자세를 늘 실천에 옮겨주시기 바랍니다. 이 섬김의 삶이 여러분을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만들어줄 것입니다. 특히 우리 주님께서 ‘최후심판’과 관련하여 하신 말씀,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를 묵상하면서 누구보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이들”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을 섬기는 삶을 추구하시길 요청 드립니다. 저는 우리 군 신자들이 군에서만이 아니고 사회와 국가 차원에서도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 주심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2018년 대림 제1주일에
천주교 군종교구장 유수일 F.하비에르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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