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일 (토)
(홍)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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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초신자나 마찬가지인, 세례교인입니다. 질문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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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121.162.134.*]

2018-06-23 ㅣ No.11777

물질주의, 생명경시가 무얼까? 

그것은 "무엇이든 그분이 시키는 대로 하여라"의 성모님 말씀을 간과하는 실수, 실언 등으로 보인다. 

그럴 수 있다. 안 그러면 더 좋을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성모님은 한 생을 영원무궁 전능하신 성부 하느님을 위해 헌신하시고 몽소 승천하신 신앙의 모범이시기에 천주교인들이 공경하고 있다.     

그러나 나무를 보되 숲을 보지 못하는 인성들은 자칫 천주교를 글자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성모님을 믿는 교회로 단정 짓곤 하는데 이 역시 물질주의, 생명경시 사조로 마음을 어지럽히는 사람 속 어둠의 소산일 뿐이다. 이럴땐 어둠을 선교하는 결심이 필요할 것이다. 이 역시 방법은 하나다. 그리스도만 바라보면 된다. 그러면 부처님과 돼지의 눈도 시간 문제다.  

 

어떤 자매가 두 가지 질문을 하였다. 여자들도 남자 세례명을 쓸 수 있느냐고, 물론 쓸 수 있다. 

꽃동네 수녀님들이 베드로, 바오로 등으로 호칭되고 있음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왜 쓸 수 있느냐는 즐겨 관심을 통해 알게 될 것이다. 

군중들은 이때 "4"자를 두려워하는데 1. 육신의 탄생 2. 영혼의 탄생 3. 영원한 탄생 이후 4. 부활(Incarnation) 네 가지를 누리는 기쁨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필자 역시 머리로 전하지만 언젠간 가슴도 함께 노래할 것이다. 일반인들이나 세속 가수들이 노래할 때 보면 목도 많이 쓰던데 성가는 이때에 눈과 눈사이 인중 발성과 젖꼭지와 꼭지 사이 심장(하트) 발성 모으기로 고음으로 갈수록 더 자유자재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기 때문으로 머리 가슴 일곱 통로 협업이 중요하다. 그러면 청중들 의식할 새도 없고 동화는 더욱 쉬워진다. 호흡 또한 다시 평화와 행복으로 리듬감을 타게 될 것으로 유사시 가슴을 풍선처럼 부풀리며 밀당 또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너는 반석 위에 반석을 세울 것이다.라는 계시를 받았다는데 이 역시 저마다의 방법으로 그렇게 받아들이기 나름이라 할 수 있겠다. 

주춧돌이신 베드로 교종 성하 전구와 더불어 신 사도행전을 이어가는 기쁨이자 특전인 것으로 하느님을 보면 누구나 죽는다. 

이로서 겸손과 섬김력으로 영안이 뜨여져 하는 일마다 시냇가에 심어주신 나무로 돌아가 잎새가 마르지 않으며 더욱 촉촉하고 신명 나는 여정이 이어지는 것이다.   

 

신비주의도 좋은 것이다. 원수도 사랑으로 이끄시는 주님과 함께라면 그 무엇이든지 좋은 것일수 밖에 없고 다만 공과 사 식별이 중요하기에 사람은 그렇게 고민을 더하기도 하는데 이럴땐 무조건 지나친 겸손이 교만임을 깨달을 수 있도록 신비주의 앞에도 알게 모르게 함께해주시는 준비라는 것이 있었기에 그것을 보속해 나가면 된다. 도미누스 데우스(하느님), 레소난스(울림, 여운), 미라클(기적) 등이 신앙의 신비 도레미로 이어지고 있기에 패밀리, 소울(스피릿), 라삐, 상뚜스의 파솔라시도를 즐겨 부름으로써 경청해 나가면 될 일이다.  

 

인성만으로는 벗을 위해 생명을 바친다는 것이 한계에 이르기 쉽상이기에 성령의 은사로 또는 충만으로 가장 큰 기쁨인 그것을 위해 너와 나는 매진하게 될 것이다. 그런 가운데 내가 여하히 죽어줌으로서 마침내 벗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수련을 통해 겸손과 섬김력을 재충전해 나갈 수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게 될 것이다.의 계시로서 지금의 행복을 구현하게 될 것으로 사람은 끊임없이 그분을 현양하고 또 현양하게 된다. 누구나 어린시절 스스로 왕따를 당한 기억도 돌아보니 은총이었음을 고백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인생이다.      

 

강해지자! 지금은 비록 내가 말라 건조해졌더라도 더 강해질 수 있도록, 더 촉촉해지는 영육 건강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오늘 하루는 지난날 배타적이던 그것들 아닌 사랑과 자비로 응답하시는 성부와 성모님 손 놓치지 말고 물질주의, 생명경시의 왕 죽음까지도 시나브로 선교하는 하루를 걸어보자. 방법 역시 간단하다. 주님과 함께라면 내 마음과 타인의 마음을 담지 못하는 나도 알게 되어 내 노래가 아닌 하늘맘 우선으로 마음 내려놓기 노래 다시 이어질 것이다. 사람이 홀로이 머물며 다른 사람이 되어 나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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