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6일 (일)
(녹) 연중 제11주일 어떤 씨앗보다도 작으나 어떤 풀보다도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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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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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선 [cskim74] 쪽지 캡슐

2001-11-26 ㅣ No.5165

 

  대학공부하러 서울에 올라와 청량리 부근의 어느 낡은 한옥집 문간방을 삯월세로 얻어 자취생활을 하던 어느 주말 오후 늦게 남산을 올랐습니다.  서울의 야경이 일품이라는 어느 일간신문의 기사를 읽고난 후 한번쯤 오르고 싶었습니다.  어두움이 깃들어 높고 낮은 빌딩과 상가의 네온싸인과 언덕 위에 자리한 동리마다 밝혀진 전등불은 도회를 온통 찬란한 빛으로 수놓은듯 하였습니다.  사방의 불빛을 한동안 바라본 뒤에, 저 광활한 대지에  내 삶의 보금자리나 내가 밝힌 불빛 하나가 없다는 고적함이 엄습해 왔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한 후, 언제나 단벌옷에 검소한 차림을 한 나의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L과장님께서 점심을 자주 사주셨는데 무엇이 먹고싶으냐고 물으실 때면 송구스러워 늘 "짜장면" 이라고만 대답하였습니다.  중국집에 가서 언제나 곱빼기를 시켜 주시며 "고생많지?  가난한 사람이 잘 사는 길은 저축뿐이야.  백만원만 모으게나.  그 돈이면 도회지 살림기반은 마련할 수 있으니까."라고 일러 주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믿고,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여동생과 함께 직장에서 받은 둘의 월급(5만원정도)을 몽땅 저축하여 한해에 80만원을 저축하였습니다. 따지고 보면 시골 부모님께서 식량과 양념을 보내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군대는 이미 다녀왔고 직장을 갖게 되니 중매가 들어와 곧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가난한 셋방살이를 하다보면 전기와 수도요금 계산에 시비도 잦고 가정생활에도 주인댁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것을 보았기에 아내에게는 이를 시키고 싶지않았지요.   L과장님의 도움으로 당시 하늘의 별따기같은 은행대출을 백만원이나 받아 미아리 성북시장 부근에 대지 20평에 건평 13평의 단독주택을 165만원에 마련하였습니다.  4촌형에게 50만원을 빌려 혼수를 장만하니 결혼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주택부금과 결혼비용의 상환은 물론 여동생이 저축한 몫돈을 결혼시 돌려주느라 십여년간은 옆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보니 돈 쓸데는 늘어나서 콩나물과 된장국만 주로 끓여 먹는데도 쪼달리는 생활은 계속되었습니다.  하여 어느해 명절날 "아버지, 저는 도저히 효도할 수가 없어요. 그러나 걱정만은 절대 끼쳐드리지는 않겠어요."하고 고백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아버님께서는 "알았다."는 엄숙한 세마디 말씀만 남기셨습니다.

 

  며칠 후면 아버님의 6주기 제사날이 닥아옵니다.  돌아가시던 해, 병실에서 지난날의 삶을 회상하며 아버님과 정겨운 대화를 나누었지요.  "아버지, 제가 언제인가 말씀드린데로 그동안 효도는 못해도 걱정은 끼쳐드리지 않았지요?" 라고 여쭈었더니, 아버님께서는 "그래, 네 마음은 안다.  그러나 부모 마음은 그런게 아니란다.  늘 자식걱정이었지. 옛말에 ’부모는 열 아들을 길러도 열 아들은 부모를 섬기지 못한다.’고 하였다."라고 말씀하시며 긴 숨을 내쉬셨습니다.  아버님께서 수술을 받으시는 동안 두려움에 사로잡혀 로사리오 기도를 바치면서 가장 가까운 이웃인 아버님께 못다한 사랑을 한없이 자책하였습니다.  수술의 경과는 좋았건만 연로하신 탓인지 "병원비 많이 나온다. 그만 고향으로 가자."라는 말씀을 하신 후 이내 운명하시고 말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한해 한두차례 상경하실 때 아버님께 진지상을 올린 외에는 그렇게도 좋아하셨던 닭도리탕 한번 제대로 대접해 드린적이 없는 것 같아 더욱 죄스러운 심정이지요.  십여년전 해외출장을 나갔다가 시바스리갈 한병을 사다 드렸더니 아버님께서는 그것을 장위에 올려놓으시고  "둘째아들이 사다준 양주"라고 찾아오는 손님마다 자랑하면서도 드시지는 않으셨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더욱 숙연 해졌었습니다.  위령성월을 보내며,  아버님의 영혼의 안식을 위해 정성된 기도를 바친들 생전에  아버님께 효도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 후회감을 어찌 씻을 수가 있겠습니까.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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