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6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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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이 아이를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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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경 [ppebble] 쪽지 캡슐

2002-10-01 ㅣ No.7352

 

 

미국에서 유학 중인 딸아이에게서 순산했다는 연락이 왔다. 아니, 이틀동안 병원에서 진통을 겪었다니 순산은 아니었다.

 

사위는, 딸애가 말은 안 했지만 은근히 ‘아빠가 한번 와 주었으면….’ 하는 눈치라고 전했다. 하지만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태평양을 건너 코쟁이 사람들만 있는 곳에 홀로 다녀올 용기가 쉬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 생각해보니 일찍 하늘로 간 아내 때문에 딸애는 늘 혼자였고 아비인 나를 필요로 할 때마다 곁에 있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결국 나는 뉴욕 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말았다. ‘그래 이번에는 꼭 곁에 있어주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데….’ 하는 마음으로.

 

목적지에 가장 빨리 도착하기 위해 선택한 미국항공사 비행기 안에는 한국인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 젊은 서양인들이 득실댔고 외국인 스튜어디스는 또한 국내 승무원보다 두 배는 건장(?)해 보여 이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큰 사람들 사이에서,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사이에서 소심한 나는 화장실 가는 것도 망설여졌다.

 

대충 몸짓 손짓으로 기내식을 얻어 먹고 억지로 잠을 청하려 눈을 감았다. 이내 선잠이 들려는데 어디선가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곧 숨이 넘어갈 듯 한 울음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살짝 눈을 떠보니 뒷줄 끝 통로에서 젊은 미국인 여자가 어린아이 둘을 안고서 왔다갔다하는 것이었다. 파란 눈의 여인 품에 안긴 그 아기 둘을 자세히 보니 모두 나와 같은 검은 눈동자, 검은 머리카락이었다. 말로만 듣던 한국의 입양아들이었다.

 

‘미국행 비행기에 입양아를 데리고 타면 반값에 간다더니 저이는 둘이나 데리고 가는구나. 저 어린것이 뭘 안다고, 저리도 슬퍼하나?’

 

인상 좋은 스튜어디스들이 모두 달려들어 달래보았지만 그 아이는 한 시간이 넘도록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아이의 보호자는 이미 땀을 비처럼 쏟고 있었다.

 

‘우리의 아이인데, 내가 안아 줘야하는데….’

 

하지만 마음만 분주할 뿐 통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이는 거의 경기를 일으키며 울어댔고 나는 더이상 앉아 있을 수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서툰 영어로 보호자에게 아이의 이름을 물었다.

 

준이라고 했다. 이제 생후 두 달을 넘긴 갓난쟁이였다. 가슴께로 손을 가리키며 안는 시늉을 하자 건네주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뻣뻣한 노인네 품이 뭐 좋다고 내가 안고 눈을 맞추며 어르자 아이의 울음이 사그라드는 것이었다. 조금 어색하긴 했지만 옛날 딸아이에게 했던 기억을 되살려 달래듯 옹알옹알대니 잠이 들었다. 거짓말 같았다.

 

어떤 한국인은 미국이 기회의 땅이라며 굳이 그 땅에서 자녀를 낳으려 애쓰는데, 어떤 한국아이는 어린 나이에 고국을 등지는구나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실로 오랜만에 안아보는 어린아기였다. 그 순간 나는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고 기도할 줄도 모르나 눈을 감았다.

 

“하나님. 이 아이를 부디 건강하게 자라게 해주십시오. 제발 바른 길로 인도하소서. 양부모님이 훌륭한 분이길 바라마지 않습니다.”

 

내 인생에서 그토록 깊고 간절한 기도는 처음이었다. 생사의 고비에 있다는 손녀를 위해서도 이런 기도는 나오지 않았었는데…. 품안에 안고 있던 여덟시간동안 난 그 아이의 아비였다. 마침내 비행기 트랩이 열렸다. 나는 입구에서 아이를 맞으러 온 미국 할머니들에게 아이를 건네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마음으로 인사했다. ‘준이야 안녕.

 

너를 버린 부모나 조국을 원망하지 말고 축복 가운데 살아가려므나.’

 

- 낮은울타리 김홍식(서울시 관악구 봉천동)님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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