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화)
(녹)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자유게시판

여복(女福)이 없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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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미숙 [shwang] 쪽지 캡슐

2003-01-12 ㅣ No.46543

           

           

       

      [ 여복(女福)이 없는 신부 ]  

      광주 염주동 성당 발행 2000년 10월 빛줄기에서

      주임신부 윤 가리노 (용남)

       

      "신부님, 사제관 일 그만 둘래요, 사정이 있어서요."라는 말을

      식복사에게 들을 때마다 가슴이 콩알만해진다.

      어느 정도 사제관 일에 익숙하고 입맛도 제법 잘 맞추는 것 같아서

      좀 안심을 해도 될 만 하면 그 소리를 매번 들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여러 차례 들어왔다.

      속으로 ’또 식복사를 구해야 하나’하는 걱정스런 생각 뿐 아니라

      식탁에 올라오는 반찬의 분위기도 달라지고

      입맛이 또 바꾸어져야 하겠구나 하며 지레 염려하기도 한다.

      젊은이가 식복사로 있으면 인스턴트 식품이 식탁에 잘 올라오고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 일 하면 젖갈 종류가 보통 잘 올라온다.

      30-40대 사람은 기가 세고 50대의 사람은 마음이 좀 너그럽고

      이해심도 많고 60대의 식복사는 사제관을 자기 집처럼 생각하고

      온갖 정성을 다해 봉사하는 모습들이 아름답게 보일 때가 많다.

      어떤 색깔의 연령층의 사람과 사느냐에 따라

      사제들의 신세가 결정지어지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의 사제관 봉사의 정도에 따라서

      민생고가 제대로 해결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제 생활이 안정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선배 신부님들 중에는 20년 이상을 똑같은 식복사와 함께

      생활하는 분도 있는데 그 모습을 보면 부러울 때가 많다.

      그런 신부님들은 경우에 따라서 교우들로부터 오해도 받고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지만 아무리 교우들이 이러쿵 저러쿵 해도

      본인들이 와서 식복사 일을 하지 않은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 사제들은 식복사 복이 있는 분을

      여복(女福)이 많은 사제라고 농담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제가 염주동 성당에 처음 부임할 때 식복사가 없어서

      여기저기 사람을 구한다는 소문을 내었다.

      속으로는 워낙 사제관도 넓고

      상주하는 사제들이 한 명도 아닐 뿐 아니라

      제가 인상이 고약하여 한 번 찌그러진 얼굴을 하게 되면

      사람들이 도망갈 수도 있어서

      사람 구하기가 매번 쉽지는 않다는 생각을 했다.

      부임 후 며칠 뒤에

      일 해 보겠다고 몇 사람이 면접을 하고 다녀갔다.

      그런데 오는 사람마다 사제관이 너무 넓어서 그런지

      아니면 제 인상이 고약해서 그런지

      올 것처럼 말하고서 오지 않았다.

      그때 면담을 하고 간 사람이 세 사람이나 되었다.

      그래서 내심으로는 보좌 신부님도 계신데 빨리 식복사가

      결정되어야 할텐데 하고 걱정스런 마음이 생기기도 하였다.

      그래서 혼자 속으로 다음에 오는 분은 일 하겠다고 말하면

      무조건 ’무시험 통과라도 시켜야 하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결국에 다음 날 어떤 분이 와서 일 해 보겠노라고 하여

      ’그럼 내일부터 당장 일할 수 있도록 해 보세요’하여

      그 자매님이 사제관 일을 하게 되었다.

      어렵사리 무시험으로 통과하여 봉사해 주던 자매님이

      집안 사정상 근무하기가 어려워서 6개월만에 그만두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또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 뒤로 네 사람 째 식복사가 바뀌게 되니까

      전생에 무슨 여복(女福)이 이리도 없는 가 싶은 생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식복사가 바뀔 때마다

      사제관의 예법 뿐 아니라 사제들의 성향을 말해주어야 하고

      교우들과의 관계 문제 등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제관 생활을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하는 등 꽤나 신경을 써야 하고

      서로간의 긴장 관계가 한동안 계속되어야 한다.

      사제는 자기가 원하는 식복사를 아무나 구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젊은 아가씨가 오면 교우들이 ’너무 젊다’고 하고

      노인이 있으면 ’답답하다’고 하고

      중년이 있으면 ’너무 여시 같다’ 하고

      미인이 있으면 ’신부가 미인하고 산다’고 하기 때문에

      무슨 장단을 맞추어야 될 지를 몰라 난감할 때가 많다.

      그래서 사제들도 이제는 혼자 살 것이 아니라

      짝을 맞추어야 불필요한 오해나 구설수에 오르지 않을 것 같다.^^

      식복사가 여러 차례 바뀌다 보니까 제가 가끔 교우 분들에게

      농담으로 새 엄마를 구해 달라고 하면

      "웬 새엄마?" 하면서 어리둥절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제가 "좀 참신한 분으로 부탁해요."하면

      더욱 의아해 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중에야 새엄마가 식복사인지 눈치챈다.

      교우들은 식복사가 사제관에 처음 들어오게 되면 호기심도 많다.

      "과연 어떤 사람이 저 고약스런 신부 곁에 있나."

      "저 신부, 되게 까다로운데 잘도 버틴다."하고 입방아를 찧기도 한다.

      가끔 어떤 교우들은 사제관에서 도와달라고 하면

      하지도 않으면서 남이 일하는 꼴은 보지 않으려고 한다.

      아무튼 여복(女福)이 좋아야

      가정에서나 사제관에서 평화스런 생활이 가능하다.

      지금까지 사제관에서 말없이 열심히 봉사해 준

      자매님들 덕분에 사목생활을 해 왔는데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살아야 하며

      몇 번이나 더 바뀌어야 이 생활이 청산될 것인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차라리 ’할 수만 있다면

      내 스스로 해결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할 때도 있다.

      여복(女福)이 있는 신부도 있겠지만

      매번 식사 걱정을 해야하는

      여복(女福)이 없는 신부도 있다는 것을

      교우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 기쁜 한주간 열어가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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