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화)
(녹)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자유게시판

사이비 교사의 학습지도 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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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선 [peterpan65] 쪽지 캡슐

2003-04-15 ㅣ No.51122

 요즘 학생들의 중간고사철이 다가오고 있는 모양입니다.

 

학생이란 딱지를 뗀지가 오래되었음에도 이리 민감하게 알수 있는것은 나탈리아 때문이지요.

 

그녀는 학생들 시험철만 되면 제가 옆에서 보기 안스러울 정도로 밤 늦도록 아직은 개구장이인 녀석들과 씨름을 합니다.

 

그래서 학생도 아닌 제가 학생들 시험철인지 아닌지를 민감하게 알수 있는 것이지요.

 

요즘은 전에 비해서 학생들이 조금은 늘어서인지 그녀 혼자서 감당하기 꽤 부담스러워 하고 또 그런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뭐 도와줄 일이 없을까? 괜히 죄지은 놈 마냥 안절부절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가 제게 이런 제안을 하더군요.

 

학업을 잘 못 따라오는 학생들이 있는데 그 애들 때문에 조금은 힘이 든다. 그러니 그 애들만 따로 집으로 불러 기초부터 샅샅이 가르칠 생각이 없냐고 말입니다.

 

전 그 얘기를 들을때 옆에 저 말고 누가 있는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보았지만 그곳엔 분명 저와 나탈리아 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정리를 하자면 바로 그 학업부진 학생들을 저보고 가르치란 얘기가 되는 것이지요.

 

아무리 힘든줄은 알지만 농담을 진담처럼 하는 그녀가 가여웠지만 잠시후 그것이 농담이 아니란것을 알았을땐 저는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학업부진인 그 애들이나 저나 뭐 별반 다를게 있겠습니까?

 

그것도 그 옛날 악몽 같았던 수학만을 가르치라는데...(나 참!)

 

저는 양쪽볼이 흔들릴 정도로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그 다음날 또다시 섭외가 들어올땐 손사래치며 다시는 그런 얘기 꺼내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녀의 태도가 곱게 나올리가 없었겠지요?

 

바가지를 긁어대는것은 기본이고 사사건건 시비걸고 뭐라고 하면 살아 보겠다고 고생하는데 남편이라는 사람이 도와줄 생각은 하나도 안한다며 속을 팍팍 쑤셔 놓아대는 통에 제가 어쩔려고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만 알았다고 승낙을 하고 말았지 뭡니까?

 

다음날 아이들 가르칠려면 오늘부터 공부를 하라며 제게 수학 참고서를 들이밀지 뭡니까?

 

제가 또 자존심하면 한 자존심을 하는 통에 이게 무슨 짓이냐?며 호통을 쳤습니다.

 

아무려면 내가 중학생 수학을 못 가르칠것 같아서 그러냐며 그 들이민 참고서를 한쪽 구석에 몰아 넣었지요.

 

그런데 이게 그렇더라구요.

 

학생들을 가르치기로 한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오자 내심 캥기는게 가슴이 두근 거리고 가끔 식은땀도 흐르는데 이거 그 참고서를 안 들여다 볼수가 없더군요.

 

해서 퇴근해서 돌아오면 학원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그녀가 없는 틈을 타서 잽싸게 머리띠 질끈 동여매고 참고서를 펴 들었지요.

 

"헉!"

 

우리때 안 배웠던건지 아니면 우리때 배웠는데 그날 제가 결석을 했던건지 아니면 그동안 사회 생활하며 한잔 한잔 걸쳐댔던 알콜이 증발 하면서 그나마 알랑하게 남아있던 제 머리속 지식마저 동반 증발 시켜버린건지...이거야 우찌...

 

그 옛날 수업 시간에 침 흘려가며 자다가 잠결에 어설프게 들었던 그 괴상했던 용어들이 마구 튀어 나오는데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이 약속을 취소 하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그날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는 그녀 앞에서 도저히 나 안한다란 소리를 못하겠더라구요.

 

"자기야! 이거 문제 프린트해 온건데 이것 좀 풀어봐!" 하며 내미는 용지엔 왠 암호 문구 같은것이 잔뜩 적혀 있는데 그 문제지를 받아 들어 한참 들여다 본 저는 넌지시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요즘은 교육부에서 학생들 관할 안하고 국정원에서 하나보지? 왠 암호 문구들이 이렇게 즐비해?"

 

이런 대답에 그녀의 반응이 어땠는지는 굳이 여기에 쓰지 않겠습니다.

 

괜히 저만 비참해지는 관계로...(험! 험!)

 

어쨌든 하루...이틀...이런식으로 날짜는 야속하게 흐르고, 집안에 언제 사 들였는지 화이트보드가 준비 되는가 싶더니 드디어 오늘 그 약속 당일날이 되었습니다.

 

퇴근해서 돌아온후 두근반 세근반 떨리는 가슴으로 그 학생들을 기다리며 문제지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고 뭐 마려운 강아지 마냥 서성 거렸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녀가 몰고온 세명의 똘망똘망한 중학생 아이들이 아주 큰 소리로 "선생님! 안녕하세요?" 하며 집안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여차여차 인사치레가 끝나고 그녀가 부탁한다며 돌아간후 잠시 어색한 정적이 흐른후 저는 어느새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그들에게 아주 가증스런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학이란, 여러분들이 생각하는대로 그렇게 어려운 과목이 아니에요. 수학이란 모든 학문의 근원이며...어쩌구 저쩌구"

 

오늘은 첫날이니까 대충 연설만 하다가 끝낼까도 싶었지만 다른 아이들에 비해 학습능력이 다소 부진한 아이들이란 생각에 어떻게 하면 기초부터 훑을까? 하는 고민이 밀려오는데 그냥 연설만 하다가 보낼수는 없다란 생각이 들어 수학책을 드디어 펼쳐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아니...제가 듣기론 분명 학습이 부진한 학생들이라고 소개 받았기에 비록 나도 깡통이지만 너희들쯤이야 했는데 얼씨구? 문제마다 또박또박 대답하며 선생인 나보다 더 빨리 풀어 제끼는데야 어찌 제가 당황 안할수 있었겠습니까?

 

점차 속으론 위기감을 느끼며 과연 이녀가 나를 골탕 먹이기 위해 한짓이 아닌가 의심까지 들지 뭡니까?

 

"너희들 수학 안 어려워?" 하고 물으면 "아뇨! 어려워요." 하고 대답하는데 이거야 원! 어렵다고 하는 놈들이 되레 선생이 틀리면 지적을 해???

 

그럴땐 얼른 위기감을 모면하기 위해 고전적인 수법을 썼지요.

 

"그렇지! 너희들이 아나 모르나 테스트 한거야! 그래. 이건 이렇게 하면 안되죠?...아주 잘하네?..끙끙!"

 

어쩌다 아이들이 틀리기라도 하면 속으론 "푸하하하!" 쾌재를 부르며 이런것도 모르냐는 식으로 냅따 열강하는 척 큰소리치며 나혼자 잘났노라! 좋아 했지요.*^^*

 

이렇게 시간반이 어찌 흘렀는지 제 생각엔 아주 후딱 지나 갔고 그리고 오늘의 진도까지 다 풀고 말았습니다.

 

무엇을 어찌 했는지 내가 가르친게 틀리진 않았는지 조마조마해 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을 배웅해 주는데 그중 한녀석의 대사가 저를 안심 시켰습니다.

 

"와아~재밌다. 매일 왔으면 좋겠다!"

 

그제서야 성취감과 만족감이 오며 혼자 씨익 웃으며 학원에서 강의중인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의 성과를 보고 했습니다.

 

이제 이렇게 발을 들여 놨으니 빼지도 못하게 생겼습니다.

 

물론, 저도 생업이 있기에 시험철만 봐주기로 한것이니까 그리 고생될것은 없다 치지만 팔자에도 없던 공부를 다시 하게 되었지 뭡니까?

 

지금도 빨리 이 글을 써서 올리고 내일모레 다시 해야할 진도부분을 부지런히 공부 해 두어야 한답니다.

 

물론, 아시다시피 저는 사이비 교사입니다.

 

그런데 은근슬쩍 욕심이 생기는것 있지요?

 

겉보기엔 굉장히 똘망똘망하게 생긴 아이들이고 실제도 그렇던데...그 녀석들보다 더 잘하는 아이들이 있다는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녀석들을 비록 시험철만이라는 단서가 붙긴 하지만 성적을 쑥쑥 올리고픈 욕심이 듭니다.

 

저는 솔직히 아주 바보같은 아이들인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오늘 보니까 진짜 바보는 저말고 없더라 이겁니다.

 

우선은 제가 공부해야 되겠더라구요.

 

그래서 오늘도 잠자리에 들기전 그 괴상한 암호문구들을 풀고 자야 합니다.

 

아~팔자에도 없던 고생이지만 한번 이 고생을 즐겨보려 합니다.

 

"아자! 아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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