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화)
(녹)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자유게시판

정형근을 사랑하는 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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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찬 [lyc771] 쪽지 캡슐

2004-04-24 ㅣ No.66366

정형근같은 부도덕한 인간을 포용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부도덕할 수 밖에 없다.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이번 총선에서 살아남은 것은 정형근 의원 개인의 승리(勝利)가 아니라 ’이대한 부산(釜山) 시민(市民)의 승리’였다. 그는 열린우리당 이철 후보보다 무려 7,000여 표(票; 정형근: 42,547표 / 이철: 35280)나 더 받았다. 김영삼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부산을 "국제(國際) 강간(强姦) 단지(團地)"로 조성하여도 손색이 없겠다. 역사(歷史)를 강간하고 시대정신(時代精神)을 강간해가며 민주주의를 강간한 사람을 기어이 자기 지역 대표로 뽑은 그 시민정신(市民精神)을 높이 기리기 위하여. 대구 경북이야 박정희의 영지(領地)였으니까 그 상속녀(相續女)가 한나라당 대표가 된 것을 축하해서 싹쓸이로 표를 몰아줬다 치자. 부산은 김영삼의 텃밭이 아니었냐? 아하, 김영삼이가 대구 군벌(軍閥)들에게 데릴사위 들어가면서 부산도 그때 지참금으로 가져갔다 이 말이구나. 그렇게 되는 것이 부산 사람 김영삼 전 대통령이 말한 사필귀정(事必歸正)인가? 열린우리당이 몰살(沒殺)하는 것이 부산사람 박관용 국회의장이 말하는 자업자득(自業自得)인가? 그래도 정형근, 김무성같은 사람은 걸러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명심보감(明心寶鑑) 천명편(天命篇)에 이르길 ’종과득과(種瓜得瓜)요 종두득두(種豆得豆)니 천망(天網)이 회회(恢恢)하여 소이불루(疎而不漏)니라’, 하였다. 오이 심으면 오이를 얻고 콩 심으면 콩을 얻나니, 하늘의 그물이 엉성해 보여도 새는 것이 없느니라. 그런데 정형근의원은 그렇게 많은 악(惡)을 심었는데도 아직도 선(善)한 열매를 따고 있으니 부산의 하늘에는 그물이 없는가? 아니 부산에는 아예 하늘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닌가?

 

 

자료 1 : 국정원의 ’정형근 파일’ 중 일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 87년 1월14일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서울대 ’민추위’ 사건 관련 박종철(언어학과 3년)을 연행해 조사시 물고문 등으로 치사 사건이 발생하자 치안본부로부터 관계기관 긴급대책회의 소집 등 지원을 요청받고, 당시 대공수사국 수사단장 정형근은 ▲ 1월14일 심야에 당시 광화문에 있는 서린호텔에서 개최한 관계기관대책회의에 검찰·경찰·청와대 관계자 등 10여명과 함께 참석하여 ▲ 사건 처리방향에 대한 대책을 논의한 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내용의 발표문 작성에 참여하였으며 ▲ 그 후 수차례 시내 앰버서더 호텔(1817호)에서 검찰·경찰·청와대 등 관계기관대책회의를 소집하여 ▲ “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면 정부가 견디기 힘들다, 5공 정권 출범 이래 최대 위기인만큼 사건이 절대 깨져서는 안 되며, 이대로 묻혀야 한다”며 사건 처리방안을 제시하고 ▲ 담당검사 안상수에게 고문경찰관의 구형량을 낮추도록 요구하는 등 고문치사사건 은폐 및 축소조작에 개입하였고 ▲ 당시 의정부 교도소에 수감중이던 조한경 경위를 직접 찾아가 “두 사람만 관련된 것으로 하고 더 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입을 다물어 달라”면서 금품을 제공해 회유하고 검찰ㆍ교도소측에 각종 편의를 제공토록 하였음.

 

 

자료 2 : "파이프 담배 문 정형근이 나를 고문했다"

 

심진구씨(39·경기도 안산시 부곡동)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을 둔 가장이다. 그러나 심씨는 지난 13년 동안 노동력을 상실해 아내한테 의존해 힘겹게 살아오고 있다. 86년 안기부에 끌려가 37일 동안 당한 살인적인 고문으로 인한 육체적·정신적 상처 때문이다. (중략)

 

"정형근 단장이 들어오고 나면 더 가혹한 고문이 가해졌다. 한번은 들어와서 이렇게 말했다. 심진구, 이제 불 때가 되었는데. 여기 들어와 15일이면 다 불어. 여기가 어딘지 알지? 여긴 국회의원도 맞아 나가는 데야. 그래야 고생하는 우리 수사관들도 특진하지. 그러고는 부하들에게 ’간첩이라고 불 때까지 더 족쳐!’라고 고문을 독려했다. 그 중에서 성고문이 제일 치욕적이었다. 손을 뒤로 한 채 목을 젖히고, 심문대 책상 위에 내 성기를 올려 놓고 몽둥이로 쳤다. 10분씩 두 차례에 걸쳐… 차라리 죽는 게 낫지, 한 대만 맞아도 기절초풍할 정도였다. 그들은 좋아하며 히히덕 거리며 즐겼다."

 

 

자료 3 : 월간중앙 1999년 12월호 서경원 前 의원 증언

 

질문 : 정형근 의원은 일관되게 고문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습니다. 정말 고문을 당했다면 정황을 좀 상세히 얘기해 주십시오.

 

서 : (중략) 그렇게 맞으면서 피가 막 쏟아지니까 밥그릇을 하나 갖다주면서 피를 받으라고 합디다. 정형근이 직접 욕실에서 물뜨는 밥그릇을 가져왔어요. 밥그릇이 넘치니까 청동색 재떨이도 가져왔는데 사기로 돼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는 욕실에 들어가 분홍색인가 붉은색의 바가지도 들고나오더라구요. 그릇만 세가지가 동원된 거죠. (중략)

 

질문 : 정형근 의원의 말을 종합해 보면 최소한 자신은 직접 고문을 하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안기부 수사국장이 간첩 수사를 직접 했겠느냐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서 : 옷을 다 벗겨서 완전히 병신으로 만들어 버리더구만. 팬티하고 ’런닝구’만 남겨놓고 군복 바지를 입혔어. (중략) 두들겨패다가 내가 맨발 벗고 있었는데 발등에 올라서서 저 혼자 빙글빙글 돌면서 나(정형근)를 살려달라고 했습니다. (중략) 돈 준 것은 안나왔다니까 김일성과 김대중 친서를 네가 갖다주고 갖고 왔다는 것을 대라는 거요. 그래서 그런 일 없다고 했더니 그걸 불라고 밤새 두들겨 맞은거요. 집중적으로 맞고 나니까 나중에 정신이 없습디다. 그래서 보십시오. 여기가 부은 겁니다. 예전에 맞은 곳이지요. (중략) 개인이 억울하다 차원이라기 보다 이렇게 당한 사람이 한 20여명 됩니다. 정형근이한테 당한 사람이 그렇다는 말이오. 그런 사람들의 증언을 두고 정형근은 간첩들이 흔히 쓰는 보위수단이라든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잠을 안재우니까 해볼 재주가 없습니다. 내 정신이 아니야. (중략) 나중에 검사가 1주일인가 열흘인가 교도소에 안 들어갔더라고 얘기해 줍디다. 그동안 못잤다는... (중략)

 

질문 : 정의원은 또 현역의원을 어떻게 고문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들어갈 때 그 대접을 받았습니까.

 

서 : 대접이요? 첫마디가 ’야, 씹할 자식아. 같이 살자’였습니다. 정형근이 말대로 국회의원을 대접했다면 그럴 수 있소? (하략)

 

 

천도(天道)는 과연 있는 것인가? "천도(天道)가 공평무사(公平無私)하고 항상 선인(善人) 편(便)에 있다고 한다면, 인덕(仁德)을 쌓고 행위(行爲)를 정결(貞潔)하게 했는데도 아사(餓死)한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선인(善人)이 아니었더란 말인가" 하고 탄식한 사마천(司馬遷)의 한탄(恨歎)이 오늘날에 와서도 새삼 뼈에 사무치는 것은 어째서인가?

 

명심보감(明心寶鑑) 천명편(天命篇), 익지서(益智書)에 운(云) 악관(惡 )이 약만(若滿)이면 천필주지(天必誅之)니라, 하였다. 익지서(益智書)에서 이르기를, 악(惡)의 두레박( ), 즉 악한 마음이 가득 차면 하늘이 반드시 그를 주살(誅殺)한다고 했는데 그의 악이 아직도 다 차지 않았단 말인가? 그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해꼬지하고 근거없는 폭로는 세상을 흉흉케 했는데도 말이다.

 

자왈(子曰) 획득어천(獲罪於天)이면 무소도야(無所禱也)니라. 공자님께서 가라사대, 사람이 하늘에 죄를 얻으면 빌 곳이 없느니라. 부산에는 하늘도 없나본데 공자께서 하신 말씀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부산 사람들은 참 좋겠다.  

(어떤 분의 글을 인용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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