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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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2584] 신앙과 순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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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8-18 ㅣ No.2587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저는 신부님은 아니지만 이 사이트에서 신부님의 답변을 기대할 수 없기에 질문하신 분을 조금이라도 도와 드릴려는 심정으로 가톨릭의 신앙상담 봉사자로서 님의 질문에 대하여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질문을 올리신 분은 천주교 신자이고 그 여자친구는 개신교에 속한 교회에 다니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두 분이 결혼하기 전에 이미 성을 주고 받았다면 교회법에 의하여 하느님의 계명을 어긴 것이 됩니다. 비단 자위행위를 할 때에도 하느님에 배반한 행동이 되므로 우리 가톨릭에서는 대죄로 분류됩니다.

 

질문을 올려주신 분께서는 20대 정도의 젊은 분인가 봅니다. 20대의 젊은 사람들은 사실 넘치는 욕구를 자제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그러한 욕구나 고통도 모두 참고 이겨내면서 하느님께 봉헌하기를 바라고 계시지요.

 

우리 인간의 성적인 욕구는 하느님께서 주신 고귀한 선물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잘못 사용할 때 죄가 되는 것이지요. 사실 성의 참다운 목적은 서로 자신을 내어주는 아름다운 행위이며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동참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목적으로 성을 사용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지만 쾌락을 위해 성을 사용하는 경우에 죄가 되는 것입니다.

 

죄는 일차적으로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기정사실이지만 우리 자신에게도 해가 되지요. 그래서 간음, 매춘은 물론 혼전 순결의 파괴 및 자위행위까지도 교회에서는 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성은 나를 내어주는 행위이지만 하느님 앞에서 혼인을 서약하고 결혼을 했을 때 서로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혼자서 즐기는 자위행위는 자기 중심적이고 쾌락 중심적이기 때문에 인격적 성장에 커다란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자위행위를 할 때에는 자연히 음란한 생각을 거의 동반하게 됨으로써 이성을 인격으로 보지 않고 성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어 올바른 인간관계를 깨트리면서 폭력적 성향도 높아지게 만드는 욕망의 노예가 되어 버리고 말지요.

 

현재의 성에 대한 개방적인 사회 현상과 풍조에 휩쓸리게 되는 현실은 우리 젊은 이들에 있어서 옛날에 비하여 성을 자재하는데 더욱 어려운 환경에 살고 있다고 보겠습니다. 그래서 성에 대해 갈등을 겪는 것은 개인의 책임이자, 사회공동체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극복하는 절대적인 왕도는 없지만 우리가 성에 대해 알아야 할 몇가지 영적인 사항을 신부님의 상담 내용을 근간으로 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드립니다.

 

첫째로, 성은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을 통하여 하느님께 감사드릴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잘 안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성욕이 소유욕과 만날 때이지요.

 

둘째로, 성욕을 느끼거나 성적 매력을 느낄 때 우리는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삶의 에너지가 충만함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릴 수 있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완전하게 충만한 삶을 주실 때 그것은 얼마나 더 클까 하고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지요.

 

셋쩨로, 소유욕을 우리가 절제하지 않으면 우리는 항상 죄에 빠지게 됩니다. 자신의 이익과 만족을 위해서 상대방을 인격적인 면 보다는 동물적인 면으로 이용하게 되니까요.

 

넷째로, 이성의 사랑은 참 좋은 것이고, 하느님의 사랑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습니다. 보다 완전한 사랑, 참사랑과 이성의 사랑을 연결시켜서 생각해보는 습관을 키워 보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다섯째, 상대방을 소유하도록 이 사회가 우리를 유혹하고, 또 악의 세력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음란의 악령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때는 구마경으로 자신을 보호해야지요. 주님의 도우심을 청하면서 말입니다.

 

여섯째, 마지막으로 하느님과 성모님께 정결의 은혜를 청하면서 도우심을 청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현재의 상태를 자녀다운 마음으로 말씀드리면서 주님과 성모님께 의탁하도록 하십시오. 지금 자신이 성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또 주님께 더 가까히 나아갈 줄 알게 된다면, 이것은 오히려 전화위복이지요. 우리에게는 전화위복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어떤 생활에서도 비록 죄에 빠졌을 때도 우리는 주님께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되어버리지요. 신앙인의 강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참 신앙인은 어렵다고 해서, 힘들다고 해서, 실망할 이유도, 절망할 이유도 없고, 오히려 그것이 하느님과 깊이 일치하는 계기가 되어버리지요. 이게 신앙의 신비입니다.

 

우리 나약한 인간에게 그러한 죄스런 모습은 바로 질문자 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의 공통된 비참한 모습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단죄하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분 앞에서는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용서받을 수 있고 또 실제로 그분은 죄인을 미워하기보다 오히려 사랑하셨습니다. 회개하는 창녀를 받아들이고 용서하셔서 그를 성녀로 만드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오셨습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이곳에 글을 올려 상담하는 것 자체가 큰 용기를 내셨음을 인정하며 주님은 반드시 질문하신 분을 도우실 것입니다. 개신교나 가톨릭 모두 삼위일체 하느님을 믿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하느님의 계명은 같습니다. 따라서 가톨릭 신자이든, 개신교 신자이든 혼전 순결의 파괴는 대죄입니다.

 

질문하신 분은 고백성사로써 용서을 받으시고 여자 친구 분은 개인적인 기도로써 자신의 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개신교 신자의 경우도 신부님께 특별히 부탁하면 고해성사를 볼 수 있습니다. 죄에 빠져 있는 불쌍한 영혼을 구하는 것은 비단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비 가톨릭 신자가 절실히 원할 때 사제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도우심과 평화가 언제나 님과 함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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