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환갑 즈음에
2013. 10.19. 지바고
아내는 항상 쓸고 닦았다.
화장실 거울, 바닥, 변기와 욕조,
씽크대, 식탁, 거실 바닥과 각 모서리
눈에 보이는 것은 다 쓸고 닦았다
나는 현관문에도 나를 비추어볼 수 있고
화장실 타일에도 나를 비추어볼 수 있고
안방 천정에도, 거실 바닥에도 나를 비추어볼 수 있다
집안 전체가 나에게는 나를 파헤치는 입체 거울인 거다
너무 남루하고 지저분한 내 모습,
더 이상 더럽혀지지 말라고,
부지런히 씻고, 닦고, 털어내라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나는 지금까지 아내의 깊은 뜻을 모르고
나를 옥죄는 너무 많은 눈길들에 분통만 늘어놓았다
아내는 새 신발을 좋아했다
신발가게만 보면 참새와 방앗간이었다
먼 길 떠날 것처럼 새 신발을 신어보지만
아내는 결코 내 그림자를 벗어나 본 적이 없다
가을 하늘, 투명한 날개를 달고도 결국 제자리를 맴돌고 마는
고추잠자리처럼
아내는 선을 넘지 않는 절제된 제 삶의 모습으로
어리석은 내 방황의 무모함을 깨닫게 해주었다
나는 지금까지 아내의 깊은 뜻을 모르고
답답한 삶을 산다고 핀잔만 주어왔다
아내의 오선지엔 수많은 음표가 썩은 핏자국처럼 뿌려져 있다
비 오던 날, 전깃줄 위에 웅크리고 있던 울지 않는 참새 떼
꺽꺽거리는 신음으로 아내는 애써 자신을 지탱해갔지만
지금까지 귀 먹고, 눈 먼 채 나는
마냥 들리지 않는다고,
입을 확실히 벌리라고,
두 다리로 똑바로 서라고,
몸살엔 냉수마찰이 약이라고......,
나는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돌팔이였던가
마음 열고, 머리 묶어,
아내의 신음이 반주 없는 노래로 와 닿을 때
소리 없는 아내의 음표에서 나는
숨은 겸손을 배운다
잔잔한 희생을 깨닫는다
아내가 열심히 닦아놓은 거울 덕분에
아내가 즐겨 골라 모은 새 신발 덕분에
아내의 썩은 핏자국 같은 소리 없는 음표 덕분에
나는 이렇게 건재하지 않은가
아내의 환갑 즈음에
때 늦은 깨달음이 눈가를 촉촉이 적신다
여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