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성지순례ㅣ여행후기

"그분"이 불러주셔서--파리 외방전교회와 에펠탑 (여섯 번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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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항 [vinchen10] 쪽지 캡슐

2004-11-24 ㅣ No.425



"그분"을 사랑 함으로 

 
 

 

  "주여! 제롬과 제가 손을 맞잡고 서로 의지하며 당신에게로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평생을 통해 마치 두 사람의 순례자처럼 때때로 둘 중 한 사람이 '피곤하면 내게 기대.'하고 말하면,
다른 한 사람이 '네가 곁에 있는 것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라고 대답하면서 당신을 향해 나아가도록 해 주시옵소서.
아닙니다!  주여, 당신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길은 좁은 길입니다. 둘이서 나란히 걸어 가기에는 너무도 좁은 길입니다. "

 

  지드의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 좁은 문을 기억하시지요? 내 젊은 날, 사랑이라는 말에 취해 밤을 새워 고민하고 애태우던 제롬과 알리사가 삼 십년이 훌쩍 뛰어넘은 지금에서야 저를 이곳으로 부르네요.

  파리로 갑니다.

  멋쟁이 은발의 슈발리에의 구수한 샹송과 해 질 무렵이면 노상 카페에 나와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며 인생을 노래하던 랭보, 보들레르와 지드가, 숱한 예술가들의 도시, 그녀에게 제가 달려갑니다.

위고의 꼬제트는 어디에서 마리우스와 만나고 사랑에 이르렀을까?


********


  로마에서 세 번째 밤을 지낸 날 아침은 휘파람 소리가 절로 나오는 상쾌한, 서울의 늦은 가을처럼 싱그러운 아침 공기를 흠뻑 들여 마셨습니다. 그런데 가슴 깊숙이 들어오는 소나무 향기, 예!  송진냄새가 은은해서 흡사 고향에 돌아온 줄 알았다니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나무에 혹하잖아요.
로마를 떠나는 작별 인사로  "로마의 소나무" 가 향기를 가득 품어주며 애석해 하네요.

  파리로 가는 비행기에서 아내는 학창 시절 공작 부인으로 출연했다고 공연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 하던 몰리에르의 "세빌리아의 이발사" 중의 멋진 불어 대사를 흥얼거리고 있고, 나는 기내 방송으로 막 가르쳐준 "몽블랑" 산을 내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희디흰 만년설에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알프스 산맥 연봉에 쌓여 이거다 알아 챌 수 는 없었지만 그 중 유독 쌀쌀맞지만 기품 있어 뵈는 공작 부인처럼 턱을 고추세운 산을 "몽블랑"이라고 내 마음 대로 정해 버렸습니다.
  창가에 앉아 넋을 잃고 있는 아내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몽블랑이 아무리 아름답다해도 당신한테야 어디 견줄 수 있겠어!"
  아내는 돌아보지도 않으며
  "당신 안목도 괜찮은데..."
  말장난 중에도 우리 둘은 넋을 놓은체, 하얗게 부서지는 겨울 햇빛 아래 눈부신 자태로 솟아 오른 우아한 공작부인 "몽블랑"을 내려보고 있었습니다.

  구름 한점없는 파리의 정오,겨울날씨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따뜻한 파리에서 썬글라스를 꺼내며 명물 달팽이 요리와 그 유명한 바께뜨를 한입 베어물다가 이크, 입술 베일라! 그만큼 입 안은 메말라 있었습니다. 
  파리 시가지 중심에 위치한 유명한 파리 외방전교회로 찾아갑니다. 대문을 들어 서면 백여평 남짓한 잔디밭을 둘러선 성당에 들어서니 우리를 기다리는 수원교구에서 유학오신 신부님 두 분과 학사님이 반가운 표정으로 우리를 맞이하네요.

참 ! 빠트릴 뻔 했네, 내일 부제품을 받으실 베드로, 바오로 부제님이 공항에 마중 나왔지요, 사실 이번 순례단은 바오로 부제님 부모님과 수원교구 조암 본당 교우들이 본당 출신 바오로 부제님이 파리 갈멜 신학교에서 드리는 서품식에 참석하려고 계를 들어 순례를 떠난 거랍니다.

  파리 외방전교회만큼 우리나라와 깊은 인연이 있는 교회단체가 있을까요? 우리나라는 외국에서 파견된 선교사 없이 책을 통해 서학이라는 학문으로서 가톨릭을 연구하다가 교리를 받아 들였답니다. 교리를 연구한 선조들이 북경에 있는 외국인 사제를 통해 청원을 하지요 선교사를 파견해 달라고. 이 청원은 교황청을 감동시켜 파리 외방전교회를 거점으로 우리나라에 사제를 파견하게 됩니다.  아마 세계 선교사상 초유의 국가로 기억 되겠지요.

  알 수 없는 신비한 힘에 빠져들며 시작되는 오늘의 미사는 외방전교회 성당, 백여 평이나 될까 중간에 제대가 놓여 있는데 제대는 그저 평범한 책상 크기였습니다. 바닥도 신자석과 평평해서 아주 편안했지요.  둘러 선 신자석은 십자가형으로 사방으로 모두 삼십여석이나 될까, 간단하게 들고 다닐 수 있는...음 초등학교 꼬마 걸상과 흡사해서 시골 학교 교실에서 가지는 간이미사같아 마음이 편했습니다. 

신부님을 둘러싼 체로 진행되는 오늘은, "사막의 수도자", "수도회의 개척자"라고 일컫는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이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가 계신 바로 위의 지붕을 벗겨 구멍을 내고 중풍 병자를 요에 눕힌 체 예수 앞에 달아 내려 보냈다.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 받았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분"께로 나아가는 적극적인 믿음의 정신, 행동으로 보여주는 굳센 실천 이것이야말로 우리나라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순교하신 선교사들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인상적인 것은 외방선교회 성당 벽이 가득 찰 정도로 큰 그림이 걸려 있었는데 조선으로- 그 당시 꼬레아를 그들이 어떻게 알았을까? 멀고도 먼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했겠지요- 선교의 임무를 띄고 떠나는 신부님들을 배웅하는 눈물의 파티가 벌어지는 장면이네요.
  하얀 턱수염의 신사가 신부님 손을 잡고 있고 그옆에는 복숭아 뺨을 가진 예쁜 소년이 엄마인가 귀부인의 손을 잡고 귀엽게 돌아보고 있는데, 하얀 턱수염의 신사가 바로 "아베마리아의 작곡자인 유명한 "구노"이고, 복숭아 뺨이 귀여운 소년이 바로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쿠베르탕"남작의 어린 모습이랍니다. 우리 귀에 아주 친숙한 아베마리아의 구노가 당시 이곳 외방전교회의 성가대 지휘자였다네요.    
  천주교 박해시대 당시 조선이란 땅은 동방 선교사들에게 '죽음의 땅` 이었습니다. 일단 들어가면 100% 죽음이 확실한 사자굴과도 같은 선교지가 조선이었지요. 따라서 조선에 선교를 지원했던 프랑스 선교사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조선으로 입국했답니다.

  조선으로 떠나기 직전 선교사들은 죽음 준비작업을 합니다.  아쉽고 송구스런 마음을 겨우 달래며 부모님과 지인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씁니다.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  는 작별 편지를 말입니다. 편지지 위로 굵은 눈물 방울이 뚝뚝 떨어지지요.

이윽고 떠나기 직전입니다. 동료사제들, 주교님께 하직 인사를 올립니다. 아무런 말이 필요없네요. 이승에서는 마지막이 될 깊고 힘찬 형제적 포옹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서로 말없이 바라보며 고개만을 끄덕이며 마지막 눈인사를 주고받겠지요.

   "먼저 떠납니다. 천상에서 다시 만나요"

   "그래요, 먼저 가세요. 저도 준비되는 대로 뒤따르겠습니다. 꼭 뜻을(순교) 이루길 바랍니다."

  이어지는 순서는 신자들과 친지들과의 하직 인사를 하는 눈물의 파티가 되겠지요. 선교사들이 신자들과 뜨거운 포옹으로 정을 떼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이 아마도 이 그림인 것같아요.    

  성당 지하 기념관에 내려가면 외방 선교회 신부님들의 선교? 대부분 순교하셨으니 순교 기념관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됩니다.
아시아 여러나라에서 순교하신 신부님들의 자료가, 서툰 한자와 한글 편지, 그리고 그림이 정리되어 있어 우리를 숙연케 합니다.
아시아에서 순교한 지역은 베트남이 가장 많았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며 잠들어 계신 신부님 유골 앞에서 잠시 화살기도를 올립니다.
"얼굴색도, 말도 다른 멀고도 먼 이국 땅에서 순교하신 신부님, 죄송해요.당신의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저희들, 똑 바로 살겠어요, 예! 올 곧게 살도록 저희를 잊지 말고 돌보아 주실거죠?"
기도를 끋내고 보니 또 순교 신부님을 조르고만, 이런 엉터리가 있나...

  한국에 오래 계시다가 모국에 돌아와 계신 노년의 마음씨 좋아 보이는 프랑스 신부님이 반가운 고향 사람 만났다고 우리보다 더 유창한 한국어로 우리를 반기시는 게 아니겠어요. 우리나라 사정이 온통 궁금해 죽겠다고 별별 일을 꼬치꼬치 캐묻는 게 아닙니까?

  옆에 있을 때는 미처 몰랐던 그리운 이여! 오늘 밤은 세느 강, 밤 유람을 나서렵니다.
이슬비에 젖는 파리의 밤 풍경을 유람선에서 내다보는 보헤미안의 우수를 겻들어 그대에게 노래를 보냅니다. 에디뜨 삐아쁘의 "사랑의 찬가" 를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내겐 아무 일도 아니에요/ 나 또한 당신과 함께 죽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우리는 끝없는 푸르름 속에서/ 두 사람을 위한 영원함을 가지는 거예요/ 이제 아무 문제도 없는 하늘 속에서/ 우린 서로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샹송은 대개 속삭이는 단조로운 맬로디로 시작하는 데 비해 이 노래는 오캐스트라처럼 장중하게 시작하지요. 사랑에 목숨을 거는 에디뜨 삐아쁘의 노랫말이 너무 아름답지 않으세요?

  그땐 사랑에 목숨을 걸었지요. 암요, 걸고말고요. 후후후~ 다시 생각해보아도 사랑이란 열병인가 봐요. 이빨을 덜덜 떨며 밤을 지새우는 고통 속에도 보석을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니까요.

  그때, 제가 사랑을 했냐구요?   아니오, 청춘이 앓는 사랑은 대개 실체가 없는 관념 자체가 아니던가요?   세월이 너무 흘렀나 봐요, 애써 기억을 불러모아도 실감이 안 나네요. 내 청춘이 앓았던 마마자국을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걸요.  
  하얗게 눈보라처럼 벚꽃이 난분분하던 동숭동 미라보 다리에서 서투른 낭만을 흉내 내던 시절로 돌아가보는데 그런데말예요. 유람선은 미라보 다리까지 가지 않는다는군요. 언젠가 우리나라에서 상영 되었던 "뽕네프"가 다가 오네요. 대단했어요 그 아름다움, 조명을 받아 환상적인 모습을 연출하는 파리지엔느의 솜씨가.

  제가 아는 다리는 그 것밖에 없어요. 세느강을 가로 지르는 다리는 참 으로 많은 데도 불구하고 모두 너무 아름다워 감탄하기 바빴습니다. 

  그때, 물안개 젖어오는 파리의 야경 속으로 신기루처럼 솟아오르는 에팰 탑, 그 여인이...화려한 조명으로 그 거대한 몸집에도 불구하고 맵시있는 자태로 동방에서 온 순례자를 어서 오라고 유혹하네요....
꼭 유혹에 넘어가서가 아니라 에팰탑을 엘리베이터로 오르며 흡사 꼬리 열 둘 달린 여우한테 얼이 빠진 선비처럼 이끌려 온 제가 이해가 안되더이다. 차가운 쇳동가리밖에 되지 않는 이 거대한 몸체가 우리를 미망(迷茫)에 빠뜨리네요. 파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에서 나는 가늠하고 있었습니다. 프랑스 육군사관학교 자리를.... 평생 알리사와 사랑의 열병을 앓던 제롬이 다녔던 흔적을 가늠하며 나는 또 한번 젊은 날의 순교자처럼 온 마음을 바쳐 사랑했던 좁은 문의 제롬과 알리사의 영혼, 아니아니 바로 나 자신 깊숙히 자리한 내 영혼의 떨림, 내 순결한 것을 동경하던 내 그리움을 반추하고 있었습니다.
  에팰탑, 그 높고도 높은 전망대, 유리창을 적셔오는 밤안개, 비로서 당도한 내 그리움의 실체, 이제는 너무 멀리 와버린...

      "  ..꼬망 브-띠끄 쥬 뚜블리그 /앙 쓰떵-라 리 비에떼 쁠뤼벨르/...메쥬네끄 훼르 데 허그레/에 라 샹송 끄 뛰 샹떼/Toujours, toujours je l'entendrai!

(그때는 삶이 더욱 아름다웠고/그리고 태양은 오늘보다 더 작열했었지요/..그리고 그대가 불렀던 노래를 /언제나 언제나 듣고 있을 거예요....")

  어디선가 파리지엔느가 읊조리는 이브 몽땅의 "고옆(古葉)"이 들려오고, 길 떠난 나그네가 애련한 감상에 젖는 오늘은, 그냥 두시라...

  밤은 속절없이 깊어가고 천 길 높이 솟아 오른 내 그리움의 꼭지에서 에팰탑,거대한 몸체를 빗겨 적시어 흐르는 빗방울에, 이루기 요원한 그대에게로 향하는 타는 목마름을 담아 더듬거리며 불러봅니다.

     "...제.롬!...완.전.한..사.라..앙...그리고.자.아.유..."

   파리, 밤 안개, 샹제리제, 에팰탑, 세느 강..온 밤을 뒤엉킨 꿈 속에 창백하고도 여윈 프랑스 여인을 새벽녁엔가 볼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알리사였을까요? 너무 거룩한 것에 마음을 두었던 탓이었을까, 몹시 고단해 보였습니다.

 

******

  지나고 보니, 그날 밤 파리의 야경에 취해 지나치리만큼 센치했나 봅니다. 얼굴이 확 달아오르면서 부끄러워 지워 버릴까 하다가 그냥 두기로 했습니다.

반백이 지난 이 나이에 그리 부끄러워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참 기묘한 건, 세월이 지나면서 젊은이의 뜨겁고 말랑말랑하던 마음은 죽은 자의 발바닥처럼 화석화되는 게 아니던가요? 그래서 이런 세상에는 주착맞은 센치멘탈리스트가 가끔은 필요한 게 아닐까 해서요?

  음~ 늙는다는 것은 후회가 꿈을 덮어가는 거라는 말도 있지만...

어쨌던 젊은 시절, 랭보를 보들레르와 빅토르 위고에 심취하지 않은 청춘이 있던가요?  에디뜨 삐아쁘를 흥얼거리며 꿈꾸던 그 현장에 제가 왔다는 것이 이렇게 맬랑콜릭한 감상에 빠지게 했나 봐요.

 

  제가 알기로 고딕이란 건축양식은 하느님께로 향한 인간의 그리움과 염원이 그렇게 하늘로 높게 솟아 오르게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수 많은 성당이 이를 증명하는 거 잖겠어요?

  그럼 높이 300M가 넘게 하늘로 솟아오른 에팰탑은 무엇 때문에 그리 키를 키우고 있을까요? 다다르고 싶은 "그분"에게로 줄달음 치는 우리의 그리움인가요. 혹시혹시말예요, 바벨탑처럼 "그분"과 키자랑을 하고 싶어하는 치기 어린 교만 땜인가요?

아무래도 모르겠습니다.  콩코드 광장에서 싱그런 아침 공기를 마시다가 무심한 표정으로 저를 내려다 보는 에팰탑을 바라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부질없는 생각이라면....저도 그만 둘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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