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8일 (화)
(녹)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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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7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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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corenelia] 쪽지 캡슐

2024-05-24 ㅣ No.172690

[연중 제7주간 금요일] 마르 10,1-12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아주 짧은 한 문장이 가슴에 콱 박혔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이 질문에는 차별과 폭력이 숨어 있습니다. 자신이 상대보다 우월하다고 여겨 함부로 대하는 차별, 그리고 상대방을 마치 내 소유물, 즉 ‘물건’처럼 여겨 제 뜻대로 휘두르는 폭력이 내재되어 있는 겁니다. 그런 차별과 폭력이 그저 ‘옛날 일’로 여겨지지 않는 것은 오늘날에도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있기 아니 오히려 더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는 독선적이고 고압적인 태도로 나와 생각이 다른 상대방을 깔아 뭉개고, 이웃 형제 자매를 나와 같은 사람으로 여겨 존중하기보다 내 목적을 이루고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 함부로 대하는 우리의 모습이 이천년전의 그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유배 이후 이스라엘 사람들은 결혼을 일종의 매매 계약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여자를 남자의 ‘소유물’로 여겨 여성들에게 재산의 소유권, 상속권을 주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이혼에 대한 권한도 여자 쪽에는 없었습니다. 남자는 무엇이든 이유만 만들면 자기 아내를 내쫓고 본인 마음에 드는 다른 여자를 아내로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큰 상처를 입었고 사회적으로도 소외될 수 밖에 없었지요. 모세가 이혼에 관한 특별 규정을 만든 것은 바로 그런 모습 때문입니다. “남자가 여자를 맞아들여 혼인하였는데, 그 여자에게서 추한 것이 드러나 눈에 들지 않을 경우, 이혼 증서를 써서 손에 쥐어 주고 자기 집에서 내보낼 수 있다.”(신명 24,1) 이 특별 규정의 핵심 포인트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남자는 자기 아내에게서 하느님 보시기에 추한 모습, 즉 불륜이라는 죄가 드러났을 때에만 이혼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자기 맘에 안 든다고, 맘에 드는 다른 여자가 생겼다고 마치 물건 갈아치우듯 아내를 함부로 버리지 못하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둘째, 아내와 더 이상 혼인생활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면 반드시 ‘이혼장’을 써주라고 규정합니다. 재산 소유권도 없는 여성의 입장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는 다른 남자와 함께 살아야 하는데, 전 남편과의 혼인 문제가 명확히 정리되지 않으면 불륜죄를 저지른 죄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이혼장을 써주어 그녀에게 살 길을 열어 주려고 한 겁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그 두가지 핵심 포인트는 쏙 빼버리고는, 이혼장만 써주면 남편은 언제든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할 수 있다는 식의 ‘권한’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자기 욕심만 채우려고 드는 그들의 그 완고함 때문에 이혼에 관한 특별 규정을 만든 것인데, 그들은 그 규정마저도 자기들 탐욕을 채우는 도구로 이용하려고 하니 참으로 답답하고 한심한 노릇이지요. 일반 백성들을 이끄는 ‘종교 지도자’인 그들을 그런 무지와 완고함의 상태로 그대로 놓아 두었다가는, 다른 이들마저 그들의 잘못된 사고방식에 물들 터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 앞에서 혼인에 관한, 더 나아가 인간 관계에 관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분명하게 천명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그들이 당신 앞에서 들먹인 모세의 특별 규정보다도 더 근원적인 근거를 드신 것입니다. 이혼에 관한 특별 규정은 한낱 인간에 불과한 모세가 만든 것일 뿐이며, 율법의 근본조항도 아닙니다. 그런 것이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뜻과 섭리보다 결코 우선시 될 수 없지요. 하느님께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서로 다르게 만드신 것은 ‘다름’을 이유로 편을 가르며 차별하라고, 나와 다른 이를 내 욕심을 위한 도구로 삼으라고 그러신 게 아닙니다. 서로의 다름을 통해 상대방의 부족함을 채워주라고, 그렇게 사랑으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참된 일치를 이루라고 그렇게 만드신 것이지요. ‘혼인’한다는 것은 한 사람을 내 안에 총체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그가 지닌 장점이나 좋은 조건만 선택하여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그가 지닌 약점과 상처, 부족함까지 모두 다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그가 걸어온 삶 전체를 그리고 그와 함께 걸어갈 길에서 지게 될 십자가까지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맺어주신”이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는 원래 ‘함께 멍에를 매다’라는 뜻입니다. 즉 혼인은 하느님께서 ‘우리’라는 공동체에 맡기신 사랑의 소명을 함께 이루기 위해 멍에라는 십자가를 함께 지는 숭고한 행위인 겁니다. 비단 남녀간의 혼인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면서 맺게 되는 수많은 인간관계들이 다 비슷하지요. 그러니 달면 삼키고 쓰면 뱉으려는 얄팍한 마음은 버리고, 하느님께서 저 사람과 나를 특별한 관계로 묶어 주신 그 뜻과 의미를 찾아야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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