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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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적으로 우리에게 남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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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2-11-03 ㅣ No.4219

11월 4일 월요일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루가 14장 12-14절

 

"너는 잔치를 베풀 때에 오히려 가난한 사람, 불구자, 절름발이, 소경 같은 사람들을 불러라. 그러면 너는 행복하다. 그들은 갚지 못할 터이지만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하느님께서 대신 갚아 주실 것이다."

 

 

<최종적으로 우리에게 남는 것>

 

오늘은 오랜만에 아이들과 도봉산엘 다녀왔습니다. 아직도 군데군데 남아있는 단풍의 끝물이나마 보기 위해 몰려든 등산객으로 도봉산은 입구부터 초만원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등산로 초입부터 굉장했습니다. 사람들로 빼곡한 식당들, 번데기, 솜사탕, 호박엿 등등 갖은 군것질 거리들을 파는 노점상들, 거나하게 한잔 걸치고 떠드는 사람들, 올라가는 사람, 내려오는 사람, 누군가 다쳤는지 빠른 속도로 올라가는 인명구조차 등으로 인해 저와 아이들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한 아이가 제게 "저기 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아이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니 거기에는 한 하반신불구의 사람이 땅바닥에 엎드린 채로 찬송가를 크게 틀어놓고 힘겹게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 얼굴을 잠깐 올려다보던 아이는 몇 푼 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동전을 탈탈 털어 바구니에 넣었습니다. 참으로 기특했습니다. 그 아이의 작지만 기특한 선행을 바라보던 제 머릿속에는 어린 시절 몇 컷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습니다.

 

배고팠던 시절, 식사시간만 되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밥을 구걸하던 사람들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거적을 둘러쓴 걸인들이 숟가락으로 깡통을 두드리며 노래를 한 곡 구성지게 부른 다음, "밥 좀 주세요!"하고 외치던 풍경은 아직도 제 마음속에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집집마다 그들을 대하는 방식은 다양했습니다. "식전부터 재수 없게, 밥 없어! 꽝!" "미안하지만 우리 아들 묵을 것도 없심더. 다음에 오이소."

 

그런데 제 기억에 남아있는 파란색 대문 집에서는 유독 걸인들을 대하는 방식이 남달랐습니다. 그 집도 쌀독 사정이 다른 집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걸인들을 향한 배려가 특별했습니다.

 

걸인들이 오면 마당 안으로 불러들여 평상에라도 앉혔습니다. 그리고 걸인들을 위해 소박하지만 예의를 갖춰 밥상을 준비했습니다. 때로 주변에서 "걸인들을 위한 배려의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며 말들도 많았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잔치를 베풀 때, 축의금을 준비할 수 없는 하층천민들을 초대하라고 우리에게 권고하십니다.

 

어려운 이웃들을 향한 소리 없는 나눔, 그것처럼 주님 앞에 향기로운 봉헌은 또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일생을 마쳤을 때 최종적으로 우리에게 남는 것은 우리가 어려운 이웃들을 향해 베푼 자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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