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4일 (월)
(백)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그의 이름은 요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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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115.94.171.*]

2014-09-10 ㅣ No.10718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어디서부터 풀어볼까요?

우리의 구원, 나의 구원 문제에 대해서 먼저 풀어볼까 합니다.

나는 구원 받았나?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는가? 이것이 아주 중요한 관건입니다.

많은 가톨릭 신자분들이 이 구원의 문제 앞에서 개신교 신자들처럼 확신이 없다는

것이 가장 안타까운 문제이기도 합니다.

 

세례 받으셨지요? 우리는 세례를 통해서 이미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이렇게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를 교회로 부르신 예수님께서 왜 교회로 부르셨는가?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부르신 것입니다. 어떤 구원인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문제는

죄에 대한 해방입니다. 죄는 누가 사해줄 수 있는가? 죄는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느님 만이 사해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해지는가?

 

과거 구약 시대에는 죄 사함을 받기 위해 갖가지 동물들의 머리에 손을 얹으면

내 죄가 그 짐승에게도 옮겨 가게 되고 그러면 그 짐승의 목을 당사자가 따서 죽여서

제물로 바침으로써 죄가 사해졌습니다. 왜 이런 끔찍한 일을 하도록 하셨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짐승이 내 죄를 뒤집어 쓰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그 짐승의

목을 직접 따서 죽인다면 ...

 

다음에  또 죄를 지으면 그 짓을 또 해야 하는데 그게 끔찍해서 죄를 짓겠는지요?

이러한 예방 차원에서 아마도 그런 규정을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데 신약으로

넘어와서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우리가, 물론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직접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고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 돌아가셨지만 ...

그 댓가로 우리의 죄가 이미 사함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증표로 우리가 세례를 받게 되면 ...

원죄와 본죄가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죄의 용서가 바로 구원을 받는 것이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자캐오에게 "오늘 이집은 구원을 얻었다."고 선포하신 것이지요.

 

그러나 그 구원의 완성은 세상 끝날에 완성에 이를 것이기에 늘 현재 진행형인 것이고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끊임없이 구원을 베푸시기 위해 성사를 제정해 주셨는데 그 중에

고해성사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매번 죄를 짓지만 용서를 청하면 바로 용서해 주시는

것이 또한 구원입니다. 이렇듯이 내가 주님께 모든 죄를 용서받고 행복하게 살듯이

우리도 이웃의 죄를 끊임없이 용서해 주며 서로 행복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이런 용서의 체험이 있을 때 ...

자캐오처럼 가진 재산을 아낌없이 주님께 봉헌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자캐오가 전 재산을 다 내 놓았는지 얼마를 내 놓았는지 성경을 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당신 것인데 무엇이 필요하셔서

내 놓으라고 하시겠습니까?

 

인간은 하느님을 닮아서 내어 놓으므로써 바로 행복할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성경의 한 말씀을 들려 드리겠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얻는 지혜를 그대에게 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으로 가르치고 꾸짖고 바로잡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에 유익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사람이 온갖 선행을 할 능력을 갖춘 사람이 되게 해 줍니다."

(2티모 3,15-17)

 

내 죄를 예수님께 모두 용서받았다는 체험과 고백이 있을 때 신앙은 기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왜 믿고 따릅니까? 이 세상 삶을 기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주님께 선물로 받은 인생이기에 그 인생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고

나의 모든 이웃은 모두 주님의 형제들이기에 주님은 그들의 주님도 되시기에 그들을

한 형제로 보는 마음으로 사는 것...

 

곧 예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그 마음으로 세상과 이웃을 보며

함께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쳐 사랑하신

그 사랑이고 우리도 따라야 할 길인 것이지요. 구원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비싼 나르드 향유를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발에 발라 드린 그 여인도 자신이

받은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자신이 가장 아끼는 것을 예수님의 발에 발라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 여인처럼 구원에 대한 체험과 확신이 있으면 아마도 자연스럽게

이웃과 나누며 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처럼 예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계신지에 대한 체험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잘 안 되는 경우 ... 많은 분들이 성령세미나에 가서 마치

토마스 사도처럼 주님의 손에 난 못자국에 손을 넣어 보고서 믿겠다고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도 주님은 당신을 체험하게 해 주시는 분이시기도 합니다.

 

교구 성령 기도회에 알아보시면 묵상회가 언제 열리는지 아실 수 있으십니다.

그리고 보통 금요일에 철야기도회가 있으니 기회가 되시면 한 번 참석해 보심도

좋으실 것입니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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