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7일 (목)
(녹) 연중 제12주간 목요일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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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의 연중 제8주간 월요일: 마르코 10, 17 -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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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승 [bona24] 쪽지 캡슐

2024-05-26 ㅣ No.172744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10,21)


젊어서 보다 나이 들면서 가끔, 나는 참으로 부족한 사람이다, 라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어떤 글을 읽다가 율곡 이이 선생이 남긴 글이 마음에 와닿더군요. 『부모가 되어보니 부모 마음을 알겠습니다. 당연한 부모의 도리, 부모의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부모로서만 바라보았던 그때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지금의 나보다 젊은 나이였습니다. 그때의 부모에게 왜 나는 바라기만 했을까요. 지금의 나는 아직도 많이 부족합니다.』 ‘부모가 되어보니, 지금의 나는 아직도 많이 부족합니다.’라는 표현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그때는 자식의 시선에서 부모를 보았지만, 이제 부모가 되어보니 부모 심정을 알게 되고, 그로써 새삼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했잖습니까? 참으로 자신을 아는 사람만이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인정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부자 청년에게,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라고 했지만, 저는 살아오면서 제가 깨달은 사실은, 저의 부족함이 하나둘이 아니라 참으로 많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젠 부족한 저를 받아들입니다. 저의 자질과 인격 면에서도, 지적 영적 수준에서도 참으로 부족한 점이 많지만, 이런 저를 통해서도 위로를 느끼고, 영감을 받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부터 부족한 저를 자책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부족한 저를 당신 자녀로 불러주시고 당신의 사람으로, 당신의 도구로 선택하신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에 감사하며 살고자 합니다. 이제 ‘부모가 아니고 어른이 되어보니’ 하느님 보시기에 모든 면에서 부족함을 많이 깨닫습니다. 이젠 ‘한 가지 좋은 몫을 누리며 나날이 생명을 얻고 더 얻도록’ 일깨워 주시고, 그렇게 살도록 안배해 주심에 감사하며 살려고 합니다. 부족한 것을 부족하다고 보시지 않은 하느님 안에서 저의 부족한 것을 불필요한 것으로 채우지 않고 부족한 것을 부족한 대로 봉헌하려고 합니다. 
 

오늘 복음의 전개는 아주 드라마틱합니다. 전 단계에서, 인간관계의 가장 본질적인 관계, 곧 참된 부부 관계와 가족 구성원인 어린아이를 축복하신 다음에 일어난 해프닝입니다. 이전 맥락에서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인간은 진정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며 그에 따른 소유와 존재, 달리 말하면 구원 곧 하느님이냐 재물이냐는 문제를 직시하고 직면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수난 예고와 거룩한 변모를 통해 당신 자신이 누구이신지 드러내시고 예루살렘을 향한 길로 들어선 예수님 앞에 달려와 무릎을 꿇고 어떤 부자 청년이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10,17) 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 청년은 오래도록 이 문제를 고심해 왔으며 나름대로 영원한 생명을 ’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기 때문에, 이런 거창한(?) 문제를 언급했다고 봅니다. 다들 먹고 사는 문제에 급급하고 인간관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었을 텐데, 그는 그런 세상적인 문제를 초월하는 영원한 생명, 곧 구원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물었던 것입니다. 그런 그를 유심히 보면서 예수님은 새삼 기특하고 대견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청년의 태도와 느닷없는 질문을 한 그의 고민을 들으면서 말입니다. 어느 정도 그 청년은 알고 있었고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나 무엇을 행함으로써 얻고 받은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느님께서 주셔야 받는다는 것쯤은 이미 그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이미 알고 있는 율법의 준수 곧 사랑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 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는 “스승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10,20) 하고 즉각 대답함을 통해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는 분명 보기 드문 열심하고 성실한 청년이었음을 예수님은 통감하시면서 한 편 그에게서 아직, 미처 깨닫지 못한 부족한 부분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그는 가진 게 많았고 행하는 것이 충분했지만 그런 만큼 역설적으로 빈 곳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그가 미처 깨닫지 못한 부족한 부분, 곧 그의 결핍을 찾아내십니다. 그의 부족함은 바로 ’비우고 채워야 할 곳‘ 곧 그의 존재 심층에 하느님의 자리보다 인간적 의지와 노력, 자만과 재물로 꽉 들어차 있었기에 역설적으로 하느님이 머물 자리가, 여백이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겉으로 영원한 생명을 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합니까? 라고 말하지만, 그의 속은 바로 자기 자신 곧 자신의 실천과 소유로 가득 차 있었기에, 타인이나 하느님께서 들어갈 틈이, 자리가 사실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직설적으로 그를 향해,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10,21) 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은 이렇게 어느 날 길에서 예수님이 보기 드문 청년과의 만남을 마무리 짓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10,22) 결국 자신의 천적은 바로 자신이었고, 가장 큰 디딤돌이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구원은 인간 행업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요 은총입니다, “선하신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10, 27)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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