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성지순례ㅣ여행후기

수원 교구 여주 부엉골 신학교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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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무 [cheonhabubu] 쪽지 캡슐

2008-11-14 ㅣ No.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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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주 부엉골: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부평리 581 세종 천문대 뒷산(여주 성당)

 

새벽에 목욕부터 하고 순례길 하루를 시작한다.

재계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보자는 의미이다.

그래서 묵주의 9일기도도 시작했다. 11일 째.

우리가 여주 세종 대학까지 갔을 때는 아침 7시 30분쯤이었다.

서리가 하얗게 내려, 떨어진 나뭇잎 위를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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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바로 예술품이었다. 남편은 성지 보다는 그 그림들에 관심이 더 많았다.

서리가 없어지기 전에 사진을 더 많이 찍고 싶어 했다.

햇살이 막 피어오르고 있기 때문에 서리는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다.

우리 일생에서 좋은 것은 얼마나 순간적이던가?

남한강에서 피어오르는 아침 물안개가 아득한 선경이지만 이 또한 잠깐이리라.

신학교 터를 찾아 헤매는 일만 아니면 우리도 그 그림 속의 일부로

정말 잠깐 동안은 얼마나 아름다운 그림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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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골은 조성이 된 성지가 아니므로 찾는 데 어려움이 따르리란 건 미리 알았다.

너무 일러서 여주 성당에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고,

안개 자욱한 이른 아침에 지나는 트럭에게 물었지만

기사는 너무 바빠 말 들어 줄 시간도 없다고 그냥 내뺐다.

안내 책자를 자세히 보아도 확실하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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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련원 뒷산인 것 같은데 수원교구의 성지 지도에 설명하는 말이

강을 따라 난 길을 1킬로미터 걸어가다 우회전이라 했다고

베드로씨는 자꾸만 왼쪽의 강으로 가는 길이 맞을 거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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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박해를 피해 숨어서 만든 학교가 산 속에 있을 것 같아

오른쪽의 산으로 가는 길로 가야한다고 우겼다.

그런데 그 길을 왔다갔다 해 보았지만 길은 없고 밭둑만 나온다.

“형수님도 고집만 피울게 아니라 제 말을 좀 들어보셔요.”

제법 큰 소리가 터져 나온다.

우리가 함께 순례를 선택한 지가 벌써 석달 여.....왜 안 그러겠는가?

새벽부터 나와서 명색이 기획한다는 사람이 자세한 준비도 없이 이리 헤매고 있으니

운전하는 사람으로 짜증인들 왜 안 나겠는가?

미리미리 완벽하게 준비하지 못한 내 탓이라 생각하며 얼른 차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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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의 짧은 여행에서도 동반자들은 작은 갈등을 일으키게 되는 경우를 흔히 본다.

잦은 여행길에서 흔히 겪는 일이다.

피곤함, 긴 여정에 일어나는 일종의 권태 같은 것,

아니면 서로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일어나는 편안함이 어떨 때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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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씩씩하게 걸어오며 언제 얼굴을 붉혔냐는 듯이 산길로 오고 있는 베드로씨를 보며

참으로 좋은 성격을 가진 그 부부들과 순례하는 일에 진정으로 감사했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이 순례길이 어쩌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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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이 왁자하게 오고가는 천문대 쪽으로 간다.

천문대학은 청소년 수련원을 함께 운영하여

아침 식당에 아줌마들이 부지런히 어린 학생들의 밥시중을 들고 있었다.

“아줌마, 부엉골이 어디예요?

“거긴 왜요?”

“거기 천주교 신학교 터가 있었다네요.”

 

이상한 사람 다 본다는 얼굴로 빤히 쳐다보더니

“거기 아무 것도 없는데요.”

“길은 나 있어요?”

“농장 옆으로 가면 산으로 가는 길은 너무 잘 나 있어요. 그런데 정말 거기는...“

그 아줌마는 건물의 옆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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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길은 잘 나 있었다.

오른쪽으로 몇 발자국만 가면 비포장이지만 좋은 길이 나오는 걸,

그 몇 발자국을 떼지 않고서 오른쪽 입구가 움푹 패이고 꼬부라져 있으니까 길이 없는 줄 알았던 거다.

사람들은 늘 자기 눈으로 보이지 않는 건,

옳은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맹점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절대로 우겨선 안 된다니까.

세상엔 내가 모르는 일이 너무 많고,

내가 모르는 걸 너무나 당연하게 아는 사람이  있다는 걸 새삼 느낀다.

세 걸음만 더 떼면 바로 거기에 길이 빤히 나 있는 걸.. 거기 길이 어디 있느냐고

바보같이 길을 가르쳐 준다면서 아줌마들을 원망도 했다.

큰 자동차 바퀴가 움직인 흔적도 보였는데

울퉁불퉁하여 승용차로는 어림도 없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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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이어지는 길은 점입가경이다.

부엉이가 부엉부엉 울어댈 것 같았고,

커다란 장끼가 아름다운 날개를 퍼덕이며 눈앞으로 퍼더덕 날아간다.

단풍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하얀 돌들이 일정하게 깔린 사잇길을 걸어 올라가다가 저기가 신학교 터인가,

아니면 여기가... 마음대로 상상했다. 그러나 그곳은 산사태가 일어나

흘러내린 물길에 깔린 돌인 것 같았다.

 

다시 그곳을 내려와 긴 임도를 따라 산속으로 갔다. 약 2킬로미터 지점에 갈랫길이 있다.

아무래도 양지쪽일 것 같다며 햇살이 비치는 오른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지천으로 깔린 밤송이들이 바지를 찔러댔다.

더러 알밤도 밟혔다. 마지막 지점 계곡 옆에 다 허물어져 가는 빈 집이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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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만 보고 그 신학교 터에 벌써 다른 사람이 차지했나 상상했다.

여름 장사를 하던 집으로 보였다. “서울 뚝배기”

등산객에게 커피나 팔고 라면이나 간단한 요리를 해서 파는 가게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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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도, 피마자도 서리를 맞아 잎이 시들었는데 유독 구기자는

붉은 열매 몇을 달고 싱싱하다.

순교자들의 피처럼 영롱하게.....

삐딱하니 상도 기대어 서 있고 휴대용 가스렌지도 박스에 가려져 있다.

여름용 가재도구들이 먼지를 덮어쓰고 다시 돌아올 여름을 기다리며 있었다.

허무한 마음으로 기도만 하고 약 1킬로미터쯤 내려오는데 올라갈 때의 갈랫길에서

남자 둘이 멈추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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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물도 흐르고 좀 넓은 걸 보니 이곳이 집터인 것 같구려.“

그렇게 말하니 그래 보였다.

새로 임도를 닦고 있었던 왼쪽 길과 양지라고 말하던 오른쪽 길 사이에 제법 넓은 공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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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있었다는 예수 성심 신학교는 1885년 10월 28일 개교, 1백여 년의 온갖 수난과 역경을 이겨내면서 성소를 키워 내 오늘날의 가톨릭 대학교 신학 대학을 있게 한 모태이다

 

 

조선 교구 제7대 교구장 블랑 주교는 페낭 신학교의 한국 학생들이 그곳의 기후와 풍토를 이겨 내지 못해 그들의 철수가 시급해졌고 이미 1884년에 일부가 귀국하게 됨에 따라 신학교의 설립을 서둘러야 해서 이 깊은 산속에 낡은 집 몇 채로 사서 신학생 7명으로 시작했었다고 페낭 신학교에 있는 "부엉골 학생명부"에 기록되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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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국내 신학교였던 부엉골 신학교는 그러나 그리 오래 운영되지는 못했다.

시설이 좋지 않은 데다 학생수도 얼마 되지 않았고

그 동안 콜레라로 인해 한문 교사 1명과 학생 1명이 사망한다.

그러는 동안 한불 조약이 체결, 비준되면서 블랑 주교는 신학교를 다른 곳으로 옮길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리하여 개교 후 2년이 지난 1887년 봄, 부엉골 예수 성심 신학교는 용산 함벽정,

지금의 성심 여중고, 커다란 조선 가옥에 꾸며진 새 보금자리로 옮겨졌다 한다.

 

안타까운 일은 표지석 하나라도, 안내 표지판 하나라도 그곳에 있어서 순례자들이

너무 헤매지 않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원교구 차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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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박해가 심했으며, 또 얼마나 신학교 설립이 절실했기에

이 깊은 산속에 학교를 지어 달랑 일곱명의 학생들로 운영했을까?

바스락거리는 낙엽 밟은 소리 속에 저물어가는 가을의 소리,

순교자들이 죽어가면서도 신앙을 저버리지 않았던 신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벽안의 신부님이 이 깊은 산골에서 어린 학생들을 모아놓고 수도자의 길을 가르치셨다니...

 

청소년 수련원에서 막 나온 한 패의 어린 학생들이 왁자하게 놀이기구를 타려고 지도자를 따르고 있었다.

말 한필이 유유히 좁은 농장으로 난 길을 가로질러 지나간다.

오늘의 아이들은 이렇게 재미있게 노는 것도 돈을 들여 이런 시설을 찾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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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에 집을 나서서 11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아침 겸 점심을 먹으면서

배고픈 것도 모르고 산을 헤맬 수 있는 힘이 남아 있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였다.

밥시간 5분도 못 넘기는 남편의 성정으로...

아무 것도 보지 못했지만 우린 모든 걸 다 본듯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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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호젓하고 아름다운 산길을 일찍이 본 적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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