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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late pope) 장례미사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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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사목국 [papangelus] 쪽지 캡슐

2005-04-14 ㅣ No.41

 

요한 바오로 2세 장례미사: 3월 8일 금요일.
요셉 라칭거 추기경의 강론.

3월 8일 금요일 오전 10시 베드로 대성전 강당에서 추기경단의 대표인 요셉 라칭거는 돌아가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미사를 집전했다. 다음은 라칭거 추기경의 미사강론이다.

 

“나를 따르라.”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당신의 양떼를 돌보라고 뽑으신 제자들에게 하신 마지막 말씀입니다.

 

“나를 따르라.”- 그리스도의 이 시금석과 같은 말씀은 돌아가신 사랑하는 우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분의 시신을 불멸의 씨앗으로서 땅에 묻습니다. -우리의 가슴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지만 동시에 기쁨, 희망과 깊은 감사로 가득하며 이러한 느낌들은 우리 안에서 솟아 나옵니다. 지난 며칠동안 여기 베드로 광장과 주변 도로, 로마 안의 여러 곳에 모여서 침묵 중에 기도하며 모였던 그리스도 안의 형제 자매 여러분, 저는 진심으로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추기경단의 이름으로 저는 여러 나라에서 오신 국가원수, 정부수반, 사절단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저는 다른 교회와 그리스도 공동체들 또 다른 종교의 지도자들과 공식 대표들께도 감사 드립니다.


다음으로 저는 여러 대륙에서 오신 대주교,주교,사제 남녀 수도자들과 신자들께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요한 바오로 2세께서 교화의 미래요 희망이라 하신 젊은이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더 나아가 공경하올 성하의 장례미사를 TV나 라디오를 통해 듣고 있는 전 세계의 모든 이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선한 목자를 따라서..

 

나를 따르라- 젊은 학생이었던 Karol Woityla는 문학과 연극, 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화학공장에서 나치의 폭력에 위협을 받으며 일할 때 그는 주님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나를 따르라!
이 특수한 상황에서 그는 철학과 신학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Sapieha 추기경이 세운 clandestine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전쟁 후에 그는 Krakow의 Jagiellonian 대학 신학부에서 공부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사제들에게 보내는 편지와 자서전들에서 그분은 자주 당신의 사제직-1946년 11월 1일에 서품-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 글들 속에서 그분은 세 가지 주님의 말씀을 특별히 언급하면서 자신의 사제직을 풀이하십니다.

 

첫째로: “네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택한다. 그리고 나는 네게 가서 열매를 맺으라고 명한다. 그 열매는 지속될 것이다.(요한 15:16)


두 번째 말씀은:“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요한 10,11)


그리고:“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를 사랑한다;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요한 15,9)

 

이 세가지 말씀 안에서 우리는 성하의 마음과 영혼을 봅니다. 열매, 지속될 열매를 맺기위해 그분은 지치지 않고 온 세상을 다니셨습니다.“일어나, 우리 길을 가자!” 이것은 마지막 책 바로직전에 나온 책의 제목입니다. “일어나,우리 길을 가자!-이 말씀으로 그분은 열정없는 신앙에서 우리를 일으키시고 예전이나 지금이나 잠들어 있는 제자들을 일깨웁니다. ”일어나, 우리 길을 가자!“, 그분은 오늘도 이 말씀을 우리에게 계속하십니다. 성하께서는 자신의 양떼와 인류 전체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끝까지 바친 사제였습니다. 특별히 마지막 몇 달 동안 고통 중에서도 그분은 교회를 위해 매일매일 자신을 봉헌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분은 자신의 양들을 사랑한 선한 목자,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즉,“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모든 이를 만나려 노력했고, 모든 것에 마음을 열고 용서하는 힘을 가지셨던 교황님은 오늘 다시 우리에게 주님의 이 말씀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안에 머묾으로서 진정한 사랑의 덕을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잃는 것이 참으로 얻는 것

 

나를 따르라! 1958년 7월 젊은 사제 Karol Wojtyla는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그 여정 가운데 새로운 장을 시작했습니다.Karol은 평소대로 휴가를 지내러 카누를 좋아하는 젊은이들과 함께 Masuri 호수로 갔습니다. 하지만 그는 폴란드의 으뜸주교인 Wyszynski 추기경에게 연락을 달라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는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Krakow의 보좌주교로 임명이 되었습니다.


학문의 세계를 떠나고, 젊은이들과의 재미난 일들과 피조물인 인간의 신비를 오늘날의 세계에 설명하려 애쓰는 지적인 노력들을 모두 제쳐두고- 젊은 사제로서 자신의 인간적 정체성이 되었던 것들을 포기하면서, 이 모든 것은 분명 그에게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여겨졌을 것입니다.
나를 따르라 - Karol Wojtyla는 임명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교회의 부름을 그리스도의 목소리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님의 말씀이 얼마나 진실한 지를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지키려하는 이는 잃을 것이고, 자신의 생명을 잃는 자는 그것을 지킬 것이다.”(루까 17,33)

 

우리의 교황은 우리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결코 자기 자신을 위해 목숨을 지키려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그리스도와 우리 모두를 위해서 마지막 순간까지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주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어떻게 자신이 주님의 손에 드린 모든 것이 새로운 방법으로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는지를 체험하셨습니다.


언어와 시, 문학에 대한 그분의 사랑은 사목적 소명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고,  때로 그것이 모순의 표지가 될 지라도 새로운 활력과 요구, 복음강론에 대한 새로운 애정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당신은 아십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나를 따르라! 1978년 10월 추기경 Wojtyla는 다시 한번 주님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이 미사의 복음에서 전해지는 주님과 베드로와의 대화가 다시 한번 일어났습니다.:“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들을 돌보아라!”
"Karol, 너 나를 사랑하느냐?"주님의 이 질문에 Krakow의 대주교는 가슴 깊은 곳에서 대답하였습니다.:“주님 당신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당신은 아십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그리스도의 사랑은 공경하올 성하의 삶에서 주도적인 힘이었습니다. 그분이 기도하시는 모습을 본  사람은 누구나, 그분의 강론을 들어본 이는 누구나 그것을 압니다. 그리스도 안에 깊이 뿌리를 두신 덕분에, 그분은 인간적 능력을 초월하는 짐을 견뎌내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양떼, 보편교회의 목자로서의 짐을...

지금은 풍요로운 교황직의 세세한 내용을 말하는 때가 아닙니다. 저는 그분 메시지의 중요한 요소을 반영하는 오늘 전례의 두 부분을 읽고자 합니다.

제 1독서에서 사도 베드로는 -사도 베드로와 함께 교황자신이- 말하기를 “나는 진실로 하느님께서는 치우침이 없으시다는 것을 압니다. 다만 어느 나라의 누구든지 그분을 두려워하고 옳은 것을 실천하는 이는 그분께 받아 들여 집니다. 여러분은 만물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평화를 설교하시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신 메시지를 압니다.”(사도행전 10,34-36)

그리고 제 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사도 바오로와 함께 우리 교황께서는-우리에게 소리치며 권고 하십니다: “내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나의 형제 자매 여러분, 나의 기쁨과 내 왕관이여 주님 안에 이렇게 굳건히 서십시오. 내 사랑하는 이여”(필립4:1)


그리스도의 고통안으로.

 

나를 따르라! 당신의 양떼를 돌보라는 명령과 함께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에게 그가 증거자의 죽음을 맞을 것이라고 언급합니다. 사랑과 보편 목자의 명령에 대한 대화를 종합 정리하는 이 말과 함께 주님은 최후 만찬 때 오고간 또 다른 대화를 회상시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오지 못한다”. 베드로가 그분께 말했습니다. “주님, 어디로 가시렵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갈곳에 너는 지금은 따라오지 못한다; 그러나 나중에 나를 따르게 될 것이다.”(요한 13,33,36)

최후만찬으로부터 예수께서는 십자가로 가셨습니다. 부활로 향해 가셨습니다.-그분은 빠스카 신비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아직 그분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 이제- 부활 이후- 때가 되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신 “나중”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양떼를 돌보면서 베드로는 빠스카의 신비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는 십자가와 부활을 향해 갑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젊어서는 네 자신의 허리띠를 동이고 원하는 곳으로 어디든 갔었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 손을 뻗치고 누군가 다른이가 네게 허리띠를 묶고 네가 원치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요한 21,18)


교황직의 초반에는 아직 젊고 왕성했던 성하께서는 그리스도의 이끄심을 따라 세상끝까지 갔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점차점차 그리스도의 고통과의 친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점점더 그분은 말씀의 진리를 이해했습니다: “다른 어떤 이가 네 허리를 묶으리라”. 바로 이 고통 받으시는 주님과의 친교 안에서 지침없이, 새로운 정열로 그분은 복음과 끝까지 갈 사랑의 신비를 선포하셨습니다.(cf. 요한 13:1)


그분은 우리에게 빠스카의 신비를 하느님 자비로우심의 신비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당신의 마지막 저서에 이렇게 적으셨습니다: 악에게 놓여진 제한선은 “무한한 하느님의 자비이다.”(기억과 정체성, pp.60-61)

그리고 암살기도사건을 돌아보시며 말씀하시기를:“우리 모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시면서 그리스도께서는 고통에 새로운 의미주시고, 새로운 지경을 여시면서, 새로운 질서: 사랑의 질서...를 주셨습니다. 이 고통이 사랑의 불꽃으로 악을 불태워 소멸시키며, 심지어 악으로부터도 선을 크게 꽃피우는 힘을 끌어냅니다.( 같은곳., ppl.189-190)

이런 비전에 고무되어 교황은 그리스도와의 친교 안에서 고통받고 사랑하였습니다. 이것이 그분의 고통과 침묵의 메시지가 힘있고 열매가 많은 이유입니다.


하느님의 자비: 성하께서는 천주의 모친 안에서 하느님 자비의 가장 순수한 반영을 발견하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일찍 어머니를 잃은 그분은 성모님을 더욱더 사랑했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말씀을 자신에게 하는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보라 네 어머니시다”. 그리고 사랑받던 제자가 하셨듯이 그분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는 어머니를 자기 집으로 모셨다.(cf. 요한 19,27)- 온전히 당신께(Totus tuus). 그리고 그분은 어머니로부터  그리스도께 자신을 굳건히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 중에 그 누구도 지난 부활 주일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고통중에 계셨던 성하께서는 다시한번더 사도광장의 창문으로 오셔서 마지막으로 온세상(urbi et orbi)을 강복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교황께서 오늘 아버지의 집 창문에 서서 우리를 보시며 강복해 주시는 것을 확신합니다.
 
예, 성하시여 우리를 축복하소서. 우리는 당신의 영혼을 천주의 모친, 당신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의탁합니다. 매일매일 당신을 이끄셨던 그분이 이제 당신의 아들,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영광에로 당신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아멘.

 

(ⓒL'Osservatore Romano - 13 April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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