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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윤리] 몸의 신학6: 순결의 의미-----전임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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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1 ㅣ No.10690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몸의 신학] 순결의 의미
 
몸과 혼인에 대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현대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 가르침 (6)
 
이동호
 
 
시작하며
 
“베트남 여성, 절대 도망가지 않습니다.” 2007년 미국 국무부 인신매매 보고서가 매매혼의 증거로 제시한 농촌 현수막의 문구입니다. 지난 3월 20일 캄보디아 정부는 한국인 남자와의 국제결혼 금지령까지 발표했습니다. 1대 25로 맞선도 보았답니다. ‘재혼자 · 장애인 대환영’과 ‘숫처녀’도 강조됩니다. 이렇게 ‘결혼의 이름’으로 매매되는 ‘숫처녀’는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또 인간 몸의 ‘순결’은 예술과 대중매체에서 어떻게 가능한가?
 
이번 호에는 순결, 성 바오로의 가르침을 통해 몸과 마음으로 성령을 따르는 그 삶의 의미에 대해 그리고 예술과 매체에서 ‘몸의 에토스’에 대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가르침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순결’의 의미
 
교황님께서는 그리스인들과는 달리, ‘죄스러운 육(σαρχ)’과 ‘육체적인 몸(σωμα)’을 구분해 사용하는 바오로계의 언어에서 순결 개념을 찾아내십니다.
 
“내 말은 이렇습니다.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의 욕망을 채우지 않게 될 것입니다. 육이 욕망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께서 바라시는 것은 육을 거스릅니다. 이 둘은 서로 반대되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됩니다”(갈라 5,16-17).
 
교황님에 따르면, ‘육’은 ‘외적인 인간’이며 ‘내적으로 세상에 종속된 인간’인데, ‘자신이 하기를 원하는 선’을 할 수 없게 되고(로마 7,19 참조), 요한계의 언어인 ‘세상의’ 삼중적인 욕정과 연계되어 있으며, ‘욕망{음욕}을 품은 그자’(마태 5,28)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육의 인간은 성령을 따르는 삶의 행실과 비교될 때 선명해집니다. “육의 행실은 자명합니다. 그것은 곧 불륜, 더러움, 방탕, 우상숭배, 마술, 적개심, 분쟁, 시기, 격분, 이기심, 분열, 분파, 질투, 만취, 흥청대는 술판, 그 밖에 이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갈라 5,19-23).
 
‘육의 행실들’과 제례적인 불결(마태 15,2-20 참조) 그리고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데 바로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살인, 간음, 불륜, 도둑질, 거짓 증언, 중상이 나온다.”(마태 15,18-19)에 비추어보면, ‘마음’에서 나오는 ‘순결’은 단지 육체적으로 성적 경험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도덕적으로 선한 모든 것’을 말합니다. ‘불결’은 그 반대입니다.
 
 
‘순결’을 가능하게 해주는 조건으로서의 ‘자유’에 부르심
 
교황님에 따르면, 육의 행실의 결과로 나온 몸의 죄 - 죽음은 성령을 따르는 삶으로써 사라져 버리는데(로마 8,12-13 참조), 그렇게 살려주신 목적은 바로 ‘자유’입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다만 그 자유를 육을 위하는 구실로 삼지 마십시오”(갈라 5,13-14).  그리고 “이것을 꼭 알아두십시오. 불륜을 저지르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욕을 부리는 자 곧 우상숭배자는 그리스도와 하느님의 나라에게서 받을 몫이 없습니다.”(에페 5,5)에서 보면, 특히나 순결을 ‘자유롭게’ 거스른 죄인은 하느님 나라에서는 ‘제일 먼저’ 제외됩니다.
 
‘육을 위한 구실’ 곧 살림살이의 자만, 눈의 욕정, 육의 욕정을 위한 자유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신’ 목적에서 벗어난, 헛된 자유입니다.
 
 
‘순결’을 가능하게 해주는 조건으로서의 ‘절제’에 부르심
 
육의 행실들 가운데 “불륜, 더러움, 방탕”은 순결과 직접 관련이 되지만, 이어지는 “우상숭배, 마술, 적개심, 분쟁, 시기, 격분, 이기심, 분열, 분파, 질투, 만취, 흥청대는 술판, 그 밖에 이와 비슷한 것들”(갈라 5,19-21)은 사실 ‘자기-통제(enkrateia)’나 ‘절제(temperantia)’에 더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성적인 태도인 앞의 불륜, 더러움, 방탕에 대해서도 분명 자기-통제는 필요하기에, 교황님에 따르면, 순결하려면 ‘절제’도 해야 합니다.
 
 
‘순결’을 가능하게 해주는 조건으로서의 ‘거룩함’에 부르심
 
“하느님의 뜻은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곧 여러분이 불륜을 멀리하고, 저마다 자기 몸을 거룩하게 또 존중하는 마음으로 통제하는 법을 아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이교인들처럼 색욕으로 아내를 대해서는 안 됩니다.”(1테살 4,3-5)에서, 교황님은 순결의 조건으로서의 ‘거룩함’도 읽어내십니다. 사실 불륜은 거룩하지 않습니다.
 
 
‘순결’을 가능하게 해주는 조건으로서의 ‘명예’에 부르심
 
교황님께서는 순결을 ‘역량’ 곧 ‘소질’로 보시고 ‘덕’으로 간주하시며, 단순히 ‘금욕’하는 ‘부정’의 힘이 아니라 오히려 ‘존중’해 주는 ‘명예’의 역량으로 보십니다.
 
먼저, 코린토 첫째 서간(12,18.22-25)에서, 비록 이것이 유기체와 같은 교회에 관한 말씀이지만, 원죄로 말미암은 인간 몸의 ‘원초적인 부끄러움’이라는 음화(陰畵)와 성령으로 말미암은 인간 몸의 ‘원초적인 좋음’이라는 양화(陽畵)를 대비시킵니다. 곧 ‘약하다고 여겨지는 것들’, ‘덜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그리고 ‘점잖지 못한 지체들’ 그것들과 그리고, ‘더 요긴’ ‘특별히 소중히’ ‘아주 점잖게’ ‘몸에 분열이 생기지 않게’를 대비시키면서, 순결을 위한 절제가 ‘더 큰 영예를 주시는 방법’임을 읽어내십니다.
 
그리고 코린토 첫째 서간(6,15.19-20)에서, 인간 몸은 그리스도에 의해 ‘속량’되어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었으며 그래서 성령께서 거처하시게 된 ‘성전’이기에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쓰일, 절제에서 나오는 순결의 ‘긍지’를 읽어내십니다.
 
 
‘순결’을 가능하게 해주는 조건으로서의 ‘효경’에 부르심
 
교황님은 또한,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 일곱 가지 가운데,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섬기게 해주는 ‘효경(pietas)’의 선물에서도 순결의 조건을 읽어내십니다. 그 효경은 ‘처음’에 누리던 남녀의 상호 관계의 단순성과 상호적인 ‘평온한 시선’ 그리고 그것이 주는 ‘내적 기쁨’을 회복시켜주어 순결이 우리의 경험 안에서도 가능한 현실이게 해줍니다.
 
 
‘몸의 신학’과 ‘몸의 교육학’에 관련된 문헌들이 가지는 시대적인 소명
 
교황님에 따르면, 현대 인간 과학이 생리학과 생의학적인 분야에서 큰 발전을 이루어 인간 인격이 가지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유기적인 기능들을 밝혀내고 있지만, 인격의 표징이며 정신의 표현으로서 몸에 대한 인식을 발전시켜 주지는 않았기에, ‘몸의 신학’, ‘몸에 관한 교육학’이 요구됩니다. 특히, 사목헌장의 ‘혼인과 가정의 존엄성’ 부분과 “인간 생명” 회칙을 새롭게 조명해야 하는데, ‘기형적인 혼인 형태들’과 ‘이기적인 부부 사랑’(“기쁨과 희망”, 47항 참조)이 심각한 수준이며, “피임 방법 사용에 습관된 남편들이 아내를 존경할 줄 모르며, 아내의 몸과 마음의 균형을 무시하고 아내를 자기 정욕에 봉사하는 도구로 삼아버려, 아내를 존경과 사랑으로 대해야 할 동료로 생각하지 않게 되기”(“인간 생명”, 17항)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몸의 영성’으로 가득 찬 그런 교육학은 ‘혼인적인 의미’와 부부의 ‘금욕생활’도 새롭게 의미를 부여해 줄 것입니다.
 
 
예술과 매체에서의 몸의 에토스
 
마침내 교황님의 혜안은 인간 몸을 대상으로 삼는 예술과 매체의 제작-활용에서도 번뜩입니다. “욕망{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간음한 것”(마태 5,28)과 “정결덕 교육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성”(“인간 생명”, 22항)에 대한 전폭적인 동의 아래, 교황님은 발가벗은 남녀의 몸을 조각이나 회화, 발레나 연주회, 영화나 사진, 문학을 통해 모방 - 복사 - 유포시키는 가운데도 진리에 적합하고 책임있는 행동규범을 요구하십니다.
 
곧 작품의 대상이 된 인격이나 작가 자신의 인격을 ‘익명화’시키지도 ‘혼인의 의미’를 왜곡시키지도 않는, 심미적 의무와 동시에 윤리적 의무도 관여되는 그런 ‘모상의 에토스’를 작가에게 요구하십니다.
 
작가 자신이 대상을 통해 윤리적 가치를 표현해 낼 것, 그런 가치를 자신도 추구할 것, 그리고 자신의 관람자들 개인의 수치심을 넘지 말 것입니다. 동시에 관람자에게는 ‘바라봄의 에토스’가 요구되는 바, 자신의 개인적 수치심을 넘지 말 것, 작품이 표현해 내는 가치를 존중할 것, 욕망을 품지 않고 ‘평화로운 시선’을 유지할 것입니다. 이런 활동들은 사회성을 띠기 때문입니다.
 
 
마무리하며
 
우리나라 이혼율로 보면 국제결혼보다는 국내결혼에서 아홉 배나 더 많았고, ‘상업적 목적의 중개업자’ 일부만의 탓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국경과 문화를 넘어 맺어지는 혼인이기에 인류의 ‘보편 가치’가 더욱더 요구됩니다.
 
신분자격과 생활조건에서도 가장 긴요한 것은 누가 무어라 해도 ‘인격들의 친교’ 속에서 ‘온전히 자신을 선물함’으로써 달성되는 부부의 일치적인 의미와 출산적인 의미입니다. 다른 필요한 것들은 거기서 파생된 2차적인 것일 뿐입니다.
 
다음 호에는 몸의 신학에 작용하는 ‘사상적 배경’을 소개하고 ‘살아있는 이의 하느님’의 의미와 내세의 실재로서 ‘몸의 부활’의 의미를 성찰해 보고자 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동호 프란치스코 - 신부, 가톨릭 대학교 윤리신학 교수, 가톨릭교리신학원 부원장.
 
[경향잡지, 201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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