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6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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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성당은 무엇하는 곳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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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환 [chrisant.j] 쪽지 캡슐

2000-12-28 ㅣ No.16286

한통의 명성 시위는 과연 메가톤급 이슈임에 틀림이 없는가 보다.

그 진원에서 퍼지는 파장이 이제 또 다른 파도가 되어 명성의 바위를 가르며

그칠줄 모르고 포말을 흩 뿌리고 있다.

 

바위의 신음 소리에 이제는 바위의 존재 이유를 묻고자 달려 들고 있다.

나름대로의 정의(定義)의 잣대로.

 

잘못된 정의는 논리의 출발부터 잘못된터 분열을 낳을 것이고

바른 정의는 깨우침과 일치의 도구가 될 것이니

목소리를 내기전에 주님의 지혜를 청한 후에 말씀을 들려주기를 바라고 싶다.

 

오래전에 새 성전을 짓고 주교님이 하신 말씀을 되새겨 본다.

 

이 건물에 장사꾼이 모여 장사 얘기를 하면 장터에 지나지 않는 건물이 될 것이고

하느님께 기도와 예배를 드릴때 성전이라 불릴 것이다 라는 말씀을.

 

명동 성당은 무엇하러 가는 곳일까?

 

하느님께 찬미와 기도를 드리러 가는 사람에게는 주님의 성전이 될 것이고

그저 사람이나 만나러 모이는 사람에게는 사교와 데이트 장소로 될 것이고

하느님께 의탁과 보호를 청하러 오는 사람에게는 피신처가 될 것이고

시위를 목적으로 모이는 사람들에게는 한갖 시위터가 될 것이다.

 

이는 우리가 어떠한 목적과 마음으로 그 곳에 있는가를 묻고자 하는 것이다.

 

거룩한 성전(聖殿)이기에 앞서 민주화의 성지(聖地)이기를 외치는 소리에 전적으로 마음이 와 닿지 않는 까닭은 무엇때문일까?

하느님의 ’거룩한 장소’ 를 인간들의 ’거룩한 터’로 변형시킨 단어때문만은 아니다.

 

성체와 감실이  없는 교회가 더이상 가톨릭의 교회가 될 수 없듯

민주화의 성지란 말은 명동 성당에서 거룩한 미사와 기도 소리가 그치지 않을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만일 사제와 신자가,교회가 한강변으로 이주를 한다치면, 텅빈 명동 성당 터에서 사람들은 앞으로도 민주화의 성지라 여기며 계속 그 터에 남아 시위를 할 것인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거룩한 하느님의 성전이 존중되지 않은 채,보호를 청하지 않고 명동 성당에서 시위를 무단으로 할 때

이는 교회를 볼모로 집단의 이기를 추구하는 자세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오셨다고  교회를 질타하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

가난한 사람이란 어떠한 사람인가?

고통받는 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예수님의 공 생활중 첫 일성(一聲)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고 하셨으니 가난은 우리의 추구해야 할  목표이기도 하다.

또한 로마의 압정에서 해방운동을 펼치는 혁명파들과 빌라도에게 예수께서  "나의 왕국은 결코 이 세상 것이 아니다." 라고 하셨으니

또한 정치적 압제의 해방을 위해서 오신것도 아닌터 참으로 유의해서 생각해볼 일이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셨으며 용서와 사랑을 선포하러 오셨음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어느 집단의 이익 달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늘 온유하고 사랑을 베푸시는 예수님이 딱 한번 분노를 하시는 장면이 성서에 나와 있다.

성전 뜰 안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다 쫓아 내시며 말씀하시기를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리리라’ 고 했는데 너희는 이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 고 나무라셨다.

 

지금도 성전 마당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집에서.

 

보호와 장사를 구별하시는 현명함이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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