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6일 (일)
(녹) 연중 제11주일 어떤 씨앗보다도 작으나 어떤 풀보다도 커진다.

자유게시판

나는 미친듯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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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진신부 [yjinp] 쪽지 캡슐

2001-11-20 ㅣ No.26561

(연중 33주간 화요일)

 

'거기에 자캐오라는 돈 많은 세관장이 있었는데

예수가 어떤 분인지 보려고 애썼으나

키가 작아서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지나가시는 길을 앞질러 달려가서

길가에 있는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갔다.

예수께서 그 곳을 지나시다가 그를 쳐다보시며

"자캐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하고 말씀하셨다.

 

        - 오늘 복음(루가 19,2 - 5)에서

 

 

 

 

나는 미친 듯 걷고 싶다.

 

 

좌정한 다리 풀고 산책길 나섭니다

눈을 감고 천천히 걸었습니다

한 걸음, 두 걸음, 반이면 이마에 섬뜩한 철문

뒤로 돌아 한 걸음, 두 걸음, 반이면 코앞에 쇠창살

다시 한 걸음, 두 걸음, 반, 돌아서다 문득 터져나온

참을 수 없는 내 안의 부르짖음!

 

그곳에는 이슬 젖은 산책길이 있나요

 

그곳에는 저물어가는 들길이 있나요

 

시장 골목엔 손님 부르는 소리 들려오나요.

길모퉁이 술집에는 술국이 끓고 있나요

 

지금도 철롯길에는 밤 기차가 달리나요

 

강둑길에는 들꽃이 피고 아이들이 달리나요

 

거리에는 연인들이 팔짱을 끼며 걷고 있나요

 

아 나는 걷고 싶다

끝도 없이 걷고 싶다

걷다가 걷다가 지쳐 쓰러질 때까지

쓰러져 영영 잠들지라도

아 나는 미친 듯 걷고 싶다!

 

            - 박 노해

 

 

감옥 안에서의 심정을 쓴 박 노해 시인의 시를 올려봤습니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

마치 창살 없는 감옥처럼

자유도 꿈도 사랑도

나와는 무관한

생명 없는 단어로만 여겨질 때가 있지 않습니까?

 

자캐오 - 그는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식민지 시대의 세관장이란 직책이 말해주듯

민족의 녹을 빼먹고 사는 사람,

그래서 물질적으로는 부유했지만

민족의 죄인이었고

아무도 가까이 하지 않는 외로운 사람이었을 겁니다.

공동체의 무리에 함께할 수 없는

따돌림당한 사람,

그래서 늘 자신의 모습과 삶이 작게만

작게만 여겨질 수 밖에 없는 아주 작은 사람.

참된 삶이란 것에

몹시 목이 마른 사람이었을 겁니다.

 

그가 예수의 소문을 들었던 게지요.

돈과 권력으로가 아닌

사랑으로 오는 행복을 말하는 이의 소문을 말입니다.

 

사회적 직분이나 체면도 버리고

언제나처럼 홀로 떨어진 그는

나무에 오릅니다.

그 삶이 너무나 목마르고

그래서 참된 삶이 그리웠던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과 눈길이 마주칩니다.

 

 

"자캐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자캐오야,

 

이 한 마디에 그는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울리는 전율과 감동을 느꼈을 겁니다.

 

자신의 이름을,

아무도 불러주지 않던 부끄러운 이름을

그분께서 불러주셨습니다.

 

세관장이라거나 다른 호칭이 아닌

그 누구도 불러주지 않는

그의 이름, 아무도 관심 없는 한 작은 인격을

그분은 감당키 힘든 목소리와

눈빛으로 불러 주십니다. 자캐오야,

 

 

직책이나 다른 호칭 속에

바쁘고 그러나 창살없는 감옥에서처럼

수인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삶에 오셔서

오늘도 주님을 그를 부르고 계십니다.

 

자캐오, 이는

오늘 당신의 이름이 아닌가요?

 

당신의 인생이 작다고 여겨질 때

누구도 나에게 관심이 없고

부끄럽거나 귀찮게 여긴다고 여겨질 때

언젠가 꿈꾸던 그 하늘이 다시 그리워질 때

체면과 가식을 잠시 벗어버리고

나무에 오르지 않으시렵니까?

 

내 삶에 찾아오지 않을 듯 싶은

그분이 보일 때까지.

그분의 눈빛과 마주칠 때까지.

 

그리고 이제 그 기적의 주인공이

그대가 되시길 바랍니다.

 

"자캐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삽입곡 '봉헌'

 

                글곡 김 종성 신부

 

 

사람들은 우리를 바라보지만

우리들은 사랑해 그분만을

잠시 지날 세상은 좋아 보이나

우리들은 사랑해 그분만을

그러나 사랑은 촛불처럼

자기를 태우는 아픔이 있네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님을 따르며

주께 바친 내 몸을 다시 바치리

나의 몸과 맘 나의 생명을 주님을 위해서

자유의 나라 희망의 나라 지금 여기에

나 이제 돌아갑니다. 당신의 품으로.

 

 

 

 

첨부파일: 봉헌.asx(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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