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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타산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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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buyeolee0] 쪽지 캡슐

2010-09-07 ㅣ No.161774

 
합정동에 있는 우리 가톨릭 절두산성지옆에는 개신교의  외국인선교사 묘역이 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초기 개신교가 한국에 들어올때 선교사로 들어왔던 분들의 묘역이 조성되어 있고 그곳에 가보면 유명한 연세대의 언더우드가 사람들도 묻혀있습니다. 그묘역안에는 한국 기독교선교 100주년 기념교회라는 곳이 있고. 이곳 교회의 담임목사로 이재철목사라는 분이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이재철 목사라는 분은 기업체를 운영하다 뒤늦게 장신대를 졸업하고 목회를 하시는 분으로 세습이 일반화되어있는 개신교계에서 10년간 강남의 주님의 교회에서 담임목사를 하다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 화제가 되었던 분이기도합니다.
개혁적이고 참신한 목회자로 개신교내에서 잔잔한 감동과 변화를 몰고온 분으로 알고있습니다.
올린글은 2년전 국민일보에서 주최한 설교컨퍼런스에서 초청 강사로 나서서 연설했던 내용을 요약해서 퍼올렸읍니다. 글을 올리신 김동식님의 중산층화되어가고 있는 교회라는 글을 읽고 얼마전 기독교채널에서 보았던 이재철 목사의 강연내용이 떠올라 올려봅니다.타산지석으로 삼아야할 내용입니다.
 
 
(복음을 미끼로 하지마라 -한국기독교선교 100주년기념교회 이재철목사의 설교 컨퍼런스 강연내용 요약)
 
한국에서 상위 20개 대형교회 교인들 수를 합치면 150만 명 이상이다. 또 이들은 각계각층의 지도층에 포진 돼 있는 분들이며 그 분들이 이 세상에 나가 그리스도인처럼 산다면 오늘날 기독교가 개독교라고 비난 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최대 병폐로 알려진 물량주의, 세속주의, 이기주의가 언제부터 시작됐느냐. 70년대 한국 교회가 대형화를 추구하면서 대형교회가 좋은 교회인 것처럼 시작된 것이 한국 교회의 병폐가 됐다.이처럼 많은 문제의 진원지가 대형교회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교회는 교인이 줄고 대형교회는 늘어난다는 이유만으로 대형교회 강단이 건전한 것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다.

한국 교인들이 내 가정, 내 식구, 내 사업, 내 일, 자기밖에 모른다. 그래서 외국인들에게 한국 교인들이 이기적이고 독선적으로 보이는 것이다.오늘날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보다 앞장서서 사익을 추구하지만 공익은 전혀 관심이 없다. 예배당 안에서의 윤리는 강조되지만 예배당 밖에서 사회 윤리, 사회 정의에는 관심이 없다.교인들이 사회 윤리, 사회 정의에 관심을 가지면 교회는 대형화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도 바울 시대에 자기 목적에 의해 복음에 불순물을 넣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것은 더 많이 벌기 위해 포도주에 물을 넣는 것이며 사도 바울 당시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권력과 신학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복음을 미끼로 썼던 것이다. 오늘 대형교회의 설교자들을 비롯해 한국의 모든 설교자들에게 사도 바울이 똑같이 지적하고 있다.

수많은 목회자들이 적극적,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나 성공신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없는 복음을 전하고 있다.목회자들이 복음을 미끼로한 설교만을 하고있다.듣기 좋은 설교가 아니라 성도들이 들어야 할 설교를 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대형교회에서는 이런 설교를 들을 수 없다.

한국 교회 강단이 위기에 빠져있다면, 한국 교회 강단이 진정으로 회복되기를 원한다면, 사람들이 모여드는 대형교회가 좋은 설교요, 대형교회 강단은 건강한 강단이라는 그릇된 인식에서부터 벗어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설교자가 갖춰야할 것으로 설교의 명품성과 접근성이있다. 가톨릭이 급격히 성장하고 많은 개신교인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한 이유는 천주교의 명품성과 접근성에 있다“성당의 분위기, 신부와 수녀의 절제된 언행 등이 바로 그것이다. 개신교가 보여줄 수 있는 명품성이 있다면 바로 말씀 그 자체로써의 명품성이다. 설교는 설교자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자기를 헌신하고 부정하는 삶을 살 때 그 설교자가 말이 어눌해도 삶의 설교가 명품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훼손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50~60년대 한경직 목사님의 설교문을 보면 빈약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그분의 삶과 분리해서 보기 때문이다. 한경직 목사님은 하나님의 명품성을 지키기 위해 일평생 자기를 부인했던 분이었다. 그래서 50~60년대 영락교회 교인들은 그야말로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었다.

앞으로 설교자들은 이미 신뢰를 상실한 교회 용어를 제외하고 새로운 언어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용어로 이야기할 수 있을 때 사람들이 그 설교에 대한 접촉점을 찾을 수 있다..

설교는 설교자의 삶의 자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 삶의 자리에서만 들을 수 있는 하나님의 음성이 따로 있다. 가장 평범한 말을 할지라도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삶의 모습을 보여줄 때 그보다 위대한 설교자는 없다. 내가 설교하는 자리에 하나님을 의식할 때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내 야망의 미끼로 전락시키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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