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6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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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교회의 중산층화에대한 다른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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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훈 [totoro] 쪽지 캡슐

2010-09-07 ㅣ No.161783

 
올리신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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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문장이 눈에 띱니다.
 
<교회는 가난해야 합니다. 가난의 개념은 청빈을 뜻합니다. 풍요 속에서도 늘 곡간은 비어있어야 합니다.>
 
현재 제가 있는 본당에는 몇억대의 빚이 있습니다.
교우들이 합심해서 교육관을 봉헌하고, 지금도 열심히 노력하여 빚을 갚고 있습니다.
본당의 대 성전은 여전히 가건물인 상태로 남겨 두었습니다.
물론 성전을 올리는 것이 바람직하나, 아직 사용 연한이 있는 건물을 충분히 사용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빚이 있는 와중에서도 교구 방침대로 본당예산을 사용하여 가난한 사람을 돕고 있습니다.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일반화하지 말아주십시오> 이런 부분은 열심한 교우분들에게 참으로 누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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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한 개인의 교회의 재정기여도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은 저도 개인적으로는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본당마다의 사정이 분명히 있겠지요.
 
청빈은 복음 삼덕중의 하나요, 교무금 납부는 신자들의 여섯가지 의무중의 하나입니다. 개념상으로 보아 덕은 의무를 넘어 서는 것입니다. 즉, 의무를 충분히 준수한 이후에야 (추가적으로)덕으로 넘어 설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덕과 의무를 비교하는 사안은 무리가 따릅니다.
 
학생을 자애로서 교육하는 것은 선생님의 덕에 속하는 것입니다. 학생이 출석하는 것은 의무에 속합니다. 충분히 출석할 수 있는 학생의 결석에 대해 나무랐다고 해서 선생님의 덕에 문제가 있는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책임을 묻는 방식에 대해서는 선생님의 덕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공개적이라는 방식에 대해서는 선생님이 덕을 더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출석을 강조하는 선생님의 말씀이 출석할 수 없는 특수한 상황을 가진 학생들을 내쫓는 것이라고 바라보는 시각에는 충분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용돈을 삼천원 받으시는 특수한 상황에 놓인 복지시설의 어르신께서도 삼백원이라는 교무금을 내시는 분이 분명히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야기해야 하는, 형제님께서도 지적하고 있는 <하느님 앞에서의 정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본당에서는 정부의 생활보조금을 받으시는 분들이라면, 말씀만 하시면 모든 행사에 무료로 참가하실 수 있도록 배려해 드리고 있습니다. 즉, 일반화 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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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부분도 눈에 띕니다.
<신자들과 지역본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교구마다 수백억씩 들여 경쟁적으로 펼치는 대형성전이나 신학교 건축물 올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교구를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까? 분명한 예를 들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서울의 경우 백억이 넘는 본당의 공사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강남의 일부 본당은 공사비용보다 땅값이 훨씬 더 많이 들어갑니다. 우리 본당 역시 몇년전에 교육관 공사를 마쳤지만 수십억 이내였습니다. 또한 신학교 건축물을 올린다 라고 하셨는데 어느 교구가 지금 신학교에 수백억을 들여 건축을 하고 있는지 참 궁금합니다. 아울러 신학교를 통폐합 하자는 일부 과격한 주장도 가끔 보게 되는데, 전국적으로 일년에 사제가 80여명이 배출되도 상관 없다고 동의한다면 각 교구는 그렇게 할 것입니다. 서울신학교에 입학 정원이 80여명인데 교구사제로 30여분, 그리고 수도자 평신도들이 남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교구는 새사제가 배출될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지적하고 싶은 말씀은 <경쟁적으로>라는 부분입니다. 토지구매비용이 많이 들어서 수십억대의 공사는 존재해도 그것이 <경쟁>을 위한것이 아님을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아울러 회계에 있어서도 토지는 감가상각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같은 비유동자산일지라도 건물은 감가삼각의 대상입니다. 연한이 지나면 그 가치가 떨어지지만 토지는 왠만해서는 자산의 증가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그 자산들은 비유동자산입니다. 즉, 교회의 목적과 공동체를 위해서 사용되는 자산으로서 꼭 필요한 자산입니다. 즉, 자동차 회사가 순이익이 증가했으니 정당한 노동자의 몫을 더해주기 위해서 공장과 그 부속토지를 팔아서 나누라 라고 한다는 것은 대체 말의 앞뒤가 안맞는 것이겠지요. 따라서 비용문제를 굳이 지적하시겠다면 유동자산의 증가에 대해서만 말씀하는것이 형제님의 글의 취지에 부합할 것이라 생각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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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중산층화의 문제에 대한 말씀에도 한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정부발표로 2007년기준으로 중산층의 소득을 월소득 340만원 이상이라고 기준하였습니다.
근래의 일간지들은 4년제 대학 졸업자로서 향후10년간 안정된 직장생활이 보장되는 월소득 400만원 이상, 30평 이상에 살고 있으며, 2000cc이상의 자가용을 소지한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다. 교회가 중산층화 되었다? 대단히 죄송하지만 우리 본당의 대략 70%이상의 교우분들께서 30평형 미만의 아파트에 거주하고 계십니다.
형제님의 지적대로라면 각 본당에 주차된 차가 모두다 소나타급 이상의 차량이 되어야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우리 본당에 주차하는 60%의 차량은 준중형, 즉 아반떼급 이하입니다.
형제님의 글의 취지에는 동의는 할 수 있으나, 대체 그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는 도통 알 수 없고, 또한 받아들이기 힘든 기준이라고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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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한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일반화하지는 말아 주십시요.>
그리고 글에서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감성적으로 느낀바대로 기술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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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중산층화의 <과정>안에 있는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단정적으로 예시하신 바대로 교회가 중산층으로 굳어진것은 아직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중산층화의 원인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나라의 경제회복과 맞물려 있으며, 우리나라가 세계10위의 경제물동량을 지닌 국가의 위상이 일부 반영된 결과라고도 보여집니다. 교회가 중산층화 된다면, 그것 자체를 문제삼기 보다는 교회의 경제적 위상이 높아진만큼의 애긍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중산층이 아니면 교회에 참여하기 힘들다라는 일부 주장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려하고는 있으나, 그것은 개인의 감성적인 영역이지, 교회가 어떤 제한을 두고 있는 부분은 아님이 명백합니다. 또한 그 모습은 전체 교회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일부 교회 구성원들의 고정관념에 기인합니다. 즉, 형제님의 주장은 전체 교회를 대상으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눔과 공동체성을 상실한 <일부 신자들의 모임>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립니다만, 이런점을 <일반화 하지 않아 주셨으면 합니다.> 상징적으로 보자면 명동성당이 가장 으리으리합니다. 각 기둥마다 LCD티비에 좋은 시설을 구비하였습니다. 그러나 명동성당이 으리으리해서 기도할수 없고, 가난한 나는 문턱이 높아서 거기 들어가기 힘들다 라고 말하시는 분은 아직 보지 못한것 같습니다.
 
교회가 부자라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교회 구성원이 부자라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또한 교리적으로 보아 각자는 자기에게 주어진 선물로서의 부에 대해 가난한 이웃과 나누어야 할 중대한 사랑의 의무를 지닙니다.
 
교회가 중산층화 되어가는 과정에 있다면,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과 차상위계층에 대한 지원과 애긍의 의무가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무금은 바로 그런 일들을 위해서 사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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