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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그의 이름은 요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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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1 ㅣ No.10175

답글이라는 이름으로 그냥 몇 마디 하겠습니다.

왜 사람을 보고 하느님을 믿으려 하십니까?

"주님, 주님" 하더라도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하늘나라에 갈수 없다고요...
그러한 구절을 아시고 계시다면,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나는 나대로 하느님보고 신앙생활 하면 되는 문제입니다.

유다인들이 바빌론 노예살이를 한 것은 예수님 이전의 이야기였지요.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모른다고 했던 베드로와 도망쳐 버렸던 다른 제자들, 그리고 당신의 부활을 이야기했던 여자들의 말을 안 믿었던 그 제자들, 옆구리와 손에 직접 손을 넣어보지 않고는 못 믿겠다던 토마스까지, 그들을 모두 용서하셨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사랑과 용서의 종교입니다.

게다가 일베운영자의 일은 성당이 아니라 병원의 일이었지요. 병원의 의사들이 성당의 성직자만큼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어떤 요청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병원재단의 일이지요. 종교법인의 일이 아닙니다. 그들 나름대로의 방침에 대해서 신자들이 왈가왈부할 수는 있겠지만, 인사문제에 대해서 환자 입장 밖에 안되는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천주교가 더 깨끗해 보이지요.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각각의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 보면, 모두가 다 깨끗할 수는 없습니다. 아니, 깨끗하지 않은 것이 당연합니다.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깨끗하고, 그렇게 완벽한 사람이라면, 종교를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께 기도해서 무엇인가를 바랄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하느님 앞에서 부족하다는 것을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성향이나 성격, 취향 등으로 인해서 노력해도 잘 안되는 사람도 있고, 알지만 노력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아예 모르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보이는 한 시점이 아니라, 흐르는 시간 속에서 분명히 하느님의 뜻을 알아차린다면 변하고 성장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부족한 열두 명을 당신의 제자로 거두신 것이지요. 그리고 사도행전 이후를 보시면 그들은 오늘 복음에서처럼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따지던 그들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됩니다. 정말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지요. 열두 명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직접 보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그러면서 불과 삼 년 사이에 변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본 적도 없고, 부활하신 그 분을 직접 만난 적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변하고 성장하는 것은 과연 몇 년 정도, 아니 몇 십 년 정도는 걸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그런데 지금 당장 그런 모습이 없다고 해서 앞으로도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성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어떻게 단정지을 수 있습니까?

종교가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종교를 믿는 사람도 다 똑같은 사람이지만, 가르침을 듣고 알고 배우고 그러고 나서 실천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아직 가르침을 듣기만 한 사람도 있고, 알기만 한 사람도 있고, 배우긴 했는데 아직 몸이 못 따라간 사람도 부지기수로 있습니다. 또 그렇게 해서 얻어야 하는 깨달음까지 이른 사람은 더욱 적습니다. 또 하나를 깨닫고 나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지요. 더 많은 것들을 깨닫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보고서 하느님께서 얼마나 완전한 지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어차피 사람은 부족한 것 투성이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보고 하느님을 믿고자 한다면 열에 열, 백에 백, 천에 천 다 실패합니다. 사람을 보고 하느님을 믿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내가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고자 한다면 오직 하느님만 보십시오. 하느님 아버지와 아드님 예수님과 성령이신 하느님의 관계가 나를 중심으로 해서 맺어지는 인간 관계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보십시오. 그 관계가 다른 누군가를 통해서 드러나기만 바라지 말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이 다른 누군가가 하기만을 기다리지 말고, 님께서 직접 그렇게 살아보도록 노력해 보십시오. 그것이 하느님께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원하는 바입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결국은 님의 눈에 비친 누군가와 님은 똑같은 사람입니다. 그렇게 살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비난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살아가는 것이 하느님 생명 안에 살아남는 것이 되고, 그렇게 살아남는 것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내가 살지 못하면서 남을 비난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 오십보 백보입니다.

님께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삶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태클이라도 좋습니다. 하지만 저의 답변을 기대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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