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4일 (월)
(백)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그의 이름은 요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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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성체성사를 임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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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222.110.253.*]

2014-10-12 ㅣ No.10754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예와 아니오.를 잘할 수 있는 것도 하느님 은총일 것입니다. 과정에서 냉담으로 이어진 다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을 위해 봉사를 이룬다지만 자신을 위해 봉사하려다 생기는 실수일 것입니다. 필자도 귀하처럼 절두산 순교성지 제단에서 1인 미사곡 부를 때 옆 봉사자 마음에 들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더우기 양형 영성체를 모시는 과정이니 그 분심 크실줄 압니다.

 

네! 그렇게 하여주십시오. 꼭 그렇게 됨을 믿습니다.의 '아멘'이라는 뜻을 하느님 아닌 인간을 보며 냉담으로 답하는 자아를 만나기에 우리는 끊임 없이 성찰로 복기하게 됩니다. 어떻게 성 미카엘, 성 라파엘, 성 가브리엘 뿐인 세상의 모든 천사와 인간을 성체성사로 함께할 것인가? 골몰합니다. 과정에서 역시 신앙의 신비와 상상을 뛰어넘는 비 복음적 경우를 만나기도 할 것입니다.

 

필자의 경우는 하도 그런 경우를 많이 보는 촉감 빠른 유형으로서 사회악 조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머리 끝까지 나는 경우를 만나곤 하는데 그만큼 성사생활 역량 부족한 가운데 수비가 허술하고 공격성 강한 자아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여기저기 무당들이 믿는 산 할아버지가 아닌 천주님을 우선적으로 모셔야 할텐데 말이지요.

 

그 신자의 자세를 이해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침묵'도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20년 가까이 대화의 반대말을 아느냐 물었을 때 답을 말한 사람은 딱 세 사람이었습니다. 반을 맞춘 어느 신부님은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어느 자매님의 답을 컨닝하여 대답해 놓고는 하느님이 알려주셨다고 오리발을 내밀기도 하셨습니다.

 

최근 필자도 임과 비슷한 경우를 만난 사례가 있습니다. 13C 선교의 두 기둥 성 도미니꼬(관상하라! 설파하라! 묵주기도 성인)를 수호천사로 모시는 필자와 성 프란치스코를 모시는 역시 필자와 이름 같은 아무개 노친은 수십년 쉬는 교형인데 지리산 스님을 형으로 두고 있는 친구가 간경화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아 시간이 멈춰지기를 바라는 입장에서 '승천'이라는 대화명을 제거하라는 또 한 번의 비복음을 지껄인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심을 묵상합시다.에 관심 없는 노친은 그로 인하여 늑대지존으로 바꾼 창룡승천 친구에게 계속하여 말장난 위험성 모른채 그를 미리 죽여놓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인터넷 공간에도 장례문화 또한 자연스럽게 존재하는데 처음 소식을 접한 노친은 죽어 추모방을 만드는 것보다 살아있을 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알 수 없는 말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필자는 사람을 미리 죽여놓지 말자며 아무데서나 지껄이기 바쁜 그 늙은이의 자아를 일 순간 눌러 버렸으나 그도 여전히 눌릴 턱이 없었습니다. 용은 성서에서 사탄으로 비유됩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용꿈을 최상의 꿈이라고들 합니다. 결국 두 수호천사 합작으로 창룡승천을 예방하였고 또 다른 몫은 늑대지존이 마음속으로부터 선한 늑대로 돌아가 지존이신 하느님 품에 도착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우리는 법정 스님이 왜 나무 되셨고 같은 암 통고중인 이해인 수녀님이 왜 살아계신지 묵상이 필요할 것입니다.

불가의 명상은 인간적인 성모님 자비를 닮아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묵상은 또한 성부와 성모님의 모범을 돌아보게 해 주십니다. 명상과 묵상이 화해로서 만날 때 우리들의 노래는 더욱 풍요로워집니다.

 

마당 가득 지리산에서 약초를 캔 효소를 직접 담그는 누나의 집에서 병마와 싸우고 있는 지존에게는 집 앞 100m 성당으로 가서 쉬어 보라는 조언을 한 바 있습니다. 맺힌 것도 없으니 줄 것도 없다고 하기에 하느님, 부처님은 너무 받아 지겨우실텐데 헛소리 말고 늑대지존=사랑과 영혼임을 인정하느냐? 물으니 그렇다고 합니다. 엇그제는 천주님 이야기 싫다며 지랄 박아지더니 말이지요. 너의 소리는 너무 슬프고 의기소침한 상태니 아무튼 필자 또한 돈벌이 무전 여행을 떠나 당분간 만나지 못할 것이니 기도 부탁한다 하였습니다.

 

저는 그렇게 봅니다. 무 덤덤하게 성체를 영하는 것보다 죽음의 물과 생명의 피 섞이는 거양된 성체를 영하는 순간 그러한 분심 만날 수 있다는 것 또한 커다란 은총 아닐 수 없다고 말입니다. 우리가 산 할아버지에게도 쩔쩔 매며 등산 이루기도 하겠으나 신앙 자체가 하느님과 나와의 화해이니 환절기 건강 조심 자체를 임의 것으로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칠성판, 칠성사 손을 잡는 무지개, 머리에서 가슴으로 흐르는 일곱 통로, 유무상통(有無相通)으로 이어지는 살아있는 리듬감, 감성과 이성 그리고 영혼의 노래 그것은 남의 것이 아닐 것입니다.

 

대화의 반대말은 침묵이 아닌 독백인데 인간은 독백을 해석할 능력이 부족할 것입니다. 느낌과 생각 담화하는 침묵을 첫째의 대화로 바라보며 우리가 조건 없이 천주님 가르침을 최 우선으로 믿고 닮고 따라야 할 일들 차고도 넘치겠지요. 세상이 악한 만큼 성모님처럼 보다 지혜롭게 이룰 일도 적지 않아 결코 외롭지 않은 현실입니다. 그것은 사랑과 자비이신 천주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듯 우리도 천주님을 더욱 우러러 봄으로써 단 한 번 미사를 봉헌하는 것입니다.

 

꾸르실료 간사직까지 하였으나 역시 장기간 쉬는 교형인 아버지 산소 있던 곳 어떤 형님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성당을 가지 않더라도 세상에서 착하고 건강하게 베풀며 살자는 의견이었습니다. 형에겐 이런 말을 전했습니다. 평생을 착하게 살고 순교까지 한들 단 한 번 미사가 더 소중합니다. 전자는 인간적 사랑이지만 후자는 하느님 사랑이기 때문이지요.

 

이 조언들 역시 비수같은 아픔들 또한 적지않게 동반 될 것입니다. 하느님 두렵다며 장 못 담그는 예비자들 또한 수두룩 합니다. 거룩한 성체성사를 영하는 등대님 삼 덕에 감히 몇 마디 나누었습니다. 냉담자 우선 선교로 묵상 즐기시며 건승하시고 더욱 멋진 가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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