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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징크스를 믿는 것도 미신행위가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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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61.106.106.*]

2006-04-11 ㅣ No.4085

 

† 찬미예수

 

   그 감독이 하느님께 의탁하는 마음으로 얻은 면도 자제 행위라면 미신행위가 아니겠지요. 그러나 단지 승리를 위한 맹목적인 행위라면 징크스에서 헤어나오기 어렵겠지요.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장한 적그리스도는 스포츠계의 징크스도 적지않은 미끼로 활용할 것입니다.

 

일상안에서도 신심이 약한 분들이 점집을 드나들거나 주님보다 자주 자신의 안락에 치우치는 것도 같은 맥락이 되겠습니다. 요는 우리가 얼마나 매사에 찍접거릴 수 있는 악의 유혹을, 내가 미신등에 기대지 아니하고 완전한 신성이자 인성이신 그분께 보내버릴 수 있는냐가 관건일 것입니다.

 

형제님이 삼위일체 신심 다음으로 전개되는 네번째의 그것을 익명의 신자들이 경계하는 '죽을 4'자라는 숫자로도 바라볼 수 있기에 경계하는 것도 징크스, 부활, 미신등으로 삼분화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열두 제자 다음의 열세번째 숫자를 서양 사람들이 싫어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겠지요.

 

이것을 우리가 가톨릭(보편성) 교리에 입각하여 긍정적으로 바라보자면 인간은 어차피 죽기에 '무분별한 죽음'보다는 '거룩한 죽음'을 향하여 늘 깨어나 있기 위하여 그것을 경계함 일것입니다.

 

그래서 최후의 만찬을 2,000년동안 재현하고 전승하여 온 미사가 완전한 기도라 하는 것이지요.

 

'13'이라는 숫자도 같은 맥락으로 볼 때 다마스커스로 향하던 열두 사도의 이름이 아닌 교회의 지식인의 대명사인 바오로의 여정과 관련 있을 수 있기에 형제님이 또한 성 바오로의 길을 지향하는 심리적 대응이 아닐까 합니다.

 

아무튼 매우 감성적이었던 성 베드로와 매우 이성적이었던 성 바오로는 그 회두와 회심의 여정으로써 오늘날 교회의 두 기둥이기도 합니다. 공짜로 성인 반열에 오르지 않았다는 말씀이지요. 신부님의 말씀에 의하면 두분은 일상안에서 무던히도 다투었다고 하시더군요. 우리 내면에서도 성화가 되기 위한 사람일 수록 큰 싸움을 나누지요?

 

결국은 오늘날도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배우자 선교'이기에 또한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것이 '생명'이기에 내안의 감성과 이성이 성실하게 기도와 성사생활등을 통한 새 의지라는 주님의 선물을 챙겨 불굴의 의지로써 앞으로 나아가면 그만일 것입니다.

 

어둠은 빛에게 백전 백패라고 성경에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자칫 내안의 유다가 숫자 놀음에 밝기에, 또한 유다는 주님께 접근하여 주님의 권능을 이용하는 돈과 권력등의 자신의 목적을 달성코자 세상 사람들에게 좌충 우돌하던 순진 감성파 베드로와는 달리 매우 바리사이와 율법주의적인 사고속에서 사람들에게 매너있게(겸손함과는 다른) 처신하였기에 안타깝게도 악의 후예로 전락합니다.

 

따라서 형제님이 성수로 구마기도를 바친 뒤 그리스도 제대를 먼저 바라보는 미사 여정을 통하여 그 불안감을 치유받으시면 좋을듯 합니다.

 

그리함으로써 원하신다면 거룩한 죽음(4)과 '다마스커스행'에서 주님을 알현하고 발길을 돌려 '13번째 제자의 길을 걸으신 성 바오로로 거듭 날 수 있도록 마음의 평화를 구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 글은 다만 기도를 통한 사적계시(사적 계시도 궁극적으로 공적계시를 향할 수 있도록 비판을 위한 비판=비난이 아닌 우리가 더욱 배려심을 앙망해야겠지요?)일 뿐이니 너무 마음에 담지는 말아주십시오.

 

결국 인간은 포도나무이신 주님보다 잔가지인 해석에 연연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느님이 주신 가장 큰 선물 예수님, 두번째 큰 선물 성모님의 사랑을 묵상하시어 이 사순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에 말씀하시는 일곱 마디를 공부하시면 좋은 답이 나올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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