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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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이 아름다운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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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혜 [sharptjfwl] 쪽지 캡슐

2002-09-16 ㅣ No.7260

 

 

이 세상이 아름다운 까닭

 

 

우리 동그라미 회원들이 형제 잔치 장소인 어린이 대공원에 도착했을 때 하루를 형제처럼 지내야 할 ’불쌍한 아이들’은 줄을 맞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발 좀 예쁘고 똑똑한 아이였음 좋겠는데…….’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저쪽에 줄을 서 있는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뭔가 이상한데…….’

 

그 애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이상했습니다.

 

"올해는 정박아들이래. 좀 모자란 아이들이랜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지민이가 다가와 내 귓가에 속삭였습니다.

 

"또 정박아야? 작년에도 정박아였는데."

 

나는 작년 일이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입술을 내밀었습니다.

 

작년에 만난 그애는 나보다 큰 아이였는데도 말을 제대로 못 하는 바보였습니다. 배부른 것도 모르는지 내 도시락까지 해치우고서도 먹을 것이 더 없나 하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지요. 행사가 다 끝나고 나는 준비한 선물을 그 애 목에 걸어 주며 진저리를 쳤습니다. 다시 이런 일에 끼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엄마, 나 내년부턴 동그라미 활동 그만둘래요."

 

나는 집에 오자마자 폭탄 선언을 했습니다. 그 이유도 자세히 이야기했어요.

 

"다미야, 정신차려. 그런 애들을 우리 다미가 안 도와 주면 누가 도와 주니? 도덕 시험만 백점 맞으면 뭐 하니? 실기 점수가 이렇게 엉망인데."

 

나는 결국 엄마의 성화에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다시 형제 잔치에 참가한 것이지요. 그렇지만 난 정말이지 바보스럽고 더러운 애는 싫습니다. 그 애들과 춤추고, 노래하고, 점심을 같이 먹고……. 내 머리는 벌써 지끈지끈 아파옵니다.

 

드디어 형제 잔치가 시작되었습니다. 내 짝으로 지정된 아이는 어른처럼 키가 크고 뚱뚱한 아이였습니다.

 

"난 정다미야. 넌?"

 

그 애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히죽히죽 웃기 시작했습니다. 아무 소리도 않고 웃기만 했어요.

 

’올핸 벙어리인가?’

 

나는 낯을 찌푸리며 생각했습니다.

 

하늘도 내 얼굴처럼 찌푸려져 있었습니다.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았어요.

 

’차라리 비가 쏟아졌음 좋겠어. 여기서 헤어져 집에 가 버리게.’

 

그러나 비는 오지 않고 행사는 계속 진행되었습니다. 함께 노래하고 게임을 하고 춤을 가르쳐주고…. 다른 동그라미 회원들의 얼굴은 흐린 하늘과는 달리 모두 환했습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게 사람 얼굴이라는 말이 실감되는 그런 얼굴들이었지요. 그야말로 사랑하는 형제와 소풍이라도 나왔다는 표정들입니다. 영리한 여우라는 별명이 붙은 나는 웃어야 한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웃음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입을 굳게 다물고 도시락 두 개를 꺼냈습니다. 어느새 점심.

 

내 짝은 자꾸 나를 보며 히죽거렸습니다. 그럴 때마다 누런 이가 같이 웃었지요. 나는 자꾸 고개를 돌렸습니다. 입맛이 싹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멋지게 빼입은 젊은 남자와 여자가 우리 곁을 지나가며 말했습니다.

 

"자기, 참 아름다운 행사죠? 여기 온 정신박약아들은 부모들도 돌보기 힘들다고 외면한 아이들이래요. 그 동안 얼마나 외로웠겠어요. 정박아들에게 춤을 가르쳐 주려고 애쓰는 저 애들을 보고 눈물이 나오려고 했어요. 이런 착한 아이들 때문에 세상은 아름다운 거야. 그지?"

 

"그럼요. 이런 착한 아이들이 있는 한 지구는 멸망하지 않아요."

 

속상하고 짜증난 건 나뿐인 것 같았습니다. 공원의 사람들 모두 행복해 보였습니다.

 

내 짝인 바보애는 내가 준비한 도시락을 어느새 게걸스레 먹고 있었습니다. 밥을 입에 가져가는 것조차 제대로 못 하는지 자꾸 밥을 흘렸습니다.

 

"다미야, 도시락 두 개다. 하나는 새 친구 거니까 사이좋게 먹어라."

 

엄마가 하신 말이 떠올랐지만 나는 손을 털어 버렸습니다. 그 애가 흘린 밥이 자꾸 내 도시락 위로도 떨어져서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도 먹어."

 

나는 내 도시락도 밀어 주었습니다. 그 애는 미안하다는 건지 좋다는 건지 그 바보 같은 웃음을 흘리더니 다시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선물 전달 시간. 나는 손거울과 크레파스를 주었습니다. 내 짝은 손거울을 보며 다시 히죽히죽 웃기 시작했습니다.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애가 손거울을 들여다보며 히죽거릴 때였습니다.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졌습니다.

 

"오늘 행사는 여기서 모두 마치겠습니다. 빨리 선물을 전달해 주세요."

 

메가폰을 든 선생님이 여기저기에다 대고 소리치셨습니다.

 

"자, 빨리 인사하고 헤어지자. 곧 더 큰 비가 쏟아지겠어."

 

선생님이 계속 메가폰으로 소리치셨습니다. 동그라미 회원들은 정박아들에게 손을 흔들며 선생님 뒤를 따르기 시작했어요. 내 짝인 그 바보애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선생님이 이끄는 대로 팔각정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곳은 이미 비를 피하려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습니다. 나는 겨우 비집고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였습니다. 누가 내 옷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나는 돌아섰습니다.

 

"어머! 네가 웬일이니?"

 

뜻밖에도 내 짝이었던 바보 아이였습니다. 그 애는 히죽히죽 웃더니 뒤로 감추었던 손을 불쑥 내밀었습니다.

 

’아! 제비꽃.’

 

그 애의 손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제비꽃이 앙증맞게 피어 있었습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것을 받았습니다. 어디서 캤는지 뿌리는 은박지로 예쁘게 쌌습니다. 도시락을 쌌던 은박지였습니다.

 

"고마워. 제비꽃 철이 지났는데 어디에 이게 피어 있었니?"

 

나는 처음으로 그 애를 향해 웃었습니다.

 

"이것을 구하려고 네가 사라졌었구나."

 

내가 기쁨을 못 이겨 들떠 있는데 그 애가 내 손을 끌어다 자기 목을 만지게 했습니다. 그 애의 빨간 목걸이가 때묻은 채 걸려 있었습니다.

 

"아니 이 목걸이는……."

 

그것은 분명 내가 작년 형제 잔치 때 준 목걸이였습니다.

 

"그 때 그 애가 너였어?"

 

나는 말해 놓고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바보는 그 애가 아니라 나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애는 처음부터 나를 알아보았던 것예요.

 

그 애는 어른에게 인사하듯 고개를 꾸벅거리더니 밖으로 달려나가 뛰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밖에 나와 손을 흔들었습니다.

 

빗속을 향해 뛰던 그 애가 돌아서서 나를 보더니 다시 꾸벅 인사를 하듯 고개를 숙였습니다. 더 굵어진 비가 내 머리 위로 쏟아졌습니다. 나도 그 애처럼 정중하게 허리를 굽히고 인사를 했습니다. 잘 가. 정말 고마워.

 

- 송재찬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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