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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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 있는 말씀(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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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 [osspaolo] 쪽지 캡슐

2002-09-03 ㅣ No.3997

예수께서는 거기에서도 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는데

그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에

듣는 사람마다 그 가르치심에 경탄하여 마지 않았다(루가 4,32)

 

 

<권위 있는 말씀>

 

사제의 가장 큰 어려움 중의 하나는

<나누어 줄 것이 별로 없는데 어쩔 수 없이 자주 나누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러니칼 하게도 본업인 성무와 말씀을 전하는 강론이

사제들에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 되기도 한다.

시편작가의 말씀대로

주님의 말씀(법)이 입에 달아

그 말씀의 묵상이 달콤하기 짝이 없어야만 할텐데

그래야만 그 말씀이 결실을 맺어 돌아올 수 있으련만

많은 신자들이

사제들의 강론에 별로 의미를 못찾고

스님들이나 유명한 강사들을 찾아 헤메고 있는 듯이 보이니

이 모두가 사제들의 탓이 아닌가 생각되어

가슴이 아프다.

 

사실 나 또한

자주 교보문고에 들리는데

제일 손에 많이 들어오는 책들이

스님들이나 목사님들, 삶으로써 속깊은 묵상을 나누는 이들의 책들이니

내가 전해주지 못하는 그 권위있는 말씀들을

그분들은 어떻게 전해주고 있는지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증거일 게다.

 

예수님의 말씀이 권위가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그리고 권위 있는 말씀의 선포자들(스님, 목사님들, 신부님들, 수도자들, 평신도들...)이

갖고 있는 공통된 비밀은 무엇일까?

 

첫째로, 권위있는 말씀의 선포자들은 지식가들이기보다는 지혜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소위 전문가 그룹에 속하는 지식의 전달자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박사니 석사니

하는 그런 학위와는 무관한 분들이 대부분이다.

 

둘째로, 그러기에 그들의 관심사는 세상사가 아니라 진리이며 영적인 것이다.

오늘 사도 바오로가 고린토 인들에게 말하고 있듯이 인간적 지혜의 말씀이 아니라

성령의 말씀이고 영적인 것이다. 그래서 세상사에만 온갖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해되기 어려운 말씀이다. 바리사이인들이 예수를 이해할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리라.

 

셋째로, 이들은 말씀을 파는 잡상인들이 아니라 말씀을 사는 사람들이다. 삶의 체험에서

깨달은 바들을 나눌 뿐이다. 실제로 체득된 진리이기에 힘이 있다.

 

넷째로, 이들은 실제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벗이고, 아니 그들 스스로가 가난하고

소외된 삶을 영위해 나간다. 아무리 잘나가는 강론가도 인기에 맛들이고 명예와 돈에

맛들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그 권위는 사실 점점 땅에 떨어지게 된다.

 

.....

 

 

여러가지의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이 권위 있는 말씀일 수밖에 없는 데는...

그래서

이 권위 있는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서는

더욱더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고

가난하고 소박한 영혼이 되어야 한다.

내가 작게 비워져야만 성령께서 활동하신다.

그 영의 말씀이 전달될 때만 그 말씀은 비로소 권위 있는 말씀이 된다.

 

모든 사제들이

이 영의 말씀으로 살아갈 때

사제의 참된 권위는 살아나게 될 것이며

그로써 하느님의 나라는 더욱더 활기차게 선포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우리가 경축하는

대 그레고리오 교황 성하는 이러한 의미에서

진정한 권위있는 말씀의 사도요 사목자였으리라.

 

성 그레고리오,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특히 사제들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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