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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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화창한 주일 아침에, 이 어두컴컴한 골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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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5-10-16 ㅣ No.12908

10월 17일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루가 12장 13-21절


“이 어리석은 자야, 바로 오늘 밤 네 영혼이 너에게서 떠나가리라.”



<이 화창한 주일 아침에, 이 어두컴컴한 골목에서>


미사를 드리러 경당으로 향하던 길이었습니다. 수도원 경당으로 연결되는 어둡고 긴 복도에 새 한 마리가 날아들어 와서 헤매고 있더군요. 이리 저리 방향을 돌려보지만 낯설고 좁은 공간 안에서의 비행이 무척이도 힘겨워보였습니다.


자세히 바라보니 아주 작고 어린 참새였습니다. 갓 비행을 시작한 ‘초보운전자’가 분명했습니다. 좌회전을 해야 했었는데, 실수로 우회전을 했는가봅니다. 미로처럼 연결된 수도원 복도를 빠져나가기가 불가능해보였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그 ‘초보’를 잡아 밖으로 내보내주려고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러나 그때 마다 녀석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사정거리 밖으로 도망가더군요.


더욱 안타까운 마음에 저는 어린 참새를 향해 마음속으로 말을 건넸습니다.


“널 헤치려는 것이 절대 아니란다. 이 화창한 주일 아침에, 이 어두컴컴한 골목에서 무슨 고생이냐? 제발 그 자리에 가만히 있거라. 그리고 안심하거라. 널 안전하게 밖으로 데려다줄게.”


그리고는 다시 한 번 살금살금 다가갔습니다.


거짓말처럼 참새는 가만히 앉아있더군요. 혹시라도 다칠세라 살그머니 손안에 새를 넣었는데, 얼마나 작던지 제 손 안에 몸 전체가 ‘쏙’ 들어왔습니다.


너무도 궁금했던 저는 손을 조금 벌려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 부드러운 솜털하며, 가늘게 전달되어오는 새의 맥박이며, 한 생명의 신비가 생생하게 제게 전달되어 왔습니다.


참으로 귀여웠습니다. 가여웠습니다. 또한 안쓰러웠습니다. 그 어린 녀석은 잔뜩 주눅 들고 겁먹은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불쌍한 ‘초보’를 손에 쥐고 수도원 뒤뜰로 나온 저는 잔디밭에 앉아 가만히 손을 펼쳤습니다. 녀석은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분위기 파악이 잘 안 되는 듯 했습니다. 한참을 제 손위에 앉아있더니 ‘포르르’ 소리를 내며 건너편 나무로 날아갔습니다.


그 작고 어린 새를 바라보며 오늘 우리들의 모습, 특히 제 모습을 생각해봅니다. 때로 너무나 작고 어린 우리들입니다.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와르르 무너지는 나약한 우리들이지요. 때로 그 처지가 너무나 가련하고 불쌍한 우리들입니다. 기를 쓰고 안간힘을 다하지만 참담한 실패만을 거듭하는 우리들입니다. 있는 힘을 다해 발버둥 쳐 보지만 최종적으로 우리에게 남는 것은 허탈함입니다. 죽을 고생을 다하지만 결국 손에 쥔 것 하나 없이 초라한 모습으로 이 세상을 떠나갑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해주시려고, 자유를 주시려고 그토록 노력하시는데, 우리는 그 자비로운 그분의 품에 안기기보다, 그 따뜻한 손길에 우리를 맡기기보다 어떻게 하면 멀리 도망갈 수 있을까 기를 씁니다.


그 작고 어린 새를 바라보며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도 하느님께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때로 성체성사를 통해서, 때로 한 인간을 통해서, 때로 가슴 미어지는 한 사건을 통해서, 때로 견딜 수 없는 십자가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계속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분께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를 묶어두기 위해서, 우리를 잡아 새장에 가두기 위해서, 우리를 속박하기 위해서가 결코 아닐 것입니다.


우리 영혼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느님께 잡힌 우리, 하느님의 손안에 들어간 우리는 우선 조금 답답함을 느끼겠지요. 그러나 그런 순간은 잠시입니다. 우리를 당신 손아귀에 넣으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눈부시게 밝고 청명한 가을 들녘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오랜 우리 영혼의 질병을 말끔히 치유시켜 주실 것입니다. 한 평생 우리가 염원했던 바, 곧 영혼의 완전한 자유를 주실 것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은빛 영혼의 날개를 달고 힘차게 높은 하늘로 비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 네 영혼이 너를 떠나가리라. 그러니 네가 쌓아둔 것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


우리가 한 평생 기를 쓰고 쌓아올린 업적들, 재물들, 아파트 평수, 은행계좌들, 세속적인 명예, 물 좋은 자리...사실 이런 것들, 무너지기 시작하면 단 한 순간에 무너집니다.


영혼을 등한시 하는 사람들, 오로지 안테나가 세상 쪽으로만 나 있는 사람들, 끝까지 나누지 않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강경하게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위해서 재산을 모으면서도 하느님께 인색한 사람은 바로 이와 같이 될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우리를 구해주시려고, 찬란한 빛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시려고 하실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시는 사랑의 하느님 앞에 우리의 할 일은 자명합니다.


나눔입니다. 자선활동입니다. 베품입니다. 고통에 동참하는 일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는 자원봉사활동입니다. 행복한 얼굴로 고통을 견뎌내는 일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십자가를 지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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