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1일 (월)
(백)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돌아와“회개합니다.”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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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님_<내가 세상을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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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4-05-13 ㅣ No.172378

 

“그러자 제자들이 말하였다. ‘이제는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시고

 

비유는 말씀하지 않으시는군요. 저희는 스승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누가 스승님께 물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이로써 저희는 스승님께서 하느님에게서

 

나오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그러나 너희가 나를 혼자 버려두고

 

저마다 제 갈 곳으로 흩어질 때가 온다. 아니, 이미 왔다.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다.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29-33)”

 

 

 

1) 30절의 “이제 알았습니다.” 라는 말을 겉으로만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 말씀을 드디어 알아듣고 이해하고 믿게 된

 

것으로 생각하기가 쉬운데, 그것이 아니라, 제자들은 여전히

 

알아듣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알아들은 척 했거나,

 

아니면 이해했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믿습니다.” 라는 말도, 정말로 믿어서 믿음을 고백한

 

말이 아니라, 믿는다고 생각만 하는 상태에서, 또는 믿는다고

 

착각하는 상태에서, 자신들의 생각을 나타낸 말입니다.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라는 예수님 말씀은,

 

제자들의 믿음을 인정할 수 없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앞의 13장을 보면, 베드로 사도가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 라고 말하자(요한 13,37),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겠다는 말이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 13,38).

 

지금 여기서 오고가는 대화도 같은 상황입니다.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그러나 너희가 나를 혼자 버려두고

 

저마다 제 갈 곳으로 흩어질 때가 온다.” 라는 말씀은,

 

“지금 너희는 나를 믿는다고 말하지만, 수난의 시간이 되면

 

너희는 나를 버려두고 흩어질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아니, 이미 왔다.” 라는 말씀은, “이제 곧” 수난과 죽음의

 

시간이 시작된다는 것을 나타내신 말씀입니다.

 

 

 

2)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다.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 라는 말씀은, 제자들이 모두 예수님을 버려두고

 

흩어지더라도 아버지께서는 변함없이 예수님과 함께

 

계신다는 뜻이고, 당신의 수난과 죽음은 힘이 없어서 당하시는

 

일이 아니라, 당신이 스스로 목숨을 내주시는 일이라는 것을

 

나타내신 말씀입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의 눈에는 예수님이 제자들한테도 버림받고

 

하느님한테도 버림받아서 철저하게 혼자서 고독하게

 

십자가 수난을 당하시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그것이 아니고,

 

사람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뜻에 의한 일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설명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태 27,46)

 

라고 부르짖으신 일은 무엇인가?”

 

이 말씀은 시편 22편 2절인데, 시편 22편 전체를 읽어보면,

 

하느님한테 버림받은 절망을 말하는 시편이 아니라,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찬양하는 시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시편 22편 2절을 인용하신 것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을, 그리고 하느님을 원망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찬양하신 것으로 해석합니다.>

 

 

 

3)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라는 말씀에서 ‘이 말’은,

 

앞의 15장의 말씀들과 지금 16장에 있는 말씀들을 가리킵니다.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라는 말씀은,

 

두려워하거나 슬퍼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내 안에서”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부활도 말씀하셨고, 이별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것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요한 16,22).”

 

그런데 실제 상황을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들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고, 또 부활에 관한 말씀들은 잊어버렸고,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때에 큰 충격과 슬픔에 빠졌습니다.

 

<일의 결과를 알고 있더라도 그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우면

 

누구든지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4)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제자들이 겪게 될 박해를 예고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모든 고난이 끝난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신앙인들이) 걸어가야 할 십자가의 길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라는 말씀은,

 

고난을 겪더라도 흔들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내가 세상을 이겼다.” 라는 말씀은,

 

당신의 부활을 예고하신 말씀인데,

 

인류 구원 사업은 당신이 승리하는 것으로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수난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결과인

 

‘부활’을 향해서 가신 일입니다.

 

지금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미 정해져 있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향해서 나아가는 생활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무조건’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조건은 ‘믿음과 회개’입니다.

 

믿고 회개하는 것은 승리와 영광 쪽을 선택하는

 

지혜로운 일입니다.

 

반대로, 믿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것은

 

패배 쪽을 선택하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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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부활 제7주간 월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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