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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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내 마음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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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철 [hl1ye] 쪽지 캡슐

2005-11-01 ㅣ No.521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십자가를 안테나로!

  또 대구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것은 나이키 미사일의 추진체를 싣고 가던 대한통운의 한 화물차가 구마 고속도로 터널 안에서 브레이크 과열로 불이 났기 때문입니다. 터널 화재는 일반 화재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는데 이번엔 차에 미사일까지 싣고 있었다니 정말 어의가 없는 대형 사고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두고 어머니와 저의 해석이 전혀 달랐습니다. 즉 ‘6. 25 전쟁 때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수많은 영혼들을 우리가 위로하지 않아 최근에 대구 도시가스 폭발, 지하철 화재 등 끔찍한 대형 사고가 많았다’는 저의 해석과는 달리, 평소에 묵주기도를 열심히 하시는 어머니는 ‘그나마 이번에 인명 피해가 거의 없었던 것은 대구 성모당의 성모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셨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하셨습니다.


  지난 10월 30일, 독일 드레스덴시에서는 큰 경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제 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의 융단폭격으로 폐허가 된 이 성모 대성당이 전후 60여년 만에 복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1726년에 시공을 하여 1743년 건립된 드레스덴시의 성모마리아 성당은 독일 바로크 양식의 대표적 건물로 연합군의 융단 폭격으로 거의 다 파괴되었는데 그동안 시 당국은  폐허가 된 성모 대성당을 ‘전쟁의 교훈’으로 폐허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가 독일의 통일 후 다시 복구 작업에 들어갔다고 하는데 이를 다시 복원하고 건축하는 데에만 자그만치 6118일 즉 12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복구에 든 비용은 전세계의 기부금과 또 전쟁시 투하된 폭탄의 파편들을 팔아 썼다고 한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번 구마 고속도로 터널 화재에 그나마 인명피해가 없었던 것은 저희 어머님 말씀대로 ‘하느님이 보우하시고 성모님이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신 덕’이라고 생각하지만 6. 25 전쟁이 끝난 지가 50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경산 코발트 광산 지하 갱도 속에 방치되고 있는 수많은 유골들을 하루속히 수습하여 그 유족들에게 제사를 지내게 해드려야 하고 또 이번 터널 화재로 고철이 된 미사일의 추진체를 팔아서라도 그 억울한 죽음들을 위로하는 위령비나 성모동굴이나 성모성당 하나쯤은 그 광산에 건립하는 것이 그 유족들과 성모님의 눈물을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닐까요? 참고로 김태익님의 신문칼럼과 드레스텐 폭격에 관한 영화를 소개합니다. 가브리엘통신 

 

                       (드레스덴 성모 대성당)

 

                            <드레스덴 聖母 교회>


  2차 대전이 끝나가던 1945년 2월 13일 밤, 독일 작센주(州) 수도 드레스덴에 영국 전투기 773대가 무차별 폭격을 퍼부었다. 성(聖) 밸런타인 데이였던 이튿날엔 미국 공군기 527대가 나타나 폭탄 세례를 했다. ‘엘베강의 진주’라 불리던 아름다운 고도(古都)는 ‘불의 지옥’이 됐다. 모두 10만여 명이 죽었다. 대부분 여자·어린이·노인들이었다. 폭격 직후 기차를 타고 드레스덴을 지나간 17세 소년 귄터 그라스(노벨문학상 수상자)는 후에 “불에 타 눌러붙은 시체들이 쌓여있는 모습을 눈뜨고 볼 수 없었다”고 썼다.


   전세는 이미 연합군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드레스덴은 군사적 요충지도 아니었다. 연합군 폭격기들은 군사시설이나 철도·다리는 남겨둔 채 시가지 중심을 집중 공격했다. 애초부터 민간인 살육을 목적으로 한 공습이었다. 독일군의 전의(戰意)를 완전히 꺾고 전쟁 초기 독일기가 먼저 영국 도시들을 폭격해 민간인들을 죽인 데 보복하기 위해서였다.


  그 불바다 속에 성모교회(Frauenkirche) 하나만 폭격을 면했다. 독일 전역에서 신교가 세운 교회로는 가장 큰 바로크 건축의 걸작품이었다.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건물들 속에 외롭게 서 있는 성모교회를 바라보며 드레스덴 시민들은 말할 수 없는 구원을 느꼈다. 그러나 공습에 따른 진동 탓이었는지 며칠 후 이 교회마저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종전 후 동독 정부는 연합군의 ‘만행’을 증거하는 상징물로 무너진 성모교회를 수십 년 그대로 방치했다.


  드레스덴 시(市)가 성모교회를 ‘유럽 평화의 전당’으로 복원하기 위한 모금을 시작한 것은 1990년 2월 13일부터였다. 미국 영국 등 각국에서 들어온 돈이 1850억원에 달했다. 영국인들은 복원될 성모교회의 맨 위 둥근 탑에 거대한 금장 십자가를 만들어 기증하기로 했다. 높이 8m, 2t짜리 십자가를 만들겠다고 자원한 금속세공 전문가는 1945년 드레스덴 학살에 참여했던 것을 평생의 수치로 알다 죽은 영국군 폭격기 조종사의 아들이었다. 십자가는 2차대전 때 독일 공군에 의해 파괴됐던 영국 코벤트리 성당, 리버풀 성당, 런던 성바오로 대성당에 차례로 전시된 후 드레스덴으로 옮겨졌다.


  드레스덴 성모교회가 12년 복구작업 끝에 마침내 완공돼 30일 봉헌식을 가졌다. 독일 대통령과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사람들은 “유럽 심장부에 자리잡고 있던 큰 상처가 드디어 아물었다”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한때의 증오를 이렇듯 용서와 화해로 정리해 나가는 저들이 부럽다.   (김태익 / 조선일보)    

 

                      (영화 ' 내 마음의 지도' 중에서)

            

                                 영화 <내 마음의 지도>


  때는 1931년. 주인공 아빅은 북극지방 누나바크에 사는 에스키모 소년이다. 할머니와 단 둘뿐인 가계를 위해 바다표범을 잡고 놀라운 일이나 기분 좋을 때 감탄사로 ‘홀리 보이’를 외쳐대는 명랑한 소년이다. 단지 다른 에스키모 소년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백인 어머니와 북극의 고래잡이였던 아버지를 두었던 혼혈인이라는 점이라고나 할까. 그런 그의 마을에 영국의 군인 월트 러셀이 나타난다. 그는 군사적 목적을 위해 지도를 작성하는 사람이었고 아빅은 그에게 금방 호의를 갖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빅은 마을의 또래 소년들과 놀다가 갑자기 피를 토하고 쓰러진다. 그를 일으켜 세운 월트는 그가 결핵에 걸렸음을 직감하고 할머니를 설득해 아빅을 캐나다 몬트리올에 입원시킨다.  백인혼혈인 아빅은 안과 밖이 온통 백색인 병원에서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소외감을 느껴 우울증에 빠진다. 그러던 중 같은 병원에 입원한 인디언 혼혈소녀 알버틴의 노래소리에 위안을 얻고 둘은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알버틴이 백인으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원장수녀가 그들을 강제로 격리시키자 알버틴과의 이별을 가슴 아파하는 아빅은 알버틴이 수술했던 가슴 X-Ray 사진을 훔쳐 가지고 다닌다.

 10년 후, 아빅의 마을에 다시 월터가 찾아와 아빅의 인생이라는 지도를 그리기 시작한다. 월터의 길잡이가 되어 일을 하던 아빅은 라디오에서 알버틴의 노랫소리를 듣고, 월터에게 알버틴의 X-Ray 사진을 주며 자신들의 재회를 부탁한다. 백인 세계에 다녀온 뒤로 동족으로부터 따돌림을 받던 아빅은 결국 에스키모족에게서 버림받게 되고, 제2차 세계대전 중 카나다 공군에 지원 입대한다. 한편 군사용 사진 판독가로 일하는 알버틴은 아빅과 다시 만나기뻐하지만 자신은 이미 자신의 X-Ray 사진을 가지고 찾아온 월터와 결혼한 상태라 운명을 저주하게 된다. 하지만 월트의 눈을 피해 그들은 가끔씩 만나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아빅은 알버틴에게 서로 함께 살자고 부탁하나 그녀는 ‘혼혈인의 결합은 불행에 이르고 만다’며 이를 거절한다. 설상가상으로 ‘폭격 출격 30회’라는 임무를 마치고 그는 지상 근무를 하려고 하나 상관인 월트의 음모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폭격 비행을 계속하게 된다.

 

  그런데 군사도시가 아니고 유서깊은 문화 도시 중에 하나인 독일의 드레스덴시를 융단 폭격의 목표로 잡고 임무를 수행하던 어느 날, 그는 적기에 격추되어 낙하산을 이용해 조금 전에 자신이 폭격한 비극의 도시 드레스덴에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생지옥같은 그곳의 참혹한 실상을 목격하고 전쟁에 환멸을 느끼고 북극의 고향으로 돌아가 술집을 전전하며 폐인이 되어 늙는다. 그런데 아빅은 여러 차례 알버틴의 연락을 받지만 답장하지 않고 지내다가 어느 날 술집에서 알버틴이 불렀던 인디언 노래를 들게 된 그는 그 노래를 부른 소녀가 바로 아버지를 찾아 온 자신의 딸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곧 결혼한다는 그 소녀로부터 엄마인 알버틴이 아직도 자신을 사랑하고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지만 아빅은 딸을 끝내 그냥 떠나보내고 홀로 알버틴과의 행복한 환상을 지도로 그린다...


                                   <성서묵상>


  “시므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 아기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받는 표적이 되어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반대자들의 숨은 생각을 드러나게 할 것입니다." (루가 2, 34-35)


                         (마르코니 문화영성 연구소 : http://hompy.dreamwiz.com/hl1y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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