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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답글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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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13 ㅣ No.4989

두서 없는 글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정성스런 답글 올려 주신 데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 줄도 빠짐 없이 꼼꼼히 읽어보는 것으로 그 감사함에 대한 제 답을 대신할 수 밖에 없겠습니다.

 

조금 전, 같은 머릿 말로 시작된 마지막 제 답글을 삭제하고 다시 이 시간에 침대를 빠져 나와 이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정말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습니다.

 

어찌 보면, 남편의 무신론을 빌린  제 부족한 신앙심의 방황이었다고 해야 보다 솔직한 고백이 되겠지요.

 

단지, 남편을 설득해 신앙의 길로 인도할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제 자신이 남편의 생각에 이견을 달 수 있도록 신앙적으로 무장이 되어 있지 못함을 고백해야 하겠습니다.   단순한 말솜씨나 논리 싸움의 대결이었다면 부부간 다툼에서 늘 그러했듯 제가 이겼을 겁니다. 하지만...

 

귀한 시간을 내어 정성된 답글 주신 분들께 감사하면서도, 또, 긴 시간 동안 틈틈히 올렸던 조금 전 글을 다시 지울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남편과의 또 한 차례 긴 이야기 끝에...제 남편의 생각이 어떠한 부분에서 모순되었다고 지적해 주신 분들의 논리에까지도 하나 하나 아주 차분하고도 첨예하게 반박(?)할 수 있는 그의 이성에 잠도 오지 않고 두렵기까지 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신앙적 측면을 제외한, 이성과 논리 사유에 있어서만큼은, 답글 주신 분들 이상의 앎과 공부와 고민을 품었던 사람이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겠습니다.  그런 철학적 삶의 태도와 사유의 힘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제가 남편으로 받아들였기도 했지만...

 

방금 삭제했던 제 이전 답글에서 옮겨적은 남편의 논리는 의사소통 과정에서 제 나름대로 잘못 이해했던 부분이 상당했기에 의미가 없어졌고,  또,  오늘 이어진 대화에서 조금 전까지 일부분이나마 정리되었던 제 마음의 한구석이 더 큰 혼란속에 빠졌기에 그 또한 무의미하단 생각에서 그냥 둘 수가 없었습니다. 어차피 잠을 이루기는 힘든 밤...

 

저희 남편은...종교를 초월해 고대 그리이스 철학자에 가까운 세계관을 갖고 있고,  종교가 세상에 존재함이 지극히 이로울 뿐만 아니라, 유물론전 인류의 진화를 떠나서 사회의 통합적 요구에 필수불가결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단지, 그것이 살아있는 동안 개인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고 삶의 의미를 부여해주고, 이 사회의 통합에 도움을 주기에(사회의 통합적 요구에 부응한다는 것은....인류 진화에 도움을 주지 않는 열등하거나 치명적인 결함을 갖는 사람들까지도 끌어 안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되겠죠.  회사의 인사 정책에서 감원보다는 감봉이 안전한 정책으로 인식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겠죠. 그래도 속할 만한 곳이다란 위안감이 갖는 어마어마한 힘 ) 오랜 역사를 거쳐, 왕권(이데올로기)와 신권의 우위가 엎치락 뒷치락 해오다가 현재에는 서로 다투기보다는 공존하는 수준에서 타협된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일 뿐이란 거죠.

 

그렇다고 해서, 무신론자로서의 어떤 뚜렷한 삶의 목적이나 가치를 찾은 것은 아님도 인정합니다.  아직, 찾고 있는 중이라고요.  다만, 체험과 고통스러운 사유(지금 제가 하고 있는 고민들을 사춘기에 이미 거치고 무신론에 일단 안주해 사유를 쉬고 있다고 합니다.)를 통해서,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음은 분명하고...그렇다고 쉽게 답을 구할 수 없는 생의 의미에 대해서 어떤 체계화된 교과서(즉, 종교)없이 독학을 하려니 자신도 힘들고 외롭고 두렵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네요... 힘들다고 해서 아닌 걸 믿어버리는 것이 위안이나 휴식을 주지는 못하기에... 자기도 어쩔 수 없이 나약한 존재이고 그러다가 지쳐서 믿는 쪽을 택한다면...(그럴 가능성도 전혀 배제하고 있지는 않더군요)허탈마고 실패한 듯한 느낌이 들g것 같다고 합니다.

 

어차피 잠을 이루기는 다 틀린 밤이지만... 그렇다고 지금 제 속안에 있는 말들, 남편과 나누었던 얘기들을 더 이상 털어놓았다가는,  신심의 성장을 위한 이 공간에 누가 될 것 같아서 어렵더라도 글을 줄여야 할 것 같습니다. 

 

남편은 혼란스럽고 괴로와하는 저를 보면서, 그냥 믿으라고 합니다.  미약한 신앙으로나마 논리와 이성을 들이대지 않고 믿었을 때의 제 자신이 더 행복하고 평화로왔던 게 사실이라면, 진실과 진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 행복을 위해 그냥 믿음을 택하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겠냐고도요. 결국은, 그런 한계에 부딪혀, 자기보다 훨씬 잘나고 현명한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신앙인의 길을 택함을 알고 있다구요.  그런데, 그런 말이 오히려 더 저를 깊은 고민에 빠져들게 합니다. 

 

미미한 신앙, 인습적인 신앙의 끄나풀이나마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쓰고 있는 지금의 모습을 너무 두려워 했더니,  진정으로 절대자가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부여했다면, 당신의 존재를 사유할 자유도 같이 선물하셨을 거라고 위안까지 해 주네요.  

 

눈물이 나오기도 했다가, 두려워서 떨리기도 했다가 지금은 멍합니다.  모태 신앙은 아니었습니다.  저 또한 사춘기 시절에 정신적 방황을 하다가 구원처럼 만났던 신앙이었다고 생각했고, 제 선택이긴 했지만, 그 자체가 부르심이라 여겼는데... 지금에 와서 그 근본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있으니,  춥고 어두운 밤에 혼자 벼랑에 선 느낌입니다. 

 

하느님의 존재를 사유하는 것이 죄가 될지 안될지 모르지만...지금 제가 죄를 짓고 있는 거라 하더라도 이 또한 제 힘으로 어찌할 수가 없네요. 

 

죄와 악행에 대한 단죄는 둘 째 치고, 한 순간에 그 죄와 악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 철모르는 어린 목숨들 입장에서 삶이 종교가 무슨 의미를 갖겠냐는 남편의 말에... 그래도 살아서 당하는 고통이 아닌,  악인에 의한 억울한 죽음 앞에 선 그 생명이 책이나 tv 속의 누구가 아니라, 바로 내가 된다면, 과연 제가 그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찾을 수 있을런지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안되더군요. 

태어나자 마자 치명적 기형으로 죽어간 아기를 두고, 하느님이 너무 사랑하셔서 일찍 데려가셨다는 한 성직자의 표현을 두고... 무서워서 하느님 어떻게 믿겠냐던 농담조의 남편의 말이 갑자기 떠오릅니다.  무섭습니다.  사랑하셔서 어리고 무고한 생명을 거두신다고 해도 무섭고,  억울한 죽음의 순간, 순교자들의 죽음과는 또 차원이 다른, 그야말로 개죽음 앞에서 공포에 떨고 있을 순간에, 하느님은 어떠한 사랑의 모습으로 존재하시는지 무섭습니다.   미약한 신앙으로나마 붙잡지 못할 것이라면... 남편처럼 힘드나마 혼자서 삶의 의미를 찾아보겠다고 할 용기마저 없는 제 자신이 두렵습니다.

 

하느님....제가, 오늘밤 조금이나마 잠을 이룰 수 있게 해 주시고, 그 안에서 제 사유에 대한 단죄가 아닌 친절한 모습으로 잠깐만이나마 계셔주실 수는 없는지요?  그리고, 수 많은 이 순간,  현세적 불행을 넘어선 뜻모를 억울한 죽음을 당하게 될 이들에게 당신의 뜻대로 이 세상을 살다 갈 기회를 좀 더 주실 수는 없는지요? 

흔들리는 믿음으로나마 기도하고 잠을 청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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