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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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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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7-05-16 ㅣ No.112058

 

2017년 5월 16일

부활 제5주간 화요일

제1독서 사도 14,19-28

그 무렵

19 안티오키아와

이코니온에서 유다인들이

몰려와 군중을 설득하고

바오로에게 돌을 던졌다.

그리고 그가 죽은 줄로 생각하고

도시 밖으로 끌어내다 버렸다.

 20 그러나 제자들이 둘러싸자

그는 일어나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이튿날 그는 바르나바와

함께 데르베로 떠나갔다.
21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그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고

수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은 다음,

리스트라와 이코니온으로 갔다가

이어서 안티오키아로 돌아갔다.

22 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고 계속 믿음에

충실하라고 격려하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리고 교회마다 제자들을

위하여 원로들을 임명하고,

단식하며 기도한 뒤에,

그들이 믿게 된 주님께

그들을 의탁하였다.
24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피시디아를 가로질러

팜필리아에 다다라,

25 페르게에서 말씀을

전하고서 아탈리아로

내려갔다.

26 거기에서 배를 타고

안티오키아로 갔다.

바로 그곳에서 그들은

선교 활동을 위하여

하느님의 은총에

맡겨졌었는데,

이제 그들이 그 일을

완수한 것이다.
27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교회 신자들을 불러,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과 또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보고하였다.

28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오래 머물렀다.

복음 요한 14,27-31ㄱ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7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28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29 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30 나는 너희와 더 이상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다.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아무 권한도 없다.

 31 그러나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대로 내가 한다는 것을

세상이 알아야 한다.”

어떤 사회학자가 전 세계
각계각층의 남녀노소 수천 명을
인터뷰하면서 사람들에게
 “당신의 삶에서 가장 큰 만족을
 얻었을 때는 언제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여러분들도
한 번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언제 가장 큰 만족을 얻었습니까?
가장 많은 답은 ‘자기 일에
열정적으로 일했을 때’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일에 집중했을 때
가장 큰 만족과 행복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연히 얻은 행운으로는 순간적인
만족을 얻을 수 있지만 커다란
만족은 얻을 수 없습니다.
 즉, 노력이나 또 집중 없이 얻은
결과는 내 자신을 만족시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의 90%가 아주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력과 집중의 과정 안에서
겪게 되는 고통과 시련이
의미 없고 피해야 할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고통과 시련이
제발 없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이 아닐까요? 
힘들게 산 밑에서부터
산 정상까지 오른 사람과
케이블카를 타고서 정상에
쉽게 오른 사람을 비교해보십시오.
누가 더 만족도가 클까요?
똑같이 산 정상에 올랐다고
 말할 수 있지만, 힘들게 산 정상에
오른 사람의 만족도가 더 큰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문제는 세상 일이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고 너무나도
불공평하다고 느낀다는 것입니다.
불평불만이 가득해지는 등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나의 노력과 집중이 모두
의미 없다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그러나 정말로 의미 없는 것이고,
쓸모없는 행동이었을까요?
세상에 기준을 맞추다보면
이러한 생각들로 인해서 더욱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러한 우리들에게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같지 않다면서
분명한 차별성을 이야기하시지요.
세상이 주는 평화는 순간의 만족과
나만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는데
집중을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영원한 만족과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랑의
삶에 집중을 할 수 있게 합니다.
이제부터는 어떠한 일이든
그 자리에
주님을 초대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래야 세상의 기준을 떠나 주님의
기준에 맞춰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더불어서 나의 노력과 집중이
어떠한 순간에도 의미 없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 안에서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행복을 발견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절실히 소중한 일도
하늘의 큰 눈으로 보면 사소할 뿐,
욕심으로 자연을 바라볼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이철수)
주님 안에서만 진정한 평화를 누립니다.
"길일은 바로 오늘"
(‘좋은생각’ 중에서)
옛 북인도에
다사라타 왕이 살았다.
그는 용맹한 전사였으나
왕위를 계승할
자녀가 없었다.
그래서 신에게 간청해
세 왕비에게서
네 아들을 낳았다.
세월이 흘러 그는 장남인
라마 왕자를
후계자로 정했다.
그는 현자에게 물었다
.
“좋은 날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소.
길일을 알려 주시오.”
그러자 현자가 말했다.
“중요한 일에는
 길일이 따로 없습니다.
바로 오늘 하십시오.
왕자가 왕관을 쓰는 그날이
가장 좋은 날입니다.”
“그대의 말이 옳소.
하지만 성대한 즉위식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오.”
“내일 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길일은 지금입니다.”
고민하던 왕이 답했다.
“그렇다면 하루만
시간을 주시오.
내일 거행하겠소.”
왕은 하루 동안 거리를
아름답게 꾸미고
이웃 나라 왕을 초청했다.
그런데 그날 밤,
질투심에 휩싸인 셋째 왕비가
그에게 말했다.
“결혼할 때 제 소원 두 가지를
들어준다고 약속하셨죠.
제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라마 왕자는
밀림으로 추방해 주세요.”
왕은 현자의 말을
듣지 않은 걸 후회했지만
왕비와의 약속을
어길 수 없었다.
라마 왕자가 쫓겨난 후,
왕은 죄책감에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왕자는 세상을 떠돌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러다 14년 만에 고향에
돌아와 왕위에 올랐다.
하루를 미루었던 길일이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되돌아온 것이다.
우리들은 이처럼
계속해서 뒤로 미룹니다.
그러나 뒤로 미룰수록
후회는 더욱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후회를 만들지 않는 삶이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어줍니다.
지금 당장, 바로 이 순간에
해야 할 일을
 절대로 미루지 마십시오.
지금 해야 할 일을 해야 하지만,
그래도 여유는 잃지 마세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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