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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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제 6, 9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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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1 ㅣ No.10099

제6계명 ; 간음하지 마라.

제9계명 ;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

 

하느님은 사람을 천사보다 좀 못하게 동물보다는 훨씬 낫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니 사람에게 육신생활의 원동력인 성욕(性慾)과 식욕(食慾)이라는 동물적인 본능을 주셨고, 지성(知性)이라는 천사적인 본성을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천사의 특성과 동물의 특성을 동시에 갖추어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사람을 이성적인 동물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동물적인 본능을 타고 태어난 것은 육신생활을 존속시키는 촉진제의 역할을 하기 위함이고, 천사적인 이성을 타고 태어난 것은 본능에만 기울어 동물에 머물지 말고 이성으로 조절하여 사람다운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며 더 나아가서는 하느님과 닮은 영성생활로 사람의 품위를 더 높이기 위함입니다.

 

프로이드는 사람들이 평소 생각하는 것 중의 90%가 성(性, sex)에 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이론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별개로 치더라도 성(性)은 우리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 중에 과연 그 누구도 性에서 오는 윤리적 타락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정답은 그런 사람은 없다는 것이 맞습니다.

 

다윗, 솔로몬, 야곱, 삼손 등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 대다수가 성적 타락을 맛본 사람들입니다. 누구나 주어진 상황과 조건에 따라서 원초적이고 충동적인 본능이 솟구쳐 나오면 윤리적으로 넘어지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 6계명은 지키기 힘든 계명일지도 모릅니다.

 

성적인 유혹이나 성적인 충동을 미리 예상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적인 유혹은 갑자기 우리를 덮치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바쎄바를 향한 욕정을 참지 못한 것은 미리 계획해서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저녁나절 궁전 옥상을 거닐다가 목욕하는 바쎄바를 보고 나서 갑자기 유혹이 밀려 온 것입니다. 성적인 유혹을 극복하기 어려운 것은 그것이 본능적 욕구를 건드리기에 그렇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본능적 욕구는 일단 일어나면 그것이 채워지기 전에는 좀체 꺼지지 않는 특성이 있다고 합니다. 본능적 욕구는 부끄러움도 위험에 대한 경계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직 채우려는 욕심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욕망이 채워진 다음에야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게 되고 안전에 대해 생각하고 부끄러워하게 됩니다. 마치 목이 마르면 물을 먹어야만 갈증에 대한 욕구가 사라지듯이 성욕도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적인 유혹은 극복하기에는 힘겹고 어려운 유혹이지만 그 유혹을 따라가느냐 아니면 물리치느냐 하는 선택은 여전히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켜야 할 계명인 것입니다.

 

성적인 욕구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순결의 사나이라고 말하는 창세기 39장에 나오는 구약의 성조 ‘요셉’의 경우를 봅시다. 이집트 경비대장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향하여 성적 욕망을 느끼면서 팔을 붙잡으면서까지 관계를 맺자고 유혹해올 때, 요셉의 첫 번째 응답은 ‘싫습니다.’였습니다. 그의 두 번째 행동은 겉옷을 붙잡으며 유혹하는 여자의 손에 겉옷을 벗어 내맡겨버리고(창세기 39,12-13) 도망치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최선의 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유혹을 받는 것은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유혹이란 본능적인 욕구가 건드려지면 언제든지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밀려온 유혹에 굴복하여 죄를 짓게 될 때 잘못이 저질러지는 것입니다. 유혹 앞에서 ‘싫습니다.’라고 하면서 등을 보이고 도망치지 못하면 그 책임은 유혹하는 사람의 책임이 아니라, 바로 나의 책임이 되는 것입니다.

 

성욕이라는 본능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이끌리도록 하느님이 주신 접착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욕은 부부관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교회의 권장사항이며 이는 윤리의 문제로 사회에서도 부부관계 밖에서의 성행위는 비윤리적인 일로 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6계명은 남녀간의 성적관계를 규정하는 계명으로서 상호간의 정조(貞操)를 보호하는 계명에 대한 것입니다. 동성애, 혼외정사를 간음이라 규정하고 행동을 금지하는 계명입니다.

 

제9계명은 제6계명의 바탕이 되는 ‘마음’까지도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과거에 행한 잘못된 행동을 즐겁게 회상하는 것까지도 금지하는 계명입니다. 간음죄를 범했을 때는 당연히 고해성사를 받아야 하는데 다만 진실 되게 고백해야 합니다. 죄의 횟수와 간음한 상대방의 기혼 미혼 여부까지도 상세히 밝혀야 합니다. 그래야만 고해 신부가 죄의 종류를 판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자신과 하느님께 약속하는 일입니다.

 

웃지 못 할 일화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어떤 중년의 남자가 어쩌다가 간음을 하고서 고민을 하게 됩니다. 고해성사를 보아야 하는데 용기가 나질 않는 겁니다. 아무리 고해소에 칸막이가 되어 얼굴이 안 보인다고 하지만 사제 앞에서 자신의 입으로 간음했던 사실을 고백한다는 게 영 창피하고 면목이 없었던 거지요. 그러나 신자로서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기에 고해소에 들어가 사제에게 죄를 고백합니다. “저....제가.... 십계명에.... 여...여섯 번째 계명을 어겼습니다....”

 

신부님은 가만히 듣자니 괘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창피하면 간음을 하지 말던가 했으면 구체적으로 고백을 해야지 6계명이 뭐람? 신부님은 시침을 딱 떼고 고해자에게 묻습니다. “6계명이 무엇이지요? 갑자기 제가 생각이 안 나서요..” 드디어 올 게 왔습니다. 깐에는 꾀를 내 보았지만 결국 자기 입으로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그러니까...'가...가..간음하지 마라'...입니다.” 신부님은 바로 이것을 노리신 거겠지요. 아무리 죽을죄를 지었어도 자신의 입으로 구체적으로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고백소를 나오면서 중얼거렸지요.

 

“내가 또다시 간음하면 성을 간다.”

◆ 십계명을 통한 양심성찰

 

제6계명 ; 간음하지 마라. 제9계명 ;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

- 음담패설을 자주 하거나 즐겨 들은 적은 없으며 음란비디오나 사진, 서적 등을 즐겨한 적은 없었는가?

- 결혼한 몸으로 다른 미혼자나 기혼자와의 사이에서 지나친 행위를 하거나 마음으로 간음한 적은 없었는가?

- 퇴폐업소에 즐겨 다니거나 건전치 못한 장소를 즐겨 찾은 적은 없었는가?

- 혼자나 또는 타인과 부정한 행위(邪淫)을 하려고 행동으로 원하였던지 아니면 유혹 하려 고 한 적은 없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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