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찾아지는 것과 주어지는 것들이 있다. 사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인간이 찾아내고 깨닫게 된 것이 과연 얼마나 될까? 창조주이시며 지혜이신 하느님 앞에서야 제아무리 대단한 진리라 하여도 한낱 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창조적 깨달음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며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리라! 겸손하게 자기중심적이며 교만한 생각을 버리고 진리의 영께서 친히 이끌어주시는 깨달음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완전한 진리는 계시 자체이며 진리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주어진다. 이런 완전하고 통합적이며 총체적인 진리에 이르기 위해서는 믿음과 사랑이 절대적인 요건이다.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참다운 진리가 무엇인지, 참 삶이 무엇인지, 참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우쳐 주신다. 따라서 참 인간됨의 길, 참 신앙의 길은 성령 안에서 끊임없이 그리스도와 동화되려는 노력이 있을 때 가능해진다.
보호자 성령께서는 세상 사람들에게 심판을 확신시켜 준다.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고 악행을 할 때 두려움에 쫓기고 불안해하며 두려워하는 것은 성령께서 모든 이의 마음에 심판을 선고하시기 때문이다. 또한 성령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을 통하여 우리가 죄를 용서받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죄로부터의 해방과 자유, 평화가 주어짐을 깨닫게 해주신다.
진리의 영께서는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한 말씀을 모두 되새기도록 해주신다(14,25-26). 뿐만 아니라 죄를 깨닫게 해주고 의로움에 대한 확신을 가져다주신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했으나, 백인대장과 예수님을 지키고 있던 이들은 “참으로 이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마태 27,54) 하고 깨닫게 된다. 사도 바오로는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알아보게 된다(사도 9,1-9). 이 모두가 성령의 작용이었다. 따라서 성령의 활동 안에 머물지 않고서는 하느님의 진리와 생명에 참여할 수 없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를 보여주시고 하느님의 자비를 건네주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한꺼번에 하느님의 진리를 다 파악할 능력이 없었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제자들에게 주실 수는 없었고, 다음으로 성령께서 가르쳐주실 것이라고 하신다. 하느님의 복음적인 계시는 예수님을 통하여 이 세상에 왔으나, 그분의 죽으심으로 끝난 것이 아니고, 그분의 부활하심으로 살아계셔서 항상 진리를 계시하시는 것이다.
또한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계시는, 영적인 진리뿐 아니라, 과학과 학문 예술 등 모든 진리에 대해서 밝혀주신다. 신학자와 설교자들만이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 새로운 진리를 알아듣고 밝히는 것은 아니다. 헨델은 그의 작품, ‘메시아’ 중의 알렐루야 코러스를 어떻게 작곡했느냐고 묻자, “하늘이 열리고, 희고도 장엄하신 하느님께서 그 어좌에 앉아계시는 것을 보았다”고 답변하였다. 한 물리학자는 자연 안에 숨어 있는 물리학의 원리를 발견하는 신비로움 속에서 절대자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고백하였다.
때때로 사람들은 어떤 생각에 몰두하면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한계점에 부딪친다. 바로 그 순간, 그 문제의 해답이 주어지는 것을 체험한다. 인간의 사고가 한계점에 도달했을 때 지혜 자체이신 하느님의 은혜가 들어온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영적인 것을 포함한 인간의 모든 분야에서 모든 진리를 점차적으로 밝혀주시고 함께해 주신다. 우리도 주님께 기도하자! 주님, 저에게 당신의 진리를 풍부히 드러내시어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좋은 도구가 되게 해주시고, 당신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게 해주소서.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