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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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냇짓 한번 보여주지 못한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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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탁 [daegun011] 쪽지 캡슐

2001-06-09 ㅣ No.3696

      배냇짓 한번 보여주지 못한채

 

내가 자란 동네에 있는 우리 밭 위에는 돌무더기가 많이 있었다.

옛날에 홍역 등의 질병으로 아기들이 많이 죽었는데 그 아기들을 그곳에 묻었단다.

그곳에 묻힌 아기들이 가엾이도 했지만, 한편으론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묻힌 아기들은 자신들이 묻혀진 곳이나마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들과 달리 비밀리에 흔적도 없이 묻힌 아기들도 많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태어나자마자 엎어서 혹은 이불에 싸여서 숨이 끊긴 여자 아기들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 비밀리에 묻혀졌다고 했다.  

 

줄줄이 네 명의 딸을 낳은 여자가 다섯째도 딸을 낳자 아이의 숨을 끊어버렸다는 얘기를 들은 것도 썩 오래 전 얘기가 아니다.

병에 걸려 죽게 된 아기들은 부모의 애끓는 마음이라도 받아봤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여자 아기들은 마음껏 울어보지도 못한 채 죽음을 당해야 했다. 그것도 자신을 존재케 한 부모의 손에...  

 

고추를 달지 못한 아기는 뱃속에서 방긋거리며 열심히 연습한 배냇짓을 한번도 보여주지 못한 채 그부모의 손에 죽어야 했다.

지금도 그런 일은 많단다.

양심의 가책은 덜 느끼면서 일찌감치 병원에서 성별을 확인해 여자 아이면 지운다.

 

나는 둘째까지 딸을 낳고, 딸 둘로 만족하고 있었는데 남편은 계속 아들을 갖고 싶어했다. 남편은 두 딸을 좋아하면서도 친정 어머니나 시부모님이 아이를 하나 더 낳으라고 말할 때면, 딱 잘라 싫다고 말하는 나와 달리 아무 말도 없었다. 나는 습관성 유산 때문에 아이를 무척 힘들게 가졌고, 낳기가지도 또 힘들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시달려 우울증에 걸리기도 했다.

 

결국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하나만 더 낳아주자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다시 유산과 힘든 임신 기간을 거쳐 다행히도 아들을 낳게 되었는데, 아들을 낳자 남편은 너무 좋아서 입을 다물지도 못했다.

나는 그렇게 표시내어 좋아하는 남편이 얼마나 야속했는지 모른다.

 

내가 셋째 아이를 낳게 되기까지 겪어야 했던 정신적인 고통과 육체적인 고통이 어떠했는지 그는 모르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직접 고통을 경험하게 되자 정말 많은 여자들이 똑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항상 있었던 일들이 그제야 내 눈에 띄었던 것이다.

지난해 추석에 친척집에 다니러 가는데 시어머니께서 그 집 부엌일을 많이 도와주라고 당부를 하셨다.

새삼스런 시어머니의 당부가 이상해, 물었더니 맏며느리가 셋째 아이를 유산시킨 지 며칠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 며느리는 종갓집 맏며느리였는데 딸만 둘을 두고 있었다.

아들이 없는 것에 대해 남편이나 시부모님은 물론 찾아오는 친척마다 한탄을 했단다.

주위에서 몰아세우자 며느리는 어쩔 수 없이 셋째를 가졌으나 성감별 결과 딸이라는 말에 유산을 시켰다고 한다.

그런데 그 집안의 누구도 그 일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 같은 것도 없었다. 핼쑥해진 얼굴의 며느리가 되레 미안해 하는 것 같았다.

잘못이라면 자신의 몸을 빌려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일 텐데 그렇게 자신의 몸을 희생하면서도 왜 미안해 해야하는 것인지 되레 내가 화가 났다.

 

그런 출산에서 희생당하는 것은 언제나 여자이다.

묻힌 자리조차 찾을 수 없는 아기들은 모두 여자였다.

그 아기들은 낳기까지 고통을 겪어야 했던 것도 여자였다.

딸을 낳는다는 것은 말로 표현하기 부족할 만큼의 기쁨이다.

자신의 몸이 키워낸 생명을 안는 순간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아이를 낳아보지 않고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순간은 신성한 기쁨이 있어야 한다.

세상이 얼마나 변해야 여자들이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는 일이 없어질까?

 

 

 

                  부평에 살고 계시는 김명옥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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