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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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불이의 비행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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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6-09-24 ㅣ No.20821

9월 24일 연중 제25주일-마르코 9장 30-37절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반디불이의 비행을 따라>


며칠 전, 시골에서 겪은 일입니다.


어둠이 짙게 깔린 저녁 무렵, 형제들과 함께 산길을 따라 걸으며 묵주기도를 드릴 때였습니다.


인기척 때문이었는지, 순식간에 무수한 반디불이들이 그 신비스런 빛을 내며 수풀 여기저기서 날아오르는 것이었습니다.


다들 일제히 탄성을 올렸습니다. 영화 ‘클래식’에 나오는 장면 ‘저리 가라’였습니다.


반디불이의 비행을 따라 어느새 제 마음은 어린 시절 저 깊은 추억의 골짜기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반디불이’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아니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참으로 신기한 곤충입니다. 꽁무니에서 빛을 내는 곤충으로 개똥벌레라고도 하지요.


저희 꼬맹이들, 여름이 오면 밤에도 나가서 놀았습니다. 수풀이 우거진 야산이나 개울로 내려가면 반디불이 몇 마리를 잡는 것은 일도 아니었습니다. 두 손 안에 녀석들 몇 마리 가둬놓으면 일순간에 손 안이 환해졌습니다.


수없이 많은 반디불이들의 비행을 바라보며 이젠 너무 멀어 가물거리는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정말 그립더군요. 너무나도 돌아가고 싶은 그 시절, 그 산천, 그 별똥별, 그 반디불이들, 그 아이들...


그러고 보니 반디불이라는 곤충, 참으로 고마운 녀석입니다. 이렇게 순식간에 우리를 유년시절의 추억으로 되돌려주니 말입니다.


제 어린 시절, 멀찌감치 서서 돌아다보니 참으로 행복했던 나날들이었습니다. 없이 살았어도, 가진 바가 없었어도 정녕 가슴 두근거리며 살았습니다. 모든 것이 신기했습니다. 매일 매일이 경이로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아무것도 없이 살면서도 그렇게 행복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사심(私心)이 없었기 때문이었겠지요. 불순한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었겠지요. 결국 순수했기 때문이었겠지요. 동심(童心) 때문이었겠지요. 부모님이란 든든한 ‘빽’에게 모든 것을 다 맡겼기 때문이었겠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드러내놓고 다투는 제자들의 눈앞에 어린이 한 명을 세우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결국 예수님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인다는 결론이군요.


그렇다면 과연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아마도 동심을 회복하는 일이 아닐까요? 영혼의 순수성을 회복하는 일이 아닐까요? 우리가 끼고 있는 색안경(세속의 때가 잔뜩 묻은)을 벗어버리는 일이 아닐까요? 알량한 자존심을 던져버리는 일이 아닐까요? 우리 내면에 가득 자리한 야욕과 사심(私心)을 버리는 일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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