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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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한 꽃향기 같으신 분, 성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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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6-10-21 ㅣ No.21647

10월 21일 연중 제28주간 토요일-루카 12장 8-12절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주실 것이다.”



<은은한 꽃향기 같으신 분, 성령>


‘젊은 시절, 꼭 한번 이루어야 할 것이 지리산 종주’라며 젊은 형제들을 살살 ’꼬셔’ 조금은 무리한 산행을 다녀왔습니다.


제 젊은 시절의 여러 추억들이 긷든 지리산 자락 이곳 저 곳을 다시 밟으니 감회가 새롭더군요. 이름만 들어도 정겹고 마음이 훈훈해오는 노고단, 토끼봉, 연하천산장, 벽소령대피소, 세석평전, 장터목산장, 그리고 천왕봉.


거기까지는 좋았습니다만, 천왕봉에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나이를 생각했어야 했는데...갑자기 왼쪽 다리에 쥐가 나는가 하면, 관절부위에 심각한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내려갈 길은 까마득하고, 하산 시간은 빠듯하고, 우선 걱정스런 눈길로 바라보는 형제들을 먼저 내려 보냈습니다. 그러나 상황을 심각했습니다. 깎아 지르는 절벽 길을 계속 내려 가야하는데, 통증은 점점 심해오고, 스프레이를 뿌린다, 파스를 붙인다, 마사지를 해본다, 별짓을 다했지만 완화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몇 백 미터 내려와 보니 상황의 심각성을 더 잘 알 수 있었습니다. 하산(下山)이 전혀 진척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고, 겁도 나기 시작했습니다.


최후의 수단으로 제가 무엇을 했는지 아십니까?


평소 부탁하는 분들에게도 ‘저는 별로 효과 없다’며 마다했던 안수기도를 했습니다. 주모경도 바치고, 성령송가도 바치고, 그리고 정성껏, 간절한 마음으로 제가 제 무릎에 안수를 했습니다. 웃기지요? 상황이 워낙 다급하다보니.


결과가 어땠는지 아십니까? 제가 기대했던 대로 통증이 완화되거나 씻은 듯이 낫기는커녕 통증이 더 심해졌습니다.


그러나 안수기도 하는 동안 놀라운 일이 한 가지 생겼습니다. 쥐가 나고, 통증도 심각하고, 기진맥진한 상태인데다가 마음이 몹시 불안해져 있었는데, 무엇보다도 먼저 마음이 차분해졌습니다. 그리고 ‘이까짓 것 별 것도 아니야’ 하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러는 순간 성령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기도만 할 게 아니라 네가 스스로 노력도 해야지!”


마음이 안정되다보니 요령도 생기더군요. 아픈 다리에 최대한 무게가 실리지 않게 뒤로 돌아서 게걸음으로 내려오니 훨씬 진도가 잘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가끔 쉬어가며 마사지도 해주고, 다리를 쭉 뻗는 스트레칭도 해주니 그런대로 내려올 만 했습니다. 평탄한 오솔길로 접어드니 신기하게도 그렇게 극심했던 통증도 씻은 듯이 사라졌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존재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당신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용서받을 것이나 하느님 아버지께서 보내주실 협조자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박해를 받을 때, 고초를 겪을 때, 한계 앞에 부딪혔을 때,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께서 끝까지 함께 하실 것이고, 성령께서 알아서 다 알려주실 것이고, 성령께서 결국 우리를 아버지 품으로 인도하실 것임을 강조하십니다.


성령께서는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우리의 나날을 스쳐지나가는 미풍과도 같으신 분, 은은한 꽃향기 같으신 분, 가장 중요하지만 우리가 제대로 의식하지 못하는 공기, 물, 산소 같으신 분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성령께서 우리 곁에 늘 현존하시면서 우리를 바라보시는데, 우리를 지켜주시는데, 우리는 너무 많은 걱정 속에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한 작은 생명으로 빛을 본 순간에서부터 세례성사나 견진성사, 성체성사 등 다양한 성사 때마다 우리 인생 안에 현존하셨던 당신의 존재를 환기시키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주지 못할 마음의 평화를 선물로 주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갖은 세파와 인생의 고초 앞에서도 다시금 힘을 내고 살아갈 용기와 위로를 주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오늘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성령의 존재에 우리의 의식을 집중하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 일상의 다양한 순간 안에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진리와 사랑에로, 자비로우신 아버지의 품으로 인도하시는 성령께 우리의 존재 전체를 맡겨드렸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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