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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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4 수/ 사랑으로 완성하는 율법 - 기 프란치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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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숙 [20sook] 쪽지 캡슐

2017-06-13 ㅣ No.112589




   연중 10주 수, 마태 5,17-19(17.6.14)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



 


Teaching about the law





 

사랑으로 완성하는 율법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 이 말씀에 유다인들은 심한 반감을 느끼고 분노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하늘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를 고쳐주며 마귀를 쫓아냈기 때문입니다. 또 율법을 거슬러 죄인들이나 세리들과 어울렸기 때문이지요. 그들이 보기에 율법 어기기를 밥 먹듯이 하신 그분께서 율법을 완성한다는 것을 수긍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율법은 개별적인 율법 조항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모세오경을 일컬었습니다. 율법은 영원히 존재하는 하느님의 법이요 뜻입니다. 따라서 폐기될 수 없는 것이지요. "율법과 예언서들을 완성하러 왔다.”(5,17)는 말씀은 구약성경의 말씀을 성취하신다는 것이며, 하느님의 뜻을 인간에게 올바르게 전달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율법은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의 법입니다. 그것은 인간을 위한 생명의 법입니다. 율법의 근본정신은 사랑이요, 인간을 살리는 생명과 의로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시대의 율법은 이런 근본정신에서 벗어나 사람들을 구속하는 장치로 왜곡 적용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 본래의 정신과 목적을 상실한 채, 오히려 인간을 구속하는 형식적인 율법을 거부하셨습니다. 복음서의 안식일 논쟁에서 보여주신 예수님의 태도는 바로 율법을 본래의 정신으로 되돌리려는 사랑의 투쟁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율법을 완성하시려는 처절한 창조의 몸부림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율법을 완성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거짓과 불의와 탐욕을 거슬러 왜곡된 율법의 근본정신을 되돌려놓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사랑이 율법의 완성임”(로마 13,10)을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보여주셨습니다. 말씀과 행동으로 하느님의 뜻에 순응함으로써 율법을 완성하셨지요. 유대교의 세분화된 율법규정들을 원수사랑(5,43-48), 황금률(7,12),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22,37-40)으로 환원시켜 단순화시켜, 사랑으로 완성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율법을 완성하는 사람들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러려면 율법을 중심에 두고 그것으로 인간을 구속하려는 어떤 시도에도 맞서야 합니다. 인간을 중심에 두고 하느님의 사랑으로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 율법의 완성입니다. 인간을 도구화 하고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 그 어떤 신앙행위도 거짓이지 않습니까!

바오로 사도는 율법을 완성하는 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모든 계명들은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로마 13,8-10)

이웃을 위해 사랑으로 자기 목숨까지도 내어주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분과 함께 사는 것이 율법 완성의 길임을 명심해야겠습니다(갈라 2,20). 고통과 시련과 박해를 겪는 '지금, 여기서' 주님을 믿고 사랑으로 견뎌내는 그 사람이 율법을 완성하는 사람입니다. 바리사이의 의보다 더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율법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 자신을 율법 아래 두지 않고(갈라 5,18),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이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지요.

우리 모두 사랑으로 인간을 살리고, 사랑으로 고통을 견뎌냄으로써 율법을 완성하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사랑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며, 삶의 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해줌을 기억하며, 서로를 구속하는 법이나 제도에 사랑의 숨결을 불어넣도록 해야겠지요. "문자를 육신의 것으로 돌리지 않고, 모든 선을 소유하시는 주 하느님께 돌려드림으로써 생명을 얻는 사람들”(성 프란치스코, 영적권고 7)이 되었으면 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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