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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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왜 카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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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영 [libravenus] 쪽지 캡슐

2017-06-05 ㅣ No.90085

창세기 4장에서 카인은 동생 아벨을 죽입니다. 자신의 소출을 하느님이 굽어 보지 않으시자, 아벨을 죽인 겁니다. 추측 하건대, 아벨에 대한 질투심, 경쟁심, 아벨에게 모든 것을 뺏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을 것 같습니다. 여하튼, 인류 최초의 살인이었다죠 ?

 

우리 본당 신부님은 주일 오전마다 약 50분 간, 신자들을 대상으로 성경강의를 합니다. 신자들이 성경을 이해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역사적, 지리적 배경, 사고방식, 보편적인 생활상, 풍습, , 기후, 주거 형태, 식습관 등에 관한 이야기들이 강의의 주를 이룹니다.

 

신부님이 그렇게 애쓰는 이유는 한가지 입니다. “ 성경을 아무렇게나 해석 하지 말라 입니다. 저는 신부님의 이유에 적극 동조하는 편입니다. 성경을 아무렇게나 해석하여 맹목적 미신으로 빠지는 사례를 종종 목격하기 때문이지요.

 

성경의 자의적 해석이 성경말씀의 뜻을 보다 풍부하게 한다면, 당연히 아무렇게나 해석하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아무렇게나 해석’의 대부분은, 그런 자의적 해석’이 딛고 서있는 근거와 논리가 지극히 작위적이고 주관적이며, 더 심각하게는 사적인 경험이 부추기는 감정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한마디로 자의적 근거가 미신을 창조하게 됩니다.

 

지난 주일에는 모세오경이 이루고 있는 배경에 관한 강의가 있었습니다. 오경에 포함된 내용의 주요 배경이 이스라엘 민족의 땅에 관련이 있다는 강의였습니다. 여기에서는 그 이야기 보다는, 이스라엘 민족이 토라’ ( 방향을 잡다,.. 율법.. 등의 뜻 ) 라고 부르는 모세오경 중 창세기 4장에 나오는 카인의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이미 아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느님은 왜 카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을까요 ? 강의에서 이에 대한 신자들의 답들이 있었는데요, 대략 두 가지로 압축됩니다.

 

. 카인이 하느님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을 아까워 했기 때문이다.

옛 종교영화에 그런 장면이 나오긴 합니다. 이걸 두고, 봉헌금 낼 때 아끼면 저주 받는다는 미신을 전파하는 사람도 있었지요.

 

. 카인은 곡물을 재배했기에 농경사회의 상징으로 볼 수 있고, 아벨은 양을 키웠기에 유목사회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이 유목사회에서 농경사회로 접어들어 개인 재산이 느는 등 배가 따뜻해 지고 부유해 지자, 툭하면 하느님을 배신하고 부패해 진다. 이를 사전에 경고하는 의미로 농경사회의 상징인 카인의 제물을 받지 않았다.

 

성경에는 위와 같이 생각하도록 해 주는 표현이나, 배경, 기타의 근거 등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지어낸 생각이라는 거죠.. 두 번째 이유는 그럴싸함으로 인하여 신학적으로 숙고해 볼 가치가 있긴 하겠지만, 그걸로 끝이랍니다.

 

신부님은 매우 조심스럽게 이게 답일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하느님은 카인의 제물을 그냥 받지 않으셨다. “ 아무 이유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충격적이죠 ?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성경에는 정말 하느님이 카인의 제물을 받지 않은 이유가 전혀 언급 되 있지 않습니다. 그 비슷한 것도 없지요. 그렇다면, 정말 아무 이유가 없었다라는 해석이, 혹은 매우 겸손하게 말해서 추측이, 다른 어떤 그럴싸한 이유 보다 더 신빙성이 있어 보입니다.

 

신부님의 얘기는 이런 식으로 이어집니다.

 

정녕 아무런 이유가 없었는데, 카인은 지 멋대로 하느님을 곡해曲解 했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고 아벨만 사랑하는 것이라고 지 멋대로 여긴 것이다. 카인은 지 멋대로 생각했고 지 멋대로 판단 하여 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

섬뜩하지 않나요 ? ‘ 자의적 해석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위험성을 떠 올리신다면 저와 같은 느낌일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 에이~, 그래도 뭔 뜻이 있으셨겠지창조주인신 하느님이 하시는 일에 이유가 없다면 그 게 말이 되는가 ? 절대 안 되지… “ 라고 의문을 제기하며 그럴 리 없다는 쪽으로 우르르 몰려가 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반드시 뜻이나 이유가 있어야 한다라는 것은 우리가 일방적으로 하느님에게 강요하는 것, 우리 멋대로 하느님을 판단하는 것, 또는 우리 멋대로 하느님을 정의 하는 것은 아닐까요 ?  그러는 것은 순종과 거리가 아주 멉니다. 아마도 카인은 그런 식으로 순종과 거리가 멀었던 것 같습니다.

 

신부님의 강의는 약간 옆으로 새서 이런 당부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기도를 했는데 여전히 답이 없다고 해서, 하느님이 여러분의 기도를 거절 했다고 스스로 판단하여 이내 포기 하지 마십시오. 심지어, 사제의 간곡한 기도도 아무 이유 없이 답을 주시지 않습니다. “

 

아마도 신부님은 순종이 뭔지 말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하느님의 이유 없음까지 받아들이는 순종 말이죠. 주님은 그게 카인이 해야 할 옳은 행동이라고 말씀 하신 것은 아닐까요 ?

 

( 카인이 화를 내자 ) 주님이 카인에게 말씀 하셨다.

너는 어찌하여 화를 내고, 어찌하여 얼굴을 떨어뜨리느냐 ? 네가 옳게 행동한다면 얼굴을 들 수 있지 않느냐 ? 그러나 네가 옳게 행동하지 않으면, 죄악이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리게 될 터인데, 너는 그 죄악을 잘 다스려야 하지 않겠느냐

 

[ 하느님이 정말 어떤 이유가 있었다면, 너는 어찌하여 화를 내느냐 하며 물을 필요가 없었을 거 같군요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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