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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1주간 목요일] 주님의 기도 (마태6,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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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21-06-17 ㅣ No.147623

 

2021년 6월 17일 목요일

[연중 제11주간 목요일주님의 기도 (마태6,7-15)

   

 

1독서<하느님의 복음을 대가 없이> (2코린11,1-11)

아무쪼록 여러분은 내가 좀 어리석더라도 참아 주기를 바랍니다부디 참아 주십시오.

나는 하느님의 열정을 가지고 여러분을 위하여 열정을 다하고 있습니다사실 나는 여러분을 순결한 처녀로 한 남자에게곧 그리스도께 바치려고 그분과 약혼시켰습니다.

그러나 하와가 뱀의 간계에 속아 넘어간 것처럼여러분도 생각이 미혹되어 그리스도를 향한 성실하고 순수한 마음을 저버리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사실 어떤 사람이 와서 우리가 선포한 예수님과 다른 예수님을 선포하는데도여러분이 받은 적이 없는 다른 영을 받게 하는데도여러분이 받아들인 적이 없는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는데도여러분이 잘도 참아 주니 말입니다.

나는 결코 그 특출하다는 사도들보다 떨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비록 말은 서툴러도 지식은 그렇지 않습니다우리는 그것을 모든 일에서 갖가지 방식으로 여러분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여러분을 높이려고 나 자신을 낮추면서 하느님의 복음을 대가 없이 여러분에게 전해 주었다고 해서내가 무슨 죄를 저질렀다는 말입니까?

나는 여러분에게 봉사하려고 여러 교회에서 보수를 받는 바람에 그들을 약탈한 꼴이 되었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나에게 필요한 것들이 있었지만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았습니다마케도니아에서 온 형제들이 필요한 것들을 채워 주었습니다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여러분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자제하였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10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진리를 걸고 말하는데아카이아 지방에서는 나의 이러한 자랑을 아무도 막지 못할 것입니다.

11 내가 왜 그렇게 하였겠습니까내가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아서겠습니까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

 

화답송 시편 111(110),1ㄴㄷㄹ-2.3-4.7-8(◎ 7ㄱ 참조)

◎ 주님당신 손이 하신 일들 진실하고 공정하시옵니다.

○ 주님을 찬송하리라올곧은 이들의 모임그 집회에서내 마음 다하여 찬송하리라주님이 하신 일들 크기도 하여라그 일 좋아하는 이들이 모두 깨치네

○ 그분 업적은 엄위롭고 존귀하네그분 의로움은 영원히 이어지네당신 기적들 기억하게 하시니주님은 너그럽고 자비로우시다

○ 그 손이 하신 일들 진실하고 공정하네그 계명들은 모두 참되고진실하고 바르게 이루어져영원무궁토록 견고하네

 

복음<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마태6,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12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13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14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제1독서 (2코린9,6ㄴ-11)

 

"나는 하느님의 열정을 가지고 여러분을 위하여 열정을 다하고 있습니다. 사실 나는 여러분을 순결한 처녀로 한 남자에게, 곧 그리스도께 바치려고  그분과 약혼시켰습니다." (2)

 

코린토 2서 11장 2절과 3절은 바오로가 참 사도인 자신과 거짓 사도들의 역할을 각각 중매자와 유혹자의 역할로 비유하는 내용이다.

 

특히 코린토 2서 11장 2절에서 바오로는 참 사도인 자신의 역할이 그리스도께 코린토 신도들을 순결한 처녀로 중매하는 자로 비유하고 있다.

 

코린토 1서 4장 15절에 '여러분을 그리스도 안에서 이끌어 주는 인도자가 수없이 많다 하여도 아버지는 많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내가 복음을 통하여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그런 영적 아버지의 심정과 입장에서 코린토 신도들을 걱정하고 있다.

 

코린토 2서 11장 2절의 "열정을 가지고"로 번역된 '젤로'(zelo) '열심'보다는 '시기' 혹은 '질투'라는 뉘앙스가 더 강한데, 바오로의 질투 단순히 인간의 소유욕과 결부된 이기적 질투가 아니라 하느님의 거룩한 성품에서 비롯된 거룩하고 경건한 질투이다.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시기 위해서 거룩한 열정을 가지신 것처럼, 바오로 자신도 코린토 신도들을 보호하려는 거룩한 열정을 가졌음을 이처럼 매우 강력한 어조의 단어를 사용해 표출한 것이다.

 

한편 코린토 신도들을 위한 바오로의 열정은 그들을 그리스도께 순결한 처녀로 드리려고 중매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약혼시켰습니다'로 번역된 '헤르모사멘'(hermosamen) '결합시키다','함께 맞추다'라는 뜻을 가진 '하르모조'(harmozo)의  부정(不定) 과거형으로 신약에서 여기만 나온다.

 

이것은 바오로가 코린토 교회의 영적 아버지가 되어서 딸인 코린토 신도들을 한 남편 되신 그리스도와 약혼시키는 아버지 곧 당시의 결혼 풍습을 연상케 한다(마태22,1-14; 25,1-13; 요한3,29; 에페5,26.27; 묵시19,7.8; 21,2.9).

 

바오로는 여기서 코린토 신도들이 마치 순결한 처녀와 같은 면모 갖기를 갈망한다. 사실 처녀에게 강력하게 요구되는 덕목은 약혼자에 대한 순결과 신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약혼자, 남편이 그리스도로 나온다.

 

특히 여기서 남편 앞에 '하나'라는 뜻이 있는 '헤니'(heni)란 표현이 사용된 사실은 결혼 관계가 배타적이듯이 그리스도 안의 성도들도 오로지 영적 남편인 그리스도에게만 충성할 의무가 있다는 진리를 강력하게 나타낸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의 신부로 간주되어 영적 음란인 우상숭배를 자행하는 것이 금지되었듯이(호세4,12), 코린토 신도들 역시 한분 하느님이신 그리스도께만 영적 순결과 충성을 바쳐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언급은 당시 음란과 우상숭배, 그리고 방탕으로 악명높던 코린토의 신도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경우, 코린토 1서 4장 11절의 언급은 상당히 특별한 의미로 전달된다(1코린6,9.10).

 

물론 코린토 신도들은 이러한 부도덕한 삶의 방식을 청산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회심한 자들이었으나(1코린6,11), 다시 이전의 방탕 가운데로 돌아갈 우려가 늘 잔존하고 있었던 것이다(1코린 5,1~13 참조).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기도할 때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마태 6,7-15)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빈말(바톨로게오)- 그 바톨로게오의 어원 바트라크스(개구리하느님의 뜻이 아닌 인간들자신의 뜻을 위해 소리내는 것 빈말기도(개굴개굴)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우리의 결핍을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요한16,23) 그 날이 오면 (성령이 오시고 깨닫게 되면)너희가 나에게 물을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에로타우-육적기도정말 잘 들어 두어라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아이테오것이면 아버지께서 무엇이든지 주실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예수님의 뜻으로 청하면(빚 갚으세요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우리가 청하기도 전에 하느님께서 구약 여러 곳에서 먼저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그 빚(약속), 청하면 당연히 주신 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 하느님을 아버지로그분의 아들로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거지요.

그 아버지의 뜻이 거룩하심을 저희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드러내 주시길 기도하라 하십니다.

 

10ㄱ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하느님 나라(바실레이아)는 섬김의 통치인 곳그 섬김(다아노코스)은 말을 주다곧 생명의 말씀을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시고~

(마르10,45)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또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하셨다.

=죄인들의 몸값으로 당신 목숨을 바치시는 그 섬김그리고 그 길을 진리의 말씀으로 주신 것입니다그래서 그 대속의 죽음 ,그 사랑그 의로움그 하느님의 영광으로 사는 곳이 하느님 나라입니다.

 

(로마14,17)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누리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10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그 하늘나라아버지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

 

(묵시21,1-4) 1 그 뒤에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 2 나는 또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맞을 신부가 단장한 것처럼 차리고 하느님께서 계시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3 그 때 나는 옥좌로부터 울려 나오는 큰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제 하느님의 집은 사람들이 사는 곳에 있다하느님은 사람들과 함께 계시고 사람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하느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하느님이 되셔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다이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 죄로 인한 세상의 죽음온갖 슬픔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대속그 진리로 치우시고 오시는 하느님의 뜻의 나라.

 

 

(요한6,40) 그렇다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 내 아버지의 뜻이다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모두 살릴 것이다.'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일용 할 양식히브리어 에피시오스는 위에 있는 꼭 필요한 양식입니다세상의 육에 꼭 필요한 양식은 아니라는 것이지요.(마태6,25참조)

아람어 마헬은 내일의 양식으로 차원이 다른다가올 그날곧 하늘의 양식인 것입니다.

 

(신명8,2-3) 2 너희는 지난 사십 년간 광야에서(광야 40년은 우리 신앙의 여정인생의 역사인 것입니다.)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어떻게 너희를 인도해 주셨던가 더듬어 생각해 보아라하느님께서 너희를 고생시킨 것은 너희가 당신의 계명을 지킬 것인지 아닌지 시련을 주어 시험 해 보려고 하신 것이다. 3 하느님께서는 너희를 고생시키시고 굶기시다가 너희가 일찌기 몰랐고 너희 선조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여 주셨다이는 사람이 빵만으로는 살지 못하고 야훼의 입에서 떨어지는 말씀을 따라야 산다는 것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시려는 것이었다.

하느님의 말씀이 내일에 꼭 필요한 양식인 것입니다.

 

(요한6,27)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도록 힘써라이 양식은(내일의 양식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주려는 것이다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에게 그 권능을 주셨기 때문이다하고 말씀하셨다.

죄인들의 구원곧 십자가의 대속의 길을 가신 그 예수님을 진리로 믿는 것영원한 생명의 양식인 것입니다.(요한14,6 17,3참조)

 

(요한6,54.63)54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며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살릴 것이다. 63 육적인 것은 아무 쓸모가 없지만 영적인 것은 생명을 준다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적인 것이며 생명이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진리의 말씀으로 먹으면생수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또한 성령이신 것이지요.(요한7,37~)

 

12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당시 죄를 지은 자는 나무에 매달아 죽였지요그것이 죄의 용서(신명21,22), 그렇게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그러나 예수님께서 대신 십자가에 달림으로 용서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오늘 이 기도를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당신의 십자가의 죽음을 말씀하고 계심을 놓치면 안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용서 받았으니 우리는 그 누구도 선악의 판단을 할 수 없습니다.

 

(로마3,24)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죄에서 풀어 주시고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은총을 거저 베풀어 주셨습니다.

 

13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제사와 윤리의 그 옛법으로 돌아가려는그래서 자기 의로움을 위한 삶으로 십자가의 의로움을 헛되게 하는 그 유혹에서 또한 법으로 다른 이를 판단하고 단죄하는 그 악에서그래서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보다 사람에게서 받는 칭찬을 더 사랑하는(요한 12,43) 그 유혹악에서 구해 주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올바른 기도우리는 할 줄 모르기에천주의 성령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 저희 죄인을 위하여 간구해  주소서’~하고 청하는 것입니다.

 

(로마8,26) 성령께서도 연약한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는 우리를 대신해서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깊이 탄식하며 하느님께 간구해 주십니다.

 

14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십자가의 대속그 용서를 다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내가 십자가 대속의 용서 받았음을 인정하는 그 용서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모든 이는 십자가 그 진리로 용서 받아 하늘의 존재곧 그분의 성전이 된 것이지요.

 

(1고린3,16-17) 16 여러분은 자신의 하느님의 성전이며 하느님의 성령께서 자기 안에 살아 계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17 만일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망시키실 것입니다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여러분 자신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제사와 윤리의 율법으로또는 사람의 규정과 교리로 돌아가게 한다 거나 사람의 계명으로 판단하는 것그것이 사람을 죄로 죽이는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주님오늘 그 모든 유혹과 악에서 구 하소서. ~아멘.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복음 (마태6,7-15)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7~8)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에 해당하는 '메 밧탈로게세테'(me battalogesete; do not keep on babbling; do not use vain repetitions)에서 '빈말을 되풀이하다'로 번역된 '밧탈로게세테'(battalogesete)의 원형 '밧톨로게오'(battologeo)는 '말을 많이 하다', '생각없이 말하다', '쓸데없이 말하다' 등의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기도는 카르멜 산에서 바알의 예언자들이 했던 기도나(1열왕18,26), 에페소에서 거의 두 시간 동안이나 외쳐댔던 아르테미스 숭배자의 예에서 찾아볼 수 있다(사도19,34).

또한 하느님을 대상으로 기도한다고 하더라도, 하느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기도를 반복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

 

 

믿는 이들 가운데서도 은총의 지위를 상실하고 죄중에 기도하거나, 하느님의 뜻과 상관없이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기도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이들이 때로는 눈물로 애원하고, 때로는 논리적으로 하느님을 설득하는 조로 미사여구를 늘어 놓으며 장황하게 기도한다 하더라도, 이것은 하느님 앞에 아무 의미없는 말들을 많이 쏟아내는 것에 불과하며, 이런 기도는 하느님 대전에 올라갈 수가 없다.

 

마태오 복음 6장 8절의 '알고 계신다'에 해당하는 '오이덴'(oiden; knows)은  완료형이다.  희랍어에서 완료형은 말하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이미 동작은 끝났지만, 그 동작의 결과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상태를 나타낸다.

 

여기서도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이미 기도하는 이의 형편을 과거로부터 알고 계셨음을 보여 준다.

우주의 삼라만상과 인류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께서 모르시는 것이 있을 수 없다. 당신께서 직접 창조하신 피조물이며, 당신께서 선택한 자녀의 청원 내용을  모르실 리가 없다.

따라서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위선적인 기도가 아니고,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진실한 기도라면 반드시 하느님께서 들어주신다.

 

 

하지만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라고 하더라도, 그 기도의 응답이 늦어질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때와 사람의 때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방법으로  가장 적절하게 응답해 주시는 분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주의 기도'에 대한 해설은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복음(루카11,1~4)~~^*^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2ㄷ-4)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 처음 등장하는 단어가 '아버지'인데, 이것은 기도의 대상이 하느님 아버지이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아버지'에 해당하는 '파테르'(Pater; Father)는 당시 유대인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던 아람어 '압바'(Abba; 마르14,36)를 번역한 것이다. 주로 어린 아이가 아버지를 친근하게 부를 때 사용되는 말이다.

 

구약에서 창조주로서의 두려움과 엄위를 전제한 전능하신 하느님의 호칭 '엘로힘' 스스로 자존(自存)하시며 계약에 충실하심을 보여 주는 고유 명사 '야훼'를  사용한 것과 달리, 예수님께서는 이제 하느님을 '압바'(Abba)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과 하느님 아버지 사이가 얼마나 긴밀하고 친근한 것인가를 확실하게 보여 준다.

 

이제 나아가서 예수님과 하느님 아버지 사이의 친밀함이 제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가르치며, 예수님처럼 제자들도 그렇게 부르라고 가르치신다.

그리고 '아버지'라는 호칭 다음에 두 종류의 간구가 나온다.

하나는 하느님과 관련된 것이며(2절), 다른 하나는 인간과 관련된 것이다(3~4절).

 

하느님께 대한 첫번째 간구인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드러내시며'에서, '이름'에 해당하는 '오노마'(onoma; name)는 존재 자체를 의미하며, 하느님의 선하시고 공의로운 속성 등 그 이외의 모든 속성이 그 이름 안에 들어 있음을 나타낸다.

 

또한 '거룩히 드러내시며'로 번역된 '하기아스테토'(hagiastheto; hallowed be)는 '거룩하게 하다'는 뜻을 지닌 '하기아조'(hagiazo) 부정과거 수동태 명령형인데, 이것은 기도의 대상이신 하느님께서 공경을 받으셔야만 한다는 당위성을 나타낸다(이사8,13; 29,23; 에제36,23).

 

말하자면, 이것은 하느님의 이름이 '인간들에 의해서'거룩해지기를 '하느님께' 간구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하느님을 모독하고 거역해서 범죄하는 대신에, 하느님을 경외하고 예배할 수 있는 상황과 기회를 베풀어 달라는 간구인 것이다.

따라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드러내시며'라고 기도하는 것은 하느님의 존재 자체가 영광과 존귀와 경배의 대상이 되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하느님께 대한 두번째 간구는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이다. 여기서 '오게 하소서'로 번역된 '엘테토'(eltheto; come)는 '가다', '오다'를 뜻하는 '에르코마이'(erchomai)의 부정과거 명령형이다.

희랍어에서 부정과거 명령형은 그 내용이 결과적으로 완전히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열망할 때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여기서는 하느님의 나라가 '속히 도래하여', '결과적으로 완성되기를' 바라는 강한 욕구를 포함한다.

또한 '나라'로 번역된 '바실레이아'(basileia; kingdom)는  정관사 '헤'(he)와 같이 사용되어 '그 나라'라는 의미를 지닌다.

 '바실레이아'(basileia)라는 단어는 특정한 영토와 장소, 공간을 의미하지 않고, '하느님의 통치와 지배, 다스림'을 의미하는 역동적 개념(reign; govern)이다.

 

다시말해서 '하느님의 주권'에 대한 언급으로서, 하느님께서 직접 왕이 되셔서 사탄의 통치를 종식시키고, 당신이 직접 다스리시는 그 마지막 종말의 때가 속히 올 것을 갈망하는 간구인 것이다(루카4,43; 마르9,1).

 

이제 기도의 내용 중에서 예수님의 관심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필요과 관련된 '일용할 양식'과 '죄에 대한 용서' 그리고 '유혹에서의 구원'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언급하신다.

 

첫째로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간구에서 '일용할'로 번역된 '에피우시온'(epiusion; daily)은 '바로 오늘 필요한 것'과 '오는 날', 즉 '내일의 양식'이라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 '날마다'라는 '카트 헤메란'(kath hemeran; by day; each day)이라는 관용구를 사용해서 '일용할 양식'을 제한하고 있으므로, 대체로 그날그날의 실존적 삶에 필요한 실제적 양식을 의미한다.

이것은 '주다'의 뜻인 '디도미'(didomi)가 현재 능동태 명령형 '디두'(didu; give)로 사용되어 계속과 반복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그렇게 보아야 한다.

 

인간의 필요를 구하는 두번째 간구는 '죄의 용서'에 관한 것이다. 새 성경에 번역되지 않은 '가르'(gar; for)가 '왜냐하면 ~ 이기 때문에' 라는 이유 부사절을 이끈다.

 

하느님께 죄의 용서를 청하려면, 전제 조건이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해 주었기 때문에,우리는 우리의 죄에 대해 하느님께 용서를 청할 수 있다.


만일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지 못하면,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이 기도는 아무소용이 없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잘못한'으로 번역된 '오페일론티'(opheilonti; that is indebted; who sins)는 '빚지다'는 의미를 가진 '오페일로'(opheilo)의 현재 분사형이다. 

따라서 이 문장은 '우리가 우리에게 빚지고 있는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죄도 용서해 주시고'라는 뜻이다.

 

당시 유대 풍습대로 빚을 진 사람들이 채권자의 노예가 되거나 옥에 가두거나 하지 말고, 탕감해 주고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마태18,23~35).

이러한 사실은 '용서하오니'에 해당하는 '아피오멘'(aphiomen; we forgive)에도 잘 드러나는데, 이 단어는 현재 능동태로서 계속해서 용서할 자세를 가져야 함을 의미한다.

 

인간의 필요를 구하는 마지막 간구는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이다.

'유혹'으로 번역된 '페이라스몬'(peirasmon; temptation)의 원형 '페이라스모스'(peirasmos)는 사람을 죄짓게 만드는 유혹을 뜻한다(야고1,12; 1티모6,9).

 

여기서는 예수님의 제자들로 하여금 믿음과 거룩함으로 벗어나 타락하도록 하는 외적, 내적 유혹거리들을 의미한다.

여기서 '빠지지'에 해당하는 '에이세넹케스'(eisenehkes; lead) '들어가다'라는 의미를 지닌 원형 '에이스페로'(eisphero)의 가정법 과거형이다.

그래서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 달라'는 뜻이 아니라 '유혹에 굴복하지 않도록 우리를 이끌어 달라'(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는 뜻이 된다.

 

한편, 마태오 복음 6장 13절에서는 '다만 악에서 구해주소서'라는 말이 주님의 기도 끝에 더 붙어 있다.

여기서 '악'으로 번역된 '투 포네루'(tu poneru; from evil; from the evil one)라는 단어는 중성으로 볼 수도 있고, 남성으로 볼 수도 있다.

 

중성으로 보면 '악'(evil)은 추상적인 의미를 갖게 되고, 남성으로 보면 '악한 자'(evil one)라는 보다 구체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그래서 앞의 문장과 연관지어 보면, 우리로 하여금 유혹에 빠트리는 악한 자, 즉 마귀로부터 구하여 달라는 간구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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