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홍) 성 이레네오 주교 학자 순교자 기념일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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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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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61.106.108.*]

2005-09-13 ㅣ No.3704

 

  † 찬미예수

 

  형제님의 숭고한 바램들이 그대로 이루어짐을 믿습니다.

  가을비가 이른 아침부터 대지를 적셔주고, 오늘도 동네 어귀의 구멍가게 할아버지께서 주신 담배를 물고는 물기 어린 멋진 대지를 밟고 돌아올 수 있기에 우리를 평화로 이끌어 주고 있는듯 합니다.

 

먼저 님의 첫번째 질문인 하느님께서 들어주시는 기도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만약 우리가 우주안의 은하계의 시작과 끝을 여행한다면 그 시간이 수많은 광년을 지나도 닿기가 힘든 가운데, 그 끝에 이른다 한들, 다시 그 은하계가 또 다른 은하수 만큼이나 펼쳐질테고 이 모든 것조차 사랑으로 주관하시는 하느님의 섭리를 내가 알 수 없기에 무엇을 들어주시고, 안 들어 주시겠다는 사고 자체도 은총임을 우리는 믿어야 할 것입니다. 어려운 이야기라서 죄송타 말씀 올립니다. 하지만 어린아이같은 이야기인지라 감축도 동반코저 합니다.

 

아내가 하루를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끝낼 정도로 열심히 하신다는 것, 때로는 양이 중요한 것은 아니겠으나 하루에 100단정도를 바칠 수 있다 함은 보통의 은총을 초월한 것이기에 뭔가 고통이라는 하느님 최고의 선물이 배양된, 즉 주변인들까지 그 고통을 체험하고 나누어 줄 수 있는 기쁨의 여정이라고 사료되는 바입니다.

 

이는 어둠은 빛에 백전 백패를 할 수밖에 없는, 태초의 창조주께서 첫번째 만드신 ''빛의 신비''에 근거함을 강조하고 싶습니다(창세기 1장).

 

그러면서 저로서는 아내를 주님 품으로 인도하지도, 또한 제가 아내를 내심 부러워 하면서도 그것들을 인정하지도 못하는 부끄러운 가장이오나 다만 하느님과 함께 님과 복음을 나누는 차원에서 형제님의 질문을 토대로 대화 나누는 형식의 답변을 올리고자 합니다.

 

질문 1. 진짜로 조상을 위해 기도하면 연옥이나 지옥에 계신 조상들이 천국으로 갈 수가 있는 것입니까?

 

''세상은 더도 덜도 없이 내가 변한 만큼 변해 보인다''는 말씀을 묵상하며 조상의 영혼 역시 천국으로 오르심을 확신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공적으로 하느님이 주신 생명을 자의적으로 끊는 자살한 영혼을 위하여 연미사(죽은자를 위한 최선의 기도)를 왜 바치지 못하는가를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질문 1-1. 조상을 위해 기도하면 어떤 면이 좋은가요?

 

   조상이 그 자손을 위하여 대화코자 하는것은 대개 선한 사람이 되고 빛의 자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역시 믿음을 근거로 하여 보편성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때로는 조상중에서도 그 조상의 선대의 조상으로부터 역시 의심 많고 복잡한 품성을 이어 받을 수 있어, 때때로의 여기 이사람처럼 큰 바보라고도 하시는 하느님의 사랑보다 잘못된 나의 그것들에 얽매여, 불신의 연옥등을 해매일 수 있겠습니다만, 이러한 조상들과의 대화를 기도로 승화할 수 있다 함은 선대로부터 이어온 모든 악습을 내대로부터 끊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시는 하느님 은총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자매님처럼의 능동적인 기도 자세도 한 작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질문 1-2. 제 처의 경우에 돌아가신 시부모를 위하여 헌금 만원 내지 오만원을 내면 신부님이 부모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미사를 시작하던데 정말 효과가 있습니까?

 

   ''과학은 보고, 듣고, 믿지만, 사랑 자체이신 그분께서는 우리를 ''믿고, 듣고, 보시기에 신앙인은 용서의 하늘과 화해의 바다를 가로지으신 그분을 ''믿고, 닮고, 따라야 할 것입니다. 계속하여 원론적인 이야기를 올려서 죄송하오나 ''계시 종교''라 하는 그리스도교(기독교)와 인간의 깨달음으로 얻는 ''자연 종교''인 불교등의 관계성도 사랑 안에서 또하나의 부부의 모습을 취할 수 있기에 다만 교회의 믿을교리(공적 계시)를 향할 뿐인 우리들의 사적 계시 또한 때때로의 조상과 후손, 또는 아버지와 아들의 세습 관계성도 겸허히 인정하게 되고 지상에서 티없으시기에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성모님의 모범도 바라보며 우리는 다음대에 그 악습들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감성이 아닌, 이성이 아닌, 감성과 이성을 변모시켜주시는 의지로서의 사랑을 재 봉헌코자 하는 것입니다.

 

한편, 가톨릭 신자들은 믿을교리 한가운데에서의 ''미사''를 온전한 기도로 고백하고 있기에 시부모님을 위한 며느리의 미사 봉헌, 즉 선이자 사랑 자체이신 그리스도(하늘)의 제대위에 내 마음의 깊은 나(예수)의 마음으로 봉헌하는 그것은 실제 2000여년전 예수+그리스도가 되신 그분의 희생과 사랑을 따르는 동호회원들에게 인간 최대의 축복인 ''새로 태어남''의 은총을 제공해 주심을 믿습니다.

 

더불어 흙으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우리의 육신과 영원한 삶을 수반하는 영혼으로 분리된 조상들의 경우는죽음으로서의 연옥 영혼들은 더 이상 자신을 위하여 기도할 수 없고 다만 후대를 위하여, 그리고 당신의 영혼이 천국으로 오르기 위한 보속의 여정으로 후대의 행복을 위한 대화(기도)의 문을 열기를 갈망할 수 있기에 이러한 기도는 매우 커다란 축복된 만남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그 헌금들 또한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위하여 재차 주님께 봉헌하는 여정을 따르고 있기에 가장으로써 그 봉헌금을 바치는 아내를 묵인하시는 모습 또한 불안한 땅의 은행이 아닌 가장 확실한 하늘의 은행에 예치하시는 남편의 덕행을 수반하고 있슴도 바라보실 수 있겠습니다.

 

질문 2. 고3짜리 자식이 있는데(공부는 못하고 열심히 하지도 않음) 열심히 기도하면 대학에 합격할 수 있습니까?(수능이 얼마남지 않았는데 일주일 동안 가출하였다가 돌아 왔는데 몸이 다쳐가지고 도저히 가출 생활이 어렵기때문에 집에 들어 온 것 같으나 제 처는 하느님이 자기 기도를 들어 주셔서 돌아 왔다고 생각 할 수 있겠음)

 

   열심히 공부하기 위한 대표적 수단중, 자칫 가족 옹호형(개미들의 삶으로 비유) 침묵으로 빠질 수 있는 ''명상''이나 ''웰빙''주의형 삶등의 침묵은 타인과의 지나친 경쟁 의식이 먼저 들어 오늘날 서울대생의 25%가 골방 출신임을 밝혀 주기도 하는데, 완전한 사랑 자체이신 주님께 ''나의 노력''보다는 성령(성스러운 영혼)의 은총과 하나되고자 ''그저 이몸은 주님의 종이옵니다''의 고백으로부터 빛의 힘을 얻어 이름모를 들꽃이 되어 언제 어디서나 도시, 깊은 숲의 나무와 자연과도 밝게 호흡하는 꿀벌형 삶(도시, 시골등의 선행 공동체)도 있듯이 또한 이것이 님 부부의 모습일테고, 안타깝게도 세상은 물질우선주의 및 생명 경시풍조등의 잘못된 환경 침해 문화조차 범람하여 어두운 곳에 진을 친 ''거미형 삶''들도 만연하고 있슴을 바라볼 수 있겠습니다.

 

질문의 요지를 제가 잠시 잊었군요. 잠시 더 부연을 해드려야겠습니다. 동서 고금의 ''家和萬事成''을 위하여 ''家和萬事聖''을 함께 추구하고자 하는 님 부부의 모습은 마땅히 거룩하시고 경건해 지심을 믿습니다. 왜냐면, 아들 준생을 베네딕도 신부로, 전 국민들에게는 국권 회복을 유지로써 당부하시고 탄환 세발에 십자가를 그으며 적장 이또오 히로부미를 포살한 뒤, 하얼빈 역에서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신 우리의 자랑스러운 조상 안중근 토마스 의사를 위하여 함께 기도할 수 있으며, 우리를 위하여 정중동(복음 편지등에서의 움직이는 사랑)과 동중정(일상안에서의 서정적인 사랑)을 바라보게 만드는 크로스(십자가의 라틴어 원문) 체크 여정조차 하느님 아버지께 의탁하시고 그 인성과 신성을 모두 봉헌하신 예수님의 여정이 우리 한가운데 있기에 사랑은 다만 회심으로 진화하는 생명체인 것입니다(이로써 우리 그리스도인은 크리스마스도 기쁘지만 이보다 더 기쁜 부활을 믿는 신앙인입니다).

 

기도는 자녀에게도 완전한 교육입니다. 감히 제가 형제님과 비슷한 경우로써 저희 집의 경우는 제가 먼저 영세를 받은 경우겠습니다만, 聖스러운 부부 지정에 의거하여 사심들을 과감히 버릴 수 있을 분으로 여겨집니다. 질문의 요지속에 아들을 사랑하시는 형제님의 절절한 사랑이나 절대적으로 기도를 싫어하는 우리 아이들의 그것에 비추어 끊임없이 생각하고 말하고 또 행하려는 의지를 주님께 의탁하며 나아가심은 어떨런지요?

 

질문 2-1. 하느님께서 더욱 단단히 하기 위해 시련을 주신 걸까요?

 

  천사와 마귀도 한집에 살 수 있기에 성서 말씀중 ''욥기''를 살펴보자면 사탄이 우리에게 전가하는 고통을 하느님께서 묵인하셔야 하는는 것도 바라보아야 할텐데, 우리는 자주 그것을 올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하느님 탓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사랑을 모르는 외인들로 하여금 그 마음속의 기도를 방해하는 어둠의 존재들의 활동에 젖은 모르고 짖는 오류로써 알고 짖는 죄가 대죄이고, 모르고 짖는 죄는 소죄에 해당하는 사유로써 여하튼 신앙의 길은 그만큼 더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시는 것도 필요하겠습니다.

 

우리가 쉽고 편안함에 젖는 것을 선호할 수 있기에 우리는 늘 깨어나 빛의 자녀로서의 모범을 사수하고 계속하여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끊임없이 사랑을 조건없이 행하여 줄 것을 우리에게 때때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의 거룩한 침묵처럼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우리 마음에 내재되어 있는 악에게 선이신 하느님께서는 필요시 십자가에 못박히는 죽음으로써도 승리하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자주 듣고 싶은 이야기에 얽매이더라도 하고 싶은 말에 서로간에 상충되는 그 무엇이 있을지라도 언제나 오늘만을 사는 하루살이에게 심연의 고독이라는 늑방에서 그 모든 깨달음과 기억과 의지, 인내조차도 아낌없이 버려주시며 감각적인 즐거움조차 매일밤 버릴 수 있는 깊은 즐거움을 제공해 주시기도 하는데 어느 수도자가 영생이 없는 주님이라면 당신을 믿고 싶지 않다 고백하심도 바라보게 됩니다.

 

질문 2-2. 제 생각에는 기도를 안했어도 (아들이)들어왔을 것 같은데요

 

   역시 틀리지는 않는 이야기이신듯 합니다. 태초의 우리 조상들이 기도에 인색하여 죄가 바벨탑처럼 높이 오를때에도 하느님께서는 형제님의 지금의 경우처럼 스스로 초라해지신 모습으로 그 신성이 인성으로 오시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기도 안하더라도 하느님 아버지와 성모님 그리고 모든 성인 성녀와 주위 이웃들의 기도가 엄존함을 믿기에 특별히, 가출이라는 경험속에서 가정의 소중함을 아빠의 그것처럼 되뇌일 당사자의 그것이 있기에 인간적으로, 그리고 보이지 않는 신성(오직 사랑의 신성입니다)을 믿는것도 좋을것이며 그렇게 귀가하였고, 이것이 우리 미력한 신자들의 마음이기도 할 것입니다.

 

저같은 경우의 냉담시절을 회상하노라면, 아드님과 비슷한 시기에 홀어머니께 버룻없이 대하던 어느 순간, 군에서 말년 휴가로 나타난 폭군 큰형이 무서워 그 길로 왕복 6차선 대로변의 두려움 망각으로 달리는 차들을 뛰어 넘어 15일간 가출한 경험이 있고 귀가후 평소 학업 성적이 학급 43위에 이른 것을 한달 뒤 전교 9위로 급거 격상할 수 있었던 집중력이 돌출되기도 하였는데, 이는 냉담중이더라도 그분의 도우심임으로 믿게 해주심 또한 은총일 것이오며 모쪼록 형제님께서도 부자간의 대화로써 그것을 바라보시리라 믿습니다.

 

질문 2-3. 기도 보다도 고3 입시생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교육을 했다면 아예 가출하지 않았을텐데...

 

   오늘날 중학생들이 은연중에 바라는 부모상으로써는 방과후 ''반갑게 맞아주는 엄마 품''이라 하고, 고등학생이 바라는 부모상으로써는 ''공부하는 부모상''으로써 시대의 변천상과 우리 부모들의 부끄러움을 반증하고 있기도 합니다. 기도는 궁극적으로 하느님과의 대화며, 성사생활등에서 고해성사등의 경우는 인간적 사고의 발로인 인간에게 그 죄를 고백하는 것이 아닌 하느님과의 화해의 성사임을 우리가 간단한 묵상으로도 스스로 고백할 수 있을것입니다.

 

형제님이나 자매님이나 그리고 하늘에 계신 그분들 외의 모든 인간은 게으름과, 교만, 불안의 회색 안개에 휩쌓일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이야기보다 그리고 우리 나약한 사고로의 미래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 너와 나의 사랑과 일치, 화해의 성사인 것입니다.

 

이로써 기도는 영혼의 양식임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기도를 판단하고 기도 가운데 오히려 하느님의 종이고자 한답시며 하느님을 종으로 부려먹으려 하는 주문등이 더 위험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조치훈 명인이 아무리 바둑을 잘 둔다 한들 그가 비상하기 이전에 먼저 마음을 비울 수 있었기에, 너와 나의 길이 보이고, 노래 또한 인간들이 있건 없건 너와 내가 있건 없건, 먼저 마음을 비우고 그것을 즐길 수 있기에 더불어 시낭송이 보이고 박자가 보이며 고음에 이르러서는 그 먼저 평화의 참여도만큼 천국에서 그 아래의 첫 계단에 살포시 놓는 음을 즐길 수 있느냐, 아니면 밑에서 소리쳐야 하느냐의 차이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가톨릭 신자들이 삼종 기도를 소홀히 한다면 그 영혼의 건강 밸런스가 깨지는 것도 때때로의 자연 순리처럼 이어질 것입니다. 아무튼 형제님과 저는 하느님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사랑을 담뿍 받으시는 것 같습니다. 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말씀의 수호성인이신 聖 도민고께 의지하여 부연하자면 전자의 기도는 말하기(5점), 듣기(10점), 외우기(100점), 전하기요(200점), 후자의 기도는 쓰기(15점), 실천하기(300점)등의 묵주형 고리로 연결될 수 있다고 봅니다.

 

위의 것을 다시 정리하시어 5,10,15,100,200,300점 순의 금빛, 은빛 통장을 개설하십시오. 하느님 나라 은행 직원들은 세속의 그것 이상(을 초월하는 천상의 그것)으로 친절과 손님 우대 정신이 빛날 것입니다.

 

3. 설겆이도 미뤄 놓고(밥 먹을려고 보니까 수저와 젓가락, 밥그릇 등이 모두 설겆이통에 있어서 제가 설겆이 하면서 신앙에 대한 불만이 더 쌓임) 성당에 가서 기도하면 가정이 평화롭게 되도록 들어 주십니까?

 

   저의 와이프 같은 경우는 제가 본의아니게 주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만, 최근 냉전중이라서 설거지를 거의 안하고 있습니다. 저희 딸 제노베파를 닮은 아비로서의 무언의 땡깡같은 것이지요. 하지만 님이나 저나 그 어떤 것으로 인한 마음의 평화가 찾아올 때 주변 정돈 및 남성들의 명예욕등의 발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것등에 힘입어 설거지등을 조건없이 하게 되고, 아내의 입장으로서는 직계 가족조차 자주 몰라주는 힘든 가사 노동에 일조하기도 할 것입니다. 역시 공적 계시를 향한 사적 계시일 수 있겠습니다만, 이 시대에 설거지를 그처럼 할 수 있는 은총도 보통 이상의 남편 역할로서의 자긍심일 수 있겠으며, 이러한 작은 고통도 신비로 이어지리라 믿습니다.

 

성당은 본시 하늘의 배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이 시대의 범람하는 악의 유혹등에서 피신할 수 있는 방주임을 믿으십시오. 만약 님께서 침묵 가운데 아내와 함께 그 온전한 기도인 미사에 참례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께도 매우 기뻐하시는 선물로 이어질 것입니다. 더불어 형제님의 장인 정신으로 하여금 성가정을 위한 세상 모든 것이 성당의 그것과 맞물려 투명한 영혼으로 갈아입는 은총과 함께 ''그리스도는 당신만을 믿습니다''의 권면에 ''저는 당신의 은총만을 믿습니다''로 끊임없이 화답하시어 인간이 바라는 초능력이 아닌 인간과 신성이 함께 기준을 세우고 실천해 나가는 초월적 사랑을 구형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초기 입교자는 절대적으로 주님의 종의 신분부터 시작함도 또한 겸허하고도 자랑스러운 신비임을 믿으십시오.

 

4. 여러가지 경기를 할 때 상대방에게서도 이기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자기 자신도 이기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데 하느님은 과연 누구의 기도를 들어 주시는 걸가요?

 

   우리 나약한 인간이 주님의 신성과 인성을 닮은 소위 만물의 영장으로써 이러한 모순속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어디 한두번이겠습니까? 전능하시기에, 그리고 우리에게 ''자유 의지''라는 선물을 주셨기에 때로는 한없이 나약한 모습을 취하실 수 밖에 없기에, 그리고 그분께서는 쌍날칼 같으신 권능으로 때때로 질투의 하느님, 시기의 하느님으로 우리에게 사랑을 부어주실 수 밖에 없기에 형제님의 현재의 모습 역시 다만 지극히 거룩하고 경건하신 그분을 믿고 닮고 따르면 그뿐인 것입니다. 하느님은 숲속에서 죽음을 위한 죽음보다 영원한 생명을 기원하는 신부님의 기도와 식사전 기도로 감사하는 사자의 기도도 함께 들어주시는 분입니다. 헌데 우리 아이들은 십후 기도 자발적으로 하는것을 못 보게 되는데 역시 제 탓입니다. 요즘은 식사전 기도도 자주 빼먹고 있는데, 송구하기 짝이 없습니다.

 

4-1. 연습은 안하고 기도만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이 이길까요? 아니면 무당을 믿으면서 열심히 실력을 갈고 닦은 사람이 이길까요?

 

   문제가 점점 심오하게 와 닿은 느낌이군요. 겸손한 사람은 어디를 가나 승리를 보장 받을 수 있습니다. 사탄(의 하수인들이 조장했던) 죽음의 독침마저 사랑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거룩한 죽음(초대 교회 순교자들처럼)의 용기로 무장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겸손일것입니다.

 

히딩크가 과거 승승장구하다가 야인으로 돌아가 고향에서 막 낚시를 시작할 무렵 축협의 가삼현 대외국장을 만난적이 있지요? 그때 그는 한국 선수들이 감독이 나무위에 오르라면 오를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진적이 있슴을 기억할 수 잇을 것입니다. 당시 여러가지 상황과 맞물려 한국 축구는 결과적으로 히딩크 감독이라는 대어를 낚을 수 밖에 없었으며 다시 교만해진 우리들의 현실속에서 한국축구의 여러가지 비리와 맞물려 사생아인 본프레레라는 인물을 맞이하게 되는데 필자가 히딩크를 털끝만큼도 미워하지 않고 신뢰했던 것도 그렇고, 본프레레 감독은 그 두번째 게임부터 뒷꿈치만 느껴져도 미웠던 며느리에 대한 시어머니의 마음도 어쩌면 고통을 위한 고통의 연속이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4-2. 무당 믿고 경기에 이겼더라도 그 사람은 천국에는 못가겠죠?

 

본프레레 생각하니 갑자기 호흡이 격해지면서 답답증으로 이어져^^; 내가 지금 무당과 밀회(?)하고 있지는 않나 생각이 드는군요. 잠시 마음좀 추스려야 하겠습니다. 제가 외로움을 잘타서 아빠 알기를 뭐로 아는 우리집 베드로하고 제노베파 꼬셔서 기도좀 하고 오겠습니다.

 

.......

 

우리집 베드로 녀석은 도무지 눈물이 많아 걱정입니다. 아내의 기가 쎄셔서 아이가 밤 늦도록 괴외공부를 하는데 녀석이 기도하기 싫어 학원차 빨리 타야한다며 뻥을 치고는 아빠가 화를 내지도 않았는데 눈물까지 또 흘리며 주모경을 함께 바치게 되었습니다.

 

제노베파 역시 덩달아서 아빠때문에 오빠 뛰어가야겠다며 뻥을 칩니다. 아무튼 저로서는 결혼전에 어떠한 체험이 있어 지난 15년여동안 육적으로 눈물 한방울 흘려보지 못한 죄인의 마음으로 글을 있습니다.

 

말씀의 좋은 도구로 알려지신 김웅렬 투마스아퀴나스 신부님이 보좌 신부시절 세속 신앙을 연구하시고자 계룡산등지에서 활동하는 무당들을 찾아 나선적이 있다 하십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성령을 맞이하듯 무당들도 귀신을 맞이 할 수 있기에 맨발로 칼날위에서 춤을 춰도 피 한방울 나지 않는 박수 무당의 그것과 군중들을 바라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부님과 무당의 눈빛이 마주한 순간 무당은 중심을 잃코 ''아이쿠!''라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둥그라진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에 눈이 뒤집혀 칼부터 찾는 무당의 그것에 군중들은 혼비백산이 되어 도망을 갔지만 김신부님은 명색이 신부인지라 도망도 가지 못하고 그와 독대를 하여야 했습니다.

 

망나니처럼 칼로써 겁을 주는 무당에게, 그러나 사탄이 일생을 선하게 산 욥에게 고통을 줄 때 절대 가장 귀한 생명만은 침해하지 마라는 하느님의 준엄한 경고가 엄존하기에 귀신들린 이날의 무당은 감히 신부님의 목을 내려치지 못한 것도 작은 신비였습니다.

 

그리고 신부님은 와들 와들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속에 휴대한 프라스틱 성수병 뚜껑을 열고자 하였으나 그것이 마음데로 되지 않았습니다.

 

어찌, 어찌하여 겨우 그것을 연 신부님은 무당에게 성수를 뿌림으로써 또다시 그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것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한참후 깨어난 그를 보필하고 돌아서려는 신부님께 무당은 잠시 자기와 이야기 해 줄것을 청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처음 신부님과 눈 빛이 마주친 순간 섬광 같은 것을 느꼈으며, 성수를 맞았을 때는 무언가 뜨거운 기운을 느껴야 했음을 고백하였기에 신부님께서는 ''이왕이면 당신이 믿는 산 할아버지보다는 더 힘이 쎈 하느님을 믿을 것''을 권고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무당은 산 할아버지를 배신하면 죽음을 당할 것이라며 겁을 내자 그것은 우리가 도와주겠다 약조하시고는 하산을 하게 되십니다.

 

이윽고 본당에서 열심한 신자들과 함께 무당을 찾자 그는 매우 심한 열병을 해매이고 있었고 극진한 가료로써 훗날 무당은 전주교구 전농동 성당의 사무장으로 영전하게 되었다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거룩한 십자가의 침묵으로 강물같은 침묵의 평화의 침묵을 허락하시는 주님의 은총속에서 우리 나약하디 나약한 인간이 무엇이 무당의 속셈인지, 하느님의 섭리인지 때때로 알 수도 없슴을 고백하게 되는데, 아무튼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리고,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는 지혜가 필요할 것입니다.

 

모든덕의 어머니인 겸손의 덕으로 무장하신다면 성체조배의 은총때처럼 악이 먼저 지쳐 달아남을 볼 수 있는 그것처럼 ''먼저 평화''가 소중하다 사료되는 바입니다.

 

4-3. 하느님께서는 당연히 하느님에게 열심히 기도한 사람이 이기게 해 주시겠죠?

 

   역시 어려운 질문이신둣 합니다. 하느님은 어린 아이처럼 기도할 것을 끊임없이 권면해 주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한 이단자 아리우스에게 물들어 가톨릭 신자들 다수를 회유하고 있는 여호와의 증인들의 경우를 보더라도 그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엄격한 율법주의에 따른 교리에 의심을 품거나 지시를 따르지 않는 신자들을 가차없이 제명하고 쫓아냄으로써 실제로 1980년대에 여호와의 증인에서 쫒겨난 사람들이 전세계적으로 200만명이 넘는 다는 사실도 우리 스스로의 나밖에 보이잖을 수 있는 거울 이면의 수은등을 묵상케 해 주실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형제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과연 아내의 그것이 가톨릭 신앙안에 가톨릭이 워낙 인기있는 종파라서 수많은 개신교, 또 불교 신자들이 기웃하여 다시 미지근한 가톨릭 신자들을 그들쪽으로 전도해 나가는 여정속에서 우리 신앙인 스스로가 여호와의 현재의 골수 등인들을 닮은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도 할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 하느님의 눈으로 예수님의 입으로, 그리고 성령의 의지로 아멘(꼭 그렇게 됨을 믿습니다, 그렇게 되게 하여 주십시오)을 되새기는 성호경을 바칩니다. 또한 온 머리를 다하여, 온 가슴을 다하여, 온 어깨의 힘을 다하여 당신만(이웃안의 깊은 나와 너로도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믿게 하여 주십시오의 아멘을 바치기도 할 것입니다.

 

참다운 기도는 이러한 모든 사람들조차 함께 주님께 초대하는 것이기에 승자도 패자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승패의 세계에서 일히일비하여야 하는 마음을 갖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온갖 물질욕과 복지부동의 말기 현상을 초래하고 있는 이나라 축구협회의 졸속 행정이 곧 나의 모습임을 동시에 바라보고 있기도 합니다.

 

아무튼 열심히 기도한다는 개념 자체도 신앙인으로서나 오늘날의 8대 종파에 해당되는 무신론자들의 그것으로서나 어려운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있어서의 양심의 분별력은 매우 커다란 선물이 아닐 수 없으며, 이를 토대로 아내는 남편을 끊임없이 가꾸고 있으며 남편은 아내와 정원과 가정을 가꾸고 있슴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5.성당에서는 매 주일마다 노숙자, 어려운 사람, 남북통일 등 여러 지양을 두고 기도를 하는데 전국 신자들이 기도를 하면 약 200만명, 그리고 남북통일은 전국신자들이 50년정도 엄청나게 기도를 했는데 왜 아직까지 통일이 안되는 것일까요? 그리고 불교,개신교,천주교에서도 남북통일에 대해서 계속 기도할텐데 만약 통일이 된다면 천주교에서 기도해서 된 것일까요, 아니면 다른 종교에서 기도해서 통일이 된 것일까요?

 

세상속에서 결혼하지 않은 여자 승려를 우리는 ''비구(비우다)니''라고 합니다. 가톨릭의 수녀님과 같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남자 승려를 비구승이라 하지요? 역시 신부님과 같을 것입니다.

일본에서 유래된 결혼한 승려를 대처승이라 하는데, 목사님과 같을 것입니다.

 

계속하여 비유로 말씀을 올리자면 사람이 하늘에서 나무위로 떨어지면 목사라합니다.

지붕위에 떨어지면 집사라 합니다.

물위에 떨어지면 뭐가 될까요? 수사가 되겠군요.
배위에 떨어지면 뭐가 될 수 있을런지요? 선교사가 된다 말씀해주셨지요^^;

 

어쩝니까? 우리가 죄가 아직도 많기에 주님 안전에 부끄럽고 부족한 신앙인들이기에 그리고 기도를 인색하게 만드는 자아등에 먼저 관대할 수도 있기에 그것을 버리는 것이 관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은 성직자의 직계 가족이기에 조상으로부터 좋은 연구력의 유전자를 이어받고 있으나 그것을 자아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내가 보다 죄가 없을 때가 온다면 그때 성사를 받아 신앙인이 되겠다며 악습에 허덕이고 홀로 아파하기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모습과 흡사할 수도 있는 것이겠지요. 과연 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겠습니까?

 

저역시 뭔가 지나치게 사심들이 뒤범벅이 된 이야기를 나열하지 않았나 방성하며 님의 너그러우신 용서를 청합니다. 생각없는, 느낌데로의 글을 피력하다 보니 필요 이상의 장문으로 이어지기도 한듯합니다.

 

금번에 제가 메스컴을 타게 되었는데 우리 함께 기도도 할겸, 더우기 제가 주님안에 사랑하는 형제님댁도 보다 기쁜 성가정이 되기를 청하는 마음으로 다음 티비에서 때묻은 눈일 수도 있겠으나 정신 바짝차리고 노래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심은 어떨런지요?

 

가수나 시청자가 하나여야 될 경우도 필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 도민고 역시 부족하기에 오늘날 가장들이 왕따를 당하는 모습속에서의 성부 사랑을 향하기 이전에 성모님의 사랑에 자주 연연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따라서 자매님의 묵주기도에 의지하여 그것을 나누는 성심의 마음으로 보답하고 싶은 것입니다.

 

돌아오는 주일(추석)이 음력으로 8월 15일이더군요. 이날 도민고가 부끄럽게도 절두산 성당에서 미사곡을 순례객들과 함께 봉송하고 있는데, 평화방송에서 녹화한다 하더군요. 오후쯤 장애자들을 위한 미사 중계가 이어질 것입니다.

 

대장암 4기로 고생하고 있는 큰형수 조은자 카타리나와 큰형 요셉, 그리고 형제님의 가정과 이밖의 소수의 친구들도 초대함으로써 함께 기도해 주실것입니다.

 

추천도서로는 가톨릭 출판사의 ''부부 사랑의 십계명''(고 마태오 지음)을 권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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