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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안된 이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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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으로 떠나려는 그와 준비 안된 이별을 해야만 하는 지금 초점 잃은 눈은 멍하니 허공만 쳐다 보고 있다. 그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이 전신을 찍어 누르지만 어디에도 호소할 길이 없어 안쓰러운 마음에 가슴은 살을 에이 듯 아프고 눈물은 뿌옇게 앞을 가린다.
누구나 한번은 가야 할 운명일 망정 이승에서의 삶이 길어야 두 달이라는 선고를 받은 그는, 삶이 처참하게 무너진 현실 앞에 이렇게 떠나야 한다는 걸 체념하고 순순히 받아들였을까? 아님 이렇게 가기엔 너무 억울하니 조금만 더 살게 해 달라고 빌며 매달렸을까? 체념을 했든 애원을 했든 겉으로는 아무런 내색 없는 그와 무슨 일 있느냐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은 척 얼굴을 마주하지만 이별을 생각하면서 하릴없이 감정을 숨겨야 하는 아내는 참으로 고통스럽겠다.
나는 지난날 백혈병이라는 통보를 듣는 수간 너무 황당해 분노에 차 대성 통곡을 토해 냈었다. 그리고는 죽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분하고 억울해 치를 떨며 하느님을 버렸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와는 사십 여 년을 이웃해 붙어 살면서 때로는 살갑게 때로는 원수처럼 지내 미운 정 고운 정이 한 덩어리가 된 까닭에 그에게 향한 연민과 애처러움이 한없이 온 몸을 짓누른다. 부모가 있으면서도 객지에서 갖은 고생을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가족을 위해선 혼신을 다해 살아왔지만 피붙이에게서 조차 인정받지 못한 그는 술을 벗 삼아 외로움 속에 갇혀 살았다. 왜 그의 여리고 순수하기만 했던 심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힐난과 책망만 했을까? 이제 와서 그에게 했던 일들을 후회하고 넋두리 하며 자신을 질책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성한 이들에게 두 달이라는 기간은 그저 무심히 흘러갈 수도 있겠지만 타 들어가는 촛불처럼 생명이 사그라지는 그에게는 세상의 어느 것으로도 살 수 없는 하루하루 일분 일초가 소중하고 귀한 시간이다.
아직 두 달이 남았다. "하느님께서 가장 합당한 것을 주실 거란 굳은 믿음으로 십자가에 쌓인 고통을 받아 안는다. 그를 천상 낙원으로 부르실지 기적을 보이실지 주님께 무한한 신뢰를 드리며 뜻을 기다린다."는 그의 아내의 믿음에 또 한번 눈시울이 뜨거워 진다. 그래 아직 희망의 끈은 놓지 말자 다짐하며 두 손을 모은다.
추신: 이글을 읽으신 분들께 환자를 위해 주모경 한번씩만 바쳐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