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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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5일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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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10-11-15 ㅣ No.59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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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5일 연중 제33주간 월요일-루카 18,35-43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언젠가 이 삶이 지나가면>

 

    갑작스런 한파로 몸과 마음이 잘 적응이 안 되는 날들입니다. 이런 사정은 동식물들도 마찬가지겠지요.

 

    때 이른 추위 앞에 수도원 마당에서 살아가는 강아지들이며, 닭들이며, 칠면조들, 거위들도 꽤나 당황스런 얼굴들입니다. 불어오는 세찬 바람에 수많은 나뭇잎들은 오랫동안 의지해왔던 나무와 아쉬운 작별을 합니다.

 

    새빨갛게 물든 단풍잎을 하나 주워들었습니다. 찬찬히 바라보고 있노라니 잎새 하나에도 우주의 이치, 세상의 원칙이 들어있네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지닌 특징 하나, 때가 되면 떠나야한다는, 언젠가 소멸의 순간을 맞이해야 한다는 불변의 진리 말입니다.

 

    나이 들어갈수록 조금씩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 한 가지 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을 향한 새로운 눈을 뜨려는 노력 말입니다. 인간을 향한 새로운 시각을 지니려는 노력 말입니다. 삶에 대해, 인생에 대해, 하느님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려는 노력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예리코의 시각장애우가 청했던 바로 그 노력 말입니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곰곰이 살펴보니 여러 측면에서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비록 눈을 뜨고 있었지만, 정작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소중한 것들, 아름다운 것들, 정말 봐야할 것들을 보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우리네 인생 수백 수천 번 되풀이 되는 윤회의 삶이 아니라 단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 금 쪽 같이 소중한 인생이라는 사실을 볼 수 있는 눈을 청해야겠습니다.

 

    오늘 내가 이렇게 당당하게, 떵떵거리며, 자신만만하게 살아가지만, 사실은 잠시 머물다 사라져가는 뜬구름 같은 존재임을, 이 보잘 것 없고 유한한 존재의 실체를 볼 수 있는 눈을 볼 수 있는 눈을 청해야겠습니다.

 

    이번 생이 너무나 막막하고 힘겹더라도 잘 견디고 넘겨, 언젠가 이 삶이 지나가면 그림같이 아늑하고 따뜻한 하느님의 집이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미리 볼 줄 아는 눈을 청해야겠습니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남의 허물이 아니라 내 허물을 먼저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남의 부족함이 아니라 내 부족함을 먼저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남의 한계가 아니라 내 한계를 먼저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남의 죄가 아니라 내 죄를 먼저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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