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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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가위 눌릴때 어떻게 해야하나요? 너무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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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61.106.106.*]

2006-04-19 ㅣ No.4114

 

   † 찬미예수

 

   천국 문지기 직함을 가진분이 성 베드로라 합니다. 글을 쓰는 도민고는 베드로 열성 팬이었기도 합니다. 하여 성금요일 태어난 아들에게 첫 순교자 스테파노보다는 베드로의 영세명을 권면하기도 하였지요.

 

베드로를 사랑하다보니 자연히 무의무탁한 노인들을 모셨던 시골 공동체 생활도 누릴 수가 있더군요. 이 때의 경험을 토대로 말씀 전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시골 공동체에서 순수하게 봉사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참으로 평화로운 여정입니다. 새벽 5시부터 성무일도와 함께 가족에게도 버림 받았던 할머니들과 조용히 성가 연습을 나누고 미사와 묵주기도로 하루를 연 뒤에 오전과 오후 소임등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주님을 향하는 우리 신자들의 현재의 꿈이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우리가 도심속에서 새벽을 여는 최저 임금의 노가다하는 천사들처럼 때때로 매우 피곤한 육신의 보속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칠흙처럼 어두운 깊은 밤 자매님들도 소임 가운데 홀로 산속을 지나며 그 도움을 나눌 때면 묵주기도를 통하여 성모님 손 꼭 잡고 성부께 나아가기에 어떠한 분심에서도 자유로운 그런 여정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본인은 상담을 청하신 형제님과는 조금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선과 악이던 쉽게 무시를 하는 성향이기에 장점도 많치만 단점도 많은 그런 성향이라 생각됩니다. 따라서 살면서 두렵거나 가위눌리거나 아파본 경험이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육체적으로 말이지요. 자랑삼아 하는 이야기는 아니지요.

 

그런데 하루는 몹시 피곤한 육신 가운데 경상도 말로 '씨껍~'하는 사건이 생기기도 하였습니다. 평소의 두려움 없던 내게 머리털이 쮸삣하고 서는 찰나의 눈길이 스쳤던 것이지요.

 

그것은 저의 차량 뒷면에 천주교의 어떠한 스티커가 부착되어 있었는데, 어둠 속에 잠시 집으로 휴가를 떠나려 산길을 내려오던 차에 백밀러를 통하여 그만 그것이 귀신 얼굴로 착각이 된 것입니다. 물론 연이어 그것이 스티커인줄 아는 평상심으로 돌아왔습니다.

 

폭설이 내린 어느날은 신부님 지프차를 몰고 내려올 때 만류하는 베로니카 자매의 그것을 무시하며 사회적 급한 습성으로 2단 기어를 놓고 내려오는데 눈길에 그만 차량이 낭떠러지로 미끌어지는데, 아무 생각이 안들더군요. 차는 신기하게도 3Cm를 남겨두고 선명한 동작으로 멎었다는 것이 또한 저의 죄와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피곤할 때, 악이 그 틈새를 노림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좀 더 포괄적으로 말씀드린다면 일지기 이범주 바오로 신부님(성령기도회 지도 신부님)의 말씀데로 사람은 자연법칙에 의해 움직이고, 악령은 영적인 법칙에 의해 움직이기에, 우리의 감성은 육체과이며, 이성은 정신과인데, 악령이 정신과의 틈새를 파고 들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감성과인 육체가 병고에 힙쌓이거나 극심한 피로에 힙쌓이면 기도하기 힘들거나 주님사랑 망각속을 헤메이는 것도 한 예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형제님의 경우는 조상 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와도 관련이 있겠습니다.

 

완전한 사랑이시며 전능하신 주님 사람을 모르는 일반인들은 유전자 하면 물질적 유산 상속을 먼저 떠 올릴 수 있겠습니다. 아무것도 없고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 진정 부자일진데 재벌 일가들 경우는 물질적 유산 상속에 많은 마음을 써야 함이 측은하기도 합니다.

 

우리도 준비하지 않으면 보모님이 선종하실 때에 형제간에 알게 모르게 그것때문에 논쟁하고 심지어 피터지게 원한 맺는 그런 경우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는것이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준비하지 않는 삶이면 폭리를 취하는 허가 맡은 도둑눔들 병원측에도 울며 겨자 먹기로 많은 돈을 지불하기도 하여야 할 것입니다.

 

가톨릭 안에서도 양다리 걸치기 좋아하는 것이 영원한 생명적 삶 앞에 어린 우리들의 원죄와 관련이 있다면, 이 안에서 주님 사람보다 돈을 더 밝히거나 상대의 고통보다 내 고통이 먼저 보이는 삶을 산다는 것은 부끄러움이기 이전에 있는 그대로의 현상일 것입니다.

 

따라서 형제님의 경우도 원론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완전한 기도인 미사 참례를 열심히 참례하라는 주님의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은 요나의 고통을 제공하는 사탄에게도 요나의 생명만은 헤치지 말라 하시며 그것을 묵인하셨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형제님이 찾는 그분은 장엄하고 멋진 곳이 아닌 어눌하고 조촐하며 고통스러운 곳에 계실지도 모르기에 형제님으로 하여금 하느님의 걸작품으로서의 회복을 위하여 즉 평화의 도구가 되게 만들어 주시고자 베풀어 주시는 주님의 은총인것입니다. 아니, 우리 신앙인은 그렇게 됨을 믿고 악과 장렬히 투쟁해야 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형제님은 실제 좋은 성화방법으로 그리 대처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활 8일 축제 기간을 통하여 주님은 이미 부활하셨기에 우리의 온갖 악의 늪에서의 고통도, 고심도 해방될 수 있도록 빈 무덤만을 남겨주고 계시기도 합니다.

 

현재 꿈에 가위가 눌리는 과정에서 묵주기도등의 성화 대처 방법을 쓰신다 하셨는데 고통중에 쓰는 기도도 훌륭하지만 고통중에도 감사할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하여 평상시에도 즐겨 그것을 사용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어서 누군가 내게 기분 나쁜말을 하였을 때 내가 과연 감사하는지, 그냥 바보처럼 수용하고 있는지, 아니면 앞으로도 가위를 눌리려는 귀신처럼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대처하고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감사하지 못하는 경우라면 형제님에게도 선종예식서에 잘 나타나 있는 2,000여년간 전승되어 온 가톨릭의 풍성한 찰고기도등을 통하여 실전 연습을 겸하며 특별히 그리스도의 은총을 모른채 갑자기 가족을 떠나보낸 저분들의 아픔을 목격하며 조용히 기도해 주심을 권하고 싶습니다. 당장 그런곳을 일부러 찾기가 곤란하시다면 살다보면 우리가 좀더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의 창을 열어둘 때에 수많은 가족 친지 이웃들의 초상 예절에 참례하게 될 것입니다.

 

그 가운데 그리스도를 모르는 저분들의 아픔을 우리가 자연 공유할 수 있기에 이분들이 대개, 이별을 위한 이별로의 죽음을 바라보며 슬퍼할 때 그 고통은 끝이 아니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은총임을 실감할 수 있는 기도를 바치는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신자건 비신자건 누구나 이러한 기쁜 소식을 알려주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러나 빈인빈 부익부로 그리스도 신자들의 초상시에는 그 죽음의 와중에서의 천사나라와 악마나라의 영업맨들과의 대처 기도(연도)시에는 연대 이상급 부대로써 악을 섬멸할 수 있는 기도 함포 사격도 보낼 수 있으나 그리스도 은총을 모르는 저 불쌍한 가족들에게는 '나의 자아'가 앞설 수 있기에 그저 한켠에서 홀로 기도할 수 밖에 없는 자신만을 바라보기도 할 것입니다. 그것도 걱정 마십시오. 겸손하게 기도하다 보면 성령의 힘이 충만되고 또 성령의 은사는 모든이에게 자연스러운 주파수로 이어져 오히려 그 때에는 넘치는 사랑이 탈일 경우가 올 것입니다.

 

아무튼 형제님이나 저나 지금은 평화의 방법론을 나누고 있습니다.

 

물론, 이때에는 언어 폭력, 육의 폭력, 영의 폭력에서도 자유로운 가운데 점점 더 나의 자아가 없어지는 무색 무취의 물같은 사랑의 기도를 나누며 홀로이 머물다가 다름 사람이 되어 나올 수 있는 은총도 구가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론은 시공을 초월하여 내가 있고 싶음 있을 수 있는, 가고 싶으면 이미 와 있을 수 있는 가까운 천국의 주인공이 되기 위하여 미사 참례를 보다 즐겁고도 의미있게 누리라는 것입니다.

 

미사 참례때에 그리스도의 제단위에 그것을 바칠 수 있는 힘을 구하십시오. 글을 쓰는 본인은 한동안 집착으로 나의 모든것을 바치는데에 혈안이 된적도 있었는데 그리하진 마시고 그냥 미사 참례때에 그리스도의 제대를 먼저 바라보면 그만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면 성체조배를 통하여 모든 분심, 가위 눌림도 지가 먼저 지쳐 달아날 수 있도록 무시할 수 있는 은사도 허락하실 것입니다.

 

묵주기도도 또한 성모님 손잡고 성부께 나아가는 예수님의 신약 여정이 강물같은 평화로도 흐를 것입니다.

 

아침기도, 성령께 바치는 기도도 보다 만유위의 으뜸이신 주님께 먼저 바치는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전입가경의 성사생활의 기쁨과 평화를 누리는 것 역시 시간문제일 것입니다.

 

이제 형제님의 아픔을 치유해주시는 성 라파엘의 은총 전구로써 처방전을 전하라 하십니다.

 

홀수날과 짝수날에 바치는 성령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잘바치시고 형제님의 아픔을 주님과 함께 더욱 공유 의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신다면 참 좋은 몫으로 거듭나실 것이며 이 기도를 성실하게 바치신다면 무엇이 하느님의 일인가?의 성 미카엘, 하느님의 권세 성 가브리엘 대천사도 24시간 합류하는 은총으로 대처하는 것 역시 시간 문제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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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홀수날에 바치는 성령께 드리는 기도

 

 

오소서 성령이여 창조주시여

 

신자들 마음속을 찾아주시어

 

당신이 창조하신 우리가슴을

 

천상의 은총으로 채워주소서

 

 

당신의 그이름은 빠라끌리또(협조자, 변호자, 위로자)

 

지극히 높으옵신 하느님선물

 

생명의 샘이시며 불이시옵고

 

사랑과 영적기름 부으심이며

 

 

당신의 일곱가지 은혜지니신

 

하느님 아버지의 오른손가락

 

성부의 언약대로 내려오시어

 

우리입 말씀대로 채워주시네

 

 

빛으로 감각들을 비춰주시고

 

마음에는 사랑을 부어주시며

 

영원한 능력으로 도와주시어

 

언약한 우리육신 굳게하소서

 

 

원수를 멀리멀리 쫓아주시고

 

언제나 당신평화 내려주소서

 

앞장서 이끄시는 당신손길로

 

해로운 모든것을 피하리이다

 

 

성령의 힘을입어 성부를알고

 

성자의 그힘으로 알게하소서

 

성부와 성자께로 좇아나시는

 

성령이신 당신을 항상 믿으오리다.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드리며

 

죽은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성자와 더불어 빠라끌리또께

 

영광이 영원히 있게하소서. 아멘.

 

 

 

2. 짝수날에 바치는 성령께 드리는 기도

 

 

임하소서 성령이시여,

 

당신 빛의 기운을

 

하늘로부터 쏘아 보내소서

 

 

임하소서,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시여

 

임하소서, 은혜를 베푸시는 이시여

 

임하소서, 마음의 광체시여

 

 

당신께선 지극하신 위로시며

 

영혼의 반가운 손님이시오

 

감미로운 상쾌함 이시나이다

 

 

수고함의 쉼이시오

 

더움에 그늘이시오

 

울음에 위안이시로다

 

 

오, 지극히 복되신 빛이시여

 

당신을 믿는이들의

 

마음속을 충만케 하소서

 

 

당신의 도우심이 없이는

 

사람않에 해롭지 않은 것이

 

아무것도 없나이다

 

 

더러운 것은 씻어주시고

 

마른것은 적셔주시며

 

병든것은 낫게하소서

 

 

굳은것은 부드럽게 하시고

 

찬 것은 품어 더웁게 하시며

 

그릇된 것은 바르게 하소서

 

 

당신을 믿고

 

당신께 의탁 하는 이들에게

 

거룩한 칠은을 베푸소서

 

 

덕행에 맞갖은 공로를 주시며

 

구원에 이르는 마침을 주시고

 

영원한 즐거움을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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