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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어른의 딸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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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10-07-22 ㅣ No.53555

 

인 어른의 딸 사랑

 

    그녀의 집에 처음 인사 가던 날, 나는 그녀의 어머니께 드릴 커다란 꽃바구니를 준비해 집 근처 카페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잠시 뒤 나타난 그녀는 한참 말없이 앉아 있더니 조심스럽게 자기 아버지가 하반신 불구라 앉아 지내는 장애인이라고 했다.

 

    순간 당황한 내가 아무 말도 못하자, 그녀는 집에 돌아가 다시 잘 생각해 보라며 가버렸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불현듯 그녀가 내 곁에서 영원히 떠나 버릴 것 같은 두려운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대학에 들어간 나는 공부는 커녕 학생운동에 뛰어들어 구속과 제적, 복학을 반복하다 어느새 서른이 되었다.

 

    이듬해 봄에 졸업을 앞두고 있었지만 취업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었던 나는 곧 마음을 가다듬고 그녀에게 전화했다.

 

    “나야, 말도 안 들어 보고 그렇게 가면 어떡하니? 빨리 와.”

 

    잠시 뒤 다시 나타난 그녀의 얼굴은 발그레 상기되어 있었다. 나는 겸연쩍게 웃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불편한 몸으로 작은 금은방에서 세공 일을 하며 어렵게 살아온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일찍 시집가 버린 언니, 어린 동생.

 

    그녀는 집안 사정 때문에 일찌감치 공부를 포기하고 십여 년 동안 공장에 다니며 돈을 벌었던 것이다. 나는 한때 크고 거친 그녀의 손이 불만이었지만 사정을 알고 나서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그녀의 부모님께 큰절을 올리고 보니 그녀는 아버지를 너무나 쏙 빼닮았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말씀 드렸다. 그녀의 어머니는 결혼을 승낙하셨지만 아버지는 탐탁치 않은 눈치였다.

 

    새해를 맞아 그녀와 같이 속리산에 여행 갔다가 막차 시간을 넘겨 버렸을 때였다. 나는 울먹이는 그녀를 달래며 집으로 전화를 했다.

 

    마침 아버님이 받으셨는데 대뜸 '이 XX의 ○○야! 그러면 미리 전화라도 해줘야지!' 하면서 벌컥 화를 내고는 전화를 탁 끊어 버리셨다.

 

    그렇게 험한 말씀을 하시다니….

 

    그녀에겐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지만 내심 한동안 불쾌했다. 그리고 며칠 뒤 우리집에도 인사를 드리러 갔다. 그녀의 아버지가 몸이 좀 불편하시지만 아버지께서는 드디어 술 한 잔 나눌 수 있는 사돈이 생겼다며 환하게 웃으셨다.

 

    그 해 가을 우리는 드디어 결혼식을 올렸다.

 

    그녀는 아버지가 휠체어를 타고서라도 함께 입장하기를 바랐지만, 장인어른이 한사코 싫다고 하셔서 둘이 나란히 팔짱을 끼고 입장했다.

 

    그리고 설악산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비행기를 타보지 못한 나는 제주도로 가자고 했지만, 그녀는 평생 나들이 한 번 하지 못한 아버지가 가슴에 맺혀 비행기 타기가 그렇다고 고집을 부렸다. 나중에 같이 조금 더 모아 아버지를 모시고 함께 제주도를 가자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평생 한 번뿐인 신혼여행인데 또 아버지 타령이냐고 옹졸하게도 짜증을 냈다.

 

    그런데 결혼 뒤 얼마 안 되어 밤늦게 처갓집에서 급한 전화가 왔다.

 

    평소 심장병에 당뇨 증세가 있던 장인어른이 응급실에 입원하셨다는 것이다. 아버님은 병세가 안 좋아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아내와 나는 거의 한 달 내내 병실을 지켰다.

 

    변두리에 있던 신혼집과 시내에 있는 병원을 오가는 일은 사람을 많이 지치게 했다. 게다가 날로 불어나는 병원비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장인어른을 뵐 때마다 울기만 하는 아내 앞에서 싫은 내색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조금씩 장인어른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던 어느 날이었다.

 

    혼자 병실에 있는데 아버님이 갑자기 힘없는 손으로 내 두 손을 꼭 잡으셨다.

 

    “난 처음에 자네가 마음에 안 들었어. 몸도 깡마르고 직업도 없고. 내가 우리 딸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어려서부터 너무 고생만 시켜서 넉넉한 집안에 시집가 행복하게 잘 살길 바랐었는데… 지금 보니 자네 만한 사람이 없군. 내가 잘 해주지 못하고 가지만 자네가 우리 딸 꼭 좀 행복하게 해주게.”

 

    “왜 그런 말씀하세요. 얼른 나아서 저희와 같이 제주도에 가셔야죠.”

 

    내 손을 잡은 장인어른의 손을 내려다보다가 아내가 얼굴뿐 아니라 손까지 아버지를 꼭 빼닮은 사실을 알았다.

 

    그날 저녁, 장인어른의 상태가 갑자기 위급해졌다.

 

    얼마나 힘든지 장인어른은 숨을 가쁘게 쉬다가 가족들에게 변변한 유언 한 마디 못 하고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좋은 세상에 가서 다리 쭉 펴고 실컷 뛰어다니라는 장모님과 아내의 울부짖는 모습을 보니 내 가슴도 한없이 아팠다.

 

    요즘도 가끔 피곤에 지쳐 잠든 아내의 손을 슬며시 잡을 때면 문득 장인어른이 생각난다. 그리고 사위의 손을 꼬옥 잡고 당부하시던 그날의 말씀을 마음에 되새긴다. 아직도 장인어른은 아내의 모습 속에 남아 있다.

 

    이제 아내처럼 어깨도 넓고 손도 두툼한 아이를 낳아 외할아버지 얘기를 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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