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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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 수용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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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옥 [smalllark] 쪽지 캡슐

2002-01-11 ㅣ No.3141

주님 공현 후 금요일 말씀(루가 5,12-16)

 

어제에 이어 또 병원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 조금 망설여지지만, 작년에 하도 특이한 체험을 하면서 이 대목이 생각났기에 할 수 없이 쓰고있다. 수술 후에 실시되는 항암요법으로 방사능 동위원소 한 알을 먹고 독방에 갇혀 삼일간 있었다. 누구도 면회도 안되고 심지어는 의사, 간호사도 없이 미리 교육받은 대로 오로지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격리치료이다. 내게서 방사능이 방출되기 때문이다.  

 

처음 설명을 듣고 입원하기 위해 짐을 꾸리면서 아무도 방해않는 침묵 피정을 떠나듯이 한편 마음이 들뜨기도 하였다. 삼일동안 읽을 책을 잔뜩 꾸려가지고 폼을 잡고 갔는데... 정작 삼일간 한 장도 읽지 못하였다. 한 장기에 오래 방사능이 머물러 있으면 장기가 손상된다고 하루종일 움직여야 했고, 침샘의 피폭을 막기 위해 신 것을 계속 먹고, 내장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하루 페트병 댓병으로 세 개씩 물을 마셔대야 했으니까... 게다가 들어간 것을 빼내기 위한 작업은 어찌나 고되었는지... 몇 시간 간격으로 화장실을 드나드는 것은 필수였다.

 

그런 고욕이 없었다. 물로 배가 잔뜩 불러 죽겠는데 간이 안된 음식을 먹는 고통. 또 음식을 나르는 사람과 하루 한번씩 구토약과 변비약을 갖다주는 간호사의 노크 소리만 들으면 두꺼운 철판 뒤로 몸을 숨기고 절대로 내다보면 안되었다. 알아서 하는데도 매 식사시간마다 문을 연 그들은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다.  "쳐다보지 말아요! 나오지 말아요!" 팔만 간신히 들여보내 식사를 주느라고 국을 엎지르기 일쑤였다. 가뜩이나 구역질이 나고 머리가 아프고 각종 부작용에 시달리느라 고통이 말이 아닌데... 도무지 환자는 안중에도 없고 자신들만 생각하는 지나친 태도였다.

 

처음엔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다가 점점 화가 나더니 나중엔 서럽기까지 하였다. 그렇게 철저히 격리되어 지내며 혼자 고통과 싸우면서 바로 예수님과 만났던 나병환자가 생각나 눈물이 났다. 삼일간도 그러한데 일생을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과 격리된 채로 마을 밖, 거치른 광야의 토굴같은 곳에서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해나가야 했던 그들. 어쩌다 사람이 멀찌감치 지나가면 "더럽다! 더럽다!" 하고 외치지 않으면 율법의 저촉을 받게 되어있었다. 육신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나병이라지만 문드러져 버린 흉측한 몰골에 피고름이 범벅된 옷을 찢어 입고 머리를 풀어헤친 자신의 모습에서 내면적인 고통과 슬픔이 오죽했을까?

 

그들은 그저 삶을 포기하고 죽지 못해 살고 있을 뿐 어떤 희망도 없었다. 어쩌다 병이 낫는 수도 가끔은 있어서(당시엔 악성 피부병도 종종 문둥병으로 오인했다. 레위 13장 참조) 이때는 사제에게 보여 깨끗하게 되었음을 공식으로 확인받아야 했다.

 

그리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길고 번거로운 정화예식이 남아있었는데, 그 절차가 어찌나 까다로운지 그 예식의 순서와 면죄 제물, 속죄 제물을 어떻게 바쳐야 하는지에 대해 레위기 14장 전체에 걸쳐 쓰여져 있다. 도대체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그들의 삶에서 그런 예물을 바칠 능력은 어디서 마련될 수 있었는지, 어쩜 그만큼 도로 낫는 사람이 거의 없는 유명무실한 법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보라! 예수님의 놀라운 치유능력과 그분의 치유행위를....

한마디 말씀으로 그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으면서도 굳이 상한 몸을 어루만지시는 그분의 자애로움을....

예수님은 이렇게 간단한데, 이렇게 자애로운데, 이렇게 자유로운데, 오로지 인간만을 지극히 사랑할 뿐인데...

소위 깨끗한 줄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렇게 복잡하고, 그렇게 까다롭고, 그렇게 야박하고, 그렇게 자기만을 보호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니 주님, 당신께 의지하지 않고 누구에게 의지하겠습니까? 당신을 믿지 않고 누구를 믿고 살아가겠습니까? 당신께 나의 상처를 보이지 않고 누구에게 보이겠나이까? 그 더러운 상처에도 불구하고 나를 인간 대접해 주실 분이 당신말고 또 누가 있겠습니까? 당신만이 나의 치유자이시고 나의 사랑이십니다.

 

이 사랑 누구에게 설명해도 부족하기에 당신은 그만 함구하라고 하시나봅니다. 겪어보기 전에는 정말 파악할 수 없는 당신 사랑이시기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셨나 봅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서 암말말구 그냥 네 몸이나 추수리라 하셨나봅니다. 주님, 그래서 저도 더이상 이야기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립니다. 주님, 저도 주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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