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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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가르치기(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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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우진 [joyro] 쪽지 캡슐

2002-01-14 ㅣ No.3157

안식일에 예수께서는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사람들은 그 가르침을 듣고 놀랐다.

그 가르치시는 것이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르 1,21-22)

 

 

누군가를 가르친다고 하는 것이 단순히 전문성 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지 싶다.

특히 신앙과 연관된 것을 가르친다는 것은 더욱 그런 것같다.

교회가 2000년의 역사를 통해 증명하듯이

삶과 유리된 가르침이란 참으로 공허함을 준다.

신앙이란 몇 마디 말로, 몇 줄의 글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이기에 더욱 그런 듯하다.

 

교회 안에서 청소년들의 교육에 있어서 전문가라는 살레시오 회에 몸담고 있는 나,

청소년 수련관이라는 곳에 있기에

아이들의 교육 프로그램에 관한 한 전문가라는 말을 듣고 있는 나,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나의 신앙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님은 주지의 사실이다.

아무도 나의 신앙의 정도를 보고, 신앙 생활을 해나가는 모습을 보고서

위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닌 것같다.

 

단지 세상의 관점으로 바라볼때,

나의 간판만을 바라볼 때 붙여질 수 있는 그런 껍데기들(?)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심을 펴실 때, 권위와 새로움이 있었다고

오늘의 복음은 전한다.

그것은 바로 그분의 가르침이

하느님께 대한 신앙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요.

그렇기에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너무도 새로운 것이었으리라.

 

 

많은 청소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자신들이 신앙에 뿌리를 두고서

’새롭고, 권위있는’ 가르침을 펴는 이들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말이나, 글로 공허하게 내지르는 것이 아닌

삶으로 전해지는, 감동으로 전해지는 그런 가르침 말이다.

이 시대에 과연 그런 가르침을 펴는 이들은 누구일까?

청소년들은 그런 모델을 찾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그런 사람이 우리 주변에 있으나

내 눈이 가리워 그 사람을 못 알아보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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