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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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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 [johnmaria91] 쪽지 캡슐

2015-12-18 ㅣ No.86546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그때 그사람 (2011)


지금 살고 있는 뉴저지 집으로 이사를 온 것이 만으로 18년이 넘었습니다.


이사를 하고 한 달인가 지나서 태어난 막내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참으로 긴 시간을  이 집에서 살았습니다.

아이들 교육이며 주거환경은 더 바랄 것이 없을 정도로 좋지만,

이곳 뉴저지 집에서 
일터가 있는 뉴욕의 부르클린까지 출퇴근 하는 일은 
정말이지 내겐 ‘쓴 잔’이고 ‘십자가’입니다.

 특별히 맨하탄의 동쪽 강을 끼고 
남북으로 난 고속도로인 FDR을 운전할 때면 얼마나 긴장이 되는 지 모릅니다.

차선이 좁을 뿐더러 커브길이 많은데도, 
차들이 속도를 내서 달리기 때문에
운전하고 다니는 것이 18년이 지난 요즘도 두려울 정도입니다.

강변 도로니 경치를 구경하며 다니는 낭만도 있을 법 하지만, 
길의 상태가 이러하니 
긴장을 늦출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어느겨울 날이었습니다.

오후 서너 시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퇴근할 때가 되어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계속 쏟아지니, 
교통 사정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겨우 도심을 벗어나 FDR에 들어서니 길이 주차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3-4미터 앞으로 전진하고는 1분 동안 서 있고 
다시 3-4미터 다시 전진하는 한 없이 지리한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런데 차가 정지하는 시간이 길어지다보니
눈길을 강변 쪽으로 줄 여유도 생겼습니다.

비록 날은 어둡지만 눈이 내리는 밤의 강변 경치는 그런대로 운치가 있었습니다.

눈이 내린 덕에 
평소엔 구경할 수 없는 강변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고 
내심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언제고 눈이 오는 저녁 
이 강변을 아내와 함께 걸어보리라고 
제법 낭만적인 생각에 빠져 있을 무렵, 
생소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강변의 가로등과 함께 산책로에 늘어선 벤치 위엔 
비닐로 천막을 치고 누군가가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풍경은 한 군데가 아니라 운전하고 가는 길 내내 계속되었습니다.

선진국이라고 하는 미국, 
그것도 뉴욕에, 이렇게 추운 겨울에 
집 없이 한데잠을 자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참으로 충격이었습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서 침대에 고단한 몸을 뉘였어도, 
쉬이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내가 특별히 자비롭고 사랑 많은 사람이 아님에도, 

추운 곳에서 떨며 잠을 자고 있을 그 사람들을 생각하니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자고 있는 내 자신이 죄스럽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래서 언제고 그런 사람들을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랑과 자비가  머리에서 가슴까지, 
그리고 다시 손과 발에 이르기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먼 지,  

그리고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나 자신을 보며 알 수가 있었습니다.

내 인색한 모습을 돌아볼 수 있는 
수 많은 부끄러운 기억 중 한 토막이 떠오릅니다.

12월의 바람이 아주 매섭던 어느 겨울 새벽,

FDR에서 나와 직장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윌리암스버그 다리를 건너기 전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걸인 노인이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전에  먹었던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그 노인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앞만 똑바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럴 때는 빨간 신호등 빛이 초록 색으로 바뀌는 시간이 
참으로 길고도 길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아침에도, 
그 노인은 전 날 그 자리에서 똑같이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저 노인은 다른 데 가서 구걸하지 왜 하필이면 여기서만 한다지?”
하며 속으로 짜증을 내었습니다.

그날도 애써 눈을 맞추지 않고 앞만 똑바로 보고 그 자리를 벗어났습니다.

마음 속으로는
“그 노인은 도와줘 봐야 그 돈으로 술이나 사마실 게 틀림 없어. 그러니 안 도와주는 게 그 노인을 돕는 일이지, 아무렴.”

하며 인색한 내 자신을 합리화했습니다.

솔직히 몇 푼 주기 위해 창문을 열었을 때, 
차 안으로 밀려드는 역겨운 냄새며,

돈을 건네주려다  몇 겹 딱지처럼 때가 쌓인 
불결한 손과의 접촉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럭저럭 한 주가 지나고 주말이 되었습니다.

토요일, 일요일 이틀 동안 기온은 급강하해서 섭씨로 영하  15도까지 떨어졌습니다.

뉴스에서는 강추위 소식과 함께, 
추위로 얼어죽은 사람에 관한 소식도 간간히 흘러나왔습니다.  

뉴스를 들으며 애써 외면했던 그 걸인 노인이 걱정되었습니다.

“혹시 이 추위에 얼어죽은 것은 아닐까?” 

마음이 불안해졌습니다.
나의 인색함이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그래서 월요일 출근 길에 만나면 
그 노인에게 한 끼 식사를 대접하는 맘음으로,

그냥 마지못해 던져주는 돈이 아니라 
선물이 될 수 있도록 
빳빳한 새돈으로 마련한 10달러 지폐를  
차 안 손이 닿기 쉬운 곳에 놓아두었습니다.

돈을 찾느라 신호가 바뀌면 안되니까 말이지요.

불안한 주말을 지내고 출근하던 월요일 아침, 
노인이 있던 그 자리에서 신호대기를 하는 동안,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 노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다음 날도 
그 노인은 다시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 노인이 혹시 예수님이 아니셨을까?”

그토록 추웠던 그해 12월의 겨울엔  
예수님께서 늙고 힘없는 거지의 모습으로 내게 찾아오셨던 것 같습니다.

성탄을 맞으면서도 
정작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던 그 해 12월의 바람은
 깨진 창문으로 스며드는 동짓바람처럼
내 가슴 속을 시리게 후벼 팠습니다.

기억은 희미하지만 ‘아함경’이라는 불경에 나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소를 키우며 젖을 짜서 생계를 유지하는 목축업자가 있었는데 
하루는 꾀를 내었습니다

. “매일 아침마다 이렇게 일찍 일어나 힘들게 젖을 짜지 말고,

한달에 한 번 짜면 훨씬 편할텐데 내가 왜 이 고생을 하고 있지?”

이런 생각에 이른  목축업자는 다음날 부터 게으름을 피우며

우유를 짜는 일은 물론이거니와 소를 돌보는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 달이 지나고 목축업자는  
한 달 동안 비축해둔 우유를 짤 기대감으로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런데 목축업자의 기대와 어긋나게도
소에게서는 한 방울의 우유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매일 매일 얼마만큼의 우유를 짜야
새로운 우유가 계속 생겨남을
꾀많은 바보인 목축업자는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선이나 나눔의 행위도 해야할 그 즉시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나에게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영원히잃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두 눈은 앞만 쳐다보도록 있는 것이 아니고,
주변의 이웃도 바라볼 수 있도록 내게 주어졌으며,

나의 손은 움켜쥐는 일 뿐 아니라
이웃에게 내가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도록 주어진 것임을
그 노인은 가르쳐 주었습니다.

오늘 그 추웠던 그해 12월의 칼바람이 다시 불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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