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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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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2-03-01 ㅣ No.3323

3월 2일 사순 제 2주간 토요일-루가 15장 11-32절

 

"그는 하도 배가 고파서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로라도 배를 채워 보려고 하였으나 그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

 

아버지를 떠나갔던 작은아들이 재산을 탕진하고 난 다음 맞이한 상황은 비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지니고 있던 돈이 모두 떨어진 것을 안 주변 사람들은 하나 둘씩 작은아들을 떠나갔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시 심한 흉년까지 들어 작은아들은 하루하루를 연명하기도 힘든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 처한 작은아들에게 있어 최선의 선택은 면목이 안서겠지만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작은아들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유다인으로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은 삶을 선택합니다. 우선 당장 먹고 살아야했기에 이교도들의 고장, 이교도의 집에 날품팔이 일꾼으로 들어갑니다. 그곳에는 안식일도 제사도 없었으며 정결 예식도 없었습니다. 주인은 유흥가만 전전했기에 특별한 재능이 없는 작은아들에게 돼지 치는 일을 맡겼습니다.

 

당시 유다인이 돼지를 친다는 말은 도저히 용납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레위기에서는 "돼지 치는 사람은 저주를 받으리라"고 언급할 정도로 유다 사회에서 돼지는 부정한 동물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런데 작은아들은 어쩔 수 없이 돼지를 치게 되었습니다. 이 말은 이제 작은아들이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말입니다. 종교도 민족도 하느님도 모두 다 포기한 사람, 갈데 까지 간 사람이 바로 작은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갈 데까지 간 작은아들, 모든 것을 포기한 작은아들,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는 작은아들과 다시 한번 새 계약을 맺으십니다.

 

힘없이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아무런 해명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으십니다. 돈을 어디에다 썼는지도, 그간 얼마나 나쁜 짓을 많이 했는지도 따지지 않으십니다.

 

무조건 작은아들에게 달려가신 아버지는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춥니다. 유다 사회 안에서 입을 맞춘다는 것은 "이제 우리 둘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표현입니다. 또 아버지는 작은아들의 손에 가락지를 끼워주심으로 다시 한번 자유인으로서의 권리를 회복시키십니다. 이는 요즘의 신용카드와도 같은 의미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잔치를 준비시킵니다. 잔치는 아무 때나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생을 통해 가장 중요하고 기쁜 순간, 새 생명의 탄생이나 새로운 가정의 탄생의 순간 등 각별한 순간에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작은아들이 돌아온 것을 죽었던 아들이 다시 살아온 것으로 여기고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행여 떠나간 작은아들이 돌아올까 싶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마을 입구에서 목을 길게 늘어트리고 기다리시는 자비 충만한 분이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봐라! 이 놈아! 내 그럴 줄 알았다. 왜 그따위로 처신하느냐?"고 따지지 않으시는 분, 그저 세파에 지칠 대로 지친 우리의 모습이 너무도 안쓰러워 아무 말 없이 우리를 당신 품에 꼭 안으시는 분이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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