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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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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옥 [smalllark] 쪽지 캡슐

2002-08-06 ㅣ No.3915

연중 제 18주간 화요일 말씀(다니 7, 9-14; 마태 17,1-9)

 

나는 기적적인 신비체험 없이도 신앙할 수 있고, 오히려 그런 체험을 했다는 사람들을 유아기적 신앙인으로 또는 정신심리학적으로 주의 관찰해야 할 인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오만한 생각을 바꾸게 된 신비체험이 내게도 일어났다.

 

암이라는 선고를 받고도 의사들의 파업으로 인해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고, 수술한 후에도 이미 다른 곳에 암세포가 전이(轉移)되어 있었다는 또 한번의 절망을 경험하는 우여곡절의 기간 동안, 나에게 벌어진 일에 대해 나름대로의 신학적(?)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IMF 이후에 경제적인 위기까지 겹쳐있었던 터라 남편에게도, 수능시험을 앞두고 있는 아이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혼자 끙끙대며 이중 삼중의 괴로움을 안고 있었던 시절, 혼자만의 무료한 시간을 그날의 ’복음 묵상’을 써서 인터넷에 올려놓는 일로 소일하고 있었다.

 

그 작업은 마치 타들어가는 생명의 초를 매일 제단에 바쳐 올리는 심정이었다. 매일의 복음 안에서 들려주시는 하느님의 전언을 지푸라기처럼 움켜쥐고 오직 그분과 씨름을 하고 있었다. 그간의 알고 있던 하느님에 대한 지식을 총 동원하여 그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기를 썼던 것 같다. 아닌게 아니라 많은 날들을 그 안에서 위안을 찾았지만 어느 날은 나락으로 떨어져 꼼짝도 못했다.

 

엎치락 뒤치락 하던 많은 날들도 지나가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슬픔도 자책도 더 이상의 동요도 없이 하느님의 뜻을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 침대에 누워 쉬고 있다 잠이 들었나보다. 눈이 부시게 희고 커다란 손이 가슴을 누르고 있음을 알았다. 집에서 키우던 개가 그 손을 치우게 하려고 짓고 뛰어다녔으나 손은 꼼짝도 않고 그대로 있었다. 가슴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아주 잠이 깨었다. 꿈이었다.

 

커다란 흰 손이 눈앞에 선명하게 다시 떠오르며 멍하니 앉아 있으려니 왠지 기도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비가 오는 공원으로 묵주를 들고 나갔다. 공원을 돌며 내가 아는 모든 아픈 사람들을 떠올리며 기도했다. 마음을 접었다 하면서도 낫고 싶다는 무의식이 표출된 것 같아 슬픔이 몰려왔다.

 

그 꿈이 일상적인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은 며칠 뒤 몸 상태가 서서히 달라지고 있음을 알아챈 후였다. 겨우 1.5 Km의 공원을 한번 돌고 나면 얼굴 전체에 발진이 돋을 만큼 건강이 엉망인 때였다. 하루에 두세번씩 누워서 쉬어야했었는데, 하루 종일 한번도 눕지 않았다는 것을 자리에 들면서야 비로소 알아채고 놀랐던 일이 사흘, 나흘 연이어졌다.

 

더구나 눈에 띄는 표징이 하나 있었는데 평소에 너무나 열망하면서도 스스로의 힘으로 어쩌지 못했던 악습 하나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 저절로 없어지고 말았다. 이런 외적 싸인들을 통해 조금씩 꿈에서 본 손이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지만, 수술 후에 암세포가 전이되어 있음을 알고 나서 실망했던 때를 생각하니 조심스럽게 관찰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조심성과는 별개로 마음 안에는 벌써 고요와 평정이 자리하고 격렬하지는 않지만 잔잔한 기쁨과 평화가 줄기차게 흐르고 있음을 느꼈다. 이미 생사를 떠나 모든 것을 의탁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그러한 평화를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주 깊이 하나되어 있음을 느끼는 충족한 하루 하루였다.

 

보름 후에 가슴에 전이되어있던 암세포마저 말끔히 사라졌다는 검사결과를 들었을 때, 의사는 ’마치 알고 있었던 사람 같네요’라고 말했을 정도로 담담했다. 이미 살아날 것인가 아닌가는 부차적인 문제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그 체험은 깊이 각인되었고 가끔씩 그 의미가 무엇인가를 되새기게 된다.

 

오늘 복음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예수님, 그분은 우리를 살려주실 수 있는 하느님이시다. 그분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도 못하는 인생의 신비, 그 무지의 구름 위로 간혹 우리를 초대하셔서 당신의 정체를 밝혀주신다. 그분의 정체는 너무도 아름다워서 너무도 거룩하여서 너무도 자비로워서 그저 두려운 마음만 들뿐이다. 두려우면서도 한편 평화와 기쁨과 만족함이 가득 찾아오고 그 안에서 영원히 머물고 싶게 만든다. 어느 성인이 그랬다던가? 하느님을 보면 죽는 이유가 그 아름다움과 행복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고 싶기 때문이라고....

 

그분은 그렇게 왜소하고 미물같은 우리를 당신의 거룩한 손으로 어루만지시며 "두려워하지 말고 모두 일어나라"하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같이 가자고 말씀하신다. 네가 가야할 길, 해야할 일은 여기가 아니라 저 아래에 있다고 소리없이 등을 떠밀며 산을 내려오시는 것이다.  평화와 기쁨과 만족과 행복만 있는 이곳이 아니라 온갖 불행과 시련과 고통과 절망이 포진하고 있는 저 곳에 너와 나의 할 일이 있다고 하시며... 당신의 본모습을 잠시 보여준 것은 그 일을 네가 용기있게 끝맺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하시며...

 

신비여행은 잠시였으나 그 기억은 오래 남아 이곳에서의 나의 할일을 깨우쳐준다. 여행에서 돌아왔으니 이젠 일상의 삶 속에서 그 뜻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매일의 고통과 절망과 불안을 희망과 기쁨과 웃음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 바로 남은 나의 할 일임을 깨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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