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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의 강론과 멈추지 않았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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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kimhh1478] 쪽지 캡슐

2016-02-14 ㅣ No.86952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신부님의 강론과 멈추지 않았던 눈물

 

일요일 아침,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느긋합니다. 저도 일을 안 나가지만,

아내도, 아이들도 서둘러 깨울 필요가 없으니 새벽 시간은 온전히 제 시간이 되고

글 하나라도 더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생깁니다.

시간에 쫓겨 후다닥 우려냈던 커피도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우려냅니다.

사실 커피는 5분이 넘어가면 과추출 되어 쓰다는 조언도 있지만,

이미 전 그 쌉싸름한 맛에 중독된 지 오래입니다.

 

 

사전에도 안 나오는 Seattleite, 즉 시애틀 사는 사람이란 이야기겠지요.

 (그래도 이정도 우리면 됐다는 판단이 들어 잠시 프렌치 프렌스가 있는

부엌으로 갑니다. 커피 한 잔 마시면서)

 

늦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려는 때입니다.

아내는 응접실에 나오니 너무 춥다며 벽난로를 켜 달라고 했고,

저도 커피 잔을 감싸 쥐어 볼 정도로 기온은 뚝 떨어졌습니다.

절기상으로 상강이 지났으니 이제 많이 추워지겠지요.

 

아이들을 깨워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지호는 오늘 학생미사의 독서,

지원이는 복사를 서니 일찍 집을 나서야 했습니다.

성당 사무실에서 재무 일을 보다가 저도 학생 미사에 들어갔고, 오늘의 제 1독서는

탈출기, 개신교에서는 출애급기라고 부르는 부분이었습니다.

독서의 내용이 가슴을 쳤습니다.

탈출기 22장 20절로부터 26절까지의 말씀이었습니다.

 

"너희는 이방인을 억압하거나 학대해서는 안 된다.

너희는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다.

너희는 어떤 과부나 고아도 억눌러서는 안 된다.

너희가 그들을 억눌러 그들이 나에게 부르짖으면,

나는 그 부르짖음을 들어 줄 것이다.

그러면 나는 분노를 터뜨려 칼로 너희를 죽이겠다.

그러면 너희 아내들은 과부가 되고, 너희 아이들은 고아가 될 것이다.

 

너희가 나의 백성에게, 너희 곁에 사는 가난한 이에게 돈을 꾸어 주었으면,

그에게 채권자처럼 행세해서도 안 되고 이자를 물려서도 안 된다.

너희가 이웃의 겉옷을 담보로 잡았으면,

해가 지기 전에 돌려 주어야 한다. 그가 덮을 것이라고는 그것 뿐이고,

몸을 가릴 것이라고는 그 겉옷뿐인데 무엇을 덮고 자겠느냐?

그가 나에게 부르짖으면 나는 들어 줄 것이다. 나는 자비하다."

 

이 말씀은 신부님의 강론의 주제가 됐습니다.

신부님은 당신이 어렸을 때 동생의 저금통에서 돈을 몰래 꺼내 썼다가

부모님께 '죽도록' 두들겨 맞았다는 자기의 부끄러운 과거를 이야기하며,

"부모님이 우리를 한없이 사랑하시지만,

딱 못 참는 일종의 '선'이 있으신 겁니다.

그러면 하느님 아버지의 선은 무엇일까요?

 

사회에서 억압받고 어려운 사람들을 우리가 돌보지 않을 때,

우리가 사회에 있는 '약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그들의 권리를 찾아주지 않을 때 하느님이

'더 이상 참고 못 보는 선을 넘는 행위'가 되는 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신앙인으로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따라가야 할

투 트랙이지만, 그 디테일로 들어가면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노력해야 합니다."

 

사회에서 어렵고 병들고 아픈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 소중한 자식을 구해줘야 했을 정부는 뒷짐만 지고 지켜봤고,

그 부모들은 오늘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제발 사고의 원인이 뭐였는지 그 진실을 밝혀달라고 하며

추운 길바닥에서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법에 의해 정규직으로 전환돼야 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법원의 명령을 지켜 달라고 또다시 높은 곳에서

바람과 추위를 무릅쓰고 그들의 처지를 호소해야 합니다.

 

어렵게 복직이 됐더니 회사가 자기도 모르게 이사가 버리고,

군에 보낸 자식은 의문사란 이름으로 죽어 돌아옵니다.

그렇게 해서 아프고 아픈 이웃들이 쌓여 있는데,

그들의 아픔을 모른 체 하고 있다면 하느님은 분노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신부님의 강론을 듣고 영성체를 하고 나서 눈물이 나서 결국

재무 일을 핑계로 성당 사무실로 들어와 휴지를 찾아 눈가를 찍어냅니다.

그래도 눈물은 계속해서 흐르고, 사무실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무슨 일이냐고 묻습니다. 졸려서 하품이 나온다고 이야기하지만,

눈물이 벌써 눈을 꽤 붉게 만들어 놓았던 모양입니다.

집에 전화기를 놓고 성당에 왔는데,

아내가 제 전화기를 들고 사무실로 찾아와서는 제 얼굴을 봅니다.

 

"무슨 일이예요?"
"응... 이따가 신부님 강론 들어 봐요."

정의란 무엇일까. 그리고 하느님의 뜻이라고 표현은 됐지만,

그것이 왜 정의인 것이고, 평화는 왜 정의의 열매인 것인가

하는 것들에 대한 고민과 물음이 신부님의 강론으로 정리가 됐고,

그 아픔과 억울함 같은 것이 자꾸 느껴지는지 눈시울이 계속 붉어집니다.

 

 오늘따라 저와 띠동갑이신 성당 사무장님이 당신이 다녀오신

군대 이야기를 하시면서 그때 겪었던 부조리들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자꾸 가슴이 턱턱 막혀 옵니다. 아프고 억울한 사람이 많으면,

하느님은 결국 분노하실 겁니다.

권종상...시애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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